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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ue Trader

Inuit 2006. 4. 19. 21:04
Rogue trader, 우리 제목으로는 '겜블'이라고 나온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유서깊은 은행 베어링을 한방에 깔끔하게 파산시켜 버린 Nick Leeson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베어링 은행 파산은 두가지 점에서 아주 유명한 경영 사례이지요.
첫째, 파생상품의 극단적인 위험과 이의 피하기 위한 적절한 헷지가 중요하다는 점, 둘째, 내부 통제 시스템의 미비는 국소적인 비효율이나 비리가 아니라 전사적 위험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천억원이 마음을 짓누르는 리슨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 구조라, 예상보다 무척 긴장하며 보았습니다. 이완 맥그리거의 까칠한 영국 액센트는 역시 매력적이었습니다.
영화 본 김에 당시 상황을 놓고 공부를 좀 했습니다.

리슨은 왜 망했나?
첫째는, 그 유명한 88888계좌라는 에러 처리 계좌를 손실 은닉용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객 자금 운용시 생기는 미소한 손실을 모아서 잡손실로 처리하는 계정인데 리슨은 첫 실수를 잠시 숨기는 용도로 사용했고, 손해가 깊어지다가 추후 이를 한번에 만회하고 오히려 이익까지 봅니다. 그 이후로 중독적으로(addictive) 이 계좌를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도 그럴것이 전 베어링 은행 수익의 50%를 리슨 혼자서 내니 모든 기대가 한몸이고, 그러다 보니 손실은 88888 계좌로, 이익은 싱가포르 베어링 지점 계좌로 갈려 들어가게되고 점점 더 스타가 되어 버리지요. (기술적으로는 이보다 더 복잡합니다.)
영화에서 계좌이름을 짓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리슨이 admin에게 어느 숫자가 좋냐고 물으니, '중국사람은 8자를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다'고 대답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 번호가 88888로 정해졌지요.

둘째는, 실제로 겜블을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편취를 위한 것이 아니지만, 리스크에 냉정해야할 트레이더가 도박의 심리로 업무에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도박에서 절대 지지 않는 비결을 아시지요?
이를 martingale gamble이라고 하는데, 전제사항이 두가지 있습니다. 첫째 잃고 딸 확률이 1/2일 것, 둘째, 무한의 자금을 갖고 있을 것.
영화에도 나오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리슨은 잃으면 그를 만회하기 위해 두배로 트레이딩을 했습니다. 그러나 운나쁘게도 리슨은 두가지 전제가 다 맞지 않았지요. 시장에서 이길 확률은 50% 미만일 뿐더러, 베어링은 자금이 유한했지요. 결국, 리슨이 베어링 납입자본의 60%를 끌어다 쓴 시점에서 본사 자금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베팅은 끊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셋째, 시장을 과소 평가했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예측력에 지나친 기대를 했고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점입니다. 이는 '시장과 맞서 싸우지 말라'는 증권가의 격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이해는 가는 부분이, 싱가포르 거래소 SIMEX가 다른 시장보다 작기 때문에 실제로 베어링 혼자서 지수를 움직일 적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가치를 크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자신이 원하는대로 시장을 움직이기 위해 과도한 포지션을 가져갔던 것이지요.
기술적으로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선물거래의 경우 일일 청산이 원칙인데, 문제의 88888 계좌에 손실이 커지면 이를 유지하기 위한 증거금이 필요합니다. 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옵션을 팔았는데, 죽음의 거래인 스트래들(straddle)을 했습니다. 스트래들은 같은 행사가격에 콜과 풋을 동시에 파는 것인데 옵션 발행자가 이기는 경우는 옵션 만기일에 행사가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이고 그래봤자 그 이익은 옵션 프리미엄이 전부입니다. 만일 가격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그 손실분을 전부다 떠안아야 하지요. 보통 이 경우는 현물, 선물거래 등으로 헷징을 하는데 리슨은 헷지 없이 스트래들 거래를 했습니다. 대담의 차원을 지나 무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스트래들 가격을 지키기 위해 시장과 맞서 무모한 포지션을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컨대, 지수가 떨어지면 지수를 끌기 위해 매수를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가격을 벗어난 포지션은 정리하면 다 손해인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규모가 작은 SIMEX에서 현금 확보를 위해 옵션을 남발하다 보니 장에는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옵션 프리미엄이 떨어져 손실을 메우기 위한 옵션 발행물량을 점점 더 늘려 위험을 키웠지요.

베어링은 왜 망했나?
경영에 관계하는 저로서는, 이 부분이 더 흥미롭습니다.
회사차원에서는 단 한가지 문제, 내부 통제가 미비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야 그렇다치고, 베어링 파산에 관한 문서들을 보면 베어링이 망하기 전 해인 94년 감사보고서는 대략 이렇습니다.
'리슨이 규정을 넘는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으나 전체 거래 규모와 전사 손익에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과하지 않으며, 혼자서 결제, 지휘, 감독을 하는 것 등의 위험 요소는 있으나 이러한 권한을 남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한 바 없음'

여기에는 세가지 시사점이 있지요.
일단 돈 잘버는 것이 충성이므로 좀 힘을 실어주자는 기조는 회사마다 있게 마련입니다. 이 경우 그에 합당한 조직적 구조가 따라줘야 합니다. 이것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영웅시하고 절차를 눈감다 보면 큰 구멍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정말 그렇게 잘하는 직원과 지점이 있으면 본사에서 그 조직을 더 강화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격려도 하면서 밀착을 유지하고 cross checking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리슨의 성공에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내부 감사를 했는데, 스타 직원의 사기를 꺾지 않으려 했던지 대충대충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감사의 목표가 개인비리 파악에 치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보다 조직의 손실을 숨기는 것이 더 큰 리스크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리슨의 본사 상위 조직에서 선물, 옵션에 문외한임을 드러내기 싫어서 자세한 내용을 토론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선물, 옵션이 대단히 기술적이므로 어려운 것이 당연하고 상사라도 모를 수 있건만, 근엄한 영국신사께서 그런 내색을 하기 싫었겠지요.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싱가포르에 뭔가 문제가 심각한듯해서 본사 고위 임원이 비행기로 날아갔습니다. 리슨은 엄청 겁을 먹습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연회장으로 가는 길에 구토까지 합니다. 드디어 만남. 임원은 리슨을 따로 불러서 이야기 합니다. "자네 포지션에 문제는 없는 거지?" "예, 물론이지요!" -끝-

이러한 문제점은 영국만의 문제도, 금융회사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아마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무엇을 배울 수 있나?
파생상품의 위험성과 내부통제에 대한 것은 이미 말했습니다.
전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리슨이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상황상 그 심리적 압박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바이로 비행기 타고 도망가다가 경찰에 잡혀 싱가포르로 압송됩니다. 그리고 6년반의 실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러나, 영화 그 이후를 보면..
4년반지나 리슨은 암 진단을 받아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서전인 'Rogue trader'를 펴냈습니다. 이 희대의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하기에 충분했지요.
결국 제가 본 영화로 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돌아가 몇년간 백수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아일랜드의 프로축구 클럽인 갤웨이 유나이티드의 회계담당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사)

결국,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은 딱 하나.


정리: 무슨일이 있어도 살아남아라. 훗날은 아무도 모른다.

따름정리: 단, 사고를 치려면 크게 쳐라. 오명이든 악명이든 유명해지고 볼 일이다.

뭐, 진짜로 위의 정리를 믿으시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책임하에서입니다. -_-

마지막 사진은 영화에서 처음 인도네시아에 부임했을때 채권이 안전하게 보관된 철창속의 사무실 풍경인데 결국 마지막 운명을 상징하는듯 합니다.
그 거대한 베어링 은행을 파산시켜 단 1파운드에 네덜란드 ING에 팔게 만들고, 퇴근하듯 철창을 나오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