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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의 만남

Inuit 2007. 1. 20. 08:36
황당한 상황을 설정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에 패해서 무슬림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처음에는 온나라가 완강히 저항할겁니다. 불교, 기독교에 유교까지 연합을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도 이슬람교가 특별히 싫어서라기보다, 당신 영혼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본디부터 지닌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고 반동할 것입니다.
적어도 처음 몇년간은 말이지요.


* * *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무슬림 수뇌부에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 못한채 십년이 흘렀습니다. 이젠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신 회사의 동료중 반은 이미 무슬림으로 개종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저항은 하지 않지만 아직 불만이 가득한 당신은 신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비무슬림에게 부과하는 인두세를 더하면, 개종한 동료가 내는 세금의 두배입니다. 속상합니다. 겨우겨우 노력하면 못낼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빠듯해지는 살림탓에, 요즘엔 아예 대놓고 면박을 주는 배우자의 독촉에 얼굴만 벌개집니다. 돈을 더벌어 오지 못하면 엿바꿔 먹지도 못할 기독교에 대한 맹목을 버리고 개종해서 인두세 면제 혜택을 받으라는거지요. 혼자 독야청청해봤자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우리만 손해 아니냐고 다그칩니다.

그러고보니, 당신 상사인 이란 사람 알타프 씨는 매우 멋진 사람입니다. 영민한 비즈니스 감각과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 신사답고 여유있는 유머 등 형님으로 모시고 배울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무슬림이라고 해서 친하게 지내지 못할 이유는 무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알량한 지조..?

게다가, 생각해보니 작년 여름에 조카녀석이 중한 병을 앓았을때는 어땠나요. 신장 기증을 받지 못해 온가족이 쩔쩔 맸습니다. 당신이 속한 기독교 공동체에는 아무리 호소를 해도 십원 한장 도움은 커녕 전화 한통의 호의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신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무슬림으로 자꾸 개종함으로 교세가 위축 일로입니다. 게다가 7년전부터, 교회의 헌금수입에 과세하기 위해 영리/비영리를 불문하고 모든 조직에 동등한 세율을 부과하는 '단일과세법'과, 특정 교세의 지위가 미약해 국민의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황당한 헌법해석에 근거해, 10년 한시로 이슬람교도의 기부금만 소득공제를 시행하는 '교세균형특별법'이 발효되었지요. 비무슬림에 대한 인두세는 설명했었던가요? 이렇게 나날이 교회의 형편이 어려워지니, 교단이 제 앞가림도 어려운 현실임은 모르는 바 아닙니다.
결국 당신 조카의 딱한 소식을 들은 인근 도시의 모스크에서 구역내 무슬림에게 통지를 돌려 3일만에 건강한 신장을 기증해주었습니다. 당신의 여동생과 그 가족이 너무도 고맙다고 바로 무슬림으로 개종했을 때 그들을 한번 쏘아보긴 했지만, 탓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해준 것도 없는 외삼촌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이제 곧 차장 승진을 눈앞에 둔 당신입니다.
무슬림 경영진과 이란계 자본으로 이뤄진 이 회사에서 기독교를 유지한채 성장해 나간다는게 가능이나 할까 자꾸 의구심이 생깁니다. 물론, 회사는 성과 인종, 그리고 종교에 의해 직원을 차별하지 않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일찌감치 무슬림으로 개종했으나, 그와 관계없이 당신이 영혼의 친구처럼 여기는 대학 동기는 계속 권유합니다. 이 세상으로 넘어오라고. 전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사실 당신이 졸업한 대학 동문들은 대개 무슬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에,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계 무슬림 파워 엘리트의 네트워크에 속하게 됩니다.

과연 어찌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 *

자 그리고 또 십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원제: Old World Encounters
사용자 삽입 이미지

Jerry Bentley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설을 쓰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인류가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겪었던 모습입니다.

위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터키에서 출발해 중동 지역 전역에 걸쳐 강력한 이슬람 국가 연합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베리아 반도는 끈질긴 저항으로 기독 반정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불교는 자신의 근원지인 인도에서조차 마이너리티로 전락했습니다.
조로아스터도 자신의 발원지인 페르시아에서 쫒겨났고, 인도로 넘어가 파르시로 명맥만 유지할 따름입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그리고 유교까지 동원하여 종교를 표면으로 내세우고, 그 이면에는 정치라는 의도와 문화라는 추동력이 끊임없이 문명간의 충돌과 혼합 그리고 교류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고대세계의 만남'은 이러한 내용을 위주로 문화교류사를 다룬 독특한 책입니다.
마치 판구조론이라는 관점으로 지질학을 보면 많은 의문이 풀리듯, 역사상 문명의 전개양상에 있어 각 문화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통찰을 얻는 책입니다. 저는 매우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문명간 만남에 의해 생기는 사회적 conversion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며, 세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1. 자발적 제휴: 엘리트 계층이 외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도움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외부 문화를 수용
2. 사회/경제/정치적 압력: 경제적 인센티브나 상벌을 이용해 사회전체를 변환
3. 동화: 소수가 다수에 흡수 통합
+ 절충주의: 현지 문화를 인정하고 타협하여 혼합함.
   (예컨대 불교가 중국에 들어갈 때 노장의 언어로 설명. 열반=무위 등
)

실제로는 위의 프로세스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조합으로 나타납니다. 위에서 무슬림 대한민국에 대한 상황 전개를 제가 가정한 것도, 몇세기전에 그랬듯 제가 1번과 2번을 조합해 그려본 내용이지요.

역사적으로는 네번의 거대한 문명 교류 시대가 있었습니다.

1. 고대 실크로드 시대 (-2~5c): 처음 동양과 서양이 조우. 전염병으로 실크로드 붕괴.
2. 선교자와 순례자 시대 (6~10c):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확산과 세력화.
3. 유목제국의 시대 (11~14c): 투르크와 몽골의 유라시아 지배. 선 페스트로 궤멸.
4. 신세계를 향하여 (15c~): 정화와 무슬림의 원정. 노예무역의 시작 등

지금 시대 각 종교의 형성과정을 통해 영욕과 애증이 문명간의 충돌로 각 민족의 meme에 트라우마로 새겨진 사연들이 많습니다. 자발적이든 강압적이든 개인의 개종과 사회의 conversion은 많은 고통과 정신의 개조, 삭이기 힘든 아쉬움을 수반하게 마련이니까요.

전반적으로 평하면, 제가 미리 책을 사놓고도 해외출장 시 읽으려고 한달을 기다렸던 보람은 있었습니다. CES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아주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집보다는 길위에서, 한국인들 사이보다는 외국인이 어른거리는 자리가 잘 어울리는 책이니까요.
문체는 논문투라 상당히 딱딱합니다만, 번역은 나쁘지 않습니다. 유려하지는 않아도 정확한 쪽입니다. 건조하지만 졸립지 않습니다.


특히, 경영하는 제게는 또 다른 배움이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관리 (change management)입니다. 문명도 변하는데 기업이 왜 못변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첫머리는 역사에서 배울 점도 많을겁니다. 예컨대, 첫 변화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의 선정이나, 변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및 motivation management 그리고 제도 관점의 infra structure에는 시사점이 크지요.
게다가 변화관리를 넘어 두 이질적 집단의 동거인 M&A의 후과정을 리드하는 post M&A도 문화사적 관점을 도입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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