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inuit_k / CSO at high tech firm / Book addict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by Inuit

1987년 2월.
지금까지 삼국지를 제외하고는, 같은 책을 두번 읽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몇 안되는 예외 중 하나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신세계에 과학의 메스를 들이댄 그 책은, 대학 초년 시절의 제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근 20년 전이지만, 나름대로 미욱한 궁금증을 상당히 많이 해결해줬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나 프로이트와의 결별은 의외의 발단이었던 기억도 납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만은 도저히 제가 채집가능한 현실과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무종교에 공학도였던 제가 윤리나 도덕적 기준으로 가설을 기각했을리는 만무합니다. 다만, 아무리 둘러봐도 오이디푸스든 엘렉트라든 보편타당한 psycho-dynamics이냐라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전공시험도 봐야하고 데이트도 해야했던 그 때, 정신분석학이란게 제가 크게 천착할 주제도 아니었고, 동양-서양간 문화적 차이 정도로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넘어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보다는 차라리 융이지 뭐', 이런 결론까지 가졌던 듯 합니다.

* * *

2007년 2월.
시간에 쫒겨 바삐 지내는 시절입니다. 제게 있어 주말의 휴식 시간에 삶을 충전하고 지식을 채워넣는 소중한 독서시간의 의미는 여간 대단한게 아니지요. 그러다보니 제한된 시간이라, 특출난 사연이 없는한, 소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살폿 소일 문학으로 간주하는 추리소설은 졸업 후 읽은 적이 전무하다시피 하지요.

프로이트와 융이 1909년 미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이후 프로이트는 어떤 외상을 입은 듯한 진술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모의 지체높은 여성이 연달아 습격을 받았다. 가해자는 변태성욕의 특성이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 중 하나는 사망, 다른 하나는 기억상실에 실어증이다. 마침 이때 프로이트와 융이 미국에 방문을 했다. 정신 분석학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런 마케팅 teaser를 보고 제가 안넘어갈 재간이 있었겠습니까. 신문에서 보자마자 바로 구매를 했고, 한밤에 읽어내렸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Jed Rubenfeld

원제: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현직 예일대 법과교수 및 법률학자인 저자. 프린스턴 졸업시에는 프로이트를 전공했고, 줄리어드 연극원에서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던 Rubenfeld는 스스로가 젊은날 품었던 의문과 상념을 이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예컨대 햄릿의 'to be or not to be'에 얽힌 수수께끼말입니다. 특히 저와 비슷한 의문이기도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에 대한 진정한 의미에도 소설속 사건의 전개와 맥을 같이해 다양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특히, 무의식적 부모성애라기 보다는 부모와의 interaction에서 유발한 긴장이라는 해석은 제게 설명력이 있게 다가오기도 했던 부분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은 '다빈치 코드'입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1. Top-tier 전문작가가 아니란 점: 글의 쫀득함이나 내러티브의 조이는 맛이 덜하달까요. 킹 아저씨가 손을 봤다면 숨이 넘어갔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났었습니다.
2. 꼼꼼한 사료를 모아 사실위에 재구성한 허구란 점 (faction): 말미에 작가가 밝히기도 하지만, 소설속 많은 소재는 실존합니다. 그 많은 조각정보를 모아 큰 그림을 만드는 거대한 퍼즐맞추기는 얼마나 대단한 작업인가요. 노력과 고민이 안봐도 상당함을 압니다.

추리소설에 대해 이리저리 자세히 언급하면 스포일링의 소지가 다분하니 책 내용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
총평하자면, 적절한 복잡도와 적절한 반전은 크게 황당하지 않은 무난한 결론으로 이어지고, 논리적인 흠이 없어 깔끔하게 읽히는 소설입니다.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중그네  (24) 2007/03/04
드림걸즈  (20) 2007/02/25
살인의 해석  (16) 2007/02/24
블로거를 미치게 하는 방법  (65) 2007/02/22
Inuit의 추천 블로그 릴레이  (24) 2007/02/20
The Game  (20) 2007/02/03
TRACKBACK 3 AND COMMENT 16

TRACKBACK http://inuit.co.kr/trackback/1203 관련글 쓰기

  1. Subject 살인의 해석

    Tracked from Elwing's Blog 2007/03/01 23:59 delete

    Inuit님의 블로그에서 보고 질렀습니다. 책의 줄거리 매우 알흠다운 여성이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시체는 책의 표지에 나온거 보다 약간 더 노출이 심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후후후 떡밥입니다.) 여성은 상류층의 곱게 자란 아가씨 같았는데요. 온 몸에 이상한 자국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ㄱ- 옛날이나 요즘이나 변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심리학자들이 활약을..

  2. Subject [서평] 살인의 해석

    Tracked from 해적의 쉼터 2007/06/05 09:30 delete

    제드 러벤펠드 지음 , 박현주 옮김 서점에서 인기가 좋은 책이기도 하고 아는 분의 서평을 봐서 꼭 봐야지 라고 책만 사두고 있다가 최근 시간이 되서 읽게 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형태의 소설이 있습니다. 역사적인 지식이 풍부해서 그 시대를 그려내듯이 배경을 그려내고 , 또한 실제 역사적인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가공의 인물이 역사적인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스토리를 진행하는 형태!!! 대표적인 작품을 들자면 김용의 영웅문을 들 수가..

  3. Subject "살인의 해석" 을 읽고

    Tracked from nEKO'S tHINK 2008/11/19 18:32 delete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추리소설" ─────────────────────────────────────────────── ⊙ 제 목 : 살인의 해석 (The Interpretation of Murder)⊙ 지은이 : 제드 러벤펠드(글), 박현주(옮긴이)⊙ 장 르 : 외국소설⊙ 펴낸 곳 : 비채⊙ 펴낸 날 : 2007년 2월 12일⊙ Page : 555쪽⊙ ISBN : 9788992036290 ⊙ 평점 : ★★★★☆ ───────────────────...

  1. 모조 2007/02/24 12:43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이거 신문의 '새로 나온 책' 코너에서 보곤 재밌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사 봐야겠군요.

    • BlogIcon inuit 2007/02/25 08:48 address edit/delete

      모조님도 신문소개를 보셨군요. ^^

  2. airgo 2007/02/24 16:32 address edit/delete reply

    저도 광고 보고 바로 산 책입니다
    출퇴근길에 보고 있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또 보는(볼려는) ..간만에.. 그런 책이더군요

    • BlogIcon inuit 2007/02/25 08:49 address edit/delete

      마침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

  3. BlogIcon susanna 2007/02/24 20:29 address edit/delete reply

    이 책 살까말까 망설이던 중이었는데, 함 봐야겠군요.
    '프로이트보다 차라리 융이지 뭐'에 동의 한 표! 작년에 한 술자리에서 '프로이디안'임을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와 취중설전을 벌이다 '당신은 얼치기 융기안(이러케 부르대요)이구만'하는 진단까지 받았다는....^^;

    • BlogIcon inuit 2007/02/25 08:51 address edit/delete

      susanna님. 저랑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군요. ^^
      이책 보시면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인물평이 나옵니다. 그 부분만해도 흥미가 있을듯 합니다.

  4. BlogIcon idyllic 2007/02/25 00:05 address edit/delete reply

    이 책! 제목과 표지가 묘하게 매력있어 보이던데.. 추리소설이었군요~ 오.. 끌립니다. 우후후.

    • BlogIcon inuit 2007/02/25 08:53 address edit/delete

      제목은 꿈의 해석을 차용한듯 하지요.
      표지는 좀 야시시하지만 내용 생각하면 우아하게 잘 나온듯해요. ^^

  5. BlogIcon 엘윙 2007/02/26 14:31 address edit/delete reply

    오옷 재밌겠는데요. 제목에 '살인'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서 왠지 섬뜩하지만요. 근데 이책..만원이 넘는군요. 10%할인되는 인터넷으로 사야겠습니다. ㄱ-

    • BlogIcon inuit 2007/02/26 23:51 address edit/delete

      그까이꺼 야근한방이면 해결아닙니까. -_-;

  6. BlogIcon 다크써클 2007/03/22 20:46 address edit/delete reply

    독특한 분위기와 더불어, 프로이트의 이론과 햄릿에 기반한 스토리 구상같은거.. 흥미로운 책이더군요.
    꽤 두껍지만, 금방 읽어넘길 수 있는 정도의 속도감도 있구요.

    • BlogIcon inuit 2007/03/22 21:29 address edit/delete

      네, 법률학자가 쓴 책치고는 훌륭이지요. ^^

  7. 2007/04/28 18:00 address edit/delete reply

    비밀댓글 입니다

    • BlogIcon inuit 2007/04/29 09:17 address edit/delete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블로그에 방문하겠습니다.

      물어보신 이야기에 답을 드리자면, 저는 번역서만 읽었습니다.

  8. BlogIcon 민트 2007/06/19 17:31 address edit/delete reply

    서점가서 찾아보고 있으면 한 번 질러봐야겠습니다. 이번 방학내내 읽을지도 모르겠네요 ㅎ

    • BlogIcon inuit 2007/06/19 21:53 address edit/delete

      금방 봅니다. 잘 읽히거든요. ^^





Inuit Blogge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727)
Biz (435)
Culture (296)
Sci_Tech (94)
日常 (334)
Travel (215)
Photo Memo (78)
Fun (99)
memo..ries (125)
共知 (51)

CALENDAR

«   2010/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