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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 그리고 머쓱

Inuit 2005. 4. 2. 22:40
제가 최근 바빴던 세가지 이유중 하나가 조직문화진단 사내 컨설팅 프로젝트였습니다.
원래 HR은 제 주력이 아닌데, 회사에 오니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하게 되네요.
이번엔 중요성이 많았던 것이, 회사 조직이 급속히 비대해지면서 조직 문화 측면에서 위기의 징후가 보였었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의 근원을 파악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굵직한 일 두가지는 진행중이지, 조직문화라는 것이 어찌보면 민감한 사안이라 드러내놓고 일하지도 못하지 무척 고생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설문같은 tool도 못쓰고 (담배나 한대 피죠, 커피나 한잔 하죠 류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가설을 검증해나가는 과정은 더디고 초조하고 심리적 압박이 심하기도 했습니다. 특별 지시를 하신 사장님은 프로젝 결과를 기다리며 3월초로 예정되었던 정기 승급 및 조직 개편도 미루고 계시니 말입니다.
작년 프로젝트에 비해서는 투입할 수 있었던 자원이 1/32 정도로 절대량이 작아 함량은 미달이지만 다행히 핵심 사안은 짚어냈고 근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근원을 알았으니 해결책은 단기내에 실행이 가능하고 효과가 큰 것들로 몇가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골치 아팠던 프로젝을 어설프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 * *


어제 월례회에서 조직 운영 방침에 대해 중대 발표가 있었는데, 제 보고 내용 원안대로 99% 실행한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제귀를 통해 실제로 듣는데 어찌나 짜릿하던지.

이런게 작은 회사에 다니는 매력이구나 싶었습니다.
회사를 더 낫게 바꿀 수 있다는 점.
좋은 회사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일한 결과가 바로 보여지고 feedback되는 즐거움.
대부분의 직원은 제가 그런 고생을 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이 번져가는 각자의 얼굴을 보며 느끼는 희열.

"지금 발표는, 에.. 오늘이 만우절이지만 absolutely true입니다."

사장님의 농담마저 감격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 * *

오후에 업체조사좀 하느라고 재무제표와 공시자료를 놓고 씨름을 하는데, '기특한 후배' 과장이 갑자기 축하인사를 합니다.

"팀장님 축하합니다!"
"?"
"메일 보세요." ^^

조직운영 방침 발표에 이은 인사발표가 있었습니다.
부장 승진이 되었더군요.
매출 1000억원 조금 넘는, 아직은 작은 회사지만 그래도 직급의 무게는 느껴집니다.

'음 일을 지금보다도 더해야 하는건가?'
'입사 1년만에 승진이 되면 좀 그런데..'

머쓱해진 순간이었습니다.


* * *

저녁에 일을 좀 빨리 끝내고 아홉시쯤 부서분들하고 간단히 맥주를 마셨습니다.
집에서 전화가 옵니다.

"뭐해?"
"어 술먹어.. 오늘 승진했어."
"더 올라갈 데가 있어?" -_-
"있긴 있어." -_-
"그래..?"
(잠시후)
"근데에~ 오늘 만우절이잖아. 사람들 술먹고 싶으면 그냥 사달래도 사줄걸 우리 순진한 남편 마음만 들뜨게 한대.."
"그러게말야. 근데 사장님이 만우절하고 상관없다고 하기는 하셨어." -_-
"내일 가봐야 아는거 아냐? 아무튼 술 조금만 먹고 들어와."
"웅.."


* * *

오늘 출근해 보니 아직도 사람들이 절 '부장님'이라고 부르긴 하더군요.
어제 속아서 술 산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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