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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Inuit 2007. 9. 2. 10:24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극입니다만,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몇 달 전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언론들은, 범인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현지 한국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현지 반응은 '그는 미국인 맞다. 그리고, 그의 개인적 문제일 뿐 한국인이라는 점과 무관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언론은 냄비신문에 호들갑이고, 미국언론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며 성숙하다는 일부 블로고스피어의 여론이 있었던 점도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리 쉽게 내공이나 합리성으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면에는 거대한 사회심리학적 담론이 있습니다. 바로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ichard Nisbett

(원제) The geography of thought: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 and why

1991년,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Iowa 대학 물리학과 박사과정의 Lu Gang은 논문 거절 이후 지도교수와 학생들에게 난사를 하고 자살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보도에도 동서양간 시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미국 신문들은 루 강의 개인적 특성, 심리적 약점과 태도에 집중한 반면, 중국 신문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학력압박, 미국 사회의 문제점 등을 부각해서 보도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가해자를 비난하고, 중국은 상황을 비난하는 논조가 민족주의였을까요.
곧이어 미시건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같은 맥락을 보입니다. USPS의 Thomas McIlvane이 해고에 항의해 총기 난사한 사고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뉴욕 타임즈는 매킬베인의 내적 특성에 집중하고, 중국 신문 '월드 저널'은 매킬베인의 사회적 상황을 중점적으로 보도했습니다.
Michael Morris와 Peng Kaiping은 사후가정적(countfactual) 질문을 통해 미국 대학생과 중국 대학생도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함을 보인 바 있습니다. 예컨대, 루 강이 job을 가졌더라면, 매킬베인이 정서적 안정을 줄 친구가 많았다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리라고 중국학생들은 예측했고, 미국학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사건이란 견해를 보인겁니다.
이 사례들이 단지 일부의 예일뿐,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에 그렇게 큰 차이가 날까 생각하시나요?

동일한 내용이 제 예전 글에도 있습니다. 한번 풀어보세요. 특히 2번.
한국인과 미국인의 답이 다르다고 하는데, 제가 물어본 한국인은 대개 같은 답을 했습니다.
믿기 힘들다면, 다른 문제를 하나 낼게요.

Q. 닭과 풀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 그림을 제시합니다.
    소는 닭과 짝을 지어야 할까요, 풀과 짝을 지어야 할까요?

모든 문제를 제 아이들에게 풀어보게 시켰는데, 100% 토종 한국인 맞더군요. 이유도 일반적인 한국사람과 똑같았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대별됩니다.
동양: 집단  전체  상황  동사  경험  순환  관계  Both/and  Wave
서양: 개인  부분  본성  명사  논리  직선  범주  Either/or  Particle

책에서 말하는 동양은 중국-한국-일본을 전형화했고, 서양은 앵글로 색슨의 미국이 대척점에 있습니다. 기타 동양과 유럽이 스펙트럼의 중간에 분포됩니다. 이러한 시각의 확고한 차이가 왜 생길까요.

문명의 발생과 궤를 같이 하는 현상이라는 결론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다운 자유와 개성으로 논증과 변론이 발달하고, 사물을 개별로 인식하고 범주화합니다. 반면 고대 중국은 전통적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농경문화라는 경제하부구조로 인해, 서로간에 화합하고 배려하는 관계 위주의 인식론이 발전한 탓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쉽게 원인을 지목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문화와 언어가 미치는 독립적이면서도 보완적 영향도 무시하기 힘듭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로 대변되는 동서양 사고방식의 전형이지만, 두 사람이 원인이라고 단순히 결론 맺지 않습니다. 이미 문화적, 언어적으로 동양과 서양 사회가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사상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널리 파급되고 오래 전승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 마음에 꼭 드는 설명방식입니다.

저자는 보편타당한 인간이라는 전제를 가진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다른 문화의 생각을 살펴볼 필요를 안 느끼는 미국인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영민한 학자답게 꾸준한 연구를 통해 스스로의 견해를 수정하고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집대성하였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도 살아봤기에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은 잘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명한 대비와 명징한 설명으로 이해의 폭이 매우 깊어졌습니다. 현상보다 구조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지요. 글로벌 경영과 관련해 갖고 있던 고민과 지적 욕구에도 부응한 점이 많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또 하나의 소득이 있습니다. 마이클 루이스의 수상하리만큼 직선적 인과론에 제가 그렇게도 수긍이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이 책에 있었습니다. 원래 차이가 그렇답니다. 스포츠 경기의 승부를 평해도, 미국인은 '작년 MVP 아무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개별 선수 몫으로 여기고, 동양사람은 '상대방이 이전 경기를 터프하게 치룬 탓' 처럼 상황으로 읽는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Lewis는 Lewis고 Inuit은 Inuit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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