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고, 블로그는 더더욱 없었으니 정보는 미미하게 흐르고 바야흐로 각개 약진의 시대였습니다. 알아서 읽고 제멋대로 공부하는거죠.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의식화가 한 조류였고, 대입경쟁률이 1:1은 많이 넘었기에 대학생이라면 읽어야 한다고 알려진 문학, 사상, 역사, 철학 책 리스트가 범주화되어 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공대생이었던 저는 신입생 무렵에는 전인교육을 핑계삼아 문사철 책들을 끼고 지하철을 탔었고, 3학년 즈음 미분방정식을 택해 경계조건 안으로 이주했었지요.
아직도 기억나는 몇몇 책은 대개 읽다가 완독을, 또는 완전한 이해를 포기한 책들입니다. 베케트가 그랬고 카뮈나 헷세들도 제겐 쉽지 않았습니다.
이사 와중에 잃어버리지도 않고 아직 서가에 자리잡은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 중 하나지요.

김용규
하지만, 논의의 정세함은 카페에서 읊조리는 입담의 수준을 분명히 넘습니다. 굳이 따지면 '그날이오면'의 카페시대도 아니고 '학림다방' 시절의 논담일겁니다.
'구토'에서 다뤘던 일상에 대한 혐오, '고도'가 드리운 권태 그리고 카뮈의 '부조리함'에 대해 이제야 명료하게 이해를 했습니다. 심봉사 눈뜨듯 말입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깔끔하게 제시하되 논술 자습책처럼 문학을 갈가리 찢어발겨 머리-등뼈-꼬리만 외우라고 주진 않습니다. 저자는 철학의 풍부한 이해를 위한 사례집으로 문학을 활용합니다. 그래서 소설과 철학서가 병치되고, 소설을 시로 다시 노래합니다. 서양의 철학에서 제시한 의문을 한국의 시나 소설에서 답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가장 큰 미덕은, 구조를 명징하게 해부해보는데 그치지 않고 철학적 해결책을 찾아보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의 방향은 항상 따뜻합니다. 인간에 대한 신뢰, 실존에 대한 지지, 결코 버리지 않는 희망과 기대입니다.
제가 '설득의 논리학' 을 본 후, 올해 전권을 섭렵하기로 마음 먹은 김용규 작가입니다. 사실 그가 아니라면 읽지도 않았을겁니다. 문학을 읽고 남이 해석해주는 책을 읽는다는게 제 성미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대학 졸업후 단 한권의 고전도 읽지 않은지라, 읽는 내내 대학시절의 주변적 에피소드가 생각나 즐거웠고, 과학과 경영학에 경도된 제 관점에 균형추 역할을 해준 점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왜 이제 이 책을 나이 40넘어서야 보게 되었는고 통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대학시절 의미도 모르고 부둥켜 안고 세월을 죽이지 않았을걸 하는 아쉬움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예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죽느니 이게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공자께서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하셨잖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