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정보없이 만나기와 그 이의 프로필을 읽고 만나기, 어떤게 흥미롭고 의미있을까요?
만일... 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고 만난다면 또 어떨까요?
(원제) Istanbul
이스탄불 출장에 맞춰 책을 검색하다 파묵씨가 쓴 책이라 주저없이 골랐습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 터키의 작가라기 보다 이스탄불의 작가로 유명합니다. 명성으로 치면 더할게 없는 작가가, 스스로의 치부와 정신세계를 낱낱이 해부하는 회고록을 썼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이스탄불 만나기 전, 도시의 내밀한 일기처럼 읽었습니다. 한 작가의 회상은 그 도시의 추억이기에.
모든 자서전은 매혹적입니다.
추억은 항상 윤색되기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동양도 서양도 이국의 정취를 물씬 느끼는 이스탄불입니다. 물론, 이 책 한권으로 이스탄불의 가이드북을 갈음할 순 없을겁니다. 하지만, 마치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삼촌으로부터 이야기 듣듯 미묘한 감정선과 수많은 에피소드는 엽서속 상상에만 존재하던 도시를 서울에서 10시간 떨어진 실제 도시로 느끼게 해줍니다.
머리가 하얘 파묵(cotton)이라 불리운 가문. 그리고, 무난하게 자라라는 염원으로 가장 평범한 술탄인 오르한의 이름을 딴 작가. 이스탄불은 그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입니다.
심지어 세계 시민으로서, 터키화한 이스탄불을 보는 회한이 내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컨대, 1453년 술탄 메흐메트의 이스탄불 침공을 서방 역사의 몰락으로 볼지, 동방 역사의 정복으로 볼지 스탠스를 정하기 힘들어 하지요. 게다가, 근대 오스만 쇠락을 겪으며 서구 유럽에 대한 강한 동경을 보입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수십년전 미국에 대해 느꼈던 그런 막연하고 아련한 감정과도 같지요. 이러한 복합된 정서를 파묵씨는 Hüzün 이라 요약합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비애나 한에 상응하는 단어입니다.
이번 출장 여행에서 특히 많은 도움을 받은 책입니다.
말 나온 김에 바랄 점 하나.
우 리도 "Seoul"이라는 책이 있어 우리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록달록 치장한 여행 가이드북, 판에 박은 여행코스보다 사람 냄새나고 서정적인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얼마나 대단할까요. 제가 '이스탄불'에서 느꼈던 그 경이로운 감동처럼 말입니다.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멋진 그림체를 만나다 (16) | 2008/11/18 |
|---|---|
| [1004] 1. 서남아 돕기: Inuit 2종 세트 (16) | 2008/11/01 |
| 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14) | 2008/09/04 |
| 베이징서 미국인 피살 (15) | 2008/08/09 |
| 좌충우돌 다산선생님 (24) | 2008/07/29 |
| 다산선생 그리고 블로거십 (16) | 2008/07/27 |
-
쉐아르
2008/09/05 02:00
책도 책이지만, 새로 접하는 문화에 대비해 inuit님의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어차피 일로 가는 출장, 이렇게 준비하시면 공부도 되고... 시간을 참 효과적으로 쓰시는듯 해서 많이 부럽습니다 ^^
-
쿨짹
2008/09/05 04:43
정말 글 잘 쓰시는 멋진 분께서 그런 책을 쓰면 좋겠네요. 다른 언어로 번역도 많이 되어서 누군가가 저에게 '서울은 어떤 곳이냐'고 물으면 '당신네 언어로 번역된 Seoul'을 읽어봐라... 고 주저함 없이 얘기할 수 있게 말이죠.
바쁘신 일정일텐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시간을 내셔서 출장(및 여행) 후기를 올려주시는 것 너무 감사합니다. :) -
mode
2008/09/05 16:04
제가 쓰면 될듯.
서울.. +_+
와핫홧핫.. 그거 읽고 다들 안오면 안되는데..
하지만, 전 교묘하게 멋진 도시인것처럼 쓸지도 모릅니다. 흐흐..
읔! 노벨문학상부터 받아야 하는건가요? 그..그럼 패스~-
inuit
2008/09/05 20:45
앗 자원봉사자 출현!
노벨상은 저절로 따라 붙을지도 몰라요.
mode 님이 쓰시면 제가 출간을 스폰서해드릴게요.
단 초고는 영어로 일단 써오기. ^^
-
-
sanna
2008/09/06 00:51
저도 스페인 그라나다에 갔을 때 워싱턴 어빙의 책 '알함브라 이야기' 덕분에 그 도시를 흠뻑 느낄 수 있었어요.
저야 팔자 좋게 놀러간 것이지만, 출장을 준비하면서도 부지런히 책을 읽으시는 inuit 님 모습이 멋집니다! ^^ -
-
컴속의 나
2008/09/06 22:33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꼭 서울 만이 아니라 그 도시의 영혼까지 보여줄 수 있는 책이 많으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을 것같습니다. 출장이시지만 이스탄불 여행 참 부럽습니다. 어휴 저는 언제나 한 번 가볼까나~~
-
inuit
2008/09/07 11:14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도시의 특정한 정서를 세계에 알릴 정도의 글이면 바랄게 없을 듯 합니다.
꽁뜨로 한번 써보시면 어떨까요? ^^
-
-
jennifer
2008/09/07 13:48
이런... 출장을 잘 다녀오셨을 뿐 아니라 포스팅도 부지런히 해놓으신 걸 제가 다 놓치고 있었군요...
여행 (출장이라 하면 더더욱)을 떠나면서 정보 서적 아니라 작가의 도시 이야기책을 골라 가시는 분의 감성은 대체 어찌 가늠을 해야 하는 건지요...
당연히 언제나 소개하시는 책들의 수준 높은 가치에 주목하지만, 그걸 고르시는 안목과 마인드에 늘, 감탄하게 됩니다.-
inuit
2008/09/07 18:57
출장이 잦아, 예약 걸어놓고 간 글이었습니다.
글이 밀려있는데 정리가 안되어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휴일날 PC잡고 뭐하나 싶기도 하고.. ^^;;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냥 푸념 좀 했습니다. 하하..
-

PR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