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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Inuit 2008. 9. 20. 11:25
당신은 18세기 유학자이자 관료입니다. 임금이 부릅니다. 그리고 명을 내립니다.

수원에 성을 짓겠다. 책임을 맡아라.

얼마나 황당한 주문일까요. 하지만, 공부의 선수, 지식다루기의 귀재 다산 선생은 동서고금의 자료를 섭렵하고 문제를 풀어 나갑니다.
먼저 필요한 성의 크기를 추정합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산정합니다.
축조 방식을 논증하여 결정합니다. (벽돌파 연암과 한판 붙어 석재를 관철시키지요.)
도중, 무거운 석재는 나르고 쌓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도구(tool)인 기중가와 유형거를 발명합니다.
물론 축성에 필요한 목재를 조달하기 위한 삼림은 수 년전에 조성해 놓았지요.

적어 놓고 보니 쉬워 보이나요. 토목공학, 건축공학, 기계공학, 삼림학, 재료공학에 회계학까지 망라한 주제입니다. 더우기 당시 조선엔 그런걸 가르칠 곳도 없는 상황이지요. 스스로 깨우쳐 배우는 도리 뿐입니다. 이래도 쉬워 보일까요.

정민

Da vinci and Dasan
저는 다빈치에 비견하는 다산선생입니다. sanna님 표현대로 르네상스적 지식인입니다. 경(經)에서 시작하여 응용학문까지 두루 통달했습니다. 18년간 강진 유배생활 동안 경집 232권, 문집 260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를 들고 귀경했을 때 도성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영겁같은 유배생활이 다산 선생에겐 지극한 불행이나, 한국 지성사에는 커다란 축복이라는 아이러니가 되었습니다.


Once started, get through
그 고갱이는 사실 앞에서 따로 뽑아 글로 적었습니다. 다산 선생의 족적에서, 블로그 프레임, 토론문화, 컨설팅과 방법지, 그리고 교육법을 읽어냈습니다. 이는 취선논단, 초서권형 등 다산 선생의 방법론을 원용한 결과입니다. 거칠더라도 다산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공부해라.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라.
이 두가지 명제에서 앞서 말한 그의 역량과 성과가 나왔다고 봅니다. 그 상세는 다시 되풀이 하지 않겠습니다.


Be practical
다만, 꼭 하나 추가하고 싶은 부분은 그는 진짜 선비였다는 점입니다.
다산 개인의 비전과 사명이라고 봐도 되는 요체는, '사람을 위한 학문'입니다. 강구실용(講究實用)은 인간 다산을 읽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쓰이는게 중요한 공부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촌병흑치' 같은 책은 전형적인 예입니다. 비싸고 구하기 쉬운 약재는 백성들에게 그림의 떡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흔한 약초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쉽게 적은 책입니다.


Diligent and thrifty
또한, 삶 자체도 선비지요. 다음은 그가 아들에게 준 유산입니다.
내가 남겨줄 건 다른거 없고, 딱 두 글자다. 근(勤)과 검(儉).
이는 삶을 두터이하고 가난을 구제한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과 비옥한 땅보다 나으니 평생 써도 다 못쓸 일이다.
또한 단 세글자로 한 사나이의 일생을 바꾼 사례도 있습니다. 애제자 황상을 처음 만나고 내린 삼근계입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해라.
능력없고 게을러 가난한 적빈(赤貧)이 아닌, 간절한 삶의 자세로서의 청빈을 중요시한 다산다운 말입니다.


Thank you, Jung Min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책의 내용이 다산 선생의 육화가 아니란 점입니다. 이 책은 오로지 정민 본(本)일 뿐입니다. 저자가 치열히 궁구하여 다산의 방법론을, 그리고 장점을 낱낱이 적은겁니다. 그래서, 적힌 그대로가 온전한 실체를 구성하는 사실들이라 믿기 보단, 21세기에 다산을 되살려 무엇을 배울까에 촛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다산을 훌륭히 되살려낸 저자의 각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사실 이 책은 다산보다, 다산이 빙의한 정민이 주인공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산에 관한 연작 포스팅을 하다가 너무 길다 싶어 쉬었는데, 정작 리뷰는 이제야 올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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