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18세기 유학자이자 관료입니다. 임금이 부릅니다. 그리고 명을 내립니다.

수원에 성을 짓겠다. 책임을 맡아라.

얼마나 황당한 주문일까요. 하지만, 공부의 선수, 지식다루기의 귀재 다산 선생은 동서고금의 자료를 섭렵하고 문제를 풀어 나갑니다.
먼저 필요한 성의 크기를 추정합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산정합니다.
축조 방식을 논증하여 결정합니다. (벽돌파 연암과 한판 붙어 석재를 관철시키지요.)
도중, 무거운 석재는 나르고 쌓기가 어렵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도구(tool)인 기중가와 유형거를 발명합니다.
물론 축성에 필요한 목재를 조달하기 위한 삼림은 수 년전에 조성해 놓았지요.

적어 놓고 보니 쉬워 보이나요. 토목공학, 건축공학, 기계공학, 삼림학, 재료공학에 회계학까지 망라한 주제입니다. 더우기 당시 조선엔 그런걸 가르칠 곳도 없는 상황이지요. 스스로 깨우쳐 배우는 도리 뿐입니다. 이래도 쉬워 보일까요.

정민

Da vinci and Dasan
저는 다빈치에 비견하는 다산선생입니다. sanna님 표현대로 르네상스적 지식인입니다. 경(經)에서 시작하여 응용학문까지 두루 통달했습니다. 18년간 강진 유배생활 동안 경집 232권, 문집 260권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를 들고 귀경했을 때 도성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의 표현대로, 영겁같은 유배생활이 다산 선생에겐 지극한 불행이나, 한국 지성사에는 커다란 축복이라는 아이러니가 되었습니다.


Once started, get through
그 고갱이는 사실 앞에서 따로 뽑아 글로 적었습니다. 다산 선생의 족적에서, 블로그 프레임, 토론문화, 컨설팅과 방법지, 그리고 교육법을 읽어냈습니다. 이는 취선논단, 초서권형 등 다산 선생의 방법론을 원용한 결과입니다. 거칠더라도 다산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공부해라.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라.
이 두가지 명제에서 앞서 말한 그의 역량과 성과가 나왔다고 봅니다. 그 상세는 다시 되풀이 하지 않겠습니다.


Be practical
다만, 꼭 하나 추가하고 싶은 부분은 그는 진짜 선비였다는 점입니다.
다산 개인의 비전과 사명이라고 봐도 되는 요체는, '사람을 위한 학문'입니다. 강구실용(講究實用)은 인간 다산을 읽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쓰이는게 중요한 공부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촌병흑치' 같은 책은 전형적인 예입니다. 비싸고 구하기 쉬운 약재는 백성들에게 그림의 떡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흔한 약초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기 쉽게 적은 책입니다.


Diligent and thrifty
또한, 삶 자체도 선비지요. 다음은 그가 아들에게 준 유산입니다.
내가 남겨줄 건 다른거 없고, 딱 두 글자다. 근(勤)과 검(儉).
이는 삶을 두터이하고 가난을 구제한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과 비옥한 땅보다 나으니 평생 써도 다 못쓸 일이다.
또한 단 세글자로 한 사나이의 일생을 바꾼 사례도 있습니다. 애제자 황상을 처음 만나고 내린 삼근계입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해라.
능력없고 게을러 가난한 적빈(赤貧)이 아닌, 간절한 삶의 자세로서의 청빈을 중요시한 다산다운 말입니다.


Thank you, Jung Min
이 책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책의 내용이 다산 선생의 육화가 아니란 점입니다. 이 책은 오로지 정민 본(本)일 뿐입니다. 저자가 치열히 궁구하여 다산의 방법론을, 그리고 장점을 낱낱이 적은겁니다. 그래서, 적힌 그대로가 온전한 실체를 구성하는 사실들이라 믿기 보단, 21세기에 다산을 되살려 무엇을 배울까에 촛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다산을 훌륭히 되살려낸 저자의 각고에 찬사를 보냅니다. 사실 이 책은 다산보다, 다산이 빙의한 정민이 주인공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산에 관한 연작 포스팅을 하다가 너무 길다 싶어 쉬었는데, 정작 리뷰는 이제야 올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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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트랙백  2 , 댓글  20개가 달렸습니다.
  1. 저도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읽을수록 지금 유행하는 여러 '기법'들의 뿌리를 되밟아가면 성현들의 지혜와 맞닿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 첨단 기법이라 불리는 것들이 옛 지혜의 재탕, 삼탕인 듯한 생각도 듭니다. inuit님이 예로 드신 부분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네, 특히 방법지에 대한 고민과 깊이가 예전이 더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가이드북 형식의 '씹어 먹여 주는' 공부가 대종을 이루잖습니까.
  2. 초등학교 2학년인 큰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다빈치입니다. 며칠전 또 다른 그에 대한 책을 사주었는데 다산과 비견을 말하니 수긍이 갑니다.
  3. 저도 작년에 밑줄 쳐가며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워낙 좋은 책이라 평생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서평 잘 읽었습니다.
    • 네. 정말 두고두고 들쳐보고 싶다는 점에서 소장가치가 확실히 있지요.
      방문 고맙습니다. ^^
  4. 앗..
    반가와라~~
    제가 읽은 책입니다요..^^
    책장 넘기기 개인적으로 힘들었지만 꼭 두고두고 읽고읽고 또 읽고 싶은 책입니다.
    울 아들녀석도 얼른 읽키고 싶은데 아직 이른 듯 합니다.

    잘 정리 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다시 읽어 봐야징~~~

    좋은 밤 보내시고 계시죠~~
    • 책장 넘기긴 어렵지 않은데, 넘겨도 넘겨도 끝이 안난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
      말씀처럼, 아이들 좀 크면 읽힐만 합니다.
      공부하는 법, 살아가는 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좋은 기회지요.

      (좋은 밤 보내고 싶습니다. ^^)
  5.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 공감하는 말입니다.
    inuit님이 올려주시는 좋은 리뷰들은 제가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정곡을 콕콕 찔러주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읽지 않아도 읽은 듯...ㅎ

    가족 MT사진도 잘 봤습니다. 완전 멀티플레이어십니다. 대단하세요 >.<
    • 요즘 집 밖 이벤트가 많아서 놀러다니는 이야기가 주로 올라오네요.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6. TV 책을 말하다에 소개되었을때 접한 책입니다.
    근과 검 정말 좋네요.
    근면하고 검소한 삶, 선비처럼 사는 것도 멋진 것 같아요.
    • 네. 특히 근과 검 두글자면 재산도 필요없다는 선비의 오롯한 정신에 고개 숙여지더군요. ^^

      zet님 반갑습니다. 포스팅 잘 보고 있습니다. ^^
  7. 읽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지 않음에도 이 책에 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번 손을 대어 처음부터 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깊이가 있는 책이지요. 좋은 평 감사드립니다.
    • 쉐아르님이 좋은 평을 하셔서 이 책에 관심갖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8. 좋은 소개 글 잘 봤습니다 !
    ' Beyond '라는 말이 저에게 꼭 필요한 거 같네요
  9. KMS 에 대한 선진사 사례 조사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반가운 이름이 보이네요 ㅎㅎ
    잘 지내시죠?^^
    • magicboy님은 요즘 바쁘신가봐요.
      잘 뵙기 힘드네요.
      전 잘 지냅니다. ^^
      감기로 고생하고 있지만..
  10. 소개해 주신 글 보고 일찍이 장만해 뒀다가 이제야
    읽어 봤습니다. 극찬하신 만큼 새겨 읽어야 할 좋은 책이었습니다.

    늦었지만 소개해 주셔서 감사 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도움이 되셨다면 저도 좋네요. ^^

      인사가 늦었는데, 고무풍선기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활력있는 한 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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