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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덫

Inuit 2004. 12. 29. 12:21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말했다. 난 외팔이 경제학자를 원한다고.

그것은 경제학자들이 항상 on one hand blah blah..., on the other hand ... 라고 말하기 때문에 생긴 조크였다. 흔히들 경제학이 음울한 학문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이코노미스트들중 비관론자나 냉소주의자가 유독 많은 것들도 학문에 감염된 탓일지 모르겠지만, 경제학의 속성이 좀 그러하다.

서론이 길었지만, 장하준 교수의 이 책도 on the other hand의 전형적인 교범이다.
1999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의 모음으로 외환위기 이후 고통을 겪는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영미 경제론의 허구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 핵심이고, 대단히 유용한 관점이다. 저자의 또다른 책인 사다리 치우기 (Kicking away the ladder)의 세계관이 토대가 되고 있는데, 결국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은 자국의 산업이 미약할 때 적극적으로 산업을 보호하여 성장을 이룬 후 후발 국가에게 자유무역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자기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후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그냥 거기에 있던지 기어서 올라오라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화는 증기선과 통신이 발명된 1870년대에서 1914년까지가 지금보다 더 진전되어 있었다고 논증한다. 국가간 자본흐름의 규모는 현재의 1.5배, 이민의 규모도 지금의 5배에 달하는 등 세계화의 규모면에서는 그때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줄어든 이유는?
구미 열강이 스스로의 입지가 공고해질 때까지 브레튼우즈 조약 이후로 인위적인 블록화를 시도했고 이제 문을 열고 세계주의를 명분으로 하는 경제제국주의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 민영화 및 주주자본주의, 재벌 해체 등 주류 경제학자의 논리에 반대하는 여러가지 글들이 있다. 이책은 다시 말하지만 the other hand의 역할에 충실하고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글이다.

아쉬움을 몇개 들어볼까?
첫째, 기고문 모음이라서 동어반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아마 책의 반은 같은 내용일 듯 하다. 복습효과는 인정할만 하지만, 지루함은 불가피하다.
둘째, 영미 경제론과 agent이론 국영기업에 대한 옹호 등 몇몇 주장이 다소 편벽한 논거에 기반하여 읽다보면 다소 불편할 때가 있다. 이는 논문이나 저서가 아닌 기고문의 한계라고 보여지지만 어쨌든 모음집의 독자로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불만이다.
셋째, 결국 주류 경제학이 편향되게 달릴때 그를 제어하는 균형추로서의 역할은 훌륭하나 '이런 관점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이상의 대안이 없다는 것은 아주 아쉬운 부분이다. 어쩌면 케인즈 이후에 행동하는 경제학자가 줄어들면서 스스로를 박제하는 측면이 있는 경제학이지만 결국 모든 가능성을 지적만 하는 것으로는 트루먼 같은 대통령 만나서 손하나 잃기 십상인 일이다.

그래도 경제학자의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스케일 있는 사고에 많은 자극을 받았던 즐거운 글읽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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