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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뇌과학의 함정

Inuit 2009. 11. 16. 22:24
오랫만에 형편없는 책을 만났습니다.

Alva Noe

(Title) Out of our heads

뇌과학의 함정이라니, 제가 홀딱 빠질만한 제목입니다. 보자마자 사서 읽는데 시작부터 드는 느낌, 매우 안 좋습니다. 저자의 주장을 몇가지 적어봅니다.
  • 우리의 마음은 뇌속에 있지 않다. 우리의 의식은 신경과학적 현상이 아니다.
  • 예컨대, 1달러는 다양한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 1달러 지폐를 구성하는 물리와 분자를 암만 연구해봤자 1달러의 의미를 알기 어렵다.
  • 의식은 경험이다.
  • 타인의 의식에 대한 신념은 당위와 전제의 영역이다. 관계에 대한 의문점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질문이기도 하다.
  • 그러므로, 과학이 초연한 관점에서 타인의 마음을 의식하는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마음은 모순이다.
뭐 이런 술주정같은 소리를 한권 내내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노에 씨, 만만찮은게 뇌과학과 철학을 겸했다는걸 자랑으로 삼는 이입니다. 철학의 사유법은 궤변의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노에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뇌과학적 사실들은 정확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걸 교묘히 비틀어 이슈화합니다.

노에의 가장 큰 주장은 의식이 뇌안에 있지 않다는겁니다. 하지만  쓴다고 짧게 뇌 공부한 제 지식으로도 확언가능한것은, 현대  뇌과학자들은 이미 골상학 수준이나 국지화 이론을 벗어난 상태란 점입니다. 뇌는 몸의 반영이고 세상에 맞춰 성형됩니다. 이를 뇌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합니다.

Fight with puppet
이 부분을 들어 뇌과학자들이 의식을 뇌안에 가둔다고 폄하하는건 명확한 허수아비 논증입니다. 잘못된 주장하는 어떤 사람 이야기를 끄집어내놓고 실컷 패는건 비겁하거나 치사합니다. 몰랐다면 무지한거고, 알았다면 교활합니다. 명성에 목마른 사람 아니면 판매부수에 목매다는 사람 -거의 확실히 둘 다- 같은 느낌입니다.

결정적으로 노에는 의미와 의식을 의도적으로 혼돈시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의식이 뇌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일반인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의식이 발현되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정도에 궁금증을 가질 따름이지요.

뇌가 포괄하는 폭넓은 범주와 유연한 적응성을 강조하고 싶으면, 그냥 '뇌의 제약조건과 입력(input)을 구성요소로 보자'고 주장하면 됩니다. 그 쉬운 말을 '뇌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도발적 메시지로 뽑는건 뇌에 관심이 있건 없건, 책 읽는 사람으로 불편한게 사실입니다.

Stomach does not digest
같은 논리라면 저도 책 한권을 쓰겠습니다. '위는 소화하지 않는다'라고. 책 읽어보면 저자의 논리 그대로 위장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위는 음식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 활동도 안하고 존재만 할 뿐입니다. 게다가 음식이 많으면 위가 늘어나고 작으면 줄어듭니다. 고추같이 특별한 음식에 익숙해진 위는 잘 받아들이지만, 문화권에 따라 처음 닥치면 위경련이 일어나거나 탈이 나게 됩니다. 따라서 결론 내릴 수 있지요. 위는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외부세계와 연결되어야만 위가 존재한다. 따라서 위는 소화를 할 수 없다. 위의 소화기능은 사실 위 밖에 (out of our stomach)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깔끔하지요?

So what?
무엇보다 답답한건, 노에는 지향점이 없습니다. 생각의 센세이션 이외에 관심이 없는 태도입니다. 설령 과학자들이 다 바보고 틀려서 뇌안에 갇혀서 의식을 찾는 오류를 범한다쳐도, 노에의 주장처럼 '지금은 다 틀렸다.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뇌과학이 당도할 곳은 어딜지요. 뭘 바라는지요. 시간 많으면 노에 잡고 따져 묻고 싶습니다.

오랫만에 거지같은 책을 만났습니다. 다행히 역자가 번역을 전문성 있고 깔끔하게 해서 서두에 책 덮어버릴 위기를 넘기는데 일조를 했구요. '뇌과학의 함정'이라는 책 제목은 다분히 낚시입니다. 아니 책 내용 자체가 거대한 낚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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