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파리 출장 일정도 끝났고, 런던 이동 전에 시간 여유가 있습니다. 출장 중에 단발성으로 여기 저기 최대한 보는 패턴과 달리 연속된 덩어리의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있지요. 그래서 늘 마음에만 그리던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RER C를 타면 미술관에 바로 가지만, 메트로 12번 Solferino 역을 통하는게 환승시 접근성이 좋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역사(驛舍)를 리노베이션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를레앙 철도의 기점인 오르세 역이었지요. 그래서 아직도 역건물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고 그 느낌이 좋습니다.

다양한 조각상도 있지만, 무엇보다 멋진건 회화들입니다. 19세기 미술품 2만점이 전시되어 있고, 시대적으로는 루브르와 퐁피두 중간쯤에 해당하지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들이 무더기로 있어 한국 여행자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는 미술관으로도 유명합니다.

고흐, 고갱, 르누아르, 드가, 세잔, 마네, 모네, 쿠르베, 밀레, 세잔, 쇠라 등등 어느 한 작가만 해도 입이 딱 벌어질 화가들이 즐비합니다. 제가 지금껏 본 가장 크고 화려한 그림의 뷔페랄까요. 시립미술관 르누아르 전에 갖은 고생해서 감질나게 구경했지만, 오르세에서는 너무 많아 따로 사진 찍기도 귀찮습니다. -_- 뭐 걷다 보니 복도 한켠에 밀레 만종이 있어서 하마트면 그냥 지나칠뻔했으니 말 다했죠.

무엇보다 실물을 보는 최대 매력은 작가의 숨결을 그대로 느끼는 점이지요. 세세한 터치를 보다보면 작가가 바로 이 캔버스 앞에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새록새록입니다. 그림의 구도와 색감이야 화집에서 수백번 봤지만, 그림의 미세한 균열은 미술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이지요. -_-

이날 저를 전율하게 만든 작품은 수도 없었지만, 고흐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사실, 전 고흐를 별나게 좋아하지 않고, 너무 대중적이라 오히려 경원시 했습니다만, 저 자화상을 볼 때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감흥을 느꼈습니다. 그 화사하면서 타오르는듯한 색조에 눈물이 나버렸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예술이 주는 울림이겠지요.

미술관 곳곳에 단체로 공부하러 온 꼬맹이들, senior group들 보면서 참 샘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섬주섬 쪼가리 긁어 모은 미술전에도 북새통처럼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마음껏 미술의 정수를 누리는 복받은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덕에 예술이 흥성하고 다시 또 마스터피스를 만드는 선순환은 더욱 부러웠구요.

원래 계획은 빠르게 오르세를 돌고 식사를 한 후 런던 이동을 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르세에 머물면서는 밥도 싫고 그냥 그림에 흠뻑 빠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밥을 이리 경원시 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기회가 귀해 생기는 감질이겠습니다.

그래도 예술향을 그대로 삭히기가 영 힘들더군요.
근처 카페에서 피노 누와 한잔으로 감흥을 다시 만끽하고 서둘러 파리를 떴습니다.
  1. 마음으로 찍는 사진 2009/11/20 23:40 답글수정삭제

    파리와 런던 출장이셨군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부럽습니다. -_-

    • Inuit 2009/11/21 00:23 수정삭제

      네. 퀴즈도 냈었는데, 파리 런던이 답이었지요. ^^
      출장이 편한 길은 결코 아닌데, 일 외적인 부분만 블로그에 적으니 재미나 보일겁니다. ^^;;

  2. minjis 2009/11/21 00:20 답글수정삭제

    처음가본 오르세에서 정말 덜덜 거리며 돌아다닌 기억이 납니다-
    심장이 쿵쿵쿵 !
    돌아와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전했드랬죠;
    " 고흐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 "
    ㅎㅎㅎㅎㅎ미술점수는 그렇게도 안나오던 제가 오르세를 다녀오고나니 붓터치만 보고도 모네와 마네를 구분하게 되더군요;
    파리를 다시 가면 꼭 하루를 할애하고 싶은 곳입니다~

  3. 흰돌고래 2009/11/21 00:42 답글수정삭제

    고흐.... 잉잉잉잉
    저는 고흐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해요 T-T
    직접 본다면......!!!!

  4. 띠용 2009/11/21 00:47 답글수정삭제

    아 정말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ㅠㅠ

  5. 클리티에 2009/11/21 00:54 답글수정삭제

    전 그림 관심 있어서 여행하면서 정말 미술관은 빼먹지 않고 다 다녔었는데요..

    진짜 다른데 다 필요 없고 오르세가 최고였던거 같아요.

    교과서에 있고 많이 봤다 싶은 그림들 다 있었어요 ㅋㅋ

    그래도 반고흐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박물관이 더 좋더라구요 ㅎㅎ

    자화상을 봤을때 빨려갈듯한 강렬함이 너무 좋았어요.

    아, 진짜 사진들 하나하나가 너무 인상적이라서 시간이랑 여유만 있으면

    하루종일 그 그림 앞에만 서 있어도 좋겠다 싶은 작품들도 많구...

    • Inuit 2009/11/22 14:33 수정삭제

      클리티에님은 정말 미술관에서 가장 행복을 느꼈겠네요. ^^

      반 고흐 미술관도 암스테르담 가면 들러봐야겠습니다. 말씀듣고 보니 급흥미가 생깁니다.

  6. 눈콩 2009/11/21 08:05 답글수정삭제

    오르세는 눈을 진짜 어디 둬야 할지 고민되는 장소였어요. ^^ 저는 세잔과 피사로 그림이 너무 좋았구요.

    저도 고흐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윗분 말씀대로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에 가보니 거장은 다르다는 걸 실감했어요. 기회 되면 한번 가보심이 좋을 것 같아요. 강추합니다. :)

    • Inuit 2009/11/22 14:34 수정삭제

      반 고흐 미술관 한표 추가군요. ^^

      오르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봐도 지루하지 않고, 매년가도 진부하지 않을듯합니다.

  7. 부두인형 2009/11/21 09:21 답글수정삭제

    샘 그림 앞의 학생들에게 샘이 나신 Inuit님. ^ ^ㅋ
    해외여행은 커녕 제주도에도 못 가봤지만 좋은 구경 하고 갑니다.

    • Inuit 2009/11/22 14:35 수정삭제

      하하.. 경상도 분이신가요.
      샘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리시다니. ^^

      제주도도 무척 좋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보니 확실히 더 느껴지더군요.

    • 부두인형 2009/11/22 16:15 수정삭제

      식물원, 동물원, 미술관, 박물관! 국내에도 아직 다 가보지 못한 장소가 잔뜩입니다~ 제주도도 꼭 한번 가야죠~ 참, 그리고 전 수도권뱅이에요. ^ ^ㅋ

    • Inuit 2009/11/22 22:22 수정삭제

      맞아요.
      서울 근처도 좋은데 많은데 미처 못 가본 곳이 많지요.
      샘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수도권 분이시군요 부두인형님은. ^^

  8. mode_ 2009/11/21 20:26 답글수정삭제

    ㅋㅋ 저도 고흐의 작품을 보고 아..지금까지 헛살았구나.. 인쇄물은 개뻥쟁이구나 했더랬습니다. 미술 교과서에 실린 그림과 완전 다르죠.. 홀라당.홀라당..홀라당 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 Inuit 2009/11/22 14:37 수정삭제

      하하. 인쇄물이 개뻥쟁이라니.. 표현이 재밌습니다. ^^;;
      고흐가 여기저기 고흐고흐 해서 진부해보여도 실제보면 인상적인 부분이 확실히 있긴해요.

  9. 이철웅 2009/11/21 21:36 답글수정삭제

    제가 대학생 때 최후의 만찬을 눈앞에 두고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네요.
    눈은 그림에서 떼지 못하고 귀가 멍해지면서 심장 울리는 소리가 귀에 울렸던...
    그림에서 어떤 외침이 울려나오는 듯 했었죠.

    귀국하시는 날까지 건강 조심하시길 ^^

    • Inuit 2009/11/22 14:37 수정삭제

      또 강렬한 교감을 받으신 분이 있군요. ^^

      귀국은 했습니다. 현지에서는 블로깅하기 어렵죠. 시간상.

  10. Joey Yoo 2009/11/21 22:13 답글수정삭제

    파리와 런던, 미술관...... 부럽습니다. 저도 지난주 출장이었지만, 창원에 있는 모텔에서 케이블 방송으로 영화 한편 보면서 나름 바쁜 와중에 문화생활 한다고 무척 뿌듯해 했었는데...... ^^;;;

  11. 격물치지 2009/11/22 13:52 답글수정삭제

    내년에는 저도 오르세에 한번 가야 될텐데... ^^ 사진들 다 좋습니다.

  12. 가이브러쉬 2009/11/23 16:36 답글수정삭제

    첫번째 댓글의 리플에 동감합니다.저도 출장 포스팅을 하면 '너는 출장간거냐 놀러간거냐..' 하는 핀잔을 들었다죠. 일한 내용을 구구절절히 포스팅할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도,말이죠. 부럽습니다.

  13. 쁘렌 2009/11/23 18:47 답글수정삭제

    찍는 사람이 감동해서 그런지 간접적이지만 사진도 감흥이 전달되네요.. 출장으로는 절대 갈 수 없고, 나중에 승현이랑 꼭 가볼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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