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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산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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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산책

Inuit 2009. 11. 30. 00:05
잘 아는 이야기부터 해 봅니다. 미국은 왜 아메리카라 부를까요? 세비야에 살았던 피렌체 사람,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딴거지요. 하지만, 아메리고가 승객이나 하급관리 신분으로 신세계에 다녀온건 사실이지만, 혁혁한 공을 세운 바도 없고 실제 미국 땅에는 제대로 발도 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얄궂게도 단지 어떤 무명작가의 편지 속에 그가 선장으로 신세계를 발견했다 언급된것이 와전되어 소문이 났고, 마침 프랑스에서 지도 개정하던 마르틴 발트제뮬러 교수가 그 이름을 듣고 아메리카라고 지었을 따름입니다. 그보다 앞서 도착했던 콜럼버스 역시, 최초는 아니었고 미국 근처까지만 갔었지요. 콜럼버스는 그래도 콜럼비아라는 지명으로 섭섭함은 달래도 됩니다. 그 이전에 신세계의 비밀어장에 몰래 드나들면서 대구잡이를 했던 영국의 어부들, 그보다 몇 백년 전에 신세계를 제집 드나들듯 했던 바이킹들은 알았으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간단한 이름, 아메리카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말은 역사를 반영하니까요. 바로 이런 내용 한가득인 책이 '발칙한 영어 산책'입니다.

Bill Bryson

(Title) Made in America

읽고 나면 '과연 빌 브라이슨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미국 영어의 흐름을 좇으며 미국 건국 이후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앞서 아메리고의 이야기처럼 상식을 넘는 기묘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 초기 혁명가들, 워싱턴과 그 부하들은 밤마다 모국과 국왕을 위해 축배를 들었다. 독립은 꿈도 안꿨고 단지 조지 3세에 반대했을 뿐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은 대단한 난봉꾼이었다. 사생아 윌리엄은 법적 아내 데보라가 길렀다. 그를 방문한 손님들은 그가 어린 여자, 호텔 종업원 등과 얽혀 있는 장면을 목격하기 십상이었다. 후대의 생각과 별개로, 1790년 그가 죽었을 때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처음 헌법이 나왔을 때 아무도 그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심지어 그걸 제정한 사람조차 제대로 된 헌법 나올때까지 몇 년 동안만이라도 버텨주길 바랬다.
  •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은 당시 기준으로는 명연설이 아니었다. 2분도 안되어 끝나는 바람에 링컨이 착석할 때까지 기자들은 사진 찍을 틈도 없었다. 대본 보고 줄줄 읽은 그 연설은 링컨 스스로도 실패했다고 여겼고, 미국인들은 그가 외국인 앞에서 볼품없는 대통령 노릇을 했다고 비난했다.
  • 굿이어(Goodyear)는 평생 고무의 유용성을 찾느라 평생을 소비했고 우연히 고무제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제조공정은 수많은 표절자만 남겼다. 심지어 자신의 특허를 고의로 취소한 프랑스에 항의하러갔다가 채무자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결국 그는 막대한 빚을 남기고 죽었다. 유명 타이어 회사는 그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갖다 붙인 이름이다.
  •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에디슨은 흠 많은 사람이었다. 일이 막히면 주저없이 뇌물을 썼고, 경쟁자를 가혹히 다루고, 남의 발명을 가로채고, 조수들을 닥달했다. 그의 직원들은 불면대 (insomnia squad)라 불렸다.
  • 미국의 근간은 청교도가 아니다. 1880년 이전에 들어온 소수만이 청교도였으되, 국가 이념 설정상 강조했을 뿐이다.
  • 1920년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시가 전차(trolley car) 시스템이었는데 내셔널 시티 라인스라는 회사가 미국 100여개 도시의 전차노선을 사서 버스노선으로 바꿨다. 내셔널 시티 라인스의 주주는 GM을 비롯해 석유, 고무회사들이었다.
  • 헐리우드 탄생의 주역은 에디슨이었다. 초기 영화업자들은 에디슨이 만든 회사(Motion pictures patent company)의 폭력배들이 특허권을 무기로 한 야구방망이 협박에 못이겨 서부로 도주했다. 그들이 모인 곳이 지금의 헐리우드이다.

그외에도 미국 언어의 기원을 찾는 여행은 재미납니다. 달러가 요아힘스탈러(Joachimstaler)에서 나왔다든지, OK가 (Oll Korrect)의 약자라든지, 인디언 말, 프랑스어, 아일랜드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이 영어로 유입된 과정을 치밀하게 그립니다.

특히 초기 이민자들의 사회는 주목할만 합니다. 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배타적으로 살아간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이민자들보다 먼저 겪었을 뿐이지요. 다만, 2세대 이후부터 급속히 미국화된 점이 다른데, 나라를 만들어가는 시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생각을 합니다. 결국, 미국 사회에 적응 못하기로 정평난 한국인 교민사회는 어쩌면 좀 더 시간을 두고 평가할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보면 몰라도 사는데 전혀 지장없는 내용이지만, 읽다보면 소설보다 더한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안 알려진 미국의 개척사와 그에서 비롯한 문화사를 다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언어가 가진 힘이기도 합니다. 언어만 잘 추적해도 역사가 스며있고, 민심이 묻어있습니다. 꽤 발칙한 내용이지만 의미있는 작업입니다. 더불어, 영어 자체를 소재로 했기에 그 어떤 책보다 더한 애를 먹었을 번역자에게도 노고를 치하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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