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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2010] 1. 눈 雪

Inuit 2010. 1. 3. 21:29
크리스마스에 이어 1주일만에 또 연휴입니다.
서산 여행도 이래저래 비용이 꽤 많이 들었더랬지만, 연초는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 식구들 색다른 바람 쐬주고 싶었습니다.

Slippery way
떠나는 날, 전국은 눈폭탄입니다.
특히 영서지방은 눈도 많이오고 춥습니다. 새로 뚫린 춘천고속도로 ~ 미시령터널을 지나면 속초는 꽤 가까운 거리인데, 날씨가 안 도와줍니다.
아침 일찍 나선 길, 눈발이 흩날리는걸 보고 출발했는데 이내 폭설로 변합니다. 톨게이트 넘어서부터 차들이 엉금엉금입니다. 차도 많지 않은데, 속도가 안 납니다. 10분가다 한 대씩 어딘가 망가진 채 갓길의 차들이 보입니다. 정도가 심한 차는 차축이 부러져 바퀴도 빠져있고, 버스에 깔린 차, 반파된 차등 온갖 사고의 전시장 같습니다. 그냥 범퍼나 전조등 깨진 정도는 큰 흠도 아닌듯 합니다.

그나마 고속도로는 막혀도 진행은 되었는데, 국도로 나오니 길은 극악입니다. 제가 지금껏 다녀본 중 가장 미끄럽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차가 S자로 비틀거립니다. 운전 내내 수동으로 놓고 엔진브레이크를 활용하면서 눈을 헤쳐나갔습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길. 미시령을 넘자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습니다. 속초도 눈은 내렸지만 한참 전에 그쳤나봅니다. 까만 아스팔트 길이 이렇게 반갑긴 처음입니다. 높새바람 탓인지 속초는 강원도지만 서울지역보다도 기온이 높습니다. 마치, 설국에서 남국으로 직행한 기분입니다.

Confirm to be live
사고가 나리란 생각은 한번도 안했지만, 지난길 돌아보면 참 아슬아슬했습니다. 빳빳이 긴장해서 운전한게 어언 네시간. 길 상태 비해선 빨리 도착했습니다. 긴장이 풀리니 식욕도 강해집니다.
아이들이 며칠전부터 회 먹고 싶다 노래를 불렀고, 이번 여행의 큰 우선순위 중 하나가 회먹기였습니다. 저녁 메뉴였는데 순서를 바꾸어 점심부터 횟집을 들렀습니다.

국민 어종인 광어, 우럭을 비롯해 다섯 가지 살아있는 생선의 모듬입니다. 방금까지 살았던 녀석이란걸 의심할 여지도 없이 살이 단단하고 쫄깃합니다.
싱싱한 회 사이에서 눈을 끔벅거리고 입을 버끔거리는 활어회를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합니다. 사실 전 활어회 접시에 살아있는 생선 머리 내오는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살아 있는 회라는 증명으로 즐기기엔, 살을 다 내어 주고도 편히 죽지도 못하는 그 처지가 안쓰러워서입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원초적으로 위험과 싸웠던 탓인지, 그냥 안전히 모여 앉은 식구들이 보기 좋고, 아이들 먹이게 도와준 생선이 갸륵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기만 합니다.
전 회보다 매운탕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희열을 느꼈지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고 네시간여를 운전하다보니 뭔가 얼큰한게 당깁니다. 이집 매운탕은 정말 일품입니다. 간이 약해 슴슴하지만 생선의 진한 국물이 칼칼한 맛과 어울려 한 없이 먹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회뜰 때 여유를 많이 두었는지 생선 살도 푸짐해, 매운탕만 놓고도 술안주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Cool, creamy winter waves
보통 속초는 대포항이 유명하지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포구입니다. 그보다 좀 떨어진 동명항은 한적하고 깨끗합니다. 회가 좋다는 소리에 저는 동명항으로 갔습니다. 식사 후에 바다나 보자고 잠시 걸었는데, 정말 훌륭한 뷰포인트가 있더군요.
영금정이라고 뭍에서 바다로 다리로 연결된 정자인데, 사방 바다를 감상하기에 좋습니다. 눈 쌓인 항구에 몰려드는 파도가 일품입니다. 바다는 깨끗하여 얕은 물은 개울처럼 바닥이 투명하게 보입니다. 파도는 마치 하와이라도 되는듯 높이 말려옵니다. 큰 돌에 부딪는 파도는 연초록 빛으로 부서져 하얀 크림으로 변합니다. 제주도 주상절리의 장관을 닮았습니다. 어찌나 절경인지, 단순히 바다와 파도만 보는데도 시간 가는줄 모르게 재미납니다.

Snow in mountains
설악산 국립공원 근처의 숙소에 체크인을 했습니다.
눈앞에 병풍처럼 펼쳐진 눈덮인 설악에 온 식구는 경탄을 넘어 경악을 했습니다. 한참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착해지는 느낌입니다. 고요하고 정갈한 모습에 자연의 큰 마음 이외에 잡사는 생각도 안 납니다. 그 자연스러운 우아함 앞에서는 인간이 뽐내는 자잘한 치장이 얼마나 초라하고 우스운지 모릅니다.
서둘러 케이블카를 타러 갔는데, 들어가는 초입부터 붐벼 수상타 싶더니 매진이랍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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