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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

Inuit 2004. 12. 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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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On writing


미저리, 그린마일, 드림캐처, 러닝맨, Insomnia 등 유명 영화의 작가 스티븐 킹이 쓴 창작론입니다. 이 책은 글쓰기를 업으로 해왔고, 또 다른 글쓰기를 꿈꾸며 사는 절친한 후배의 소개로 읽게 되었지요.

책은 크게 나눠 전반부의 자서전과 후반부의 창작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킹을 영화로는 많이 봤지만, 글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킹씨 성장과정의 서술을 읽는 것은 참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에 대해 담담히 쓴 글을 읽으며 오히려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시작하며 여기저기 잡지에 투고를 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거절의 메모조차 못받다가 친필 반려메모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받은 메모를 못에 끼워 모은 것이 못을 채워 빠질 정도가 되어도, 글쓰는 것이 좋아서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네요. 쓰다가 재미없어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린 '케리'의 원고를 아내의 격려로 완성하여 마침내 거액의 계약이 이뤄졌을때 제가 왜 그리 감격스러운지. 결국 그는 처음에 주장한 바대로, '위대한 작가는 태어나지만, 좋은 작가는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상 깊었던 한 구절.
스스로를 'TV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유년기를 보낸 희귀한 미국의 소설가'라고 하며, 좋은 글을 쓰려면 TV앞에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사고도 치고 다쳐도 보며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 부분입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TV가 귀해서 동네사람들이 <여로>라는 연속극을 보러 우리집에 모일 정도였고, 아홉시가 되면 착한 어린이는 일찍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광고가 흘러나와 툴툴거리며 잠자리로 향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 TV를 옆에 끼고 살지 않았던 것이 그후에도 아무 지장이 없을뿐더러, 책이며 장난감이며 마당의 풀과 키우던 개까지 무료한 눈이 닿았던 모든 것이 아직도 가끔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TV는 절제가 필요한 물건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을 위해 TV를 연결하지 않은 나를 주위에서 폭군아빠라고 놀려도 이런 말을 들으면 좀더 TV없이 버텨보고 싶은 마음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후반의 창작론은 범상치 않은 내용입니다.
존 그리샴이니 마이클 크라이튼 등 미국의 흥행작가 소설을 읽을때, 잘 읽혔던 경험이 있을테지요. 번역상의 유실을 감안한다 쳐도 김훈마냥 문체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베르베르나 롤링의 기발한 착상도 아닌데 읽기 시작하면 놓기 힘들 정도입니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을 통해 유추하자면 그 요체는 간결함과 스피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사를 생략하고, 작가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독자가 유추하게 합니다. 또한 묘사는 상상의 여백을 주고 중요성에 맞는 만큼의 분량을 할애합니다. 이를 통해 장면들은 생생함이 살아나며 빠르게 전개가 되는 것이지요.
가장 놀란 것은, 플롯을 부정하는 스티븐 킹의 자세입니다. 그는 플롯으로 좋은 작품 나오기는 힘들다는 지론으로, 처음 상황을 자세히 설정해놓고 주인공이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 나올까 소설속 인물에 맡기다보면 원래 작가가 예상했던 결론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야 소설을 쓰게될 확률은 크지 않고, 논리적인 글쓰기가 주업이지만 글의 간결성에 대해서는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으니.

빼어난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빼어남이 문체에서 오든, 상상의 광활함 또는 지식의 풍성함에서 오든 자신만의 향기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뜩이나 블로깅을 하며 세상에 내보내는 글들이 부담스러운데,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며칠이었지요. 어쨌든 제가 글쓰는 것은 좋아하니까요..

그나저나, 고질병인 만연체 문장은 고쳐야할 악습인지, 살려야할 독특함인지 그것부터 고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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