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또 하나의 탑을 쌓은 날 본문

日常/Project L

또 하나의 탑을 쌓은 날

Inuit 2011. 3. 1. 18:58
오늘은 우리 아들에게 정말 기쁜 날입니다.
방학 특집 프로젝트로 아빠와 야심차게 추진하던 '이틀에 한권 책 읽기'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이었고, 극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Blue Christmas
방학을 시작한 직후, 아빠는 아들을 데리고 꼬십니다. 
"아들아 아들아, 이번 방학에 아빠와 책 한번 쎄게 읽어보지 않으련? ^_^ "
필연 음모가 있음을 직감한 아이, 다소 주저합니다만 아빠의 눈맞추기 스킬에 무장해제되고 GG를 칩니다. "네.."
새학년이 되기까지 대략 60일, 이틀에 한권 꼴로 읽어 30권을 채우는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아이는 음울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했지요.

Rebuilding reading power
사실 캐주얼하게 제안했지만, 저는 몹시 고민하던 지점의 이슈였습니다. 아이에게 독서 교육을 시킨지 벌써 5년째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글 읽기가 가능한 때 부터 아들은 제가 읽는 어른 책을 읽었습니다. 사상적 배경은 존 스튜어트 밀 식 교육입니다. 유럽의 고전 교육을 바탕으로 아이의 입맛과 시대에 맞게 좀 고쳐서 운영을 했습니다. 많은 책을 읽고, 또 제가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축구농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무렵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통 책읽기에 심드렁해졌습니다. 한번 달리면 전쟁의 기술을 휴일 하루에 독파할정도로 집중력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얇은 책 한권으로도 한주일을 후딱 넘깁니다. 억지로 읽히자니 책을 지겨워하는 역효과가 두렵고, 그냥 두자니 너무 '체육소년'만 되어갈지라, 혼자 전전긍긍하던 차였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아예 작정하고 책 읽는 예전의 집중력을 되살리는게 목적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아빠를 신뢰하여 순순히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Long list
말이 쉬워 삼십권이지, 어른 책 30권이면 보통 많은게 아닙니다. 책 읽는걸 게을리하던 아이는 처음에 다소 버거워 했지만, 이틀에 한 권 꼴로 리듬감 있게 초반 진도를 나갔습니다. 

물론, 동기부여가 중요한지라, 책 읽기 전에 책의 주요줄거리나 배경, 또는 재미난 관전 포인트를 미리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책 다 읽은 날은 제 일정에 리뷰시간을 표시해가면서 독후감을 대화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읽었는지 체크도 해야하고, 보다 정확하고 온전한 이해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요.


Tumbling on Money Ball
중간에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17번 책인 머니볼이 문제였는데요. 야구에 경영을 접목한 소설책입니다. 당연히 야구에 게다가 소설이니 아이가 즐겁게 읽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쉬어가라고 내준 과제였지요. 
하지만, 이 책은 아들과 너무 궁합이 안 맞았습니다. 원래 아이가 소설류의 스토리텔링을 안좋아하는 성향도 있고 아무튼 이 책에서 너무 동기가 떨어져 진도가 도통 안나갔습니다. 처음으로 한 책에서 1주일을 소비해 버렸습니다. 

중간에 가족여행에 설 연휴 등등 까먹은 시간도 만만찮은데 리듬을 잃어버린 겁니다. 이제 남은 일정을 고려하면 거의 3일에 두권을 읽어야 합니다. 아이의 얼굴에 가벼운 두려움과 실망이 묻어납니다. 
그렇다고 기한을 연장하거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 저는 비상 대책을 발동했습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강한 분야는 역사와 지리입니다. 그래서 지리관련한 큐리어스 시리즈를 대량 방출했습니다. 19번부터 23번까지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한 책을 떡밥으로 풀었지요. 역시 아들은 하루에 한권 이상 읽는 쾌속의 질주로 리듬감과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마지막도 위기의 연속이었지요. 주말의 농구대회로 인해 막판 시간이 간당간당 했습니다. 특히 오늘 마지막 책인 한초삼걸을 거의 다 읽어야 하는데, 양이 꽤 많지요. 아들을 돕기 위해 휴일인 오늘 모든 가족활동을 접고 저도 아이 옆에서 엉덩이 떼지 않고 같이 앉아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Tower of confidence
아직 초등학생이니, 이 모든 책을 100% 온전히 이해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 읽고 대화 나눠 보면 어렴풋이 또는 또렷이 중요한 맥은 짚고 있으니 습득한 텍스트의 부피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기꺼운 것은, 이 길고 고독한 싸움을 아빠에 대한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끝까지 이뤄낸 그 인내와 끈기가 아이답지 않아 고맙습니다. 공차고 싶고, 게임하고 싶고, 누워 자고 싶은 게으른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어른도 그런데..
하지만, 아빠와 약속,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려 눈뜨면 책보고, 때론 가족 외식에도 따라가지 않고 집에서 진도를 채운 그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아마도, 이 30권, 8723페이지의 내용을 다 잊는다해도 책과, 아니 스스로와 싸워 이겼던 2010~2011년의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은 평생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집중력 있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훈련은 어려운 공부할 때 중요한 기술이 될 것입니다. 예전 책 쓸 때 곁에서 도우며 아빠를 놀래키던 아들의 지혜로운 모습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리라 믿어봅니다.

장하다, 내 아들! ^_^

'日常 > Project L' 카테고리의 다른 글

Abroad to Seoul  (14) 2011.03.27
5연패  (12) 2011.03.07
아들아, 잘 뛰었다  (8) 2011.02.27
평생 남을 2010의 추억들  (10) 2010.12.19
논리의 역습  (6) 2010.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