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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Project L

미션 파서블: 부산에서 만나!

Inuit 2011. 6. 6. 15:41
매주 토요일마다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다보니, 주말에 어디 가기가 힘듭니다. 기쁘게도 6월 첫주는 학원이 쉬는 날인지라, 3일 연휴와 물려 일찌감치 여행계획을 잡았었습니다.

여행 1주일을 앞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족의 여행이 너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식이죠. 
휴양림이나 콘도, 펜션에 예약해 놓고 자동차로 이동.
짐풀고 둘레 산책하고 저녁 식사.
아이들과 집 밖이나 안에서 놀고 저녁에 아내와 가볍게 술한잔.
푹 자고 아침 산책과 주변 관광 후 귀가.
이러다보니 풍경이 바뀌어도 여행의 패턴은 고만고만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차타고 내리면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고, 어디로 실려가는지 별로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 무렵 아내와 이야기 중에 아이들 도전정신과 모험심이 부족해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예 파격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 곳에 머물며 휴양하는 정주형 여행이 아니라, 머물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노마딕한 낭만을 느껴보기로 했지요.

마침 딸아이가 기차타고 땅끝까지 가고 싶다는 꿈 아닌 꿈도 있던지라, 이번 여행 목적지를 부산으로 급 변경 했습니다. 단, 그냥 부산으로 가는게 아니라,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따로 이동한 후,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는 미션 과제가 있는 여행입니다.

홀로 자유롭되, 묶인 곳 없이 두려운 모험 여행입니다.


사실, 예전 저 클 때만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버스타고 명동 다녀오고, 서울 끝 모르는 곳에서도 길 물어 집에 잘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과보호가 애들을 끝없이 나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만 해도 혼자서 분당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아니 동네조차도 학교 빼고 혼자서 어딜 다녀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늘 엄마와 함께, 또는 승용차 타고 이동이지요.

그래서 '아이들끼리 부산가기'는 도전에 성공하면 꽤 가슴 벅찬 미션입니다.

큰 아이는 다소 걱정은 되면서도 중학생답게 재밌겠다고 좋아라 합니다. 하지만 둘째 녀석은 며칠 전부터 걱정이 태산입니다. 되도록이면 엄마 아빠편에 붙어 가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사실, 여린 마음의 아이들만치나 엄마아빠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모험도 단계가 있고 렙업을 해야하는데, 몹도 안 잡아 본 아이들 중간보스 잡게 시키는듯한 걱정이 듭니다. 전날까지도 계획을 취소하고 좀 더 커서 도전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처음의 뜻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대망의 도전날.

약간의 현금과 휴대전화, 예매 해 놓은 고속버스 표만 쥐어주고, 아이들을 이른 아침 속으로 내보냅니다. 버스에 잘 탔다는 문자에 슬슬 안심이 됩니다. 엄마랑 아빠는 한시간 늦은 버스편으로 따로 출발합니다. 

가는 도중에도 애들이 잘 지내는지 걱정이 되어 아빠는 슬몃 문자를 보내보지만, 아이들은 이미 제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재미나게 노는지, 성가스럽다는 듯 답도 내키는대로 드문드문 옵니다. 잘 지내지 싶다가도 걱정스러운 상상이 되면 아빠 마음이 간질간질 합니다.

원래 집결지는 광안리 바닷가였지만, 시간 상 식사를 바로해야 할 것 같아 동선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가는 도중 미션 집결지가 바뀌었습니다. 애들이나 부모에게나 이름도 생소한 망미역입니다. 서울서도 혼자 지하철 안 타본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다 컸다고 척척 잘 해냅니다. 미리 일러둔대로 종일권 끊어서 지하철 갈아타고 집결지로 잘 찾아 갑니다. 중간에 남는 시간은 할인마트 가서 적당히 시간도 때우고.

이미 도착했다는 문자는 받았지만, 마지막 집결지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은 각별합니다. 늘 품안에 끼고 살던 아이들을 세상 속에 던져두고 무려 일곱시간 지난 후에, 낯선 곳에서 만나니 참 즐겁습니다. 엄마 아빠는 기쁨에 환히 웃고,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배고프다고만 합니다.
그래도,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랐을거라 생각합니다.
두렵지만 흥분되고, 자유롭지만 모험스러운 따로 또 같이의 여행은 이렇게 짧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평생의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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