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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마딕 식도락, 둘째날

Inuit 2011. 6. 11. 21:54

첫날이 주로 해운대를 중심으로한 일정이었다면, 둘째날은 남부 부산을 훑어 볼 요량입니다.

먼저, 부산역 건너편의 상하이 거리로 갔습니다. 여기에 일본의 돈코츠 라멘을 능가하는 진한 육수의 면을 자랑하는 평산옥이 있습니다. 시원하고 담백한 국수를 상상하며 걸음을 재촉했지만, 제명이 됐어요. 문을 닫았어요. -_-

태종대 가기 전에 간단히 요기하는게 목적이었는데, 갑자기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아내는 간단히 김밥하나 먹고 때우자고 압력들어오고 마땅히 갈 데도 없어 황당합니다. 그래도 인천 차이나타운 못지 않은 상하이 거리입니다. 바로 스마트폰 검색을 합니다. 맛집이라고 일품향과 장춘방이 리스트에 뜹니다. 
채소와 당면으로 속을 채우기 마련인 여느 만두와 다르게 고기를 꽉꽉 다져 넣은 맛이 독특합니다. 특히 군만두는 일품이더군요. 얇은 피와 꽉찬 속이 잘 어울려 군만두 특유의 느끼함이 없습니다. 만두가 안 땡기는 딸을 위해 시킨 잡채밥은 모두가 숟가락 들고 뺏어 먹었을만큼 맛있습니다. 

드디어 택시타고 태종대행.
을 했으나, 3일 연휴의 가운데 날, 그리고 일요일인지라 태종대 들어가는 길이 영도 중간부터 꽉 막혀버립니다.

택시 기사분도 그렇고, 태종대에서 나오는 분들 이야기가 태종대 들어가긴 글렀답니다. 몇 킬로 안 남았는데 한시간도 더 걸릴듯 합니다. 저야 태종대 많이 가봤지만, 애들 보여주려는 마음으로 나선 걸음인데 뙤약볕에 길에서 기다리긴 시간도 체력도 아깝습니다. 택시를 돌려 다시 남포동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나오긴 했는데 일정이 뒤틀어져 애매해졌습니다.
더운 날씨 감안해서 태종대에서 바닷바람 쐬면서 천천히 산책하고, 네시 이후에나 와야할 남포동에 대낮부터 앉아 있습니다. 돌아다니기엔 햇볕이 부담스럽고 난감합니다. 일단 커피한잔 하면서 작전 구상..

영화보자는 의견부터 용궁사 다녀오자는 이야기까지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지만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거리로 나오니, 다행히 바닷바람이 시원해 걸을만 합니다. 해만 피하면 날씨가 무척 쓸만합니다. 
원래 그렇지만 시장구경, 사람구경은 항상 재미있습니다. 이승기가 다녀갔다는 호떡집은 인파로 숨이 막힐 지경으로 장사가 잘됩니다. PIFF 광장을 지나 슬슬 자갈치 시장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부두는 해변과 다른 그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자갈치 시장도 20년전 쯤 와 본듯 한데 많이 변했다고 말하기도 무색하군요. 건물 깔끔한건 그렇다쳐도 수변공간이 말끔히 정비되어 거닐기 알맞습니다. 물만 깨끗하면 바르셀로나 못지 않았습니다.  

부산을 목적지로 한 이유 중 하나, 딸이 먹고 싶어하던 산낙지 메뉴는 퀘스트에 해당합니다. 자갈치 시장에서 회를 쳐서 바닷가에서 먹었습니다. 회는 식상한데 오히려 산낙지와 해삼이 입맛과 기분을 한껏 돋궈줍니다.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바다 그 자체같은 짭조름한 해물을 먹으니 다들 기운이 납니다. 자갈치 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 아재가 영업을 들어옵니다.
"회 좀 드시지예."
"방금 먹고 가는 길이에요."
"아.. 그럼 내 죽기전에 한번 와서 팔아 주이소~"

그 넉넉한 유머에 아내와 저는 한참을 미소 지었습니다.

원래 일정에서는 밀렸던 광안리를 갔습니다. 태종대가 낸 펑크를 광안리가 메워야 합니다. 저는 예전에 해운대보다 광안리를 더 좋아했습니다. 이번에 보니 해운대의 융성에 눌려 광안리 상권은 많이 죽었더군요. 오는 행락객도 차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눈부시게 하얀 광안대교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시키는 미감이 있지만, 전 바다가 탁 트인 모습이 좋지, 앞이 막힌 느낌은 강 같아 싫습니다.

하지만, 카페에서 바람 맞으며 바다 구경, 사람 구경하며 차를 마시는 기분은 유럽 카페에서 느끼는 기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Best for last.
마지막은 가장 아껴둔 메뉴, 돼지국밥입니다.
부산 최고라고도 하는 대연역 근처의 쌍둥이국밥집입니다. 전 이번에 돼지국밥을 처음 먹었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돼지고기 삶은 맛이란 말인가. 담백한 국물이 먹으면서 영혼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라면 과장일까요. 

다르게 말하는게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요즘 폭풍 다이어트 한다고 음식의 양도 줄이고 육류를 잘 안 먹는 저입니다. 여기서 수육에 국밥고기까지 정신없이 먹고 배탈이 날 뻔했습니다.
그러고도 배에 빈자리가 없어 국물을 다 못먹은걸 한탄하고 나왔지요.
 
같은 나라인데 내가 이런 메뉴를 40년 넘게 살면서 모르고 살 수 있는 이유도 궁금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예약해둔 KTX를 가족이 함께 타고 왔습니다. 동반석이라 무척 재미있더군요. 런던-파리간 유로스타와 스페인 고속열차 AVE도 타봤지만 KTX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국내에서 자동차 의존도가 컸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여행의 형식을 바꿔 도시를 돌아다니는 노마딕 여행을 한 이번 부산 여정은 그 강렬한 기억을 잊기 힘들 것입니다. 게다가 어느 유럽 도시 못지 않게 숨은 재미를 많이 보유한 부산의 매력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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