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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Inuit 2011. 8. 3. 22:00

정유정

정유정 작가의 글맛이 좋다는 단 한가지 정보만으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집어 들었다가 꽤 고생한 책입니다. 고요히 머리를 식히며 릴랙싱하려고 일요일 아침에 집어 들었다가 무려 열시간은 들여서 책장을 덮고 잤기 때문입니다.

책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그런걸까요. 아닙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보는 책은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빨리 좀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강해서 더 읽게 됩니다.

'내 인생에 던져진 변화구'로 인해 평범한 일상은 급류에 휘말리고 납니다. 각자 사연이 있고, 구조적 갈등의 인화물은 빽빽히 들어선 상황이지만, 그 발화점은 사실 운명의 장난같이 다가오고 말지요. 수십년 일생 중 단 몇 분의 찰나로 인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인생은 매우 씁쓸하고 가슴 답답한 상황입니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듯, 느리고도 꾸준히 전체 윤곽을 잡아가는 이야기 구조로 인해 마음속 응어리를 뭉근히 녹여내느라 당일에 끝을 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냥은 꿈자리 사나워서라도 못 잘 노릇이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무슨 괴기소설 같지만, 책은 작가의 정성과 2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겨질만치 꼼꼼하고 세밀합니다. 500페이지 전체 내용이 일관되면서도 반전도 없이 클라이막스도 없이 점층되어가는 구조는 작가의 필력이 보통 아님을 새삼 느낍니다. 

책의 앞머리에는 시점과 관점이 정신없이 이동하여 혼란스럽고, 다소 기교에 치중한 면이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탄탄하고 수백번 벼려낸 진국이라 글의 힘이 좋습니다.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에 비하면 적지만 위트와 재기가 넘치는 문장 또한 인상 깊습니다.

요즘 김애란 작가를 비롯해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들이 있지만, 정유정 작가의 연륜은 새로운 글맛을 보여줍니다. 아무튼 책을 읽기만 하는데도 정신적 압박감을 느낄 정도의 사려깊은 플롯과 치밀한 묘사로 이 책을 잊기 힘들겠습니다. 물론, 한번 더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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