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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nze 2011] 7. Art, honor and life

Inuit 2011. 8. 11. 22:00
피렌체 둘째 날의 주요 일정은 단연 우피치 미술관입니다. 첫날인 월요일은 휴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째 날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예약이었습니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당일 대기 인원의 경우, 입장객을 15분에 20명 정도씩 끊어서 보내기 때문에 줄이 매우 깁니다. 하지만 예약을 미리하면 지정된 시간에 바로 가서 관람할 수 있지요. 물론 예약료는 추가로 내야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게 더 경제적입니다.

그런데, 방문 전날 예약하려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휴관일이라 예약도 안 하나 봅니다. 갑자기 황당해졌습니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서너시간 줄서고 나면 호텔 체크아웃부터 로마 이동까지 모든 일이 좀 복잡해집니다. 사실 그래서 전날 밤까지도 아쉽지만 우피치는 일정에서 생략하기로 했었지요. 

하지만, 피렌체 담당관인 아들이 몹시 섭섭해 합니다. 원래부터 피렌체 일정의 핵심으로 우피치를 생각하고 있었고, 관람료를 예산에 꼭 넣어달라고까지 신신당부했던 터였습니다.

다음날, 시차증도 있어 6시에 잠이 깬지라 일정을 세우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강행하자'
좀 고생하더라도 줄을 서보기로 했습니다.

우피치를 제낀 줄 알고 곤히 잠든 아내와 딸 방에 가서 잠을 깨우고, 아침을 거른채 호텔을 나섰습니다. 8시15분 개장인데, 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이 승리한듯 합니다.

드디어 개장. 줄은 짧지만 워낙 찔끔 찔끔 들어가니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입장. 하마트면 지나쳤을 뻔한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의 명작들을 감상했습니다. 어쩌면 평생 궁금했을겁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그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 기이한 느낌은 피렌체나 파리에서만 가능한 압도적 물량감이기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니 피곤은 하지만 기분이 산뜻합니다. 아침을 거른 것을 빼곤 일정이 여유롭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마지막 여정을 갑니다.

메디치의 본산입니다. 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저 여섯개의 둥근 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이 많지요. 메디치 쪽에서는 선조가 거인과 싸우다 방패에 생긴 철퇴 자국이라고 하지만, 세인들은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이 뜻하듯 약종상이었고 여섯 개의 둥근 환약을 의미한다고도 읽습니다. 맨 위의 원은 프랑스 왕가에서 부여받은 부르봉 꽃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 그 문장에는 프랑스의 꽃이 피어있음도 독특합니다.


두오모 광장 북쪽에 메디치의 본래 저택이 있고, 메디치의 가족 성당이 있습니다. 도시 전체에 메디치의 흔적이 있으며, 그 중 메디치-리카르디 저택은 그닥 볼게 없다는걸 알지만 피렌체까지 와서 메디치의 근원을 안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메디치라는 역사적 배경은 하나도 모를지라도, 로렌초 광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공간입니다. 아마 근처에 중앙시장과 가죽시장이 있어서 서민적인 느낌이 강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피렌체의 가죽시장은 유명해서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습니다. 페라가모와 구찌가 피렌체의 공방에서 출발했다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산 로렌초 성당과 중앙시장 사이에 늘어선 노점상은 꽤 즐거운 볼거리입니다. 품질이 최상은 아니지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쓸만한 가죽제품과 여러 상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중앙시장은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을 똑 닮았습니다. 둘러 보는 자체로도 참 즐겁습니다.

즉석에서 계획을 바꾸어 노천 점심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너무도 좋아하는 살라미를, 시장 정육점에서 슥삭슥삭 썰어내어, 생 올리브와 얇은 빵을 곁들여 광장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지만, 싱싱하고 맛난 재료를 직접 골라 만들고, 광장에서 경치구경 사람구경하면서 계단에 앉아 먹는 풍취가 새로왔습니다. 이날 점심은 온 일정을 통틀어 인상깊고 맛있는 식사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서정적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나니, 로렌초에서 피렌체와 이별한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