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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스

Inuit 2013. 12. 2. 22:00
글쎄.. 어떻게 시작할까.
책을 단번에 설명하자니 여러 단어가 맴돈다.
그래.. 의미론적 비교로 시작하겠다.

'Being digital'이라는 책이 있다.
지금와 보면 디지털 석기시대와도 같은 전환기의 앞머리에서, 다가올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과 속 깊은 함의에 대해 정교한 예견을 정리했더랬다.
그 예언적 논의가 그대로 이어져, 네그로폰테 교수의 태두적 지위가 공고해지기도 했다.
나 역시 처음 저 책을 접했을 때, 많이 감명 받았고 패러다임 쉬프트 수준의 배움을 얻었다.

만일 퍼스널 제작(메이커스)이 시대의 조류가 된다면, 이 책 '메이커스' 역시 'Being digital' 수준의 선구자적 위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만큼 대.단.하.다.


Chris Anderson


(Title) Makers: The new industrial revolution

책이 다루는 주제는, 소규모 생산이다.

이렇게 보면 매우 굴뚝 냄새가 강해보이지만, 사실은 정 반대다.
브릭앤모르타르(brick & mortar) 산업을 디지털화하는 진정한 클릭앤모르타르(click & mortar)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집에서 또는 소규모 사무실에서 원하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조업의 한계인 공간과 거리의 제약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롱테일 생산이 가능할테다.
몇 명의 수요자를 위한 맞춤 생산.
어찌보면, 자영, 자급, 자족의 디지털 신원시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을 지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3D 프린터다.
사실, 난 3D 프린터의 원시성으로 인해 좀 먼 미래라 생각했다.
하지만, 크리스의 주장은 다르다.
한번 추세의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발전이 있으리라 본다.
예컨대, 지금 보는 조악한 3D 프린터를 예전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에 해당한다고 보면 어떨까.
십년도 되지 않아 인쇄소 품질의 레이저가 보급되었고, 지금은 꽤 쓸만한 복합기가 십만원 수준으로 집집마다 들어와 있다.
이쪽도 그런 획기적 발전이 가능하다.
산업규모가 의미있게 부풀어 오른다면.
더 와 닿는 사례는 인화다. 
예전에 필름가지고 사진관 가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지금 어떤지 생각해보면 느낌, 알 것이다.

물론, 메이커스 현상의 핵심이 단지 3D 프린터는 아니고, 이 책의 서술도 이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다.
3D 스캐닝을 비롯한 입체 설계의 보편화, 소규모 생산자와 수요자가 싸고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웹 기반의 다양한 메커니즘들.
취미와 전문성이 복합된 다양한 자원봉사적 전문 커뮤니티들, 소규모 제품이 롱테일 수요자에게 연결될 수 있는 풍부한 마케팅 채널과 공급망.

즉, 디지털의 파상적 보급이 새로운 수요와 공급 및 시장을 조성했고, 그 덕에 새로운 방식의 생산이 가능해졌다.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답게, 이를 '사물의 롱테일'이라고 칭하지만, 이름은 별로 중요치 않다.
또 저자는 이를 생산수단의 민주화'라 거창히 의미부여하지만, 생산수단의 독점성은 원래부터 정치적 의미는 엷다.

이 책의 진정한 통찰은 바로 '비트(bit)에서 아톰(atom)으로의 회귀'다.

이 지점에서 난 책의 예언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저자의 관점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확고하다.
그러나, 네그로폰테의 디지털 세상 예언은 패러다임 쉬프트에 해당했다면, 크리스의 메이커스 현상은 팻헤드(fat head)가 아니라 롱테일에 관한 이야기라 그 발전의 시기와 양상에 변수가 많다. 

아톰이 비트에 주도권을 내준 숙명적 굴레, 피지컬의 무거움은 극복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제작에 관한한 대량 생산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고, 얼마나 위세가 줄어들지의 이야기니까 그렇다.

아무튼,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고, 타임머신 타고 미래를 살짝 본 기분 들게 만드는 아름다운 책이다.
다만, 중간에 자신의 취미생활과 연계된 에피소드는 이야기의 전개를 답답할 정도로 제동이 되고, 흥미를 유지하기 위한 저널리즘적 서술구조는 책의 위엄을 약화시킨다.
그러다보니 힘빼고 술렁술렁 넘어가는 책에 내가 너무 과한 후광을 덧 씌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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