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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느낌을 담는 여덟가지 방법

Inuit 2013. 12. 8. 10:00
돌이켜 보면, 예컨대 1994년 쯤까지 올라가보면, 당시 사진 찍는 풍경은 지금과 몹시 다르다.

일단 카메라는 집집마다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사진은 특별한 행사 때 기념으로 그리고 여행가서 몇 장 찍는 것이었다.
길떠났다고 기분 좋아 셔터를 막 누르다보면, 이내 필름이 떨어지고 근처에 필름 파는 곳을 급히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찍은 필름은 동네 현상소에 맡기고 삼일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사진관 아저씨는, 사람 수대로 뽑을지, 영 망친 사진은 아예 인화하지 말지 등의 옵션을 묻곤 했다.

이렇게 사진 찍는 건이 희귀하다보니, 구매도, 유지하기도 비싼 카메라를 굳이 집집마다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친한 집끼리 카메라를 빌려 쓰는게 그리 드문 풍경이 아니었다.

요점은, 당시 전문가 아닌 일반인 세상에서의 사진은 예술보다 기록으로의 가치가 더 컸다. 

아마 2000년대 초반 정도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고, 난 딱 2000년에 내 첫째 디카를 샀다.
현상 걱정 돈걱정 없이 마구 셔터를 눌러도 되는 그 마법 같은 경제성.
상대적으로 작은 부피라 휴대가 간편해, 더 많은 상황을 찍을 수 있는 편의성.
그렇게 디카는 라이프 로깅의 기초를 마련했다. 
더이상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 아닌 범용재가 되었다. ('내 여섯번째 디카')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 휴대전화.
이쪽도 추억 되새기다보면 끝이 없으니 건너 뛰고..
제조사간, 통화 자체로는 경쟁이 뻔하니 하드웨어 경쟁이 시작되었고
그 성능의 한 축으로 카메라가 자리매김하면서, 이제 폰 카메라의 성능이 디지털 카메라에 못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라이프로깅은 대상 맥락을 특별한 이벤트에서 일상으로 확장했다.

스가와라 이치고

사진 잘 찍고 싶어 여러 책을 읽었다.

그 덕에, 그냥 흉하지 않게는 찍는 편인데, 요즘은 갈수록 내 사진이 영 마음에 안 든다.
폰 카메라는 그 성능이 갈수록 좋아져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풍족한 환경인데, 내 사진은 답보 상태다.

그래서 이 책을 집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책은 별로다.
작자의 열성이나 진심 다 좋은데, 뭔가 배우고자 하는 내 목적에는 미흡하다.
원래 기본을 강조하는 책은 도덕책처럼 밋밋함을 잘 이해한다.
아니 그 과정에서 생기는 밋밋함에는 오히려 적극 동의한다.

솔직히 말하겠다.
책에 담긴 스가와라씨의 사진이 전혀 와닿지가 않은 탓이 제일 클지 모르겠다.
뭐 쨍한 느낌으로 모든 챕터의 예시 사진들이 블링블링까지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 권을 통틀어 단 한장도 내 마음을 못 움직인 것은 스가와라씨 탓인지, 인쇄 품질 탓인지 아님 내 까탈스러운 눈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준거가 되는 '프레임안에서'는 정말 예시 사진 자체가 가르침이고 비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옆집 사진관 아저씨의 넋두리 느낌이 짙었던 책이다.
다시 말해, 배울 점은 많지 않아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서적 교감도 있었다.

그리고 딱 하나는 배웠다.
언젠가부터 폰카 셔터 누를 때 구도 잡은 후, 손 흔들리기 전에 잽싸게 셔터 누르는 버릇이 생겼는데 그 점이 영혼 없는 사진의 주범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타이밍을 여유있게 가져가더라도, 파인더 또는 액정의 화면을 들여다 보며 진짜 찍고 싶은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게 비법이기도 하다.
포토그래퍼의 그 미묘한 심상은 바로 사진에 투영됨을 수많은 경험으로 느꼈던 바인데, 지금은 그냥 기술적으로, 높아진 화소수의 화력으로 접근한게 죄다.

그 달라진 버릇을 깨닫고는 다시 사진에 온기가 돈다.
사실 그 깨우침 하나만으로 책 값은 뽑았다. 

세상 만인이 포토그래퍼인 시대.
사진 잘 찍는 방법은 조금 신경 써 익혀둘 라이프 스킬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결코 그 공부의 텍스트는 아니다.
다른 좋은 책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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