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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_k / CSO at high tech firm / Book addict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by Inuit

아침무렵 좀체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로 가벼운 안부를 묻고, 내 또래사람들끼리 나이에 비례해 잦게 내는 '전화도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때까지는 오랫만의 교감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곧이어 이어지는 소리, "근데.. 오늘 새벽에 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차식, 먼저 운이라도 떼지, 반갑다고 농을 지껄인 내가 미안하잖아.
그의 음성은 의외로 cool했다.

* * *

잡고 있던 보고서를 서둘러 마치고, 함께 몸담았던 이들에게 부고를 메일로 공지했다.
얼마전 대학동기들 부고연락시에는 메일주소가 잘 정비되어 있지도 않고, 워낙 단출한 숫자의 동기라 전화로 나누어 연락을 했었다.
사적인 전화에 속하니 짬을 내서 사무실 밖으로 나와 연락을 돌리는데, 번거롭긴 해도 겸사겸사 서로 안부도 묻고 모이는 시간도 의견이 수렴되니 좋았다.
이번에는 70여명에게 한 클릭으로 빠르게 전송은 되었는데 마음은 개운치 않다.
누구는 직장을 옮겼는지 산골로 잠수를 탔는지 메일마저 튕겨나온다.
요즘시대에 상을 꼬박꼬박 챙기며 사는 것이 진짜 사람노릇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같이 부대끼던 사람의 부친상 소식이 모 교수 문제, 어느 연예인 스캔들, 연예 벤처 대표의 구속 기사와 같은 窓을 통해 똑같은 bit의 무게로 전달되는 것이 문득 서럽다.

* * *

그러고 보니 喪의 계절이 왔다.
날이 추워지는 이즈음 어르신들이 겨울을 맞으시는 일이 잦다.
매년 11월, 12월에 몇차례의 조문을 다녀온 듯하다.
딱 366일전에도 오랜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싸우시던 대학 후배의 어머님이 겨울을 맞으셨었다.
그 후배는 존경스러운 것이, 어머니 가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모시겠다고, 하던 공부도 훌훌 털고 어머니 곁을 지켰던 녀석이다.
후배 나이가 서른 중반이니 작은 편은 아닌데, 다행히 작년 여름에 며느리 보시고 석달만에 세상을 놓으셨다.
혼인에 가서 그 이야기를 해줬다.
"지금 큰 효도하는거야 임마. 이제 빨리 애만 낳아라."
문상을 가서도 이야기를 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짝찾는 것은 보고 가셨으니.."
전엔 겨울이 어르신들을 쓸어간다고 생각했는데, 이 후배를 보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르신들이 겨울까지 숨을 버티신 것이라고.
더이상 봄을 보지 않아도 이젠 족하시기 때문이라고.

* * *

喪家가 멀리 전주다.
길에 오르면 그리 먼 곳은 아닌데, 좁은 사무실에서 볼때는 그저 아득히 멀게 보일 수도 있는 거리다.
솔직히 부고를 전하면서도 속되게 고민을 했다.
해야할 일, 주말만 기다리며 피곤에 쪄든 육신, 이번주도 돌아보면 해준게 없어 미안한 내 새끼들, 생각하면 까마득했다.
고작 일고여덟시간, 차비에 조의합치면 십만원 돈.. 이런 거 모아야지 큰일하고 목돈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어찌 사람 잃은 슬픔과 비기랴.
게다가 그 친구의 지어미는 어찌보면 친구보다 더 먼저, 오랫동안 친한 내 후배다.
아직까지도 비밀이지만, 처음 둘이 눈이 맞았을때부터 중간에서 자문역도 많이 했던 나다.

* * *

시간이 고무줄인지, 정신력의 승리인지 해야할 일을 얼추 네시경 끝냈다.
정시보다 조금 일찍 나서겠다고 일찌감치 윗분께도 말을 넣어 놓은 터였다.
그런데 막상 가려하니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아침에 고속버스가 있다는 것만 확인해 놓았는데, 상행 심야우등 막차를 놓고 역으로 시간을 들여다 보니, 좀있다가 나서면 내가 상가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약 20~30분이다.
가는 길에 차라도 막히면 바로 되짚어 올라오든지, 상가에서 밤샘을 해야 한다.
방법은 두어시간 서둘러 나가는 것인데, 연말이라고 허덕허덕 바삐 사는 직원들 보면 엉덩이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기차도 시간이 아주 안맞아서 내가 아는 모든 교통정보, 지리, 기하를 동원해 수십가지의 대책을 그리고 지우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전화가 왔다.
"형, 오늘 전주 가세요?"
후배의 차에 의지할 자리가 생겼다.

* * *

"민기자 알지?"
"응.. 그래 그 친구. 아버지 상을 당하셨네.. 가봐야겠어"
"전주.."

몇주전 전주에 조문을 다녀오고 또 전주냐며, 전주에 사람이 생겼냐는 허물없는 농으로 선선히 수긍을 한다.
사람사는 도리는 항상 내가 배워야하는 아내기에, 오래 기다린 금요일 저녁을 쉬이 내어준다.

* * *

몇주전 전주, 같은 병원 영안실을 찾았었다.
어느 喪인들 아픈 사연이 없으랴. 또 누가 더하고 덜하랴.
그래도 이집 사연은 많이 아팠다.
시골에 거하시던 연로한 아버지께서 낮에 기분좋게 친구분들과 약주한잔 나누고 돌아오던 중간에 축대 밑으로 떨어지셨단다.
그 후로 의식도 있으셔서 외지에 나간 아들들에게 통화까진 하셨던듯 한데, 서둘러 달려간 아들들은 아비의 흔적을 찾지 못해 하루종일 마을을 돌았다 한다.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고, 깜깜한 새벽이 되어서야 돌에 누우신 어른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임종 못지키는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는 아들들이 많은데, 언제 돌아가신줄도 모르니 그 가슴이 어쩌랴.
마음의 준비도 안된터에 불효까지 하게된 아들들이, 백발 성성한 그 아들들이 꺽꺽 울었다.

* * *

오랫만에 만난 후배는 그 아내와 함께였다.
이 후배 부부는 상을 당한 친구부부와도 교류가 있던 터였다.
그래도 어찌보면 멀디먼, 남편의 친구인데 흔쾌히 문상을 떠나는 제수씨가 이뻤다.
이 쌍도 나랑 인연이 깊다.
작년 봄무렵, 후배녀석이 좋은 사람 생겼다고 불쑥 회사근처로 데려왔다.
맥주한잔을 마시며 본 그이들은 선남과 선녀였고, 천생의 배필 같았다.
공부로 걸어온 길도 비슷하고, 직장에서 하는 업도 비슷하고, 달리기 좋아하는 취미까지도 비슷했다.
그리고 몇달후 청첩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또 한달후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쳤고, 당시 그이들은 식을 누구의 고향에서 하느니 등의 혼인의 상세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이 행복하길 바랬던 나는 몇가지 경험과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정성껏.
그리고 올 초에 먼 곳에서 그들은 혼인을 했다.
하늘을 날아가서 축하를 해주었고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융숭한 대접을 받고 왔다.
신혼의 1년을 지내는 시점에 그렇게 그들과 의외의 경위로 함께 먼길을 올랐다.
부러 꾸미지 않아도 고소하게 사는 모습이 보였다.
서로 위하고 아끼니 오래도록 행복할 것 같았다.
작년 어느날의 내 바램은 이뤄질 것 같다.

* * *

도란도란 직장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하며 금새 도착한 먼길.
눈길로 더듬어본 친구의 얼굴은 까칠했다.
향을 피우고, 재례를 한 후, 상주와 맞절을 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지만, 가식은 없었고 범상한 안부를 전했던 듯 하다.
그렇게 쿨하게 들렸던 그 친구는, 어르신이 겨울을 맞으신 간단한 경위를 끝내 못마치고 울먹였다.
우리더러 자긴 다음 객을 맞을테니 아내의 인도를 따라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러마고 답했다.
나이는 학부형급이지만 신혼인 그의 아내이자 내 아끼는 동생인 후배는, 지루한 하루에 아는 얼굴들이 느지막히 나타나니 활기가 돌았다.
원래 쾌활하기도 한 터라 상가에 어울리지 않은 생기가 피어났다.
"얘.. 상집에서 너무 헤죽헤죽 웃지마라. 어른들 뭐라 하실라.."
가면서 요기를 했지만, 배가 하나도 안고팠지만, 애도의 대신인양 밥을 한알도 안남기고 다 먹었다.
국도 씹어넘기기 힘든 고기 몇덩이를 빼곤 국물까지 먹었다.
내온 맥주도 마다않고, 한캔을 더 청해서 먹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후배들과 나누었다.
이런일로라도 보게 되니 좋다고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구나. 반갑고 좋긴 한데.
식사를 마치고 나중에 빼꼼 다시 인사를 온 상주는 많이 아파했다.
눈물찬 속내가 여과없이 전해졌다.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보듬듯 그의 팔과 손을 잡았다. 온기라도 느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 * *

나고, 자라고, 병들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순간들이다.
그 중 유독 우리는 죽는 순간에 대해서는 절대 오지 않을 일처럼 무심하게 살고 있다.
당장 내가,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내일 죽는다면 무엇이 가장 후회될 것인가.
무엇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것인가.
잘 사는 길에 대한 정답은 사실 이부분에 있지 않나 싶다.
힘든 걸음 해서 喪을 問하는 이유도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남을 위로한다는 미명하에, 스스로를 반추하는 기회를 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미룰수 없는 일중에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지금도 피어나는 모든 아이와 겨울을 맞는 모든 어르신의 동등한 평안과 행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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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l 2005/11/27 15:37 address edit/delete reply

    먼길이 엄두가 안나서 문상을 포기했는데, 진작 형한테 먼저 연락을 드릴 걸 그랬네요.<br />
    이번엔 누구에게 조의금을 대신 내달라 부탁하기도 막막하더군요.<br />
    늦었지만 조의금을 전달한 방법이 없을까요? 문상 못간 동기들을 모아서...

  2. Inuit 2005/11/27 21:55 address edit/delete reply

    dal // 시기적으로 좀 늦은듯 하네. <br />
    둘다 상가가 너무 머니 사람들 부산하게 오지 않도록 조용히 전해달라고 당부를 했었어.<br />
    조의금보다는, 내일이나 모레쯤 직접 전화나 한번 넣기를 권하고 싶네.

  3. w 2005/12/01 12:49 address edit/delete reply

    참 따뜻한 글이네요. m에게도 보내어 같이 읽었지요~ ^^

  4. Inuit 2005/12/01 22:28 address edit/delete reply

    w // w is for woman, and m is for man. right..? ^^;

  5. 쁘렌 2005/12/02 12:52 address edit/delete reply

    출장으로 뒤늦게 소식을 접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참 마음이 아프다.. 조문도 못해서 미안쿠.. 피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앞으로는 좋은 소식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야..

  6. Inuit 2005/12/03 01:17 address edit/delete reply

    쁘렌 // 또 출장다녀왔구나. 몸은 못가도 마음이 중요하지..<br />
    며칠 있다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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