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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가 달리면 차범근이 웃는 이유

Inuit 2006. 3. 16. 22:03
홍명보가 달리면 차범근이 웃는다. (전자신문)

제목부터 이목을 끄는 이 기사는 실제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5자리 식별번호의 국제전화 별정사업자들이 난립하여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차별화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런 제목이 나온 이유는 이렇습니다. 홍명보 코치를 CF 모델로 채용한 새롬리더스(00770)가 열심히 광고를 하면 소비자는 차범근 감독 부자가 광고에 나오는 00700을 먼저 기억하기 때문에 SK텔링크가 반사이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마케팅이나 광고업계에서 잘 인지하고 있으며 꽤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입니다.
마케팅 케이스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례를 잠깐 보겠습니다.
여러분중에서도 기억하시는 분이 꽤 있을텐데, 예전에 토끼가 나오는 에너자이저 광고가 있었지요. 분홍 토끼가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하며 한손 팔굽혀 펴기를 하는 광고인데 꽤 재미가 있어서 아직도 인지도가 매우 높은 광고입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에너자이저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경쟁사인 듀라셀의 판매가 급증했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원래 듀라셀도 토끼 캐릭터를 썼었고, 더 중요한 것은 수명이 긴 건전지라는 광고개념이 듀라셀(durable cell)이라는 네이밍과 잘 어울려서 소비자가 대부분 듀라셀 광고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만 해도 대교에서 선생님이 박물관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무릎을 잔뜩 굽히고 설명을 하는 모습이 많은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모두가 '눈높이'라는 광고 컨셉에 환호하면서도 정작 이 광고가 어느 학습지의 광고인지는 알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광고의 기억효과는 네 단계로 나뉩니다. (Memory Factors in Advertising: The Effect of Advertising Retrieval Cues on Brand Evaluations, Kevin Keller)

1. Ad storage
기억은 단기 기억(STM)과, 장기기억(LTM)으로 나뉘는데, 광고 정보가 기억되려면 단기에서 장기 기억으로 옮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브랜드라는 식별자와 광고 자체의 흡인력, 소비자에게 제품개념 인식 및 반복 노출 등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2. Ad Encoding
소비자는 광고를 통째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의 특징적인 인상을 기억합니다. 재미있다, 섹시하다, 웃기다, 쓸모있다 등등. 이 과정을 encoding이라고 합니다.
전문적으로는 광고의 강도(intensity)와 방향(direction)으로 정의할 수 있t습니다. 이때 광고 자체가 너무 강해서 회사나 제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인코딩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고를 예술로 하시는 분들이 광고에 대문짝만하게 회사 이름을 넣는 것이 나이든 오너의 촌스러움으로 종종 예를 들지만, 기업입장에서는 많은 돈 들여 무의미하게 30초짜리 예술영화 만드는 것 보다 오히려 광고의 문법에 충실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1류 광고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3. Ad Retention
뇌에 기억된 정보는 시간에 따라 잊혀지게 됩니다. 특히 광고 간섭(ad interference)에 의해 급격히 정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스 마케팅에서는 한달이상 지속적인 광고의 반복 노출을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4. Ad Retrieval
이는, 광고와 관련한 정보를 뇌에서 다시 불러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케팅에서는 바로 광고의 최종 목적인 소비자 구매의사 결정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제품을 보고 '아.. 이거 광고에서 본 그 제품이지.' 하는 것이지요.


갑자기 좀 딱딱해져 버렸네요.
아무튼 Keller 선생은 광고에서 구매에 이르는 최종 과정에서 광고 상기(ad retrieval)을 위해 상기 단서 (retrieval cue)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어떤 단서를 제공하면 광고와 제품간의 연계를 강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앞의 사례로 돌아가겠습니다.
결국 에너자이저는 광고에 나온 그 토끼 그림을 제품 포장에 삽입함으로써 광고와 제품간의 연계를 회복하여 매출증대라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대교는 아예 브랜드 명을 '대교 눈높이 교육'으로 바꾸었지요.

그럼 홍명보가 달릴수록 차범근이 웃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최소한 무형의 서비스인 국제전화 00770에 홍명보 사진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에 아마 새롬리더스의 고민의 핵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광고를 아예 안할 수도 없고, 하면 할수록 선발 업체(first mover)의 이점만 살려주게 되고. 완전히 00700을 누를만큼 00770의 브랜드를 각인시키려면 대기업 계열사와 사활을 건 광고 물량전을 각오해야 할테지요.

남의 일이니 제가 깊이 고민할 일은 아니고, 퇴근하고 대충 쓰는 글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엔 피곤도 합니다만, 일단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있습니다.
저 위에 잠깐 언급된 광고 간섭 (ad interference)과 우리나라의 앞서가는 IT기술을 조금 차용하면 훌륭하게 선발업체의 ad retention을 차단하고 광고한만큼의 매출증대를 노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승부는 궁극적으로 기술이나 서비스 등 본질적인 요소의 작용을 많이 받겠지요.
요즘 세상에서 광고만 가지고 대세를 차지하기는 이치로가 한국팀 이기기만큼이나 힘든일이니까요.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