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없는 지각은 맹목이다'에 해당하는 글 1건

P 선생에게는 얼굴의 겉모습도, 내면의 개성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의 집에 오기 전에 꽃집에 들러 화려한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사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표본을 받아든 식물학자나 형태학자 같은 행동을 했다.
"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 되는군요. 붉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초록색으로 된 기다란 것에 붙어 있네요."
나는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아요. 그게 뭐 같나요?"
"뭐라고 콕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플라토닉 다면체 같은 그런 단순한 대칭성은 없네요. 하지만 나름의 고차원적인 대칭성은 있을지 모르겠네요... 혹시 꽃일지도 모르겠네요."
"꽃일지도 모르겠다고요?"

* * *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에서 재구성)

"개념없는 지각은 맹목이다."

칸트는 이 말 하면서, P씨 같은 이의 불행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P씨는 뇌에 생긴 종양 때문에 바라보되(視, see) 알아보지(觀, look) 못한다. 의미 없이 형상으로 이뤄진 영원한 추상의 세계에 갇혀 버렸다.


사람을 우주에 보내고, 그 우주의 기원마저 알아내는 과학의 전성기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지식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때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 예컨대, 사람은 자기 뇌의 10% 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자기 뇌의 70%를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어려서 한번 이상은 듣지 않았는가. 특이점 해소 문제를 풀어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 메달을 수상한 일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마저 '학문의 즐거움'에서 유사한  오류를 주장 한 바 있다. 90%는 커녕, 0.9%만 문제가 있어도 뇌는 제 기능을 못한다. 무게 기준이든 부피 기준이든 말이다. 특히, 중요 부위는 아몬드만한 손상만 있어도 큰 문제가 생긴다. 아인슈타인 시대의 90% 미신은 자기 계발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1920년대 레토릭일 뿐이다. 우리 뇌속 작은 기관들은 모두 존재의 목적과 역할이 있고, 진화로 벼려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뇌의 모든 부분은 평등하다. 그러나 뇌의 일부는 더욱 평등하다.

책을 쓰면서 뇌과학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뇌 해부도를 놓고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익혔으니까요. 물론 그 스파게티 같은 복잡함을 다 쓸 요량은 아니지만, 과학적 기반이 단단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뇌과학을 가미한 실용서들이 뇌과학을 레토릭 수준으로만 다루고 편하게 자기 필요한 단어만 갖다 쓰는게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특히 구뇌의 감정을 담당하는 경로에 대해서 최대한 쉽게 쓰고 이해를 돕고자 했습니다. 편도핵, 해마, 전두엽 뭐 이런 아이들 말입니다. 그 '더욱 평등'한 일부에 대해 널리 알려진 사례를 끌어와 부드럽게 설명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대중서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과학적 용어가 난무하는 관계로 중도 하차한 내용들입니다.

추석들 잘 쇠셨습니까? 연휴로 인해 1+1 이벤트가 지지부진해졌습니다.
YES! 책 사신 분들이 꽤 많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꼭 사진 찍어 올려서 이벤트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을에 좋은 선물이 될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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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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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YES!는 다른 책 질러놓은 것 때문에 계속 밀리고 있는데(ㅜㅜ), 블로그 내용을 보다 보니 어서 읽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네요.

    저 그리고... 조직론에 대해서 책 몇권만 추천해주시면 안될까요? 내년 복학을 앞두고서 관련 서적들을 쭈욱 읽어보고 있는데요, 경영학 쪽은 공부를 별로 안해서 어떤 책을 읽어봐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요. 기업조직에 대해서 전체적인 상을 그리기에 좋은 책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_^; (추천 안해주시면 겨울방학 내내 컴파일러 책만 보다 복학할지도 모릅니다! ㅠㅜ)
    • 어떤 목적인지 좀 구체적으로 알아야 좋겠습니다.
      이해나 공부목적인지, 리더십인지, 매니지먼트인지 등등..

      어차피 조직론 관련해서 딱 이거다 하는 책이 없어요. 그래서 간접적일지라도 좀 더 관련있는걸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 음... 제가 너무 두리뭉실하게 말씀을 드렸나 보군요 ^_^;

      일단 학생이니만큼 이해 목적이구요, 조직구조나 업무 프로세스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어떠한 경우 어떠한 것이 효율적인가 하는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조직론 쪽은 어떤 분한테 여쭤봐도 "이설이 난무하여 책 추천해주기도 힘들다." 는 대답이 돌아오네요. 인간이라는 동물이 그만큼 복잡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러면 일반적인 교과서가 제일 나은데요..
      제가 공부했던 Organizational Behavior (Robbins)가 괜찮습니다. 특히 심리학, 리더십, 조직구조 설계론을 망라하는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요.
      다른 교과서도 비슷비슷할듯 합니다만..

      공부하다가 구체적 궁금증이 있으면 또 물어주세요. ^^
  2. yes24에 오르자마자 주문했는데요..
    끝내 목욜까지 안 오더만요..^^;
    아마 서점 직접 가지 않으신 다음에야..
    다른 분들도 저랑 비슷한 처지가 아니실까 싶습니다..
    메리추석 해피한가위 되셨는지요..
  3. 즐거운 한가위 되셨나요?히힛
  4. 휘영청 밝은 달만큼 행보한 한가위 보내셨죠?^^
    저는 너무 잘 보낸 휴우증으로 더 넓어진 배둘레햄과 오동통 부어오른 볼살이 아마 곧 살로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ㅋㅋ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네. 음력 14일, 15일, 16일 3일 연속 달을 봤는데, 볼 때마다 놀랄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훤하고 크고 둥글고.

      전 나름 음식에 신경써서 미쉐린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
  5. 오늘 서점에 픽업하러 갑니다. ㅎㅎ 이벤트에 늦진 않을까요?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책은 다른 학생들이 먼저 보라고 양보하겠어요. ㅅㅅ
  6. 저도 질렀는데 아직 책이 출발도 안했군요^^ 택배로 늦게 받는분들의 치열한 이벤트 경쟁이 있을거 같습니다.
    • 죄송합니다.
      극악님도 책 받으시면 이벤트 참여해주세요.
      말씀처럼 연휴 배송이 당도하면 막판 스퍼트도 재미나겠습니다. ^^
  7. 잘 읽었습니다. 놔과학 관련된 내용 완전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 무지하게 아쉽네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제목에 낚였어요^^;;

    판단없는 지각은 맹목이다에서
    지각을 컨셔스니스가 아닌 레이트인줄 알고-_- 오오, 지각하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ㅋㅋ
  8. 회사 근처 을지로입구 리브로서점에서 따끈한 신간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입했습니다. 빨리 읽고싶은 맘이 근질근질한데 먼저 읽고 있는 책이 있어서...후딱 읽어야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꾸벅~
    • 네. 얇아서 아무데서나 편히 보실 수 있고, 금방 독파하실겁니다.
      구입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유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9. 책출간 축하합니다^^. 저도 알라딘에서 주문했습니다.
  10. inuit!
    추석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생각보다 짧지 않은 시간인 듯해서 저는 좋았습니다.하하
    • 네. 잘 지냈습니다.
      전 생각보다 짧더군요. 4일 연휴였는데 4시간같이 지났다는..;;
  11. 오늘 서점가서 바로 구매해야겠습니다 :) 오프라인에서도 팔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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