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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플레잉 게임을 해보았는가? 

무늬만 롤 플레이지 돌아다니며 몹이나 잡는 슬래셔 타입의 MMORPG 말고, 순간의 선택이 불가역적으로 미래를 좌우하는 고전적 tRPG 말이다. 주요 분기점마다 선택을 하다보면 몇가지 실수로 게임 캐릭터를 망쳐버릴 때가 있다. 금방 발견하면 게임따라 리로드(reload)를 할 수도 있지만, 상당히 진행되면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공략집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는게 최선인지, 게임 진행 중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보물의 위치는 어디인지, 결정적 성공의 열쇠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실수나 시행착오를 줄이고 최적의, 최고의 캐릭터로 성장 시킬 수 있는 공략집. 많이 보냐 제한적으로 보냐의 차이지만, 공략집의 존재는 게임을 완수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

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리로드를 하지 않고, 게임 데이터를 해킹하지도 않고 그냥 엔딩까지 달리는 타입을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인생이 하드코어 롤 플레잉이겠다. 쪼렙에서 헤메면서 희귀템을 막연히 바라기만 하거나, 꼭 찍어뒀어야 하는 스탯(stat)을 찍지 않아 많은 시간 허비하기도 하는 서투른 게이머.

그런데, 당신 인생의 롤플레잉에 공략집이 있다면?

Karl Pillemer

(Title) 30 lessons for living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은근 기대감이 컸다. 사회학자가 5년간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 고령자들을 인터뷰한 후, 통계처리를 통해 추출해 놓은 삶의 중요 포인트라니 여간 흥미롭지 않은가.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인생의 힌트 정도가 아닌 그야말로 공략집이다.

예를 하나 들자. 결혼을 하려고 한다. 한 후보자는 당신과 성향이 비슷하다. 뜻은 잘 맞는데 안정적이라 지루하다. 다른 후보자는 당신과 성향이 많이 다르다. 만나면 격렬하고 새롭고 짜릿하다. 둘 중 누굴 고를까?

이미 게임의 엔딩 무렵 가있는 선배 게이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너와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라고. 처음엔 그 다름이 호기심과 끌림을 유발하지만, 그 다름이 사소한 마찰로 작용하며 평생 두 사람 사이를 맴돌고, 불화와 반목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사실, 이말듣고 생각해보면 부부, 연인 간의 마찰은 세계 평화나 대한민국의 가야할 길 같은 원대한 주제가 아니라, 나를 보는 눈빛이 나빴다거나 말이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경우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학문적인 절차에 따라 임의성(randomness)을 유지하며 세심하게 고령자 또는 지혜로운 자들의 의견 중 핵심을 추려낸다. 의외로, 정말로, 뜻 밖이었던 점은 그들의 의견이 다양하여 생각을 펼쳐보이는 스펙트럼이 아니라, 몇 지점으로 강한 수렴을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인생의 정답이, 최소한 최대가 합의하는 길이 있다는 뜻이다. 믿기지 않지만, 그런 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한편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70세 넘은 '지혜로운 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해주는 것 중 하나인데, 늙는 것이 늙기 전에 생각했던 정도로 비참하지는 않다는 점. 물론 불편한 점이 많지만, 반대급부로 삶에 대한 관용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 같이 새롭게 얻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그 말이 자기위안이든 아니든, 나이 먹음에 대한 근심이 감돌기 시작하는 근자의 나에겐 꽤나 고마운 종교적 깨달음을 주었다.

그 외에도, 건강한 삶을 위한 세가지 조건 절식, 운동, 금연 같이 평범해 보이지만, 딱 몇가지로 추려내기는 별로 쉽지 않은 핵심도 재미나다. 더 중요하게는 사회적 관계의 풍성함이 노년까지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점, 여행을 많이 다니고, 배우자에게 100% 헌신하라는 점도 새겨둘만 하다.

무엇보다, 행복은 선택이라는 교훈이다.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끊으라는 조언도 알뜰하다. 왜냐하면 걱정은 걱정이 없을 때 생기기 때문이니까, 결국, 삶의 순간 순간을 홀짝홀짝 음미하는 것이 행복을 위한 최상의 비법이다.

총평하면, 꽤나 매력적인 책이다. 마케팅 문구지만 '8만년의 인생'은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준다. 삶을 더 아름답게 살고 알차고 후회없이 살 수 있는 공략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책 추천해달라는 지인들에게 이 책을 많이 언급했다. 그리고 연말 블로그 친구들에게도 이책을 권하고 싶다. 연말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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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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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천천히 읽은 책입니다
    배움이 많은 것 같고, 감동있게 읽었습니다
    행복한 저녁되세요
  2. ㄱㅅㄱㅅ 주문합니다 ^^;;
    근하신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_____^;
  3. 비밀댓글입니다
  4. 저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5. 선물 감사합니다. ^^ 어제 친척동생이 제게 책을 추천해달라고해서 뭐 좋은거 없을까하고 와봤는데 이런 따끈한 정보가! 추천도 해주고 저도 읽어야겠네요.
  6. 아침바라기 2013.01.05 18:57 신고
    덕분에 의미있는 책을 의미있는 사람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담으로 받은분들에게 오래된 지혜를 담은책을 옆에두고 보길바라며 선물했는데 똑바로 살라는 메시지로 해석하더군요ㅎㅎㅎ
  7.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웬지 행복해졌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ecret

행복의 지도

Culture/Review 2010.01.02 22:00
제목에서 한 몫 챙기고 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제목에서 밑천 털고 가는 책이 있지요. 이 책이 그러합니다. 작년부터 갖고 있던 책이지만, 그 밋밋한 제목 탓에 시덥지 않은 행복론이라 생각했습니다. 거들떠도 안 봤지요. 먼저 읽은 아내의 평이 좋아서 읽어 보리라 다짐만 한게 또 반년입니다. 작년 말 출장길에, 주간지 집듯 가벼운 마음으로 가져간 책인데, 왜 이제야 읽었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Eric Weiner

(Title) The geography of bliss

Theory of happiness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상업의 목적에 충실히 굴복한 학문은 이미 행복학을 하나의 아카데미즘으로 수용했지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시리즈나 긍정심리학의 핵 길버트 씨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도 그러합니다.

물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실제로 존재하고, 누군가가 행복해지는건 도덕적으로 긍정할만한 개선이므로 인류 후생 차원에서 행복학의 의미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리뷰(몰입의 즐거움,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지적했던 거북함들처럼, 행복 연구 자체를 위해 행복을 미시적 수준으로 끌어내려 도출한 결과를 다시 거시적 인과의 총합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그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든 학문적 포장지에 싸서 주관적 복지(subjective well-being)라 부르든 말입니다.


Happiness Reporter
그런 면에서 에릭 씨의 시도는 차라리 박수칠만 합니다. 특파원으로서 오랜 기간 나쁜 소식 전해서 연명했던 자신의 부채의식을 상환하자는건 명분이라 쳐도, 지구상 행복한 나라, 안 행복한 나라를 직접 방문하고 저자거리로 뛰어 들어 사람속에서 부대끼면서 행복의 본질을 캐보는 책의 컨셉은 장하고 의미 있습니다.


Geography of happiness
아래의 리스트는 책에 나오는 저자가 방문한 나라들입니다. 한줄 요약은 저자의 글을 제 나름으로 간추린 내용이고, 괄호 안은 제 느낌입니다.
네덜란드: 자유와 관용이 행복요소. (하지만 불구속이 행복의 등가일까?)

스위스: 엄격한 규칙하에 정돈된 삶. 그 기반위에 정립된 신뢰가 행복요소. (더할 나위 없는 행복보다는 광범위한 만족. 국민 평균이 좋을 나라)

부탄: 효율과 경제성장을 외면한 은둔속의 고요. 국왕은 국민행복지수(GNH)를 통치잣대로 삼음. 자연과의 교감과 공동체적 관계, 신뢰가 행복요소. (통치술의 책략도 보이지만, 행복의 기본요소에 가까운듯)

카타르: 벼락같이 생긴 졸부의 돈이 유일한 행복요소. (역사 없는 돈은 공허하고, 관계가 불안정한 돈은 각자를 고립화시키는듯)

아이슬란드: 단일민족의 가족적 상호의존성, 바이킹의 순수성을 전승한 언어에 대한 자부심, 공동체적 공유의식과 실패에 대한 전폭적 관용 (추위가 오히려 행복의 기폭제가 된 경우)

몰도바: 역사적 정체성 모호, 러시아와 관계에 기인한 국가적 자부심 몰락, 주위 국가에 대한 질투, 족벌주의와 부패, 가난, 징크스로 만연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무력감, 무례, 배려심 부족, 이기주의, 신뢰와 우정을 폄하, 비열과 속임수를 보상하는 문화, 친절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각박함이 불행요소. (많아 보이지만 서로 엮인 현상이고 악순환을 끊어야 모두가 개선되는 종류의 문제)

태국: 욕구와 충동을 인정하는 개방성, 공동체를 위한 미소, 번잡한 생각에 빠지지 않는 문화, 재미(사눅)가 우선시 되는 문화, 공동체를 의식한 냉정한 가슴(자이옌)과 고맥락(high context)적 배려가 행복요소. (하지만 그 표면적 행복속에 억눌린 감정은 불씨 같다. 폭력과 살인률, 가끔가다의 쿠데타를 보면. 그래도 마이펜라이[신경 끄자]는 배우고 싶은 주문)

영국: 투덜거림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행복한 삶보다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나라)

인도: 모순을 인정하는 태도, 좋은 것만 취하는 선별적 포용성, 이에 따라 즐기게 되는 예측 불가능성이 행복요소 (option 적 접근방법이 있다면 risk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이 중, 붉은색으로 표시한 나라는 좀 다른 경우입니다. 카타르는 돈이 행복의 요소라 가정한다면 (문화나 인프라없이) 순수하게 돈만 많은 나라가 행복할지 알아보려 가본 경우입니다. 몰도바는 객관적 지표에 비해 스스로 평가하는 행복이 최악이라 그 이유를 보러 간 것입니다. 영국은 행복의 시계열적 변화를 보러 갔습니다.


What is happiness?
책은 행복의 다양한 요소 뿐 아니라 행복하지 않은 이유도 꼼꼼히 따집니다.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니 입체적입니다. 동양과 서양, 빈부 등 특정 요소의 가능한 대척점들을 이래저래 살핍니다. 그래서 어줍잖은 행복학자들보다 더 설득적입니다.

물론 에릭 씨는 행복의 요소가 이거다라고 단칼로 잘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책 한권을 읽으며 세상을 함께 주유하다보면 어떤게 행복인지 뭉실하게 잡힙니다.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춥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축에 드는 아이슬랜드를 보면 종교도 필수요소가 아닙니다. 착한 무신론자들이 확장적 가족개념으로 살아도 행복이 매우 높습니다. 또, 스위스의 공리적 만족은 평균은 높고 표준편차는 작은 행복분포도를 보이면서, 넘치는 기쁨과 행복은 매우 어렵단 사실도 알게 됩니다.

확실한건, 돈이 행복에 꽤 중요한 요소지만 카타르처럼 돈만 많다고 행복하지 않고, 부탄마냥 돈이 없다고 꼭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국, 주변인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돈으로 세운 신기루의 나라보다, 세상과 정보를 차단하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행복을 지켜나가려는 부탄의 시스템이 합리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사회네트워크와 공동체적 관계신뢰의 문화가 행복에 중요한 요소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달랑 관계와 신뢰라는, 두 개 키워드 들고 나타났다면 진부한 결론이고 식상하다고 핀잔 받을만 하겠지만, 여러 나라의 이면을 보고 나면, 충분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이란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Fascinating writing style
에릭 씨 글투도 마음에 듭니다. 무척 감성적인 에세이나 여행기로 살집을 잡았지만, 군데군데 학문적 결과를 뼈대처럼 박아 넣었습니다. 그래서 부드럽지만 단단합니다. 매우 예리한 기자의 감각과 여행가의 위트가 살아 있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유머에 필적한다고 평가를 받았는데, 제 보기에 브라이슨 씨의 질낮은 떠벌임에 비유하긴 아깝다고 봅니다.

실험실의 표본에서 추출한 박제된 행복이 아니라, 세상 돌면서 주워 모은 행복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절로 행복한 기분이 들겁니다. 의외로 우리나라에 행복의 요소가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되니까요.

이 책 새해 첫 리뷰로 소개하려 꼭꼭 참았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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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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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책 좋아요!!
    주위에도 몇 번 추천해보았지만, 가볍지 않은 두깨와 빡빡한 글씨.. 때문에 부담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여행책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고 ㅜㅜ
    • 해피씨커님은 닉네임 답게 이미 읽고 잘 음미하셨군요. ^^
      이 저자도 결국 happy seeker였던거죠..
  2. 어멋..새해에 좋은 책으로 즐거움을 주시네요..
    저 블러그 하면서 많은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참 좋아요!
    무슨 책을 읽어야할 지 모를때 짜짠~~하고 추천하시는 책이 불빛이 됩니당.

    복 받으실겨~~~~^^
  3. 보통의 책 '불안'이 오버랩되네요.
    행복과 불안. 왠지 두책이 시리즈 같이 느껴집니다. ^^
    '불안'도 참 좋았는데, 행복도 기대됩니다. 조만간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좋은책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4. 헉...역시 형이상학을 추구하시는 신사분이세요.
    전 새해 벽두부터 below-the-belt 이야기 올렸는데.. ;)

    행복과 행운이 넘쳐나는 한 해를 만드시길..
    • 이궁..
      아거님처럼 글을 잘 쓰지 못하는지라, 주제의식이라도 선명하게 가져가려던 참이었습니다. ㅠ.ㅜ

      아거님, 항상 별처럼 영롱한 글 감탄합니다.
      글도 글이지만, 올해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기 바랍니다. ^^
  5. 앜 저도 이책 읽어봐야겠습니다.
    작가가 우리나라에 와봤으면 뭐라고 썼을까요.
  6. 더러운 세상 2014.04.17 17:59 신고
    구미선진국들은 낙관적이라는 답변율이 굉장히 낮고 비관적이라는 답변율이 높은나라인건 그만큼 불평불만하며 사는것은 당연하게 여기기때문에 가능한일일겁니다! 저는 사실 의미있는삶도 좋지만 구미선진국에서는 이미 없어진 가족유대감과 마을공동체간의 유대감이 강한나라에서 몇달간 체류해보고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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