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해당하는 글 8건

이슬람 문화

Culture/Review 2013.09.29 10:00
테러집단에 미개하고 공격적인 문명.

이희수

우리나라를 포함한 서구에서, 이슬람처럼 그 많은 환상과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개념체계가 있을까.


나 역시 그런 시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고 있다.

첫번째 오해
기독교와 이슬람은 매우 상극인 종교인가.
아는 사람도 많지만, 모르는 사람도 꽤 많은 부분이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한 뿌리다.
수녀님의 복장과 무슬림 여성의 복장이 유사한만큼이나, 이슬람과 기독교는 차이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종교다.
이름만 보아도, 이브라힘(아브라함), 무사(모세), 이사(예수), 이스마엘(이스마엘), 야꾸브(야곱), 누르(노아), 아뎀(아담), 마리얌(마리아), 슐레이만(솔로몬), 다우드(다비드) 등 수많은 무슬림 이름이 유대의 이름들을 그대로 이어 쓴다.

다만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아담-이브라함-모세-예수에 이은 마지막 예언자로 보는 부분에서 두 종교는 갈라진다.
또한, 이슬람의 시각에서 보면, 하느님의 계시가 오역, 변질되는 부분이 많아 무함마드 이후로 강한 원칙을 고수하여 순수한 고대종교의 정신을 더 잘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결벽적 원리주의가 이슬람의 정체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오해.
'한손엔 칼을, 한손엔 꾸란을'에서 보듯 매우 공격적인 종교 아닌가.
이 말은 근대에서 이슬람에게 덧씌운 망령같이 추잡한 이미지이다. 
꾸란에는 '종교는 어떤 강요도 있어서 안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되려, 무슬림에게 면세 혜택이 있기 때문에, 정복자 무슬림들은 현지 인원이 개종하는 것을 오히려 싫어했다.
다만, 경제적 동기로 자발적 개종을 막기 힘들어 demarketing을 했음에도 정복지의 개종자가 많이 늘었다는게 책의 견해다.
(개종에 대한 중립적이되 유럽식의 분석은 '고대세계의 만남' 리뷰를 참조)

셋째 오해.
무슬림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미개한 인간들이다.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즉, 이슬람 종교의 특징이 아니라, 사막 부족의 특성이다.
이 부분은 '공간의 힘'에서도 힘주어 이야기하는 부분 중 하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대교와 기독교도 사막 부족의 토대 위에 생긴 종교다.
그래서, 유일신에 타종교 배타적이고 가부장적 카리스마가 근간이다.
반면, 각박하지 않고 먹을 것이 풍부한 열대나 온대, 열대 종교는 다신교가 근간이다.
어쨌든,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터키에서는 여성이 수상까지 갔고 이 나라들은 사막적 정서가 없는 지역들이다.

이슬람의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생소한 부분도 많지만 매우 흥미롭다.

중매 및 형사취수
이 부분은 우리나라와도 유사하다. 무슬림은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아닌, 가족과 가족의 결합으로 본다. 따라서, 재산권 및 혈연공동체간의 연대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바로 수계혼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형사취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라마단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가 동일 조건을 공유하게 해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한다. 라마단 이후 엄청난 사회기부가 이뤄지는데, 세금을 통하지 않고 부가 재분배가 되는 유효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부수적 효과도 있다. 장기 단식을 통한 체중감소 및 잔병 치유의 효과로 인적 자본의 정비효과도 얻는게 라마단이다.

얇지만 임팩트가 있는 책이다. 핵심은 이거다.
유대족과 아랍족은 언어마저 같은 셈계 언어를 쓰는 셈족의 분파다.
다만, 근대 유대족이 땅을 비집고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중세 이후 기독교인과의 부의 쟁탈전을 통해, 증오의 감정으로 유럽에서 씌운 단단한 오명이 무슬림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문명의 충돌 따윈 없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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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슬람문화, 이슬람 사람들에 대해 친구들끼리 이야기하거나 보도되는 것들을 보면 '과연 같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말씀하신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군요. 물론 종파나 개인차도 있긴 하겠지만요.
  2. 서구국가는 가족문화(명절이나 중요한날에나 봄.)를 그리중시하지않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1인가구비율이 높아져서 가족과 같이살아도 대화가 안되는 무언가족으로 살고있으니...!
secret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투자기업인 코데코가 들어간 나라, 1년 방문객 31만명에, 진출한 한국 기업 1200개, 현지에 창출한 고용 인원 60만명, 최근 20년간 교역량 10위권에 항상 들어 있던 그 나라.. 바로 인도네시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는 피상적인 몇개 키워드와 손쉬운 관광지 정도로 자리매김한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신혼여행 및 휴양지로 각광받는 발리가 인도네시아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개념적으로 정확히 가르지 못했다. 출장 다녀오기 전까지는. 

임진숙

NGO로 현지에서 몇년을 살았던 저자의 다양한 이야기는, 무채색으로 내 인식 속 동남아에 쳐박혀 있던 인도네시아에 개성과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가장 크게 배운건, 표현의 스타일이 40년 전 한국과 같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문화학에서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고맥락 사회(high context society)다. 즉, 표현되어 지는 부분 이외의 맥락을 두루 살펴야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그리고 그 목적 함수는 조화로운 사회화다. 남들과의 조화, 기분 상하지 않기 위한 배려, 결과로 남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습성 등이다. 그 이유로, 어떤 면에서 인도네시아를 보면 매우 순박하고 온순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믿기 힘들고 불성실한 모습이 겹쳐지게 된다. 사실, 서구화의 진전으로 우리나라가 급속히 저맥락 사회가 되었을 뿐이지, 내가 어렸을 때 구미의 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느끼는 모습이 바로 그랬다. 한 때 코리안타임이라 불리웠던 모호한 시간관념까지 인도네시아는 그대로 지니고 있을 뿐 내가 보기에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그 외에 가장 특징적인 인도네시아 모습은 종교의 용광로라는 사실이다. 2억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을 가진 나라지만, 아랍의 무슬림처럼 원리주의적이지는 않다. 고대의 힌두세력, 불교정권, 그 후 아랍의 무슬림에 이어 포르투갈의 구교, 네덜란드의 신교에서 화교의 유교까지 파도처럼 순차적으로 나라를 덮은 인도네시아다. 시기상으로 거쳐간 모든 종교가 지금도 한 나라 안에 녹아 있다. 또한 각 종교가 인도의 토착신앙과 혼합되어 어찌보면 인도네시아 식 이슬람, 인도네시아식 힌두교를 빚어내기도 했다. 카스트에서 자유로운 힌두교도, 고기와 술을 마시는 무슬림 등. 인도뿐 아니라 인도네시아도 종교 박물관이다.

그외에 인도네시아는 커피의 대량 산지이다. 전통적으로 브라질, 콜럼비아에 이은 3대 커피 수출국이었다. 본섬 자바(Java)는 물론 수마트라, 슬라웨시 모두 신맛이 덜하고 흙냄새가 강한 인도네시아 특유의 커피 종을 자랑한다. 

또한 정향, 육두구 같은 향신료의 산지이기도 한 인도네시아다. 그 이유로 식민지의 아귀다툼 속에 빠지기도 했고, 네덜란드가 맨하튼을 영국에 넘기고 안정적 지배를 확보한 것도 향신료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깨친 이런 생동감이 이제 내 마음 속 인도네시아를 독자적으로 채색하게 되었다. 단지 18,000개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다의 도서 국가, 360개 부족이 모인 다채로운 열대 국가를 넘어, 시공간 속에서 다양성을 유지하며 온전함을 유지한 인도네시아 특유의 저력에 눈길을 두게 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출장을 통해 이런 점들을 생생히 깨닫는데 도움이 되어 유익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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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께 일하는 직원분이 인도네시아 정글 석탄광산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광산근처 마을 원주민이 동물이빨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어 돈 줄테니 하나만 구해달라고 했는데 야생곰 한마리를 통채로 사냥해 왔다더군요.

    신혼여행으로 갔던 발리외에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모르다가 이 정글 얘기를 듣고는 발리가 아닌 다른 인도네시아를 한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이 글 보니 더 가고싶고 알고싶어지네요.
secret

아픈자를 벌하지 않듯, 악한자를 불쌍히 여겨라.

Christian terminology
얼마전 본문비평학의 렌즈로 본 기독교 용어라는 글에서, 다소 풍자적인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정리해 본 바 있습니다.

Leveraging

이 글에 @paperrosess님이 흥미로운 댓글을 트윗해주셨습니다. 선지자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지요.

이에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지만, 바쁜 날들인지라 간단히 정리하고 후일을 기약했더랬습니다. 


No-tit-for-tat
과연 종교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돼지를 먹지 말라거나, 피를 뺀 양을 먹는다거나, 소를 건드리지 말라는 등 지역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율법을 제외하면, 오래가는 종교의 가르침은 대동소이하고 글로벌 감각을 보유합니다. 이슬람이야 유대교의 분파이니 같다 쳐도, 공자나 묵자, 불교 등에서 사랑과 용서를 역설합니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설명가능합니다. 눈에는 눈(tit-for-tat)이라는 전술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사회의 갈등 수준을 높여 종의 절멸을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전략은 딱 하나입니다. 

1. 네가 먼저 참으라는 메시지를
2.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3. 동시에 주입하고 숙지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게 진화론적 의미의 종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사제계급이 무지한 대중을 착취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관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대칭이 존속가능 했던 이유는 종교의 존재의미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회의 안정과, 갈등의 억제, 더 나아가 종의 보존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Biggest & oldest story
잘 보면, 모든 융성한 고대 문명은 어떤 식으로든 3단계 구조를 소화해 냅니다.
1. 인내에 의한 갈등수준의 급등방지 목표
2. 이를 위한 도덕적 가이드라인 제공,
3. 가이드라인을 학습하기 쉽게 만드는 스토리
그리고 대부분은 종교가 이 역할을 담당하지요. 제가 이 포스트에서 역설하는 사회안정작용이라는 심층 구조는 숨어서 안보이고,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만 전승되어 외골격을 형성해 왔습니다. 예수가 죄없는 자만 돌로 치라고 말했다고 꾸며대든가, 부처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끊기 위해 왕궁을 떠났다든지, 지식인의 세력화를 꾀한 공자 일당의 담론, 인디언의 우화에서 영화 아바타의 현대적 변용까지 일맥상통하는 것은 친근한 스토리로 인류 공존의 지혜를 전달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스토리 구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책,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의 주된 테마였듯 구뇌의 작용이 밑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적 본성을 이기고 사람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이성의 판단만으로는 부족하고, 감성이 작용하여 마음으로 외워야(learn by heart)하기 때문이지요.

Prophets
결국,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 고대의 스토리텔러들이 선지자라고 봅니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정의 그대로 선지자는 신의 계시를 직접 받았든, 신성의 영감을 받아 창작열이 불탔든, 인류애를 구현하기 위한 의도적 이성의 작용이었든 어떤 이유로든 그들은 중요한 사회적 리더십을 담당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리더십들이 이합집산하며 다시 진화론적인 거대 담론이 된 것이 종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선지자들이 종교의 개발자(developer)일 수 있는 것이지요.

Religion is a great invention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신앙이 잘못될 수는 있어도 종교는 옳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잘못될 수는 있어도 기독교는 인류의 복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화적 상상력으로 이룬 체계로 인해, 크고 작은 다툼 없이 '신적 중재'를 우리 인간 스스로 이뤄낼 수 있었으리라 볼 수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paperrosess 님의 질문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시대의 선지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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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아래 내용은 기독교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본문비평학을 보면서 기독교의 성립에 대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제 추론을 정의(definition)라는 형태로 정리해본 바입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는 환영이지만, 종교적 예수에 대한 옹호와 비난은 모두 사양합니다. 따라서, 내용은 가려놓으니, 글 정책에 동의하시는 분만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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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저이지만 '종교'의 관점을 떠난다면 사실 저렇게 해석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을 제외한 Jesus Christ 는 '랍비' 나 '선생' 으로 이해되지요.. 그리고 실제로 성경 안에서도 '세상은 나를 뭐라고 부르냐?' 라는 질문에 '랍비 혹은 선생 혹은 선지자로 불립니다' 라는 제자와의 대화 내용도 있구요.

    대한민국에서의 교회의 이미지는 '비과세 대상의 절대성공비즈니스' 인게 맞는듯 합니다. ㅎㅎ 많이벌던 적게벌던 소득의 1/10을 바치도록 하니... 사실 십일조는 성경에서도 교회의 운영에 쓰이는게 아닌, 가난한 자를 위한 봉사에 쓰도록 해놓았는데요.. 십일조 모아서 교회 증축한 비용의 이자를 대는 교회들의 소식을 들을때마다 속이 쓰립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 교회에서 강조하는 '사랑'의 모습을 지니지 못한 교회 스스로 개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기독교가 아닌 천주교는 이미지메이킹으로 대성공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금욕과 봉사의 생활 모습은 종교를 떠나서 '높은 이상'의 모습에 부합하니.... 종교적인 관점으로 '개인의 노력으로 얻는 구원'과 '선물로 거저받는 구원'의 입장차이가 기독교와 천주교의 가장 큰 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아니라면 천주교 다니시는 분들의 답변을 ;; )

    기독교 스스로의 논리적 입증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성경에 씌여진 대로 믿고 해석되어 만들어진 기독교의 교리는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면 무너지게 되고, 특히 Jesus Christ 의 Rebirth 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저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기독교의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종교의 옳고 그름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삶의 기준으로 성경을 택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종교'의 의미로 기독교를 택하는것이 나쁘지 않은듯 합니다. ㅎㅎㅎ 물론 일부 교회들의 모습은 영 아니올시다 인게 맞지만서도 ㅠㅠ;; 기독교인으로서 참 슬픕니다.
    • 네. 사악하지 않은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 구조라는게 제 믿음입니다. 다만, 곁에서 악용하면 점점 그 구분선이 모호해지는듯 해서요.

      기독교인 입장에서 껄끄러울 수 있는 내용을 담담히 이야기 나눠주셔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
  2. 비밀댓글입니다
  3. '교회'는 초대 교회 쪽보다는 현대 교회 (많이 봐 줘도 로마 공인 이후에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한 시점의 교회)를 기준으로 정의내리신 것 같네요.^^;

    신은 인간의 발명품이냐 태초에 신이 있었냐는 문제는
    bottom-up 혹은 top-down의 문제이긴한데
    신앙의 출발점은 (논증이 아닌) 고백이고 그 고백은 top-down이라고 봅니다.
secret
기독교는 책의 종교입니다. 책으로 인해 교리가 표준화되고, 고대의 말씀과 일화가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면서, 지역을 넘고 세월을 견디며 전 지구적으로 보급 되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은 애초에 누가 적었을까요? 또 그 말은 전적으로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된다면 왜 그럴까요?

Bart Ehrman

(Title) Misquoting Jesus: The story behind who changed the bible and why

정말 흥미로운 책입니다. 종교 자체로서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관심으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은 매우 협소한 주제인 성경 자체를 깊이 파고들어 학문적 성취를 이룬 점에서 인상 깊습니다.

축자영감설
흔히, 성경의 권위는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다는데서 출발합니다. 신앙의 영역에서는, 성경이 믿음의 출발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학문의 잣대로도 같은 결론을 믿고 있어야 할까요?

필사자
전혀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전승은 성스러운 책이 필사라는 방법으로 복제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두가지 방법으로 필사 상 왜곡이 생깁니다.
첫째는, 전문성 없는 필사자가 실수로 문장을 왜곡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당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인 관계로 종교적 이해가 없는 사람이 직업으로 필사를 하는 경우 발생합니다. 여러분도 숙제하다가 종종 그런 실수 해 본 적 있을겁니다. 한 줄 넘어갈 때 같은 단어가 있는 줄로 건너 뛰는 실수 말입니다. 이런 기술적인 실수를 비롯해 문장의 뜻을 통하게 한다든지 유사한 음가를 바꿔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성경의 변개(change)가 생깁니다.
이런 변개가 양적 변개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도가 더한 변개가 있습니다.

왜곡
바로 종교적 이유로 의도적인 변개를 시키는 경우입니다. 대개 뜻을 잘 통하게 선의로 바꾸기도 하지만, 일부는 자신이나 집단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해 목적을 가지고 본문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들이 상정한 적대그룹은 내부 분파, 유대인, 여성, 외부 이교도 등 다양한 집단입니다.
이 경우는 그 변개의 결과가 그럴듯하여 후대의 정설로 믿어지게 됩니다만, 최소한 원문과 달라진다는 점에서 논란의 정점에 있습니다.

사례
예컨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간음한 여인에게 '죄없는 자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의 고사는 아주 후대에 누군가가 슬쩍 끼워 넣은 이야기입니다. 이는 전체 성경 중 오로지 요한복음 7장, 8장에만 나타납니다. 하지만 고대적 원본 요한복음에는 없는 이야기지요. 
가장 고약한 것은 성서학자들이 말하는 요한의 콤마(Johnannine comma)입니다. 요한일서 5장 7-8절에 나온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부분은 고의적 변개이며, 이 구절이 없으면 3위일체설은 매우 복잡하고 간접적인 방증과정을 거쳐야 성립이 됩니다. 하지만, 요한의 콤마를 슬쩍 끼워 넣음으로서 3위일체에 대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지요. 
'성서에 나와 있다. 봐라 여기.'

승자와 패자
뿐만 아니라 예수가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피같은 진땀을 흘렸다는 구절을 비롯해 세기도 힘든 수많은 중요 변개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하나님의 분신이냐 양자냐 또는 제2의 하나님이 있느냐 등등 초기의 격렬한 논쟁 중 살아 남은 이론이 적은 승자의 논리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대논쟁 이후 3위일체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그 외의 경전은 외경으로 말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경들에 초기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지요. 또한 외경 자체도 스스로의 논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변개가 반영되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성경의 구조
결국, 이러한 성서의 원독법을 찾는 작업인 본문비평(textual criticism)이 품는 궁극의 질문은 누가 원저자였을지 입니다. 성서의 구조를 보면 이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예수 사후에 각지에 흩어진 교회의 일관된 복음활동을 위해 예수의 직접 제자들이 교리와 상황에 대한 해석, 판단을 전해준 서신들이 있습니다. '전서'류입니다. 이를 지나자, 점차 예수의 행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예수의 삶을 기록한 4대 복음서가 있습니다. 이후로, 박해받는 기독교도의 행동 규범을 정립하기 위해, 사도들의 선교적 위업을 기린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다음에는 초기 기독교도들의 종말론에 부응하기 위한 묵시록 계열이 난립합니다만, 종말론에 기대어 확장하던 교세가 교회라는 정규조직에 의한 성장으로 바뀌면서 묵시록에 대한 의존도가 불필요해집니다. 따라서 신약에는 요한계시록만 정경으로 채택되고 나머지는 외경으로 살라집니다. 이후에는 교회조직을 초기 사도시절처럼 강력하게 지휘하고 확장해 나갈 지도자들이 필요해짐에 따라, 모두가 은총받은 평등주의에서 리더의 규범을 정한 교회규칙서(didache)가 따릅니다. 그리고, 외부와 논쟁시 논리적 배경을 제공하는 변증서(apologia),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순교록(martyrology)이 교회문서를 구성합니다.

원저자
결국, 본문비평이 찾아 헤메는 원저자의 원기록이란, 그 실체가 상당히 애매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국 잘 찾아야 마가, 누가, 마태, 요한 등 사도인데, 이미 그들조차 목적의식을 갖고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이 다 적은게 아니라 그들이 말한 요점 구술을 받아 적어 문서화한 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미 최초의 기록 문서부터 의도하지 않거나 의도한 변개가 이미 들어갈 소지가 다분합니다.

기독교의 진화
흥미진진하게 이 책을 보다보면, 초기 기독교의 성립과정이 눈에 잡히듯 상상이 갑니다. 결국 예수라는 뛰어난 랍비가 기이한 행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고, 그를 따르는 일단의 탁월한 행동주의자들이 그를 신으로 옹립하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는 이타적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애롭기보다는 다소 날카롭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예수의 행동과 언사를 부드럽게 고쳐간 후세 기록자의 노력은 눈물 겹습니다.

인간적인 종교
결국, 지금의 논의가 성경을 무력화하는걸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애초의 문서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미 오류를 내포하고 있지요. 아예 과학적 엄정함으로 종교에 대한 입장을 세운 바가 아니라면, 제가 보기엔 변개과정 전체를 기독교의 발달과정으로 이해해야 옳을것입니다. 이 부분은 성서학자인 저자의 견해와 제 생각이 다릅니다.
다만, 이러한 변개 과정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인간적인 종교관을 갖는게 더 포근할 것입니다. 또한, 종교의 성립과정에 기여한 이상의 몫을 주장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색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겠구요.

유교는 잘 전달되었는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통일교나 제7안식교가 외부 중립자에까지도 이단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부터, 왜 유교는 경전의 왜곡이 없을까 하는 부분까지 말입니다. 
그리스어 성서가 띄어쓰기가 없어 오독의 여지가 많다고 하는데, 한자는 더하면 더했지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 방대한 문서에 오독의 여지는 몇글자 수준 밖에 안됩니다. 제 나름대로 답은 있지만, 곱씹어보면 더 재미있을듯 해서 여기서 줄입니다.

책에 대해
한가지 불만스러운 점은 제목입니다. 책은 본문비평학이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적었습니다. 다분히 가치중립적인 접근법을 취합니다. 그러나, 제목은 '성경 왜곡'이라고 다소 가치주입적 입장을 취합니다. 물론, 결국 변개는 성경의 왜곡을 낳습니다만, 제목에서 야기하는 선입견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반면, 번역은 마음에 듭니다. 신학을 공부한 전공자의 번역이 미묘한 맥락의 줄기를 잘 쫓고, 적절한 용어를 내내 구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관심사에 따라 꽤 재미난 책입니다. 기독교 신학의 과학적, 역사적 변천사를 궁금해 하시는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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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다녀오셨지요?
    몇 주 제가 하우스일 말고 다른 일로 오랜만에 두뇌 회전을 했더니 정신이 없네요 ㅜㅜ

    저 yes 다시 읽고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다시 읽으니 처음과는 다른 느낌입니당 ^*;;
    잘 읽고 제가 담달에 잘 적용해야 할텐데 걱정입니당 ㅋ
    • 전에도 언뜻 언급하셨는데.. 다음달에 중요한 일이 있으신가봐요.
      화이팅! ^^
    • 비밀댓글입니다
    • 전 처음 듣는 이야긴데요??

      암튼. 멋진 PT 하시길 바랍니다.
      첫장에는 고해상도 그림을 사용해보세요. flick에서 검색하면 뜻을 잘 표현하는 그림을 건질수 있을겁니다.
  2. 한번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제가 신학대학원 첫학기에 듣고 있는 과목이 바로 기독교변증학(Apologetics)와 히브리어입니다. 특히나 기독교변증학의 경우 현재 저와 함께 수업을 듣는 15명의 학생들(목사, 엔지니어, 평신도 사역자...) 사이에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아직은 수업시작한지 3주밖에 안되어서 더 배워봐야겠지만, 나름대로 주류기독교계도 많은 고민이 있어보이더군요. 특히나 제가 다니는 신학대학원이 미국주류기독계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남침례교단 소속인데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신학대학으로 알려져있죠. 아예 여성은 Master of Divinity에는 학생으로 받지도 않습니다. 이런 험한(?) 분위기에서 어떤 신학적 배움을 얻을 수 있을지 저도 흥미진진(?)합니다.

    그나저나 출장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 crete님 안녕하셨습니까.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계시나봅니다. 이 책이 기독교 신자에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crete님처럼 합리적인 분께는 더 바른 믿음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책 구하기 어려우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곁다리로 말씀드리면, 책에도 많이 나오지만, 원시적 기독교에서는 여성신자의 스폰서링과 leading이 많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먹고살만하니까 여성관련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고치고 하위범주로 빼버렸다는 증거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출장은 잘 다녀왔습니다. 심신이 많이 지쳐 몸을 좀 추스리고 있습니다. 염려 고맙습니다. ^^
  3. 이 책을 쓴 저자의 새로운 책이 금년에 새로 번역되었는데, 제목도 비슷한 <예수왜곡의 역사>이더군요. 저는 이 책만 읽었는데, 이 책에서도 <성경왜곡의 역사>에 대한 언급을 곳곳에 했더군요. 솔직히, 기독교나 성경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면서 기독교, 특시 대한민국의 개신교가 국내외에서 벌이는 활발한(!!!) 활동에 눈쌀을 찌푸리는 입장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좀 멍(!)했습니다.

    <예수왜곡의 역사>에 대한 소감을 적어두었습니다. 제 블로그에도.
    http://blog.naver.com/oyhong/70092271933
    • 오 그렇군요.
      저자의 새로운 책이라니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재탕일지언정, 저자의 글맛을 보는 재미가 있을듯 합니다.
      소개 고맙습니다. ^^
  4. 저는 요새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와 고통의 문제를 읽고 있는데요..

    혹 C.S 루이스 책에 관해서도 관심이 있으신지요..?
    • 아..
      전 나니아 연대기만 알고 있었는데, 기독교 변증가로군요.
      언젠간 읽어보고 싶네요. ^^
  5. 선생님의 훌륭한 글 자주들러 보겠습니다.혹 제카리아시친이 지은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을 보셨는지요 보셨다면 그책에 쓰인 성경의 유래에관한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아니요, 읽지 않았습니다.
      소개해주셔서 처음 알았네요. ^^

      검색으로 내용을 대충 보니, 기회 닿으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secret

Lev Nikolaevich Tolstoy

(Title) A calendar of wisdom

My ritual during a year
작년 10월 22일 격물치지님이 선물로 준 책입니다. 365일 각 날짜 별로 철학적, 종교적 잠언들이 적혀있습니다. 책을 받은 그 날부터 매일 해당 일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순서도 카테고리도 없는 책이니 10월부터 읽어도 상관 없습니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나 퇴근 전에 짬짬이 읽었습니다. 물론 주말이나 출장 분량은 돌아와서 속도를 따라잡습니다. 경을 읽듯, 염불하듯, 기도하듯 매일 읽었습니다.

어쩌면 책 자체의 지혜보다, 책을 대하는 마음에서 얻은게 클지도 모릅니다. 도 닦듯이.  


What is life?
가끔 제 오피스에 들어왔다가 직원들이 책 제목을 보곤 깜짝 놀랍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의 근원적 회의를 느끼는지 궁금해합니다.

책의 생김새는 영어 제목과 딱 부합합니다. '지혜의 달력'. 강팍한 속을 부드럽게 하고, 매서운 눈매를 곱게 만들고, 날선 목소리를 눅이는 지혜가 매일매일 날짜에 랜덤한 주제로 적혀있으니까요. 그러나,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한글 제목이 영 허황되지는 않습니다. 톨스토이의 의도도 그랬고, 천백페이지 넘도록 저자가 천착하는 주제가 바로 인생에 대한 내용이니 말입니다.

톨스토이 자신의 생각 뿐 아니라, 동양의 노자, 장자, 공자에서 서양의 플라톤, 아울렐리우스 등 고전의 지혜와 루소, 셰익스피어, 파스칼, 체호프 등 당대의 지성들 목소리를 망라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인류 보편의 지혜를 간추렸습니다.

톨스토이가 정리한 지혜는 몇가지 갈래로 나뉩니다.
  • 기독교는 처음 당시의 종교로 회귀해야 한다. 사랑의 종교가 기독교의 본령이다. 교회나 성직자는 허울일 뿐이다.
  • 그 이름을 뭐라 부르든, 신은 있고 그 신성을 닮는게 우리의 사명이다. 신의 뜻을 따르는 길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 전쟁은 그 어떤 목적으로도 관용할 수 없는 폭력일 뿐이다.
  • 참된 삶을 사는 길은, 베풀고 봉사하는 삶이다.
  • 스스로를 구원하고 고양하는 삶의 자세는 신성한 노동에 전력하는 일상이다.
  • 지식은 스스로를 알기 위함이다. 따라서 신의 길과 인간의 길을 알기 위해서만 필요하다.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을 지양하라.


The bible for atheists
제 블로그 이웃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종교의 가치와 존재 의의를 인정하지만, 특정 종교의 의식이나 율법에 갇히지는 않습니다. 범신론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신론자의 경전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기독교적 토양에서 기독교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이를 극복하려는 톨스토이의 열의는 동서고금의 종교적 지혜를 한권에 담아 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삶의 바이블을 얻었습니다. 혹시라도 삶이 각박하거나 의미가 아스라해진다고 느껴질 때, 이 책을 한번 들쳐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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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톨스토이가 외치는 '사랑'을 듣고있으면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난 얼마나 사랑을 배풀며 살고 있는 지 돌아보게 되니까요.
    • 맞습니다. 인간보편적이면서 생명애적인 면까지 포괄된 정말 큰 사랑이지요. 문학이 아니라 철학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2. 간만에 들렀습니다만,
    일에 혼자 허덕이며 지내다 보니 블로그도 조금 뜸해졌네요..

    잘 지내시죠? ^^

    마지막 글에 무신론자의 경전이라 이야기 하시니 혹하는 마음이 드네요..
    전 근래 주역 관련 책을 들었습니다...
    찬바람 부니 인생에 대한 고민이 한층더 심해진듯 합니다. ^^
    • 네. 연말이라 더욱 바쁘지요?
      그래도 또또군 크는거 보면서 사는 재미가 쏠쏠하시겠어요.
      가족과 함께 평안한 연말연시 되기 바랍니다. ^^
  3. 바로 책을 사읽고 싶어지는 서평이네요..
    무신론적인 이야기 자체가 종교적인..이야기는 아닌지..인생보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지
    확인하고 싶어지네요
    • 사랑이라는 의미에 충실한 종교를 이야기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인생과 맞닿아 있습니다.
  4. 흠.. 오래된 도시 전설엔 이런 말이 있긴 했는데요..인생은 모르겠고 삶은..계란이라고~ ^^;;;;;; 인생이란 무엇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래요~ 그건 쪼끔 행복한겁니다. 라고.. 개그콘서트의 행복전도사가 말하지 않을까효? ^^;;;;
    • 음. 가볍지만 심오하군요.
      인생이 무언지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자체로 정말 행복하겠네요...
  5. 꼭 한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네요. 한국가면 1Q84와 함께 읽고싶은책 1순위에 넣어놓아야겠어요 !
  6. 우왕, 매일 한장씩 읽으면 지혜로워지진 못해도 적어도 착해질 것 같네요ㅋ
    인생이란 무엇이던가요*ㅡ*?
    • 딱 맞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독한 마음 사그리고, 말 이면의 마음을 보고..

      인생이 무언지는 책을 보면서 찾아 BOA요. ^^
  7. 앗. 이제 절임배추 배달갈 시간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배달가는 차에서 내남자랑 이야기 해 보아야겠습니다.'넘 재미있겠조잉~~~ㅋ
    • 정말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시간이겠어요.
      두분이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모습이 상상이 갑니다. ^^
  8. 톨스토이가 노년이 쓴 책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한번 읽어 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서평으로 소개하여 주시니 읽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해 지는 걸요^^
    • 네. 막판에 이 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생을 마감했지요.
      그만큼 인생의 내공과 통찰이 녹아있습니다. ^^
  9. 저는 반 읽다가 졸아서 덮었어요.
    제가 졸린 이유는 삘 받아서 1월 1일부터 쉬지 않고 8월까지 있었다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

    저도 이누잇님처럼 하루에 한 날짜식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
    • 와.. 대단하십니다.
      전 엄두가 안나서 차근차근 읽었어요. ^^
      근데 그게 더 낫더군요. 삶에 녹이기는.
  10. 좋은 책이군요.
    저도 특정 종교를 믿지 않지만, 신의 존재는 믿고 싶습니다. 그렇지만..그것조차도 쉽지 않네요. 모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노력한 사람의 성공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되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뷁!
    읽을 책이 다 떨어졌는데 슬적 장바구니에 추가입니다.
    • 음..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시면 절 쫌 원망할지도 모르고요..
      경전하나 들인다는 가벼운 마음으루다가... ^^;;;
  11. 정작 저도 다 읽지 못했는데... 매일 명상을 하게 만드는 형식의 책들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남은 올해도 내년에도 좋은 생각들 많이 해야겠습니다.
  12. 표지가 실제 톨스토이의 모습이라면-
    왠지 카리스마 넘쳐 보이는군요ㅎㅎ
    인생에 관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
    • 젊었을 때 모습은 이지적이고 샤프한 훈남입니다.
      귀족집 자제라서 그런지 괜찮은 인상이더군요. ^^
  13. 덕분에 2010년은 매일 아침 이 책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secret

Beowulf

Culture/한줄 評 2007.11.26 22:2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앙이전의 신화시대. 악녀가 잉태한 原罪相殘. CG라서 믿기는 영웅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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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전에 읽어보았던 베오울프의 원래 스토리보다 훨씬 인간적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 디지털 만화가 아니라, 300이나 Sin CIty같은 방식이면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구요. 동시에 베오울프의 벗은 몸을 안보여주기 위한 여러가지 농담스러운 장면들은 작품의 진지함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스틴 파워즈 영화에 나올만한 (실제로 나오기도 했었고) 농담이었거든요.
    • 와우.. Kevin님은 원래 스토리를 읽으셨군요.
      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사실 Werewolf인줄 알고 영화 안보려고까지 생각했었지요. -_-;;

      저도 누드 베오울프의 심벌을 교묘히 가리는 장면이 더 신경쓰이더군요. 굳이 불필요한 긴장감을 줄 필요는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2. 저거 예고편하는거 보니까 3D 게임 인트로 동영상 같더군요. (그렇지만 퀄리티가 그닥 좋아보이진 않더라고요)
    안젤리나 졸리가 좋아서 보려고 했는데 잠깐 나오고 만다던데..정말인가요!?!
    • 저는 졸리를 안 좋아하는데, 봤습니다.
      그래픽이 실물보다 매력적이던걸요. ^^;;

      3D로 보면 더 낫다더군요. 혹시 관심있으시면 참고하세요.
  3. 아이멕스 영화관 가서 봤는데 표값이 14000원;;

    뭐 돈값은 한것 같네요.

    중간쯤가니까 3D 익숙해지다가 마지막부분가서는 움찔움찔

    카트라이더이후 제 몸을 좌우로 흔든 미디어는 처음이었습니다.= _=;;;
  4. 저는 소식만 듣고 회식후 단체관람을 결정해버렸습니다. 스토리나 이런건 눈에 안들어오더군요 (당연한 것인가여? -0-) 그 화려한 그래픽과 넘쳐나는 마초주의에 반했습니다.(I am BeoWolf !! 이거 외치는 부분 정말 멋지더군요 쿨럭) 아 물론 IMax 에서 봤습니다.

    (좀 진정하고..) 보면서 느끼느 점은 극장이 넘쳐나는 동영상 문화에 대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집에서는 절대 3D 기분이 안날꺼 같아서 말이죠

    블리쟈드에서 이런 회사를 하나 설립한다면 주식을 살 용의까지 생기더군요 +ㅂ+
    • 아이맥스에서 제대로 보셨군요.
      말씀처럼, 영화관이 가져갈 차별적 경쟁우위는 경험이라고 봅니다.
      그런면에서 3D로 실사 느낌을 낸 베오울프는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가능해 질테니까요.
secret
황당한 상황을 설정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에 패해서 무슬림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처음에는 온나라가 완강히 저항할겁니다. 불교, 기독교에 유교까지 연합을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도 이슬람교가 특별히 싫어서라기보다, 당신 영혼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본디부터 지닌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고 반동할 것입니다.
적어도 처음 몇년간은 말이지요.


* * *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무슬림 수뇌부에 유효한 타격을 입히지 못한채 십년이 흘렀습니다. 이젠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신 회사의 동료중 반은 이미 무슬림으로 개종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저항은 하지 않지만 아직 불만이 가득한 당신은 신조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비무슬림에게 부과하는 인두세를 더하면, 개종한 동료가 내는 세금의 두배입니다. 속상합니다. 겨우겨우 노력하면 못낼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빠듯해지는 살림탓에, 요즘엔 아예 대놓고 면박을 주는 배우자의 독촉에 얼굴만 벌개집니다. 돈을 더벌어 오지 못하면 엿바꿔 먹지도 못할 기독교에 대한 맹목을 버리고 개종해서 인두세 면제 혜택을 받으라는거지요. 혼자 독야청청해봤자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우리만 손해 아니냐고 다그칩니다.

그러고보니, 당신 상사인 이란 사람 알타프 씨는 매우 멋진 사람입니다. 영민한 비즈니스 감각과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 신사답고 여유있는 유머 등 형님으로 모시고 배울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무슬림이라고 해서 친하게 지내지 못할 이유는 무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알량한 지조..?

게다가, 생각해보니 작년 여름에 조카녀석이 중한 병을 앓았을때는 어땠나요. 신장 기증을 받지 못해 온가족이 쩔쩔 맸습니다. 당신이 속한 기독교 공동체에는 아무리 호소를 해도 십원 한장 도움은 커녕 전화 한통의 호의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신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무슬림으로 자꾸 개종함으로 교세가 위축 일로입니다. 게다가 7년전부터, 교회의 헌금수입에 과세하기 위해 영리/비영리를 불문하고 모든 조직에 동등한 세율을 부과하는 '단일과세법'과, 특정 교세의 지위가 미약해 국민의 종교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황당한 헌법해석에 근거해, 10년 한시로 이슬람교도의 기부금만 소득공제를 시행하는 '교세균형특별법'이 발효되었지요. 비무슬림에 대한 인두세는 설명했었던가요? 이렇게 나날이 교회의 형편이 어려워지니, 교단이 제 앞가림도 어려운 현실임은 모르는 바 아닙니다.
결국 당신 조카의 딱한 소식을 들은 인근 도시의 모스크에서 구역내 무슬림에게 통지를 돌려 3일만에 건강한 신장을 기증해주었습니다. 당신의 여동생과 그 가족이 너무도 고맙다고 바로 무슬림으로 개종했을 때 그들을 한번 쏘아보긴 했지만, 탓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해준 것도 없는 외삼촌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이제 곧 차장 승진을 눈앞에 둔 당신입니다.
무슬림 경영진과 이란계 자본으로 이뤄진 이 회사에서 기독교를 유지한채 성장해 나간다는게 가능이나 할까 자꾸 의구심이 생깁니다. 물론, 회사는 성과 인종, 그리고 종교에 의해 직원을 차별하지 않음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일찌감치 무슬림으로 개종했으나, 그와 관계없이 당신이 영혼의 친구처럼 여기는 대학 동기는 계속 권유합니다. 이 세상으로 넘어오라고. 전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사실 당신이 졸업한 대학 동문들은 대개 무슬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에,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계 무슬림 파워 엘리트의 네트워크에 속하게 됩니다.

과연 어찌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 *

자 그리고 또 십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원제: Old World Encounters
사용자 삽입 이미지

Jerry Bentley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설을 쓰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인류가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겪었던 모습입니다.

위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터키에서 출발해 중동 지역 전역에 걸쳐 강력한 이슬람 국가 연합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베리아 반도는 끈질긴 저항으로 기독 반정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불교는 자신의 근원지인 인도에서조차 마이너리티로 전락했습니다.
조로아스터도 자신의 발원지인 페르시아에서 쫒겨났고, 인도로 넘어가 파르시로 명맥만 유지할 따름입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그리고 유교까지 동원하여 종교를 표면으로 내세우고, 그 이면에는 정치라는 의도와 문화라는 추동력이 끊임없이 문명간의 충돌과 혼합 그리고 교류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고대세계의 만남'은 이러한 내용을 위주로 문화교류사를 다룬 독특한 책입니다.
마치 판구조론이라는 관점으로 지질학을 보면 많은 의문이 풀리듯, 역사상 문명의 전개양상에 있어 각 문화가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통찰을 얻는 책입니다. 저는 매우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문명간 만남에 의해 생기는 사회적 conversion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이며, 세가지 범주로 나뉩니다.
1. 자발적 제휴: 엘리트 계층이 외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도움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외부 문화를 수용
2. 사회/경제/정치적 압력: 경제적 인센티브나 상벌을 이용해 사회전체를 변환
3. 동화: 소수가 다수에 흡수 통합
+ 절충주의: 현지 문화를 인정하고 타협하여 혼합함.
   (예컨대 불교가 중국에 들어갈 때 노장의 언어로 설명. 열반=무위 등
)

실제로는 위의 프로세스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조합으로 나타납니다. 위에서 무슬림 대한민국에 대한 상황 전개를 제가 가정한 것도, 몇세기전에 그랬듯 제가 1번과 2번을 조합해 그려본 내용이지요.

역사적으로는 네번의 거대한 문명 교류 시대가 있었습니다.

1. 고대 실크로드 시대 (-2~5c): 처음 동양과 서양이 조우. 전염병으로 실크로드 붕괴.
2. 선교자와 순례자 시대 (6~10c):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확산과 세력화.
3. 유목제국의 시대 (11~14c): 투르크와 몽골의 유라시아 지배. 선 페스트로 궤멸.
4. 신세계를 향하여 (15c~): 정화와 무슬림의 원정. 노예무역의 시작 등

지금 시대 각 종교의 형성과정을 통해 영욕과 애증이 문명간의 충돌로 각 민족의 meme에 트라우마로 새겨진 사연들이 많습니다. 자발적이든 강압적이든 개인의 개종과 사회의 conversion은 많은 고통과 정신의 개조, 삭이기 힘든 아쉬움을 수반하게 마련이니까요.

전반적으로 평하면, 제가 미리 책을 사놓고도 해외출장 시 읽으려고 한달을 기다렸던 보람은 있었습니다. CES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아주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집보다는 길위에서, 한국인들 사이보다는 외국인이 어른거리는 자리가 잘 어울리는 책이니까요.
문체는 논문투라 상당히 딱딱합니다만, 번역은 나쁘지 않습니다. 유려하지는 않아도 정확한 쪽입니다. 건조하지만 졸립지 않습니다.


특히, 경영하는 제게는 또 다른 배움이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관리 (change management)입니다. 문명도 변하는데 기업이 왜 못변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첫머리는 역사에서 배울 점도 많을겁니다. 예컨대, 첫 변화를 이끄는 엘리트 집단의 선정이나, 변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및 motivation management 그리고 제도 관점의 infra structure에는 시사점이 크지요.
게다가 변화관리를 넘어 두 이질적 집단의 동거인 M&A의 후과정을 리드하는 post M&A도 문화사적 관점을 도입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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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35개가 달렸습니다.
  1. 요즘 부쩍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새록새록 생기는데
    마침 좋은책인거 같네요,,^-^
  2. 결국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업은 역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같이 변화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아직 마래를 많이 생각할 수 있는 나이이기에,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시대에 무섭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이 많이 생겨 두근거리네요 ^^
    만약 제가 저 황당한 설정속 주인공 이라면,
    지금은 자칭 굳건한 크리스찬이라 하지만 바뀔것 같네요ㅋ;
    새로운 변화, 새로운 세상, 새로운 문화 ㅡ 이 편이 제게는 더욱 흥미롭군요,
    제가 아직 많이 젊으므로 변화에대한 기회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 '아직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나이이기에' -> 이부분 염장입니다. ㅠ.ㅜ

      제가 아직 젊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인생이 촉박하다는 조급증은 은근히 느끼고 있거든요.

      블로그에서 잠시 보고 온 네구님의 도전정신이 참 멋집니다. 지금처럼 계속 건투를 빕니다. ^^
  3.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저 황당하기만 한 얘기가 아니라 인류가 지금껏 껶어왔던 일이라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다행인건가요, 아니면 지금이 오히려 예전보다 더한 격동의 시대지만 단지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요.
    항상 그렇지만 이런 역사 얘기를 들으면, 장구한 역사 앞에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작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겸손해 집니다.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 저도 이 책을 읽으며 그나마 우리는 좀 행복한 편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위의 가상 시나리오를 써볼 생각을 했구요.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개종과 conversion은 분명히 진행되는 점이 있습니다. 미국 또는 서구의 사상이란 이름이지요.

      역사를 마주하면 태산앞의 호미가 자꾸 생각납니다. 우리가 쉽게 폄하하는 몽골의 100년제국도 사실 마지막을 못본 태평성대의 몽골장군에게는 영원한 제국이었으니까요.

      멋진 댓글 잘 봤습니다. ^^
  4. post M&A도 문화사적 관점을 도입하면 ----> 뭐 그렇게까지 들어갈 필요가 ;;;;;;;;;;;;
    • 필요한거 아닌가요?;;
      m&a 에서 정말 중요한건 post,,
      융합인거 같은데;
      제 짧은 생각이지만요;
    • 언더독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뭔가 깊은 뜻이 있을듯 하군요. ^^
    •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구요. 너무 범위가 넓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적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흐름과 post-M&A는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서 말이죠.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구해서요. 실례되었다면 죄송합니다.
    • 제가 너무 포괄적으로 언급했나 봅니다.
      앞서 말한 문화교류사의 주 내용이 문화와 문화간의 충돌이고, 특히 구성원들이 믿고 있는 가치체계인 종교와 기업문화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요약하면, PMA의 새로운 공식을 발견했다는 뜻이 아니라, 대안적 솔루션을 낼 수 있는 clue라는 생각을 했다는 뜻입니다.
  5. 멋진 책이네요. 꼭 읽고 싶습니다. 멋진 story telling 인상적입니다. 제가 이번 겨울 방학동안 경영 컨설팅에서 인턴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조건에서 직접 field로 나가 활동하게 되었는데 지금 광고회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놓은 상황이 post M&A입니다.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진단하기 힘들고 어떻게 융합과 변화를 이끌지 머리를 많이 싸매고 있었는데 좋은 화두가 되어줄 책인 것 같습니다. inuit님 감사합니다.
    • 이 책을 post M&A의 길잡이로 쓰리라고는 저자도 예상 못했겠지만, 속성상 적용가능한 부분이 있더군요.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훈련일겁니다.

      컨설팅의 방법론을 지나고나면, 관점의 이동과 솔루션 전개의 철학 같은 개인 역량이 중요성을 띄게 될겁니다.
  6. 정말 책을 잘 소개해주셨네요.
    읽고 싶어지는걸요 ^^
  7. 음...필독서 목록에 넣어두었다가 두고두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8. 상당히 끌리는 내용이네요 +_+
    요즘 막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진실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인가 아님 역사가 만들어낸 진실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는 진실을 만들어낼까?
    에 대해 조금씩 의문을 품고 있는데, 좋은 책이 될듯합니다.
    • 해피시커님이 고민하시는 주제에 좋은 답을 해줄지는 모르겠어요.
      저자는 학자답게, 중립적이고 회의적으로 사료를 대하는 모습은 보였습니다.
  9. 재밌어 보이는 책이네요 ~_~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10. 상당히 끌리는 내용입니다. 독특한 시각에서 출발한 것들을 은근히 좋아하는데 일반 위시 리스트에 추가해놓겠습니다. ^^ 확실히 진정한 혁신(?)은 전혀 생각지도 않던 분야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출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11. 이거 정말 재미있겠네요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이런식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도 있겠습니다 ^_^;
    읽어봐야겠군요 ^^ㅋ
    • 음음..
      제가 너무 소설을 써서 오버한 감이 있네요.
      실제 책은 이것과 많이 다르고 딱딱한 논문 투라는 점은 미리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
  12. 글을 쓰신 의도와 다르게(...) 읽으면서 남다른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포스팅을 보면 소재와 내용이 아주 흥미로운 것이 마음에 팍 와닿는데 딱딱한 논문체라고 하시니..
    스키너의 심리상자~ 보면서 좌절했거든요. orz 전 문체에 많이 민감한 사람인가봐요.
    • grace님께 미리 알려드립니다.
      스키너보다 백배쯤 따분하고 재미없습니다. 논문체가 아니고 사실은 논문.. -_-
  13. 동시대의 관점에서 짜맞추기식으로 써서 그런지 역사얘기지만 현대의 사고방식이 물씬 풍기네요. 충돌이 아니라 조화가 키포인트다..뭐 이런점에서는;;; 긁적긁적

    보다가 중간에 던져버렸습니다. 딱딱해요..딱딱해;;;
    • 아무래도 경고문을 달걸 그랬나봐요.
      첫머리에 소설을 써 놓아서 재미없는 논문을 무척 재미있는듯 오도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_-

      (혹시라도 저 땜에 책사서 중간에 포기하셨다면 손해배상 청구하세요. 햄양님. ㅠ.ㅜ)
    • 숙면유도용으로 좋습니다 ^^

      책도 리뷰만큼만 재밌게쓰지라고 하면서 봤었슈.
    • 크헉.. 숙면유도 나왔습니다. ㅠ.ㅜ

      그저 지송지송하단 말밖에. 앞으로는 자중하겠슈..
  14. Inuit님의 탁월한 이해-해석-재구성... 그리고 재밌게 풀어주기 능력을 봤습니다 ^^

    다른 이야기지만...

    인류의 역사... 그리고 자연의 역사를 생각하면 제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라는 생각에 괜히 의기소침할 때가 있습니다. 뭐를 해도 별 의미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죽어서든 어떻게든... 그 모든 궁금증에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그런 방법이 하나도 없다면, 그만큼 억울한게 없을 것 같습니다 ㅡ.ㅡ
    • 낱개의 지식보다는 '메타지식'이 관건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들면서 지식을 쌓는법, 갈무리하는 법, 지식간을 엮는 법.. 이런 쪽으로 발전을 하면, 아마도 말씀하신 방법론에 갈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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