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딱딱한 책을 많이 읽은지라, 좀 쉬어가려 집어든 책이다.
클래식이나 서양미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냥 보고 좋다 느끼는 정도지 체계적으로는 잘 정리가 안된다.
서양미술사 관련한 책도 몇 번 읽은 적 있는데, 그 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읽은 동안 마음이 풍성하고, 또 몇 개는 머릿속에 남으니 효율 없어도 이런식의 remind면 충분히 즐겁다.

진중권

논객 진중권은 알려진대로 미학자다.

그가 쓴 미술사 책이니 논리적인 점이나, 학문적인 점에서 아쉽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최대한 쉽게 쓰려 노력한 점이 보였고, 가벼운 목적의 내겐 적당했다.

책의 컨셉 상, 각 챕터별로 중심 논문이나 저술을 기둥으로 저자의 살을 붙였다.
그래도 적절한 문헌을 토대로 일관되게 적어, 통일감이 있다.

책이 중점으로 보는 부분은 중세 이후다. 사실 모든 예술의 암흑기를 벗어난게 르네상스고 당연히 서양미술사의 볼륨은 르네상스 이후에 나온다.
까막눈인 내게, 르네상스 이후 마니에리스모(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미묘하지만 날카로운 간극을 어느 정도 깨친 점만해도 소득이 크다.

특히 엘그레코가, 사실의 모사에서 벗어나 느낌을 표현하려는 마니에리스모의 대표 작가라는 미술사적인 의미를 마드리드톨레도 가기 전에 알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에 갈 일 있겠지.
그 외의 작품들도 출장이나 여행 중 파리, 로마, 피렌체, 런던 등지에서 본 작품들이 많아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가 있었다.

가장 흥미로왔던 부분은 역원근법이다.
러시아에서 주로 나타나는 역원근법이, 그저 표현이 조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동적인 원근 표현이란 관점에서 보면 세상 보는 각도는 하나가 아니란 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원근법과 달리 역원근법은 일관된 표현이 어려워 땅이 찢어지거나 사물이 도치되어 보이기도 하는 단점이 많아 멸종될 수 밖에 없는 거리감 표현의 방식이다.

전체적으로 욕심 부리지 않고 범위를 제한해 놓고 충분히 설명하는 점이 좋다. 또한 설명마다 그림이 충실히 붙어 있어 그 뜻을 알아듣기 쉽다. 편집면에서도 꼼꼼히 만든 책이다. 서양미술사를 빠르게 개괄하고픈 사람에게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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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Frampton

(Title) When I am playing with my cat, how do I know that she is not playing with me?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에세, 또는 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지만, 딱 그 지점까지다. 
중고등시절, 필독 목록에 있었고, 한두장 들췄는지 좀 읽었는지 기억도 안나므로 내겐 안 읽은 책이니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몽테뉴를 재포장한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이후에는 그만 홀딱 매료되어 읽었다.

그 매력의 근원은 진솔함이다.
솔직함이 힘이고, 개인적 스토리가 주는 위대한 교감이다.
키가 작다는 컴플렉스, 여성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는 물론, 먹고 마시고 냄새 맡는 모든 일, 심지어 배변과 지병인 요로 결석에 대해서도 가식없이 걱정과 생각을 적어 간다.
그 개인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역사책 속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명사라는 생각을 건너, 먼 친척 아저씨의 소싯적 이야기를 듣듯 친근감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 정말 개인화 스토리텔링의 진정한 힘을 보여준 몽테뉴다.

물론, 개인적 잡문이 솔직하면 곧바로 위대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솔함이 몽테뉴의 레시피라면, 특별 재료는 몽테뉴의 사유다.
몽테뉴 사유체계의 핵심은 자유분방함이다.
그리고, 그 자유분방한 사고의 줄기는 인본주의다.

어려서 우리아들 독서교육의 모태가 된 유럽식 귀족교육을 받았던 몽테뉴는 성장기와 중년 이전까지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그리스의 스토아 주의와 종교 내에서의 안정감이 강하게 깃들어 있었고 여기까지는 동시대 귀족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종교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한 마을사람들의 몰살, 그리고 낙마로 인한 사경을 경험한 이후 몽테뉴는 각성하게 된다.
즉, 금욕적 스토아주의 또는 데카르트적 이성본위의 이상론의 틀을 깨고, 인간 본연과 관계 중심의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된다. 이는 동시대 르네상스적 분위기와도 상통했고, 결과적으로 몽테뉴가 프랑스의 초기 르네상스를 연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책의 제목 또한 여기서 유래한다. 
결과적으로 문화적 상대주의를 표방한 몽테뉴는 당시 야만으로 표현되던 남미나 제3세계 원주민도 동등한 관점으로 다뤘다.
이를 넘어 동물까지 사고를 확장한 결과가 제목의 사유다.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놀아주지 말란 법은 없잖은가.
지금봐서는 그냥 재미난 말장난이나, 또는 있을 수 있는 시각이지만, 당시 인간과 동물의 자리매김 상 이런 발상은 감히 꺼내어 말하기 어려운 관점의 전환이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당시 왕정과 종교 사회가 억압하고 규정해 놓은 다양한 사고적 틀에서 벗어난 논의가 가능하다.
성(性)과 인간관계, 종교에 대한 태도, 다문화에 대한 개방성, 죽음에 대한 수용성까지.
일례로 몽테뉴는 종교를 절대적 신성으로 보지 않고 사회적 관계망의 연장선상으로 보기도 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죽음을 내포한 반역의 사유였다.
중요한 점은, 지금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고 당연히 여기는 많은 가치와 사상이 당시에는 발칙하거나 위험한 논의였다는 사실이고, 몽선생은 에세란 형식을 빌어 이를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쓰다보니 복잡한 이야기가 많을듯 하지만, 책은 클래식 음악을 듣듯 우아하고 부드럽게 흘러간다.
이 부분은 저자 프램튼 씨의 공이다.
원문을 적절히 응용하되, 필요한 부분을 뒤섞어 몽테뉴의 삶을 독자가 함께 여행하도록 도와주는 가이드 역할을 충분히 한다.
없는듯 개입하지 않되 잘 설계된 길을 따라 흥미진진한 투어를 하고, 여객의 배경지식이 모자랄만한 부분에 슬쩍 나타나 설명을 해주고 뒤로 빠지는 프로 가이드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부분은 디테일일 살아 있다는 부분이다.
그냥 추상적 주장이나, 요약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풍성한 디테일은 에세나 수기, 일기류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다.
뭘 먹었는지, 무슨 냄새가 났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고 누구를 만나 어디를 갔는지 시시콜콜 적었던 몽테뉴는 트위터적 부지런함을 지녔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읽으며 지금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중세 유럽의 정서를 절절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감동이었다.

지금은 쉬운 해외여행이지만,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까지 2년을 잡고 다닌 여행이다. 규모의 방대함과 비용, 시간 그리고 목숨의 위험 정도에서 지금과 견주기가 어렵다. 예컨대 중세 저자가 여행은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라해서 요즘 독자가 그 텍스트를 수긍한다고 치자. 그것을 지리적 이동이란 관점에서 지금의 컨텍스트와 같이 해석한다면 얼마나 많은 의미를 유실할까.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여행 중 와인에 물을 섞지 않고 마시는 법을 배운 몽테뉴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대체 로마식 물탄 와인이 16세기 프랑스 귀족 문화까지 이어져 왔었단 말인가.

아참, 흔히 몽테뉴라고 부르는 이 인물의 이름은 미셸 뒤켐 드 몽테뉴다. 
즉 몽테뉴 성의 뒤켐 가 자손 미셸 씨다.
마치 상산에서 온 조자룡에게 상산을 호처럼 쓰는 것도 모자라 상산이라 부르는 것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몽테뉴 성이 그 가문을 뜻하고, 또 그 가문에서 유일하게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셸이니 뭐 꼭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부르주 몽테뉴에 살던 미셸 씨의 솔직담백하며 발랄한 사고는 그 후 프랑스와 유럽에도 큰 영향을 줬지만, 인간 몽테뉴 미셸의 향기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키보드로 블로그 적는 Inuit씨에게도 감명을 준다는 점이 재미있다.

또 하나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또 우리가 시시콜콜 남긴 기록들이, 먼 훗날 시공간을 지나 지적 충격과 감성적 공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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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다음에 도서관에 가면 빌려다 읽어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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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부제) 피렌체를 알면 인문학이 보인다

이탈리아 여행폭풍공부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일정 상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는 무척 기뻤습니다. 제가 딱 원했던 깊이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피렌체의 황금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항상, 인물 중심의 서술은 전체 스토리를 생략해 간다는 점, 영웅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잡는데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 책을 읽으면 좀 낯설 수 있었겠지만, 이미 피렌체의 지리, 역사, 풍경을 다 숙지한 상태에서 읽으니 참 즐겁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건물들, 인물들이 어떤 관계망속에서 얽혀 있는지 알게 되니 말입니다. 

르네상스의 출현
거칠게 생략해서 르네상스적 깨달음은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잉태되었습니다. 미의 찬미, 아름다움에의 추구라는 인간적 주제를 예술의 중심으로 당겨온 공로지요. 이는 계관시인 페트라르카에 의해 확산됩니다. 회화라면 조토의 고뇌하는 천사에서 맹아를 보이게 되지요.

르네상스의 발현
선 원근법을 개발한 알베르티와 구현한 브루넬레스코의 공을 꼽아야 합니다.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의 트로이카를 특기할 만합니다. 건축의 브루넬레스코, 조각의 도나텔로, 회화의 마사초이지요. 

르네상스의 절정
메디치가에 의해 육성된 르네상스는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만개합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0세 때 위대한 로렌초의 양자가 되어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우지요.

이야기들
이렇게 줄거리 위주로 적으니 무척 건조해 보이지만, 책은 훨씬 재미있습니다. 르네상스 인간들의 좌절과 반목, 고뇌의 스토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두번 물먹은 브루넬레스코부터 볼까요. 그는 성 요한 세례당의 문짝 컨테스트에서 기베르티에게 진 후 청동 조각을 접습니다.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서 건축의 거장이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반면, 승자인 기베르티는 그 후로 평생 두개의 문짝을 만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첫째 문은 20년, 둘째 문은 27년. 과연 누가 승자일까요.

브루넬레스코의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메디치 가문 저택 설계의 수주 경쟁에서는 미켈로초에게 지지요. '눈에 띄지 말고 살자'는 메디치의 가풍에 따라 검소한 미켈로초가 화려한 브루넬레스코를 이깁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코의 흔적은 두오모 돔부터해서 피렌체 전역에 퍼져 있으니 큰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마이너로 분류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는 어떤가요. 재능상, 둘 다 마이너는 절대 아니지만, 피렌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천재들입니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재능에 비해 인정을 못 받습니다. 아직도 수수께끼이지만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인 레오나르도가 플라톤주의의 메디치 가문과 안 맞았을 것을 추정합니다. 메디치 가문에 발탁되기 위해 무던 애를 쓰던 레오나르도는 결국 메디치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포르차 가문에 취직합니다. 그것도 '한 재능있는 음악가가 있습니다'라는 추천장을 들고 말이지요.

그외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간의 경쟁, 친구인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코간 조각 대결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일화 소개는 이쯤 그치겠습니다.

이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메디치가 주최한 피렌체 공의회의 의미를 알게되었다는 점입니다. 동방의 문물이 피렌체로 밀려들어와 융합하며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둘째, 르네상스는 단순히 신학과 인문학의 대결이 아니란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와 신 플라톤 주의의 충돌에서 생겨난 사조란 주장이 수긍가며 인상 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대정신(zeitgeist)을 떠올렸습니다. 한 시대 첨단을 걷는 도시에 산다는 것이 갖는 축복같은 의미를 새삼 새겼구요. 무한히 천재를 빨아들여 다시 천재를 키워내는 지식의 용광로 피렌체. 그 찬란하고 치열했던 시대정신이 아릿하게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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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 여행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가셨었지요. 기억이 납니다. ^^
      메일 보내 드릴게요.
  2. 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secret

앞에서도 여러번 다뤘지만, 피렌체는 단언하기 어렵게 깊은 의미들이 있습니다. 


교황과 대립할 정도의 시민의식이 높았던 중세 도시국가의 저력, 메디치가의 대출 없이는 전쟁도 못할 정도의 경제적 파워, 중앙집권 국가와 달리 도시국가 끼리 이합집산 하는 고도의 정치성, 이에 기반한 인문주의적 전통과 예술. 이게 아마 피렌체의 매력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렌체의 문인들, 메디치의 역사적 역할 등 의미중심으로 피렌체를 이해하는 것은 피렌체의 속사정을 읽는 첩경입니다. 그러나 막상 도시에 가보면 스토리가 아니라 외관 중심으로 마주치게 됩니다. 스토리에 대한 실마리를 식별하기 어렵지요. 낯선 도시의 백면 서생 꼴 나기 십상입니다.

이해욱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의미와 형태간의 간극을 메우기에 좋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건축가가 도시 곳곳을 누비며 미적 형태와 공간적 의미를 잡아내며 최소한의 역사와 엮어 놓습니다.

맥락 없이 이책을 읽는다면 단순한 그림집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렌체에 대해 역사와 지리관점에서 사전 지식이 있다면 꽤 좋은 길잡이입니다.

가기 전에 미리 도시를 선연히 상상할 수 있고, 다녀와서 그 느낌을 되새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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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r Hibbert

(Title) The House of medici its rise and fall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입니다. 그 피렌체를 이야기하면서 메디치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이번 여행의 사전 준비로 메디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medicine과도 어원이 같으니 약종상의 집안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메디치(Medici) 집안은, 피렌체는 물론이고 중세 이탈리아 역사를 설명함에 있어 빼놓기 어려운 명문 중 명문입니다.

은행업과 무역업으로 거부를 형성했고, 피렌체 공화국의 사실상 독재가문으로서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더러, 강력한 예술과 인문에 대한 후원으로 이름 그대로 꽃의 도시 피렌체에 문화를 꽃피운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산업-정치-종교-예술이 모두 복합된 독특한 메디치의 특성은, 가문의 기틀을 잡은 지오반니에서 비롯됩니다. 늘 검소하고 사회에 기부하는 전통을 확립한 지오반니의 덕에 피렌체 소시민(popolo minuto)과의 정신적 연대를 유지한 메디치 가문은, 위기 때마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지오반니의 정치적 식견이 대단합니다.

또한 지오반니때부터 교황과 결탁하여 독점적 이익을 향유해온 메디치는 결국 가문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 위대한 로렌조의 둘째 아들과 사촌형제를 통해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라는 두 자리의 교황까지 배출하게 됩니다. 정말 큰 장사꾼이지요.

또한 국부라는 칭호를 받은 코시모는, 종전의 베네치아 동맹을 깨고 스포르차에 대한 지원을 통한 밀라노와의 화평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를 바꾸고 평화를 통한 피렌체의 근본적 성장 기반을 마련합니다. 

예술에 대한 후원은 어떤가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메디치 가의 발굴과 육성을 거친 천재들입니다. 그 외에도 도나텔로, 라파엘로 등등 수도 없습니다.

결국 유럽의 풍성한 문화도 프랑스, 독일의 피렌체 침략 이후에 르네상스 바람이 전파된 까닭이니 메디치와 피렌체는 유럽 전체의 발달에도 크나큰 일조를 했지요.

경영하는 제 입장에선, 그냥 대단했던 가문이라는 측면보다 사업을 일궈가고 문화를 숭앙하는 메디치의 독특한 가풍이 흥미롭습니다. 모든게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중간 단계를 고르는 안목과 솜씨는 확실히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위풍당당 메디치는 결국 지오반니의 가풍에서 멀어진 피에로 때부터 서서히 몰락을 합니다. 교만하고 시민의 정서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결국에는 탐욕스럽고 용기없는 그냥 졸부 모습의 후손과 함께 대가 끊기지요.

차라리 당당한 마지막 후손녀 안나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돋보입니다. 유언으로 못박아, 수많은 예술품을 다 내어놓는 대신 피렌체 시 밖으로 한발자욱도 못나가게 해 놓은 그 이유로 아직도 피렌체는 세계 미술품의 20%가 있다는 문화의 고도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피렌체를 가지 않더라도, 찬란했던 한 때의 찬란했던 사람들, 그 역동적인 모습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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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원지이자 총아입니다. 인간이 중심되고, 지식이 넘쳐나는 찬란한 도시 그 자체이지요.


따라서, 피렌체를 거쳐간 수많은 지식인과 명사를 다 헤아리기도 힘듭니다. 

한편, 도시가 사람을 모으고, 모인 사람이 다시 도시에 유수한 스토리를 남기는 상호작용의 특성 상, 피렌체를 건물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보는건 꽤 흥미진진한 접근일겁니다.

David Leavitt

이런 기대감을 갖고, 수많은 작가들의 사연 중심으로 피렌체를 설명한 이 책 '아주 미묘한 유혹'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패였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오로지 문인, 그것도 영국인 문인이 중심인 까닭입니다. 저같이 문학과 소설을 즐겨보지 않는 사람에겐 내용이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아니 왠만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시시콜콜히 나열되는 영국 작가들이 쉽게 머리에 들어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항상 그렇듯 이런 일화 위주의 책은 읽다가 얼결에 줍는 화제들이 제법 있습니다. 우선, 제 어렸을 때 유명했던 영화 '전망 좋은 방'의 무대가 피렌체였다는 점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호방한 자유와 발랄한 사상이 꽃을 피운 피렌체는 백년 전에 게이의 선구도시였다는 점은 이 책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냥 게이가 아니라 문인, 예술가 등 거물급 동성애자들이지요.

지식이 만발해 역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기고, 또 그 자체로 아름다워 수많은 자살자들을 불러 모으는 피렌체. 불후의 명작을 보고 다리에 맥이 풀리고 기절하는듯한 정신적 충격을 받는 '스탕달 신드롬'이 생겨난 치명적 미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전세계 미술품의 1/5이 모여 있다는데 가보기 전에 그 규모가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영국 문인의 자취만 좇는 이 책보다는, 피렌체의 지식인들 이야기가 만발한 '천재들의 도시'가 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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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흔히 접하면서도 또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뮤지컬과 비슷하기도 하고, 클래식과 유사한 느낌도 들면서 티켓은 한도끝도 없이 비싼 공연. 저는 유명한 몇 개 아리아로 오페라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개 유사한 느낌일 것입니다.

박종호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적절한 길잡이입니다. 흔히 나오는 책들처럼, 이미 오페라를 안다고 가정하고 좋은 오페라에 대한 소개를 하는게 아니라, 오페라 자체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대사가 없는 대신 레티치보로 이뤄지는 의미전달이 아리아와 버무려져야 제대로된 오페라일 뿐 아니라 뮤지컬과도 명확한 구분이 된다는 점이랄지, 원래의 목표가 그리스 비극을 르네상스 시대에 맞춰 재현해보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예술장르란 사실은 가볍지만 묵직한 배움이었습니다.

재미난건, 이런 오페라가 문인을 우대했던 메디치가에 드나들던 시인, 작곡가, 무대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종합예술이란 점이었습니다. 로마시대의 메세나가 예술을 후원해서 융성시켰듯, 르네상스 시대 명문가는 그렇게 인류에게 기여를 했네요.

책은 오페라를 모르는 주인공에게 작자를 닮은 오페라 애호가 아저씨가 대화형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 쉽게 읽힙니다. 자칫하면 진부하고 유치하기 쉬운 형식인데, 대화의 포인트와 스토리 라인이 부드럽게 얽혀 있어 경쾌하게 읽기 좋습니다.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이날은 특별한 의상을 깨끗이 다려입고 열주를 통과해 음악의 세계로 빠져드는 꿈의 공연. 오페라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좋고,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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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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