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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증도 가시지 않은 채 그림 같은 베네치아를 하루 종일 보고, 다시 뭍의 메스트레에서 아침을 맞으니 마치 꿈을 꾼 듯 합니다. 다음 도시는 아들의 도시인 피렌체입니다.

호텔의 발코니에 서면 빼곡한 건물 사이로 웅크린 거인 같은 두오모가 보입니다. 과연 피렌체의 랜드마크답습니다. 마법에 홀리듯 짐풀고 바로 두오모로 향합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피렌체의 명사들이 총집합한 곳이지요. 내부에는 최초로 원근법을 시도한 마사초의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성당의 겉모양은 기하학적 정렬에서 미학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선구자 알베르티의 손길이 닿아 있지요. 재료의 질감이나, 부피의 굴곡이 아닌 거대한 제도판에 그린 패턴으로 자아내는 미감은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성당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도 싶었지만, 서둘러 두오모를 보고 싶은 마음에 광장으로 향합니다. 두오모 바로 앞에, 기베르티가 20년 걸려 만든 청동 문을 한참 감상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나오는 문짝입니다. 그냥 문이 아니라 청동 조각의 종합 모듬 세트입니다. 장식마저 완결된 작품들입니다. 다만,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저게 20년씩이나 걸릴까 궁금은 했습니다.

그리고 두오모. 


올라가 봐야지요. 하지만, 피렌체도 베네치아처럼 관광객으로 넘쳐 납니다. 낮에 도착하니 이미 쿠폴라 오르는 엘리베이터 줄은 너무 깁니다. 뙤약볕에 두세 시간은 족히 기다리게 생겼습니다. 체력도 아깝지만, 시간이 더욱 아깝지요.

그래서 두오모 곁, 조토의 종탑으로 갔습니다. 종탑은 쿠폴라 높이까지 자력으로 걸어올라가야 하는 대신, 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쿠폴라 고도의 피렌체 전망은 물론이고, 쿠폴라 풍경까지 덤으로 볼 수 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지요. 



사실, 피렌체 가기 전까지만해도, 두오모 가서 멋지다고 경망떠는 평범한 관광객은 되지 않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피렌체를 풍경 중심이 아니라 의미 중심, 스토리 중심으로 읽으려 많은 공부를 했지요.


예를 들어 메디치가와 두오모는 각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에서 위대한 로렌초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에 대한 파치 가문의 습격이 있었지요. 이 습격이 성공했다면 메디치는 초기에 대가 끊기며 멸족했을 겁니다. 하지만 위대한 로렌초가 살아남으면서 반대파는 피의 숙청을 당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의 아들은 클레멘스 7세, 죽은 줄리아노의 아들은 레오 10세가 됩니다. 두명의 교황을 배출하면서 메디치 가문은 위세를 더하며 흥하게 되지요.

그런데, 의미고 역사고 다 떠나서 두오모는 그냥 대단했습니다. 압도적인 위력이었습니다. 의지는 가볍고, 감탄은 둔중했습니다. 
흰색, 붉은색, 초록색의 대리석을 따로 깎아 짜 맞춘 거대한 부피, 산을 깎아 만든 대리석으로 다시 산을 만든 인간의 의지, 완공을 하고도 그 무게를 못 이겨 쿠폴라 없이 오래 지낸 세월, 홀연 나타난 천재 부르넬레스코가 날렵히 얹은 그 쿠폴라 지붕. 4백만장 벽돌을 겹으로 쌓아 공학적으로도 안정감 있지만, 공학 따위 관심도 없는 동서, 남녀, 노소 누구나 보면 가슴 저리게 우미한 그 쿠폴라.
 
그냥 닥치고 감상하고, 한참 더 보고, 질리도록 보고, 질리기도 전에 배가 먼저 고파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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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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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와-! 두오모는..그저 대단한것 같습니다..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정할까 갈팡질팡 하고 있는 중, 2년 전 이탈리아 여행때 아쉽게도 피렌체를 못가본 이후 지금 마음의 소리가 피렌체로 향하고 있습니다. INUIT 님께서 포스팅한 책들 하나씩 읽어가보고자 합니다..
    • 저도 처음엔 피렌체를 스킵할까 까지도 생각했었어요.
      두오모 빼고 뭐 대단한게 있겠냐 싶었지요.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서양문명사의 터닝포인트가 잉태된 곳이란 점 하나때문이라도 피렌체는 사뭇 사랑스럽습니다.
      도시는 작지만 그 의미는 충만해서 말이지요.
      Ji1님 여행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언젠가 ji1님의 피렌체 이야기를 들으면 흥미로울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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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부제) 피렌체를 알면 인문학이 보인다

이탈리아 여행폭풍공부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일정 상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는 무척 기뻤습니다. 제가 딱 원했던 깊이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피렌체의 황금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항상, 인물 중심의 서술은 전체 스토리를 생략해 간다는 점, 영웅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잡는데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 책을 읽으면 좀 낯설 수 있었겠지만, 이미 피렌체의 지리, 역사, 풍경을 다 숙지한 상태에서 읽으니 참 즐겁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건물들, 인물들이 어떤 관계망속에서 얽혀 있는지 알게 되니 말입니다. 

르네상스의 출현
거칠게 생략해서 르네상스적 깨달음은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잉태되었습니다. 미의 찬미, 아름다움에의 추구라는 인간적 주제를 예술의 중심으로 당겨온 공로지요. 이는 계관시인 페트라르카에 의해 확산됩니다. 회화라면 조토의 고뇌하는 천사에서 맹아를 보이게 되지요.

르네상스의 발현
선 원근법을 개발한 알베르티와 구현한 브루넬레스코의 공을 꼽아야 합니다.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의 트로이카를 특기할 만합니다. 건축의 브루넬레스코, 조각의 도나텔로, 회화의 마사초이지요. 

르네상스의 절정
메디치가에 의해 육성된 르네상스는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만개합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0세 때 위대한 로렌초의 양자가 되어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우지요.

이야기들
이렇게 줄거리 위주로 적으니 무척 건조해 보이지만, 책은 훨씬 재미있습니다. 르네상스 인간들의 좌절과 반목, 고뇌의 스토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두번 물먹은 브루넬레스코부터 볼까요. 그는 성 요한 세례당의 문짝 컨테스트에서 기베르티에게 진 후 청동 조각을 접습니다.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서 건축의 거장이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반면, 승자인 기베르티는 그 후로 평생 두개의 문짝을 만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첫째 문은 20년, 둘째 문은 27년. 과연 누가 승자일까요.

브루넬레스코의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메디치 가문 저택 설계의 수주 경쟁에서는 미켈로초에게 지지요. '눈에 띄지 말고 살자'는 메디치의 가풍에 따라 검소한 미켈로초가 화려한 브루넬레스코를 이깁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코의 흔적은 두오모 돔부터해서 피렌체 전역에 퍼져 있으니 큰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마이너로 분류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는 어떤가요. 재능상, 둘 다 마이너는 절대 아니지만, 피렌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천재들입니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재능에 비해 인정을 못 받습니다. 아직도 수수께끼이지만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인 레오나르도가 플라톤주의의 메디치 가문과 안 맞았을 것을 추정합니다. 메디치 가문에 발탁되기 위해 무던 애를 쓰던 레오나르도는 결국 메디치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포르차 가문에 취직합니다. 그것도 '한 재능있는 음악가가 있습니다'라는 추천장을 들고 말이지요.

그외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간의 경쟁, 친구인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코간 조각 대결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일화 소개는 이쯤 그치겠습니다.

이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메디치가 주최한 피렌체 공의회의 의미를 알게되었다는 점입니다. 동방의 문물이 피렌체로 밀려들어와 융합하며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둘째, 르네상스는 단순히 신학과 인문학의 대결이 아니란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와 신 플라톤 주의의 충돌에서 생겨난 사조란 주장이 수긍가며 인상 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대정신(zeitgeist)을 떠올렸습니다. 한 시대 첨단을 걷는 도시에 산다는 것이 갖는 축복같은 의미를 새삼 새겼구요. 무한히 천재를 빨아들여 다시 천재를 키워내는 지식의 용광로 피렌체. 그 찬란하고 치열했던 시대정신이 아릿하게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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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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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 여행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가셨었지요. 기억이 납니다. ^^
      메일 보내 드릴게요.
  2. 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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