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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둘째 날의 주요 일정은 단연 우피치 미술관입니다. 첫날인 월요일은 휴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째 날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문제는 예약이었습니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당일 대기 인원의 경우, 입장객을 15분에 20명 정도씩 끊어서 보내기 때문에 줄이 매우 깁니다. 하지만 예약을 미리하면 지정된 시간에 바로 가서 관람할 수 있지요. 물론 예약료는 추가로 내야하지만 여행지에서는 그게 더 경제적입니다.

그런데, 방문 전날 예약하려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휴관일이라 예약도 안 하나 봅니다. 갑자기 황당해졌습니다. 오늘은 피렌체를 떠나는 날이기 때문에 서너시간 줄서고 나면 호텔 체크아웃부터 로마 이동까지 모든 일이 좀 복잡해집니다. 사실 그래서 전날 밤까지도 아쉽지만 우피치는 일정에서 생략하기로 했었지요. 

하지만, 피렌체 담당관인 아들이 몹시 섭섭해 합니다. 원래부터 피렌체 일정의 핵심으로 우피치를 생각하고 있었고, 관람료를 예산에 꼭 넣어달라고까지 신신당부했던 터였습니다.

다음날, 시차증도 있어 6시에 잠이 깬지라 일정을 세우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강행하자'
좀 고생하더라도 줄을 서보기로 했습니다.

우피치를 제낀 줄 알고 곤히 잠든 아내와 딸 방에 가서 잠을 깨우고, 아침을 거른채 호텔을 나섰습니다. 8시15분 개장인데, 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줄이 길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이 승리한듯 합니다.

드디어 개장. 줄은 짧지만 워낙 찔끔 찔끔 들어가니 한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드디어 입장. 하마트면 지나쳤을 뻔한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의 명작들을 감상했습니다. 어쩌면 평생 궁금했을겁니다.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의 그림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 기이한 느낌은 피렌체나 파리에서만 가능한 압도적 물량감이기도 합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니 피곤은 하지만 기분이 산뜻합니다. 아침을 거른 것을 빼곤 일정이 여유롭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마지막 여정을 갑니다.

메디치의 본산입니다. 메디치 가문을 상징하는 저 여섯개의 둥근 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이 많지요. 메디치 쪽에서는 선조가 거인과 싸우다 방패에 생긴 철퇴 자국이라고 하지만, 세인들은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이 뜻하듯 약종상이었고 여섯 개의 둥근 환약을 의미한다고도 읽습니다. 맨 위의 원은 프랑스 왕가에서 부여받은 부르봉 꽃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꽃피운 메디치 가문, 그 문장에는 프랑스의 꽃이 피어있음도 독특합니다.


두오모 광장 북쪽에 메디치의 본래 저택이 있고, 메디치의 가족 성당이 있습니다. 도시 전체에 메디치의 흔적이 있으며, 그 중 메디치-리카르디 저택은 그닥 볼게 없다는걸 알지만 피렌체까지 와서 메디치의 근원을 안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메디치라는 역사적 배경은 하나도 모를지라도, 로렌초 광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감싸는 공간입니다. 아마 근처에 중앙시장과 가죽시장이 있어서 서민적인 느낌이 강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피렌체의 가죽시장은 유명해서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습니다. 페라가모와 구찌가 피렌체의 공방에서 출발했다면 뭐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산 로렌초 성당과 중앙시장 사이에 늘어선 노점상은 꽤 즐거운 볼거리입니다. 품질이 최상은 아니지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쓸만한 가죽제품과 여러 상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중앙시장은 마드리드의 산 미구엘 시장을 똑 닮았습니다. 둘러 보는 자체로도 참 즐겁습니다.

즉석에서 계획을 바꾸어 노천 점심을 합니다. 우리 가족이 너무도 좋아하는 살라미를, 시장 정육점에서 슥삭슥삭 썰어내어, 생 올리브와 얇은 빵을 곁들여 광장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지만, 싱싱하고 맛난 재료를 직접 골라 만들고, 광장에서 경치구경 사람구경하면서 계단에 앉아 먹는 풍취가 새로왔습니다. 이날 점심은 온 일정을 통틀어 인상깊고 맛있는 식사 중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서정적 만족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나니, 로렌초에서 피렌체와 이별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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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살라미 맛있겠어요. 먹고 싶습니다. ㅜ_ㅠ
    스위스의 쿱에서 사먹은 마늘맛 살라미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노점상에서 사먹는 맛은 어떤 맛일까요. 으아아!!
    • 현지인 가는 시장이라, 가격대비 질이 좋습니다. 근데 살라미 못먹는 사람 많은데 엘윙님은 저희랑 비슷하네요. ^^
    • 살라미를 못먹는 사람이 있나요? 전 한번에 이건 꼬기닷! 이러면서 호텔에서 주는 여러 종류의 살라미를 미친듯이 퍼담아 먹었다는..(주변의 조식을 같이하는 외국인중 그렇게 퍼담은 인간이 없다는 ㅜㅜ )
    • 모드님, 살라미 냄새가 꼬릿하다고 못 먹는 사람 많아요. 선물 줬다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 일들도 있었지요.
      mode님이나 엘윙님은 입맛이 개방되셨거나 미식을 즐기시는듯 합니다. 물론 살라미는 공짜라면 무한정 먹어주는게 맞습니다. ㅋ
  2. 피렌체에선 일명 고현정 크림이라는 한국에서 16만원에 팔리는 5만원 정도의 화장품을 사셨어야 하는데.. 우피치보다~ ㅎㅎㅎ 사실 전 보티첼리에 홀딱 빠졌네요. 그저.. 그의 작품은 예쁘더이다. 거기다 덤으로 카라바조의 작품에 쓰러졌네요. 사진을 보니 다시 가고 싶다능~~~ 꺄악~
    • 고현정 크림이라니 생전 듣도보도 못했습니다 저는. -_-
      알았으면 찾아볼걸 그랬어요.
      미리 tip을 좀 알았으면 좋았을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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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부제) 피렌체를 알면 인문학이 보인다

이탈리아 여행폭풍공부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일정 상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는 무척 기뻤습니다. 제가 딱 원했던 깊이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피렌체의 황금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항상, 인물 중심의 서술은 전체 스토리를 생략해 간다는 점, 영웅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잡는데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 책을 읽으면 좀 낯설 수 있었겠지만, 이미 피렌체의 지리, 역사, 풍경을 다 숙지한 상태에서 읽으니 참 즐겁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건물들, 인물들이 어떤 관계망속에서 얽혀 있는지 알게 되니 말입니다. 

르네상스의 출현
거칠게 생략해서 르네상스적 깨달음은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잉태되었습니다. 미의 찬미, 아름다움에의 추구라는 인간적 주제를 예술의 중심으로 당겨온 공로지요. 이는 계관시인 페트라르카에 의해 확산됩니다. 회화라면 조토의 고뇌하는 천사에서 맹아를 보이게 되지요.

르네상스의 발현
선 원근법을 개발한 알베르티와 구현한 브루넬레스코의 공을 꼽아야 합니다.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의 트로이카를 특기할 만합니다. 건축의 브루넬레스코, 조각의 도나텔로, 회화의 마사초이지요. 

르네상스의 절정
메디치가에 의해 육성된 르네상스는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만개합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0세 때 위대한 로렌초의 양자가 되어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우지요.

이야기들
이렇게 줄거리 위주로 적으니 무척 건조해 보이지만, 책은 훨씬 재미있습니다. 르네상스 인간들의 좌절과 반목, 고뇌의 스토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두번 물먹은 브루넬레스코부터 볼까요. 그는 성 요한 세례당의 문짝 컨테스트에서 기베르티에게 진 후 청동 조각을 접습니다.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서 건축의 거장이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반면, 승자인 기베르티는 그 후로 평생 두개의 문짝을 만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첫째 문은 20년, 둘째 문은 27년. 과연 누가 승자일까요.

브루넬레스코의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메디치 가문 저택 설계의 수주 경쟁에서는 미켈로초에게 지지요. '눈에 띄지 말고 살자'는 메디치의 가풍에 따라 검소한 미켈로초가 화려한 브루넬레스코를 이깁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코의 흔적은 두오모 돔부터해서 피렌체 전역에 퍼져 있으니 큰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마이너로 분류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는 어떤가요. 재능상, 둘 다 마이너는 절대 아니지만, 피렌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천재들입니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재능에 비해 인정을 못 받습니다. 아직도 수수께끼이지만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인 레오나르도가 플라톤주의의 메디치 가문과 안 맞았을 것을 추정합니다. 메디치 가문에 발탁되기 위해 무던 애를 쓰던 레오나르도는 결국 메디치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포르차 가문에 취직합니다. 그것도 '한 재능있는 음악가가 있습니다'라는 추천장을 들고 말이지요.

그외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간의 경쟁, 친구인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코간 조각 대결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일화 소개는 이쯤 그치겠습니다.

이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메디치가 주최한 피렌체 공의회의 의미를 알게되었다는 점입니다. 동방의 문물이 피렌체로 밀려들어와 융합하며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둘째, 르네상스는 단순히 신학과 인문학의 대결이 아니란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와 신 플라톤 주의의 충돌에서 생겨난 사조란 주장이 수긍가며 인상 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대정신(zeitgeist)을 떠올렸습니다. 한 시대 첨단을 걷는 도시에 산다는 것이 갖는 축복같은 의미를 새삼 새겼구요. 무한히 천재를 빨아들여 다시 천재를 키워내는 지식의 용광로 피렌체. 그 찬란하고 치열했던 시대정신이 아릿하게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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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 여행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가셨었지요. 기억이 납니다. ^^
      메일 보내 드릴게요.
  2. 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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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여러번 다뤘지만, 피렌체는 단언하기 어렵게 깊은 의미들이 있습니다. 


교황과 대립할 정도의 시민의식이 높았던 중세 도시국가의 저력, 메디치가의 대출 없이는 전쟁도 못할 정도의 경제적 파워, 중앙집권 국가와 달리 도시국가 끼리 이합집산 하는 고도의 정치성, 이에 기반한 인문주의적 전통과 예술. 이게 아마 피렌체의 매력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렌체의 문인들, 메디치의 역사적 역할 등 의미중심으로 피렌체를 이해하는 것은 피렌체의 속사정을 읽는 첩경입니다. 그러나 막상 도시에 가보면 스토리가 아니라 외관 중심으로 마주치게 됩니다. 스토리에 대한 실마리를 식별하기 어렵지요. 낯선 도시의 백면 서생 꼴 나기 십상입니다.

이해욱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의미와 형태간의 간극을 메우기에 좋습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건축가가 도시 곳곳을 누비며 미적 형태와 공간적 의미를 잡아내며 최소한의 역사와 엮어 놓습니다.

맥락 없이 이책을 읽는다면 단순한 그림집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피렌체에 대해 역사와 지리관점에서 사전 지식이 있다면 꽤 좋은 길잡이입니다.

가기 전에 미리 도시를 선연히 상상할 수 있고, 다녀와서 그 느낌을 되새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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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r Hibbert

(Title) The House of medici its rise and fall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입니다. 그 피렌체를 이야기하면서 메디치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이번 여행의 사전 준비로 메디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medicine과도 어원이 같으니 약종상의 집안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메디치(Medici) 집안은, 피렌체는 물론이고 중세 이탈리아 역사를 설명함에 있어 빼놓기 어려운 명문 중 명문입니다.

은행업과 무역업으로 거부를 형성했고, 피렌체 공화국의 사실상 독재가문으로서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더러, 강력한 예술과 인문에 대한 후원으로 이름 그대로 꽃의 도시 피렌체에 문화를 꽃피운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산업-정치-종교-예술이 모두 복합된 독특한 메디치의 특성은, 가문의 기틀을 잡은 지오반니에서 비롯됩니다. 늘 검소하고 사회에 기부하는 전통을 확립한 지오반니의 덕에 피렌체 소시민(popolo minuto)과의 정신적 연대를 유지한 메디치 가문은, 위기 때마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지오반니의 정치적 식견이 대단합니다.

또한 지오반니때부터 교황과 결탁하여 독점적 이익을 향유해온 메디치는 결국 가문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 위대한 로렌조의 둘째 아들과 사촌형제를 통해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라는 두 자리의 교황까지 배출하게 됩니다. 정말 큰 장사꾼이지요.

또한 국부라는 칭호를 받은 코시모는, 종전의 베네치아 동맹을 깨고 스포르차에 대한 지원을 통한 밀라노와의 화평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를 바꾸고 평화를 통한 피렌체의 근본적 성장 기반을 마련합니다. 

예술에 대한 후원은 어떤가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메디치 가의 발굴과 육성을 거친 천재들입니다. 그 외에도 도나텔로, 라파엘로 등등 수도 없습니다.

결국 유럽의 풍성한 문화도 프랑스, 독일의 피렌체 침략 이후에 르네상스 바람이 전파된 까닭이니 메디치와 피렌체는 유럽 전체의 발달에도 크나큰 일조를 했지요.

경영하는 제 입장에선, 그냥 대단했던 가문이라는 측면보다 사업을 일궈가고 문화를 숭앙하는 메디치의 독특한 가풍이 흥미롭습니다. 모든게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중간 단계를 고르는 안목과 솜씨는 확실히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위풍당당 메디치는 결국 지오반니의 가풍에서 멀어진 피에로 때부터 서서히 몰락을 합니다. 교만하고 시민의 정서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결국에는 탐욕스럽고 용기없는 그냥 졸부 모습의 후손과 함께 대가 끊기지요.

차라리 당당한 마지막 후손녀 안나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돋보입니다. 유언으로 못박아, 수많은 예술품을 다 내어놓는 대신 피렌체 시 밖으로 한발자욱도 못나가게 해 놓은 그 이유로 아직도 피렌체는 세계 미술품의 20%가 있다는 문화의 고도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피렌체를 가지 않더라도, 찬란했던 한 때의 찬란했던 사람들, 그 역동적인 모습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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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흔히 접하면서도 또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뮤지컬과 비슷하기도 하고, 클래식과 유사한 느낌도 들면서 티켓은 한도끝도 없이 비싼 공연. 저는 유명한 몇 개 아리아로 오페라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개 유사한 느낌일 것입니다.

박종호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적절한 길잡이입니다. 흔히 나오는 책들처럼, 이미 오페라를 안다고 가정하고 좋은 오페라에 대한 소개를 하는게 아니라, 오페라 자체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대사가 없는 대신 레티치보로 이뤄지는 의미전달이 아리아와 버무려져야 제대로된 오페라일 뿐 아니라 뮤지컬과도 명확한 구분이 된다는 점이랄지, 원래의 목표가 그리스 비극을 르네상스 시대에 맞춰 재현해보고자 하는 지식인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예술장르란 사실은 가볍지만 묵직한 배움이었습니다.

재미난건, 이런 오페라가 문인을 우대했던 메디치가에 드나들던 시인, 작곡가, 무대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종합예술이란 점이었습니다. 로마시대의 메세나가 예술을 후원해서 융성시켰듯, 르네상스 시대 명문가는 그렇게 인류에게 기여를 했네요.

책은 오페라를 모르는 주인공에게 작자를 닮은 오페라 애호가 아저씨가 대화형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 쉽게 읽힙니다. 자칫하면 진부하고 유치하기 쉬운 형식인데, 대화의 포인트와 스토리 라인이 부드럽게 얽혀 있어 경쾌하게 읽기 좋습니다.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이날은 특별한 의상을 깨끗이 다려입고 열주를 통과해 음악의 세계로 빠져드는 꿈의 공연. 오페라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어 좋고,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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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Biz/Review 2007.08.25 11:27
전 도가(道家)와 마키아벨리즘(marchiavellism)을 동전의 양면으로 봅니다. 본질은 사람의 도리와 왕도, 그 원리와 기법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 포지션은 많이 다릅니다. 도가가 선으로 덧씌워진 당의정이라면, 마키아벨리즘은 악으로 곧잘 치환되는 알코올이니까요. 중요한 점은 결국 군주의 위치에 어떻게 다가가는가, 획득한 왕권을 어떻게 유지하는가의 문제이지요. 특히 이러한 부분은 일반적인 수요가 있는 학문이 아니므로 개인이 체계화할 유인이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집대성을 했습니다. 왜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Niccolò Machiavelli

(원제) Il Principe (The Prince)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중세 피렌체(Fiorenza) 공화국의 서기관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기에 모국 피렌체를 위하여 외국을 전전하며 외교활동을 벌입니다. 루이 12세(Louis XII)의 프랑스 궁정, 교황 알렉산데르 6세(Pope Alexander VI)의 아들이자 발렌티노 공작인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그리고 계략으로 체사르 보르자를 파멸시킨 교황 율리우스 2세(Pope Julius II)와 메디치(Medici) 가문의 몰락과 부활 등 격변의 현장을 지키며 경험과 통찰을 기르게 되었지요.

말년에 마키아벨리는 외국에서 절치부심하던 메디치 가문이 복귀한 후 재야로 쫓겨납니다. 관직에 임용을 바라며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에게 바로 이 책 '군주론'을 지어 바칩니다. 구술이나 추천장에 의한 채용과정에 획기적인 전환을 도입했다고나 할까요.

결과는 흥미롭게 또는 김빠지게 맺어졌습니다. 로렌초가 군주론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마키아벨리는 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무려 7년이 지난 1520년에서야 비정규직을 얻습니다. 메디치 가문은 고작 그의 '문장력'을 인정해 피렌체 역사 저술을 맡겼다지요.

전해지는 이름에 비해서는 그리 재미없는 책, 군주론. 제가 보는 관점은 이렇습니다.
첫째, 문헌적으로는 매우 가치있는 정치학 논문이란 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동시대로는 프랑스와 스페인 및 그 사이에 끼인 이탈리아 소국들과 교황청의 권력관계를 체험하고, 통시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史實에 정통하였습니다. 종횡의 사례를 논리 기반위에서 범주화하여 일반론을 끌어내는 학문적 접근법을 사용했습니다. 精緻하지 않을지언정, 엄밀한 형식을 유지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로렌초라면 마키아벨리 씨를 등용했을지 확신이 없습니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라, 18년을 망명한 메디치 입장에서 테크닉과 학식이 뛰어난 신하에 대한 열망은 그리 크지 않으리란 생각입니다. 오히려 그 간의 세월로 미뤄 짐작할, 충성도가 관건이겠지요. 특히 마씨처럼 충직하게 축출정권에 봉사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메디치 가문 자체는 군주론과 음모론, 권력학에 대해 더 이상 갈증이 없을만치 통달한 고수급이었으니 말입니다. 군대도 없이 돈과 권력 관계로 유럽을 좌지우지했던 그 메디치 가문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소위 말하는 마키아벨리즘의 어두운 측면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흔히 마키아벨리즘이 치사하고 더러운 패도정치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그렇게 간단히 매도할 일이 아닙니다. 마키아벨리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성공과 실패 사례 위에서 뽑아낸 결론이고, 복합적 고려가 안배된 논증이므로 윤리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군주는 너그러울 필요가 없다는 이면에는 낭비를 배격해서 실리측면에서 군주의 위엄을 지킬 필요성이 있습니다. 국고가 비어 백성의 증오를 사는게 군주의 가장 큰 실패이기 때문이지요. 실용성과 결과 중심의 원칙하에서 돈으로 너그러울 필요는 없겠습니다.
마찬가지로 군주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는 뜻도 새겨들어야 합니다. 상황에 맞게 유연할 필요성과 명분 사이에서 실용적인 판단을 하는게 군주의 길이 맞습니다. 학자나 유생의 논리로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군주는 나라의 존망이라는 risk를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자신의 윤리로, 교과서의 도덕으로 결론의 시시비비를 단정하지 않는게 옳은 방법입니다. 맥락을 이해하고 취사선택 하는 편이 현명하지요.

마 씨의 견해에 제 나름의 변론을 더했습니다만, 저는 '군주론'의 결론을 머릿속에 담지는 않습니다. 방법론은 훌륭하나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연역된 결론이 아니라, 몇개의 사례에서 귀납된 결론인지라 함의가 빈약한 것이 첫째 이유입니다.
둘째는, 신하의 도리를 다룬 유가 사상이나, 왕도를 말한 도가 사상, 시스템의 법가 사상 등 의존할 텍스트가
동양고전에 훨씬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그토록 힘들여 논증하고 설득하는 군주와 백성의 역학관계를 우리는 '민심'이란 한 단어로 어릴 때부터 배워왔단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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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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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렇게 리뷰해주시니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교과서에서만 본 마씨의 군주론 ^^
    • 군주론에 스테레오타입을 갖고 있지 않다면, 굳이 보실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요. ^^
  2. 군에 있을때 재미있게 읽었었던 기억이 나네요.
    • 군에서 보면 색다르게 읽히겠네요. 특히 자국군 vs 용병과 권력에 대한 내용 등 말입니다.
  3. 전 마씨의 책은 안읽었고 마씨를 주인공 삼은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봤습니다. 그 책을 보고 나니 군주론의 저자에 대해 막연하게 가졌던 냉혈한의 이미지가 싹 사라지더군요. 대신 그저그런 공무원에다 정치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으며 희곡도 쓰고 가끔 바람도 피웠다는, 평범한 아저씨의 이미지만 남아서 '군주론'을 읽어보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달아났다지요. 차라리 냉혈한이었더라면 더 멋졌을 텐데 말이죠. ㅎㅎㅎ
    • 그렇군요. '학자적 소양과 바람기를 겸비한 정치 지향의 아저씨 공무원'이었군요. ^^
      마씨의 직설적이고 윤리중립적 논증에 서구가 놀랐던 파장이, 군주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4.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것 같아서 마씨는 좋아하지 않지만.
    목적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찾을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 있는것 같아요.. 가끔 그 수단이 정말 마음에 안들지만 말입니다.. ㅠ.ㅠ
    • 꼭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을 달성하라는' 교리는 아닌듯 합니다. 부차적 가치에 에둘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군주가 실패한다는 개념입니다.
      전반적으로 개인적 호오는 있을지언정 윤리적 시시비비를 논할 텍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
  5. 저는 오히려 후임병들을 다스리는 법에서 많이 공감을 했었어요.

    후임병을 생각해주고 챙겨줄 필요는 없지만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척 할 필요는 있다라는 생각을 했죠 ㅋㅎㅎ. 하지만 모두 좋은 녀석들이라서 그런 생각을 적용해볼 후임병은 정작 없었다는 사실 ^^a
  6. 최근 고전에 대한 새로운 느낌으로 "삼국지"를 읽고 있는데... inuit님의 리뷰를 읽으면 자꾸만 책을 사놓고 싶어진단 말이죠. 으흠~

    마키아벨리가 기술한 군주의 리더심이 무엇인지를 한번 들여다 보고 싶어집니다.
  7. 군주의 리스크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것이네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즈음에 이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군주는 아니지만 국가의 수장에 오르실 분들은 그 리스크를 짊어질 마음가짐이, 준비가 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 군주 근처에 있는 사람도 비슷한 리스크를 기본으로 깔고 살지요.
      개인적 리스크를 거기에 얹어서. ^^
  8. 크크크 마씨.. 요즘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욤 ㅇ-ㅇ?
  9. <군주론>은 지금도 가끔 심심하면 보는 책입니다. ( ''); <로마사논고>도 형식은 유사하지만 좀 더 심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본심에 더 가까운 것 같고, 둘 사이의 차이도 생각해 보면 좋은 것 같고요.
    • 네. 군주론은 좀 더 망라했기도 하고, 중세의 좀더 가다듬어진 학문적 프레임웍을 이용했기 때문이기도 한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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