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의 베드로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때문에 꼭 가고 싶었던 곳입니다.

대리석에 붓질을 했다는 평을 듣는 부드럽고 섬세한 조각이 특징입니다. 무엇보다, 미켈란젤로 자신이 모세를 조각해 놓고, '왜 말을 안하는가?'라고 물었다니 할 말 다 했죠. 안 볼 수 없습니다.

쇠사슬 성당이 관광객 주요 루트에 있지 않은 탓인지, 파업 탓인지, 꽤나 한산한 교회에서 모세 상을 한참 바라 봤습니다. 머리에 뿔이 독특하다 했더니 아들이 설명을 해줍니다.
"유대 말로 후광이란 말이 뿔과 유사한데 와전이 되었대요. 그래서 미술품에 종종 뿔을 넣은 경우가 많대요."
"그렇군."

성당의 가운데에는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이 있습니다. 그래서 쇠사슬의 베드로 성당으로 불리웁니다. 이런 유니크 아이템을 보면 신화적 종교에서 역사적 종교로 관점을 이동해서 보게 됩니다. 예전 베드로와 바오로가 활동했던 이 땅 로마란 사실을 새삼 확인합니다.

다행히 예상대로 테르미니 이외의 지역에선 택시 잡기가 수월합니다. 한 십 분 기다린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핀초 언덕으로 갑니다.

핀초는 포폴로 광장 위의 언덕인데 조망이 좋습니다. 보르게세 공원의 일부이기도 해서 숲이 시원할듯 했습니다.

역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언덕위 공원에서 젤라토와 함께 휴식도 취하고 더위를 식힙니다. 

이후에 포폴로 광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여기는 쌍둥이 교회로 유명한데 정확히 쌍둥이는 아닙니다. 포폴로 광장은 우리말로 인민 광장이지요. 로마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하고 여기부터 베네치아 광장까지 일자 도로가 나 있습니다.

이후로는 아우구스티노의 영묘에 갔는데 공사중이라 멀리서만 바라 봤습니다.

스페인 광장은 파업을 하든, 더위가 작렬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젊음의 열기로 끓고 있었습니다.

퀴리날레 언덕에는 독특한 분수가 있습니다. 사거리 모퉁이마다 놓은 '네개의 분수'인데 예술품을 실생활에 던져 놓는 로마의 미적 감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피렌체에서는 이렇게 미술품을 대중이 항상 감상 가능하도록 광장이나 거리에 놓는 것 자체가 사회에 대한 기여로 여겨졌었지요.

마지막은 테르미니 근처의 '천사와 순교자들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e dei martiri)'에 갔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욕장'이 있던 자리에 남은 벽을 그대로 이용해 만든 교회입니다. 이런 천재성이 미켈란젤로에 의해 발휘되었다 해도 이제 더 이상 놀랄일은 아니지요.

원래의 곡선을 그대로 살린 솜씨도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내부의 아름다움은 상상 이상입니다. 원래 욕장의 옹벽이 높았던 지라 내부공간의 부피가 엄청나고, 높이가 까마득한 지경입니다. 


아침에 황당한 파업 때문에 다소 곤란도 겪었지만,  크게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걸으면서 로마의 마지막 여정을 즐겼습니다. 의도 이상으로 걸었지만, 스스로 걸을 수 있어 마음 가는대로 볼 수 있는 사실을 새삼스레 감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욕심을 낼 수도 있었지만, 로마의 마지막 밤은 일찍 쉬면서 가벼운 비노와 함께 자축을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어로 말하기  (14) 2012.03.29
[Barcelona 2012] 까다께스 가는 길  (2) 2012.03.18
[Roma 2011] 19. Hard walking  (2) 2011.08.31
[Roma 2011] 18. Lost transportation  (2) 2011.08.30
[Roma 2011] 17. Lost in Rome  (4) 2011.08.29
[Roma 2011] 16. The castle of holy angel  (0) 2011.08.23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1. 오..조각이 정말 돌을 깎은게 아니고 붓으로 그린 것 같이 부드럽네요.
    남편은 다음 유럽여행은 스페인으로 하자고 하더군요. ㅋㅋ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기대됩니다.
    • 남편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네요. 데이트를 오래하셨는데. ^^
      스페인 참 좋아요. 나중에 꼭 가족과 가보세요. ^^
secret
세계 신도를 감싸안듯 웅혼한 광장에서 잠시 머물다, 산탄젤로(Sant'Angelo)를 향합니다. 

제가 로마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거룩한 천사의 성이란 이름에 걸맞는 대천사 미카엘 상이 꼭대기에 올려져 있습니다.

590년 대 역병이 돌 때 대천사 미카엘이 칼을 집어 넣는 모습을 교황이 꿈에 본 후 정말 역병이 멈췄습니다. 그 이후 거룩한 천사가 도시를 구했다는 감사로 지은 조각상입니다. 물론 건물 자체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로 지어졌고, 그 튼튼함으로 인해 방어 건물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예술적, 문화적 건물이 빼곡한 로마에서 유일하게 본 성채, 카스텔로이지요. 중세 이후에는 감옥으로 사용 되기도 합니다. 

우아하지만 단단한 건물, 세련되지만 절제된 장식이 어울려 귀족 장군 같은 독특한 장관입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계획은 의미 없습니다. 일정을 멈추고, 우리 가족은 산탄젤로 공원에서 한참을 머물며 지금 이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테베레 강이 있어 바람이 정말 시원합니다. 거리는 아지랭이가 보일듯 뜨거운데 여긴 별세계입니다. 게다가 앞에는 산탄젤로. 서로 무릎 베고 눈도 붙이고, 젤라토도 먹고 한참을 쉬었습니다. 아니 적극적인 붙박이 관광을 했습니다. 이게 자유여행의 진미이기도 하지요. 안 내키면 안가고, 마음에 들면 실컷 머물다 가고. 

산탄젤로에서 철수하고 테베레를 건너 다시 일곱 언덕쪽으로 가려던 차에, 아내가 제의를 합니다. 혹시 모르니 바티칸 미술관에 가보자고 합니다. 

그 때가 네시경. 기적같은 광경입니다. 미술관에 줄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관광객이 오전에 주로 보고 빠졌나봅니다. 그냥 걸어 들어가 바티칸 미술관을 어이없도록 쉽게 감상합니다.

미술관은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시스티나 예배당을 본 순간 그 앞의 모든 기억은 지워져 버렸습니다. 천재 미켈란젤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 곳, 천장에는 천지창조가, 앞면에는 최후의 심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곳. 아무리 봐도 계속 새로운 것이 보이는 뺴곡하고 세세한 천장화와 벽화들. 바티칸 미술관의 실체는 시스티나 예배당이었습니다.


시스티나는 콘클라베(conclave)라는 교황선출의 장소로 유명하지요.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이곳에 들어와 만장일치로 선출할 때까지 문을 잠궈버리는 독특한 시스템. 메디치의 아들들이 그렇게 교황으로 뽑혔고, 최근의 베네딕토 16세도 그렇게 교황이 되었습니다. 전 딱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건 불후의 명작이 말 그대로 도배되어 있는 곳이었다니.
 
로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만하면 다 봤다고 단언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우여곡절 끝에 로마 패스를 얻고 나니, 무슨 운전면허증이라도 딴 듯 기쁘더군요. 어쨌든, 로마에 3일 이상 있을 사람은 로마패스를 꼭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모든 로마의 교통시설을 3일간 무제한 이용 가능한데다, 바티칸을 제외한 두 곳의 관광지에 무료 입장이 가능합니다. 세번째 관광지부터는 할인요금이 적용되지요. 그래서 3일간 집중 관광하는 경우, 비용과 시간 면에서 매우 유용합니다. 예컨대, 콜로세움 같은 곳은 로마패스 줄이 따로 있어서 긴줄 안서고 바로 들어가 두시간 정도는 벌어줬으니 티켓 값 이상을 톡톡히 했지요. 아침에 로마 패스 산다고 허비한 시간을 바로 토해냈습니다.

로마 패스를 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버스타기였습니다. 베네치아 광장에 가고 싶었습니다. 바티칸까지 가는 64번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리면 됩니다.

베네치아 광장 자체보다 그 뒤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목적이었습니다. 중세 이후로 도시 국가 형태로 쪼개져 있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입니다. 사보이 공국의 영주였지만, 지역명인 이탈리아를 국호로 했을 정도로 통일주의자 였지요. 밀라노에도 두오모 근처에 비토리아 엠마누엘레를 기념하는 파사주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곳은 유구한 역사의 로마에서도 독특하게 근대의 로마가 근거하는 곳입니다. 포로로마노 근처의 고대 로마와, 바티칸 중심의 중세 로마와는 또 다르지요. 특히 캄피돌리오 북쪽은 제국시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베네치아 광장에서 근대의 점을 찍었지요. 바로 이 기념관입니다.

비토리오 기념관은 그 눈에 띄는 흰색과 독특한 모양으로 인해 많은 경멸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타이프라이터 또는 웨딩 케익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펠탑이 그랬듯,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가 그랬듯, 지금은 조화로운 로마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다음 들른 곳은 비토리오 기념관 바로 뒷편의 캄피톨리오 광장입니다.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넓직한 계단, 그 위에 날렵히 내려 앉은 매우 세련된 광장이 특징이지요. 로마에 가면 꼭 가보고 싶던 곳 중 하나입니다. 특히 뒤로 넓도록 사다리꼴로 광장을 만든 미켈란젤로의 센스가 돋보이는 곳이지요.

로마의 일곱언덕 중 제일 작지만 발원지로서의 강력함을 가진 언덕입니다. 수도라는 capital의 어원이며, 현재도 비토리오 기념관이 기대고 있습니다. 민중 혁명가 크라수스가 추락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성당.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하늘 제단의 성모 마리아 성당(Santa Maria d'Aracoeli)으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이름마저 거룩하고 낭만적인 성당은 내부가 매우 아름답습니다.


십자가 형태의 서방 교회가 아닌 정방형의 바실리카 식입니다. 양식이 중요한게 아니라 로마의 주요한 언덕에 있는 교회치고 소박한 외양, 정성이 하늘에 닿을 듯한 계단의 간구가 강렬한 심상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교회 안에 들어가면 마음이 치유되는듯한 따뜻한 정서가 좋았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4개가 달렸습니다.
  1. 월드컵 경기 갈꺼라고 겸사겸사 유럽에 갔었던 아는 동생이 거기나 여기나 더운건 마찬가지인데 유럽쪽은 건조해서 살것같더라고 말하더라구요. 정말 그렇던가요?^^
secret

조토의 종탑
은, 경치가 좋을 뿐 아니라 높아서 시원했습니다. 오래 있으니 쌀쌀하다 느낄 정도로 바람이 셌지요. 충분히 보고, 충분히 쉰 후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피렌체 공화국의 심장이자 상징인 광장입니다. 길드의 대표들이 시뇨리아라는 의회를 구성했고, 의장의 선출과 중대한 발표가 다 이곳에서 이뤄졌습니다. 침략군도 이곳으로 진주했고, 옥에 갇혔던 메디치도 이 공간을 통해 추방당하고 도주했지요. 메디치 가를 사지로 몰고, 신비주의로 피렌체를 물들였던 요승 사보나롤라도 여기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비드. 그 유명한 다비드도 이 광장에서 시민들과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흠집하나 없이 균질하게 하얀 거대한 돌덩이를 얻은 피렌체 정부에서 이 멋진 대리석을 어찌 쓸지 몰라 오랜 세월을 흘렸던건, 오로지 천재 미켈란젤로를 기다렸음일 것입니다. 정질, 끌질 한번 잘못하면 조각도 망치고 도시의 보물인 대리석 돌덩이도 망치는 긴장된 작업. 미켈란젤로는 떡주무르듯 훈남 하나를 뽑아내 버렸지요.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철저히 감상자의 시점을 고려했습니다. 당시 피렌체에서 발원한 원근법을 조각에 적용했습니다. 다비드를 멀리서 보면 머리 크고 다리 짧은 어색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밑에서 보면 잘 생기고 다리 길어 미끈한 청년이 되지요.


이런 인류의 보물 다비드는 백여년전 성깔 나쁜 사람의 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고, 지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의 시뇨리아 광장에는 모조품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분신 다비드는 그의 창조자 이름을 딴 미켈란젤로 광장에 청동색을 띄고 서 있습니다.

중세의 갑갑한 문화속에서 시민정신을 함양한 피렌체 시민들. 그들의 터전인 시뇨리아 광장은 아직도 많은 이들을 넉넉히 품는 포용력이 돋보입니다. 진정한 공화제를 이끌었고 그 시뇨리아 정신으로 르네상스의 새로운 문화를 꽃 피운 피렌체, 아이러니컬 하게도 르네상스의 최대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의 후손대에 독재정으로 넘어가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로마의 공화정신을 중세에 다시 살린 피렌체 공화국의 그 찬란한 시민 정신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

김상근

(부제) 피렌체를 알면 인문학이 보인다

이탈리아 여행폭풍공부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일정 상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는 무척 기뻤습니다. 제가 딱 원했던 깊이의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피렌체의 황금기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는 책입니다. 항상, 인물 중심의 서술은 전체 스토리를 생략해 간다는 점, 영웅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점 등의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큰 그림을 잡는데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 책을 읽으면 좀 낯설 수 있었겠지만, 이미 피렌체의 지리, 역사, 풍경을 다 숙지한 상태에서 읽으니 참 즐겁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건물들, 인물들이 어떤 관계망속에서 얽혀 있는지 알게 되니 말입니다. 

르네상스의 출현
거칠게 생략해서 르네상스적 깨달음은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잉태되었습니다. 미의 찬미, 아름다움에의 추구라는 인간적 주제를 예술의 중심으로 당겨온 공로지요. 이는 계관시인 페트라르카에 의해 확산됩니다. 회화라면 조토의 고뇌하는 천사에서 맹아를 보이게 되지요.

르네상스의 발현
선 원근법을 개발한 알베르티와 구현한 브루넬레스코의 공을 꼽아야 합니다.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피렌체의 트로이카를 특기할 만합니다. 건축의 브루넬레스코, 조각의 도나텔로, 회화의 마사초이지요. 

르네상스의 절정
메디치가에 의해 육성된 르네상스는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만개합니다. 특히 미켈란젤로는 10세 때 위대한 로렌초의 양자가 되어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우지요.

이야기들
이렇게 줄거리 위주로 적으니 무척 건조해 보이지만, 책은 훨씬 재미있습니다. 르네상스 인간들의 좌절과 반목, 고뇌의 스토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두번 물먹은 브루넬레스코부터 볼까요. 그는 성 요한 세례당의 문짝 컨테스트에서 기베르티에게 진 후 청동 조각을 접습니다.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가서 건축의 거장이 되어 다시 돌아옵니다. 반면, 승자인 기베르티는 그 후로 평생 두개의 문짝을 만들고 생을 마감합니다. 첫째 문은 20년, 둘째 문은 27년. 과연 누가 승자일까요.

브루넬레스코의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메디치 가문 저택 설계의 수주 경쟁에서는 미켈로초에게 지지요. '눈에 띄지 말고 살자'는 메디치의 가풍에 따라 검소한 미켈로초가 화려한 브루넬레스코를 이깁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코의 흔적은 두오모 돔부터해서 피렌체 전역에 퍼져 있으니 큰 일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마이너로 분류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라파엘로는 어떤가요. 재능상, 둘 다 마이너는 절대 아니지만, 피렌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던 천재들입니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재능에 비해 인정을 못 받습니다. 아직도 수수께끼이지만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인 레오나르도가 플라톤주의의 메디치 가문과 안 맞았을 것을 추정합니다. 메디치 가문에 발탁되기 위해 무던 애를 쓰던 레오나르도는 결국 메디치의 추천으로 밀라노 스포르차 가문에 취직합니다. 그것도 '한 재능있는 음악가가 있습니다'라는 추천장을 들고 말이지요.

그외에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간의 경쟁, 친구인 도나텔로와 브루넬레스코간 조각 대결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지만 일화 소개는 이쯤 그치겠습니다.

이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두가지입니다.
첫째, 메디치가 주최한 피렌체 공의회의 의미를 알게되었다는 점입니다. 동방의 문물이 피렌체로 밀려들어와 융합하며 르네상스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둘째, 르네상스는 단순히 신학과 인문학의 대결이 아니란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와 신 플라톤 주의의 충돌에서 생겨난 사조란 주장이 수긍가며 인상 깊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시대정신(zeitgeist)을 떠올렸습니다. 한 시대 첨단을 걷는 도시에 산다는 것이 갖는 축복같은 의미를 새삼 새겼구요. 무한히 천재를 빨아들여 다시 천재를 키워내는 지식의 용광로 피렌체. 그 찬란하고 치열했던 시대정신이 아릿하게 부럽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ulture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심장을 쏴라  (0) 2011.08.19
7년의 밤  (2) 2011.08.03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4) 2011.07.25
일곱언덕으로 떠나는 로마 이야기  (0) 2011.07.24
황홀한 여행  (2) 2011.07.23
피렌체, 욕망의 성벽에 기대서서  (0) 2011.07.22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4개가 달렸습니다.
  1. 비밀댓글입니다
    • 여행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가셨었지요. 기억이 납니다. ^^
      메일 보내 드릴게요.
  2. 오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secret

Christopher Hibbert

(Title) The House of medici its rise and fall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입니다. 그 피렌체를 이야기하면서 메디치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이번 여행의 사전 준비로 메디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medicine과도 어원이 같으니 약종상의 집안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메디치(Medici) 집안은, 피렌체는 물론이고 중세 이탈리아 역사를 설명함에 있어 빼놓기 어려운 명문 중 명문입니다.

은행업과 무역업으로 거부를 형성했고, 피렌체 공화국의 사실상 독재가문으로서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을 뿐더러, 강력한 예술과 인문에 대한 후원으로 이름 그대로 꽃의 도시 피렌체에 문화를 꽃피운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산업-정치-종교-예술이 모두 복합된 독특한 메디치의 특성은, 가문의 기틀을 잡은 지오반니에서 비롯됩니다. 늘 검소하고 사회에 기부하는 전통을 확립한 지오반니의 덕에 피렌체 소시민(popolo minuto)과의 정신적 연대를 유지한 메디치 가문은, 위기 때마다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으니 지오반니의 정치적 식견이 대단합니다.

또한 지오반니때부터 교황과 결탁하여 독점적 이익을 향유해온 메디치는 결국 가문이 몰락할 위기에 처했을 때, 위대한 로렌조의 둘째 아들과 사촌형제를 통해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라는 두 자리의 교황까지 배출하게 됩니다. 정말 큰 장사꾼이지요.

또한 국부라는 칭호를 받은 코시모는, 종전의 베네치아 동맹을 깨고 스포르차에 대한 지원을 통한 밀라노와의 화평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정세를 바꾸고 평화를 통한 피렌체의 근본적 성장 기반을 마련합니다. 

예술에 대한 후원은 어떤가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메디치 가의 발굴과 육성을 거친 천재들입니다. 그 외에도 도나텔로, 라파엘로 등등 수도 없습니다.

결국 유럽의 풍성한 문화도 프랑스, 독일의 피렌체 침략 이후에 르네상스 바람이 전파된 까닭이니 메디치와 피렌체는 유럽 전체의 발달에도 크나큰 일조를 했지요.

경영하는 제 입장에선, 그냥 대단했던 가문이라는 측면보다 사업을 일궈가고 문화를 숭앙하는 메디치의 독특한 가풍이 흥미롭습니다. 모든게 경제적 동기가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중간 단계를 고르는 안목과 솜씨는 확실히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위풍당당 메디치는 결국 지오반니의 가풍에서 멀어진 피에로 때부터 서서히 몰락을 합니다. 교만하고 시민의 정서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결국에는 탐욕스럽고 용기없는 그냥 졸부 모습의 후손과 함께 대가 끊기지요.

차라리 당당한 마지막 후손녀 안나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돋보입니다. 유언으로 못박아, 수많은 예술품을 다 내어놓는 대신 피렌체 시 밖으로 한발자욱도 못나가게 해 놓은 그 이유로 아직도 피렌체는 세계 미술품의 20%가 있다는 문화의 고도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피렌체를 가지 않더라도, 찬란했던 한 때의 찬란했던 사람들, 그 역동적인 모습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ulture >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홀한 여행  (2) 2011.07.23
피렌체, 욕망의 성벽에 기대서서  (0) 2011.07.22
메디치 스토리  (0) 2011.07.21
아주 미묘한 유혹  (0) 2011.07.20
Viva, 베네치아  (4) 2011.07.19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0) 2011.07.18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