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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일주문, 사천왕문, 해탈문을 지나는 전형적인 구조의 부석사.

그 호젓한 길을 걷는 자체가 부석사 경험이다.


그런데, 가 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 사진이 다가 아니다.

어쩌면, 부석사 마니아들이 뜨내기를 못오게 하려 음모를 꾸미지 않을까 엉뚱한 상상을 했다. 배흘림 기둥 하나로 어트랙션을 슬몃 돌려 설정하는 낚시 말이다.
시내 돌아갈 버스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려 택시 번호 하나 따 두고 길을 걸었다.

참 좋다.
사뭇 긴 외길을 걸으며 공간 뿐 아니라 시간축도 함께 이동하는 느낌이다.

부석사의 또 다른 맛은 걷다 문득 돌아보는 풍경이라 했다.

정말 그랬다.
높이마다 내려 뵈는 맛이 다 다르다.


그리고 안양문.

안양문 이전과 안양문 이후의 부석사는 그 경험이 다르다.
마지막 급경사를 허리 숙여 지나고 나면 구름위에 올라선 느낌이 난다.
선계다.


또 하나 재미난 장치.
화엄종 계열은 부처가 돌아 앉아 있다.
서방에 정토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찰은 대웅전 앞문에서 마주보인다.
그래서 왼쪽 오른쪽 어디로 들어가도 무관하게 대칭이다.

하지만 무량수전은 다르다. 
반드시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야 부처님이 마주 보인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 이를 어찌 신호할까?

바로 석탑의 위치다.

안양문을 통과해 마당에 오르자마자 석탑이 보인다.
그 석탑은 왼편으로 치우쳐 있다.
자연스럽게 석탑을 지나치면 발걸음은 무량수전 오른편을 향하게 되어 있다.
이 얼마나 은근한 지시인가.
요즘이라면 쉽게 썼을 오른쪽 화살표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가리키는 위압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동선을 비튼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

하염없이 바라봐도 물리지가 않는다.
사진으로 골백번도 더 봤는데, 실재와 마주한 느낌은 다르다.
절집 특유의 총체적 경험이 뒷받침되는게 하나고,
입체와 부피감이 둘째다.


이 쯤되면 배흘림은 큰 키워드도 아니다.
건축쟁이나 호사가들에게 관심이지, 부석사 경내는 고즈넉하고 소박하게 아름답다.
부석사 삼층석탑 높이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백미다.
저 작은 공간에, 나무로 지은 구조물과 돌을 좀 정렬했을 뿐인데,
이렇게 경이로운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런게 건축이 세상에 주는 아름다운 가치겠지.

왜 사람들이 부석사 한번 가보면 두고두고 또 찾는지,
김진애 선생은 '부석사 가는길이 항상 설렌다'고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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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게 속았다.


요즘 제목에 속은 책이 몇 권 있었다. 이 책도 제목에 낚인 셈이다. 왜냐면 딸과 부석사 가기 며칠전 급히 구매했기 때문이다. 저술가 서현의 브랜드 파워를 일단 믿었고, 뭐가 됐든간에 부석사에 대한 전문적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책은 부석사 매뉴얼이 아니다. 그보다 범위가 넓고, 깊다. 우리 전통건축 생김새의 필연적 비밀을 파헤치는 과학적 프레임웍을 제시한다.

서현

바꿔 말하면 내가 홀딱 반하는 류의 책이다. 내 사고의 기둥을 세우는 책.


그런면에서, 기분좋게 속았다. 딸 사주고 나서 책을 몇장 들쳐보다가, 바로 내방으로 가져왔고, 휴일 일정을 바꿔 읽고, 새벽까지 끝을 보고서야 잘 수 있었다. 오랫만이다. 책을 더 보고 싶어 잠을 물린 기억은..

자연의 모습은 아름답다. 멋을 부리려한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변화했다. 부드러워지거나 길어지고 기발한 장치를 갖고. 동물, 식물을 넘어 산과 강이 다 그렇다.

건물은 어떨까.
분명 인공의 미를 추구하지만, 환경의 도전과 자원의 제약하에서 기능과 안전을 담당하는 건축 또한 적자가 생존하는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이 책은 전통건축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한다. 배흘림 기둥, 멋지게 들린 앙곡의 단아한 선, 낭만적인 처마, 낙수 떨어지는 댓돌까지 왜 그 자리에 그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원인을 궁구한다. 이 부분이 최적화(optimization)이다. 

건물은 문화다. 종종, 진화적 선택압이 사라진 이후에도 선대의 진화적 진보를 무의미하게 답습하거나 미 자체를 추구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양식화(stylization)다. 이 둘의 구분이 중요하다. 그리고 배흘림 기둥은 그 교점에서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다, 물론 책에서 배흘림기둥은 단 한 페이지정도의 분량이고, 고대건축의 셀러브레티로서 얼굴마담일 뿐이지만.

서현의 설명은 유려하고 논리적이다. 
우산에서 시작하여 기둥의 구조, 모임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에 이르는 지붕론을 바로 관통한다. 그리고, 포작. 우리 목조건축의 위대한 발명이자 꽃이 피어나는 화려함을 지닌 그 구조의 필연적 생겨남을 담담히 서술한다.

어떤 관점에서, 서현의 논리전개는 유려하되 검증 불가능하다. 어떤 문서나 학문적 정리 없이 다만 양식에서 추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학도의 reason과 경영자의 rational을 지닌 내가 판단하기에, 믿을 가치가 있다. 이 구조를 쓰지 않은 모든 목조건물은 천년의 세월을 못 버텼다. 오직 5개의 고려건물만이 오롯이 남아 상상력의 실마리만 겨우 던져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 이 책 꼭 한번 읽어라. 절집 하나를 봐도 구석구석이 다 달리 보일 것이다.

결국 안 속았다. 
부석사 가기 전날 다 읽고 부석사에 갔고, 난 단숨에 부석사의 비밀과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지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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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을 이렇게 멋있게 쓰시다니...새삼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이런게 진정 바이럴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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