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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마 입성입니다.

테르미니 역 근처, 숙소에 여장을 풀고 제일 먼저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에 갑니다. 한 부자가 성당을 기부하려고 하던 차에 교황이 꿈을 꾸었는데, 한 여름에 눈이 내리는 곳에 지으라는 계시를 받지요. 설마 했는데 과연 흰 눈이 내린 곳이 있어 성당을 지었다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별명도 설지전(雪地殿)이에요. 로마 4대성당 중 하나입니다.


7월의 이탈리아는 일광절약시간을 운용중이라서 9시나 되어야 해가 집니다. 그러니 저녁 때도 덥지 않아 오히려 다니기 쉽습니다. 가벼운 산책삼아 나선 길이지만 내쳐 걷습니다. 매일 순례자처럼 걷다보니 꽤 피곤했지만, 마침 로마오는 기차에서 한참 잘 쉰 덕에 멀리 걸을 수 있을듯 했습니다.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가다가 뭔가 멋져보여 길을 들어선 곳이 퀴리날레 궁전 앞이군요. 사고뭉치 대통령이 사는 곳입니다. 다시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갈까 하는데, 로마 담당관인 아내가, 여기라면 트레비 분수가 가깝다고 하여, 베네치아 광장은 무시하고 바로 신나게 내려갑니다.

분수의 여왕이라는 트레비 분수. 사실 분수가 아니더군요. 엄청난 조각 모듬 세트 사이로 물이 날아들 뿐이었습니다. 그 규모와 조각의 아름다움은 왜 트레비가 그리 유명한지 스스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보려던 계획을 바꿔, 물가에 걸터 앉아 한참을 보고 또 봤습니다. 이 분수를 만든 아그리파와 고대 로마의 수로 이야기부터, 헵번의 로마의 휴일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줄도 몰랐습니다.

하긴, 한참 봤다고 생각해도 또 새로운게 보이고, 누가 또 저거봐라 하면 신기한게 다시 보이는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볼거리가 많지요.


트레비 근방에서 식사를 하고 스페인 광장까지 걸었습니다.

여행 전부터 정이 가던 스페인광장과 스페인 계단은 실제로 봐도 참 좋더군요. 특히, 공간자체를 가득 채운 젊음의 열기가 인상적입니다. 아버지 베르니니가 만들었다는 배모양 분수도 흥겨운 볼거리였지요.


마침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켜져 로마의 야경을 본격적으로 감상하려던 차에,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여행이 일상의 일탈이라면, 그 비일상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기도 할 것입니다. 피할 수도 있었지만, 하루의 마지막인지라 온 식구가 비를 흔쾌히 비를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 비를 줄줄 맞아봅니다. 더위도 식고, 비 피한다고 다들 급한 움직임 속에 오히려 스틸 사진처럼 느린 우리 가족만의 동작이 품고 있는 여유도 좋습니다. 애들도 아내도 다 재미있어 합니다. 

그렇게 로마의 첫날은 온갖 낯설음, 설레임, 노곤함 속에서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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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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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또는 저번 달 말렵, 아니면 작년 크리스마스에 서산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산 내려가는 도중에 비가 억수같이 와서 여행을 망치나 싶어 근심이 깊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격물치지님네를 포함해 세 가족을 더 초청했기에 날씨가 아주 중요했거든요. 바베큐나 아이들 놀기에 비는 최대의 적입니다.

다행히 서산 도착할 즈음 기적같이 비가 그쳤습니다. 하지만 날은 춥고 땅은 질척입니다. 가장 처음 들른 곳은 서산 마애삼존불입니다.
아.. 그 해맑고 순박하면서 장난기 가득한 저 미소란. 정말 마음속 수심이 구름 걷히듯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인간의 경계를 넘는 미소를 한참 바라보고 또 바라봤습니다. 백제 서민 미술의 힘을 보았습니다. 교과서에서 외우던 일곱 글자 '서산마애삼존불'은 직접 보지 않으면 그 신비한 느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녁 잘 먹은 이후에, 산은 눈이 감겨듭니다. 바라던 화이트 크리스마스입니다. 밖에서 눈을 한참 맞고 놀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눈은 그대로 소복히 쌓여 있고,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깊은 산 깨끗한 눈을 한껏 즐겼습니다.

해미읍성은 참 멋진 곳이더군요. 우리나라 읍성은 순천 근방의 낙안읍성과 서산 해미읍성이 있습니다. 낙안읍성은 고건물이 잘 보존되어 유명한 곳입니다. 반면 해미읍성은 최근까지 있던 곳을 다시 고쳐지어 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들린 개심사도 참 예쁜 절입니다. 가면서 그곳에 가면 더 착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改心寺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절에 도착했을 때 머리를 탁 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개심사는 開心寺였습니다. 마음을 열어제치는 절집이었지요.
서산 곳곳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지만, 서산은 관광지가 매우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어딜가도 깨끗하고 쾌적합니다. 퍽 기분좋은 여행지 서산입니다. 날이 몹시 추웠지만 삼존불의 넉넉한 웃음처럼 서산 어딜 들러도 푸근하고 넉넉하고 후박한 인심과 정서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내일, 강원도로 다시 또 길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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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과서로는 문화재가 주는 그 느낌을 잘 받을 수가 없죠. 처음으로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았을 때, 십원 짜리나 국사책에서 본 것과 다른 그 거대함이 저를 주눅들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즐거운 여행되세요 ^^
    • 맞습니다. 십원짜리의 다보탑과 실제 보는 다보탑은 천양지차죠. ^^
      (덕분에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2. 사진보니까 오랫만에 다시 가보고 싶네요. ^^
  3. Happy New Year!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구요.
    크롸상은 언제 사주실거에요?
    아이폰에서는 언제 뵐수 있나요?

    녜?
    • Yes, thank you!

      Eunice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시구요.

      크라상은.. 몽마르트르 밑의 카페가 맛있던데 거기서 보기로 해요. 사드릴게요. ^^;

      아이폰에서는 어떻게 해야 뵐 수 있나요? 그걸 먼저 갈쳐주시면.. ;;;
  4. 소복소복 쌓이는 눈이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5. 인사가 늦었습니다. 덕분에 정말 따뜻하고, 즐거운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연말에 제 기준으로는 좀 크게 탈이 나고, 12월 31일에 템플스테이 다녀오고 나니 정신이 좀 없었습니다. 역시 마흔살 되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로운 게임을 함께 만들어 가시지요 ^^
    • 템플 스테이 잘 다녀왔나요? 수현이 아프지 않았나 모르겠네..
      몸 안좋은건 괜찮아진지도 궁금하고.

      마흔살 축하하고, 또 멋진 한 해 되도록 합시다. ^^
  6. 개심사는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스님 사진이 너무 멋져서 찾아가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첨에는 실망을 했었어요. ^^;; 역시 사진발이야, 라고 했지만 작고 아담해서 비 긋고 나오니 마음이 편안해지던 절이더라구요. :) 참, 아직도 외나무 다리가 있나요?
    • 아.. 그런 사진이 있나요?
      외나무 다리 아직도 있습니다. 참 멋진 작은 연못위로 건너 가잖아요.
      저도 아이들과 그리로 건넜습니다. ^^

      개심사, 작고 고즈넉한 절이지요. 화려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
  7. 저도 다시 가보고 싶네요. 해미읍성에서 개심사로 해서 근처 가야산까지 하루에 돌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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