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공간화'에 해당하는 글 1건

내비게이션을 켜고 길을 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전방에 사고 다발지역입니다.
안전운전하세요.

듣다보면 좀 이상합니다. 다발은 많이 발생한다는 뜻이지요. 관용적으로는 무리없습니다만, 정확할까요?
다발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고가 한번에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발총도 한 예일까요. 아무튼, 원래 의도했던 말은 사고가 잦은 지역이란 뜻이겠지요. 그러므로, 빈발이 더 정확합니다.

국어학자도 아니고, 언어의 엄격함을 추구하는 저도 아닌데 '사고 다발'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고 다발 지역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고 뜻이 통하는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인간의 인지 능력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공간화하는데 익숙합니다.

예컨대, 미래를 앞이라하고 과거를 뒤로 표현하지요. 한 달 앞을 못 내다본다거나, 10분이 지난 뒤 등입니다. 한자는 또 반대입니다. 10년 전과 10년 후 처럼. 아무튼 시간의 흐름을 공간의 변화로 가시화해서 생각하는 인지적 작용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로 인한 오류도 있습니다. 동일공간에서 시간만 변하는 경우 시간의 흐름에 둔감해집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식당이 있는데, 곰탕을 기가 막히게 합니다. 그리고 나름 먹을만한 육개장이 있고, 평범한 순대국이 있습니다. 식당 주인이 재미난 프로모션을 합니다. 3회 쿠폰을 사서 미리 메뉴를 예약하면 5개월간 매월 1회를 먹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어떤 주문을 내시겠습니까.

대부분 사람은 첫 달은 곰탕을 시키고, 다음 달엔 지루하지 않게 육개장을 시킵니다. 그 다음 달엔 곰탕으로 다시 돌아가든 순대국으로 옮깁니다. 자연스럽죠?
하지만, 실제로 당신의 기호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달 지나서 다시 가면 매번 곰탕이 가장 맛난 음식입니다. 따라서 5회 모두 곰탕을 시키는게 만족도는 최대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지적으로 6개월의 식단을 한 테이블에 모아 놓고 보기 때문에 곰탕 이후인 둘째 메뉴는 육개장이 더 한계 효용이 높다고 착각합니다.

다시 사고 다발 지역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저 앞 사거리에서 여러번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 모든 사고가 한 자리에 축적된 형태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많이 발생했고, 다발이라고 해도 뜻이 통할 뿐 아니라 시각적 능력을 이용해 더 직관적으로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언어학적으로는 오류의 소지가 있어도, 인지학적으로는 의미있는 메시지가 됩니다.

메뉴 고르기 사례처럼 시간의 공간화는 의사결정과 경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인지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더 나은 결정을 하겠지요.
신고

'Biz'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Cold Call  (40) 2009.03.24
주총 데이 단상  (17) 2009.03.20
사고 다발 지역을 지나면서  (12) 2009.02.26
꿈을 향한 첫 발  (146) 2009.02.22
Rational Gut  (18) 2009.02.13
부동심 투자가의 어록  (14) 2009.02.10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12개가 달렸습니다.
  1. 아~ 좀 헷갈린데 참 잼난걸요.. ㅎㅎ
    근데 다시 읽어야겠쎄요 쪼매 헷갈리 ㅋㅋ
  2. 제 인지 능력이 모질라서인지
    전 가끔 REW와 FF를 제 멋대로 생각하더라고요.
    전 REW가 시작하는 곳이니 앞이라고 생각했고 FF는 뒤라고 생각했는데 ㅡ.ㅡ;;
    어릴때 말이에요. 지금은 REW도 FF도 생활속에서 없여져서 잊고 살고 있다는.. 문득, 10년전 10년후라고 하니 제 이상스러운 뇌인지가 새삼 생각납니다.
    아! 그래서 어릴때 동생과 타툼이.. 전 앞으로 돌려! 라고 말하고 REW를 생각했고 동생은 FF를 생각했다는... (나중에 보니 동생이 저보다는 사회적이었던거져.. ㅋㅋ)
    • 그때나 지금이나 전 화살표를 봅니다. ^^;
      하지만 mode님의 시공간 모델은 '개인화'되어 있었던 점이 흥미롭군요. ^^
  3. 빈발이 더 정확하겠지만, '다발'이란 표현은 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어의 특질을 아우르자면 빈발보다는 다발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억지로 끌어들이신 듯한 느낌이 있군요.
  4. 결국 육개장도 많이 팔리게 되는 걸까요? ^^
  5. 저도 내비 음성안내를 들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편인데요.
    저는 인지작용보다는 안내문구가 계속 걸리더라구요.
    굳이 '전방에 사고다발 지역입니다'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우리 말로 듣기 좋게 할 수도 있을 텐데...
    예컨대, '사고가 잦은 지역을 지나고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정도로 하면 어떨까 하는^^
    • 맞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생경한 사운드가 귀에 쟁쟁 울려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저기까지 갔습니다. ^^;

      asadal님 잘 지내시지요. 오랫만입니다. ^^
  6.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흔히 그냥 지나치는 것을 잘도 집어내셨네요.
    •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인생 선배이실텐데, 저도 mark님 블로그 가서 많이 배우겠습니다. ^^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