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법칙'에 해당하는 글 2건

로마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관광으로는 마지막 전일 일정입니다. 해도 9시까지로 워낙 길고, 줄 서는데 시간을 거의 안 쓰고도 중요한 곳을 대부분 봤습니다. 그리고도 하루 남았으니, 꽤 여유로운 일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운 애초 계획은 '선선한 마무리'였습니다. 그간 일주일을 아침부터 밤까지 쉴새없이 걸었기에 식구들 모두가 자잘하게 발, 무릎 등에 무리도 있고, 몹시 피곤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많이 보겠다는 욕심 내지 않고 로마 패스를 이용해 주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서, 우선 순위는 낮지만 봤으면 하는 것들을 차분히 보려는 계획이었지요. 특히 저는 성당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로마 4대성당하면  Peter, Paul, Mary and John입니다. 즉 베드로, 바오로, 마리아 그리고 요한 성당입니다. 물론 저 성인 이름 들어간 성당은 정말 많은데 그 중 성 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 성 밖의 바오로 대성당(Basilica Papale di San Paolo fuori le Mura),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을 말합니다.

이 중 베드로 성당마리아 대성당은 봤고, 버스를 타고 가까운' 라테란의 요한 성당'을 가보고 기분 내키면 '성밖의 바오로 성당'을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생각은 좋았습니다만, 다시 또 여행자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계획대로 되는 일 없습니다.

시스템이 엉망이라고 탓하던 제게 본때를 보여주려는지 아예 교통이 전면 파업을 하더군요. 버스는 물론이고, 전차, 메트로까지 죄다 운항 중지입니다. 관광은 고사하고 아내는 내일 귀국길 공항 갈 일까지 걱정합니다.

하긴 지금 테르미니는 전쟁통입니다. 다른 도시로 움직일 사람들 공항갈 사람들 모두 엉켜 난리입니다. 여러 명에게 확인하니 다행히 오늘만 파업이고, 그것도 5시까지만 한답니다.

아들이 재미난 커멘트를 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단결 못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니까 세가지에는 단결을 잘해요."
"뭔데?"
"첫째, 축구할 때요. 둘째는, 내 일 아니라고 딴데 가라고 이구동성 할 때요. 셋째는 파업할 때 단결을 잘해요."
"그말이 맞다." ㅠㅜ 

로마 패스 하루 남은 것 날리는건 일단 뒷일이고, 오늘 관광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으로든 이동해야 하는데, 방법이 막막합니다. 역 근처에 앉아서 잠시 궁리를 합니다.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택시입니다. 날이 날인지라 모두 택시를 원하니 줄만 서도 하세월입니다. 이탈리아 택시 장난 아니게 비싼건 또 다른 이야기지요. 
둘째는 사설 투어버스입니다. 인당 25유로인데, 주요 관광지를 계속 돕니다. 비싼게 흠이지만 이조차 사람들이 많이 몰려 매우 붐빕니다. 일단 주요 루트는 확보되는 대신, 이미 중요 포인트를 다 가본 후 자잘한 우리만의 즐거운 사이트를 가보려는 우리 가족과는 잘 안 맞습니다.
마지막은 걷는건데, 몹시 지친 우리 가족이고, 걸어서 커버할 수 있는 반경이 작습니다.

비상 상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일단 수정전략을 세웠습니다.
첫째,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지금은 많은 걸 보려는 목적보다, 오늘 하루 가장 즐거운게 목적이다. (Maximum joy)
둘째, 그렇다면 남부 로마의 4대성당 컬렉션은 포기하는게 맞다. 대신 테르미니 근처의 쇠사슬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까지는 가까우니 걸어 가고, 거기서는 택시로 포폴로까지 이동한다.
셋째, 포폴로에서 천천히 중간중간 쉬면서 테르미니 방향으로 이동한다. 5시 이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아쉬움도 있고, 원망스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로마 초반이나 마지막 날 맞이했다면 생겼을 재앙을 생각하면 무척 행복한 상황이니 또 다시 즐거운 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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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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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드님의 통찰력이 대단한데요? 이탈리아인들의 단결 포인트를 몇일간의 여행만으로 집어내는군요 :)
    •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살짝 놀랬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블로그 게재를 사전 허락받고 인용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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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 광장까진 계획대로 멋졌는데, 그 다음은 여행객의 법칙이 슬슬 작용합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란 없다는 여행객의 법칙 말입니다.

시뇨리아 광장 근처에 값싸고 구미 당기는 음식점을 몇개 봐 두었는데 죄다 휴장입니다. 아마 피렌체 최대의 관중 동원력을 지닌 우피치 미술관의 휴관일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배는 고프지, 당장 갈데는 없지, 식구들은 피로한데다 실망감이 가득하지, 참 답답하더군요. 일단 진경으로 허기를 달래려 베키오 다리로 향합니다.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는 명불허전입니다.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와 유사하게 다리 위에 건물이 들어선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다리를 한참 보다가, 고픈 배보다도 결국 화장실이 급해져 드디어 식사를 합니다. 주린 만큼 맛도 깊습니다.

이어져 피티 저택을 갑니다. 예전 메디치가와 대결하던 피티 가문의 집입니다. 메디치에 명백히 반대를 표명하는 입장이어서 언덕위의 피티 일당을 언덕당, 아르노 건너편 두오모 근처의 메디치를 평지당이라 했으니 명칭도 재미 있습니다. 게다가 피티는 돈으로 메디치를 이기려 이 큰 저택을 지었지요. 아이러니컬하게도 메디치는 화려한 디자인을 제출한 브루넬레스코를 떨어뜨리고 수수한 미켈로초의 설계를 승인합니다. 브루넬레스코는 피티의 대저택을 설계하게 됩니다.

결국 의도된 겸손으로 몸을 낮춘 메디치가 승리하고, 결국 후손 대에는 메디치 가문에서 피티 저택을 매입하니 아이러니입니다.

하지만, 메디치가 피티 저택을 매입할 당시는 코시모의 유지도 다 잊어버린 나약한 후손의 시대입니다. 겸손을 망각하고 오만으로 무장하지요. 이미 독재자의 위치에서 베키오 궁전을 차지한 메디치는 강건너 언덕위의 피티 저택까지 서민들 사이로 다니기도 귀찮다고 강을 건너 건물을 연결합니다.

이게 바로 베키오 다리 2층이지요. 베키오 다리는 메디치 전용 고공 도강 통로였던 것입니다. 늘 몸을 낮춘 국부 코시모 메디치는 말도 높아 안 타고, 불가피할 때는 망아지를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후손 메디치는 시민들이 향유하던 미술 작품까지 베키오 이층에 갖다두고 독점했지요. 피렌체의 진짜 명품 미술품들이 프라이빗 피트니스 센터의 장식물로 전락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 이전부터 피렌체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석양에 물든 도시입니다. 한번 본 사람들은 모두가 찬미하는 풍경입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 서둘러 올라가면 딱 맞도록 여정을 짜서 움직였는데, 그만 여의치 않게 되어 광장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택시잡고 부지런 떨면 가능은 한데, 지친 가족들이 내켜하지 않습니다. ㅠㅜ 여행에서 에너지 관리는 시간관리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결국, 가까운 아르노 강으로 갔습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난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 좋은 자리를 잡습니다. 해는 땅끝으로 꺼져가고, 도시는 금빛으로 물듭니다. 아무 말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노을에, 실루엣에, 살랑이는 바람에 육신을 맡기고 무념의 상태 자체를 즐깁니다.


어느 위치에서 보든, 피렌체의 석양은 매혹적임에 틀림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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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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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 다리를 보니까 영화 향수가 생각나네요. 귀족들은 땅에 절대로 내려오지 않으려고 그러고 서민들이 다녀야 하는 바닥은 더러운 흙으로 더럽혀져 있어서 질병이 우글우글한것이 아주 대조적이었거든요^^;
    • 맞습니다. 향수에서 저도 저런 타입의 다리를 보고 참 신기하다 했어요. 실제로 보니 당시 다리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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