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해당하는 글 2건


아픈자를 벌하지 않듯, 악한자를 불쌍히 여겨라.

Christian terminology
얼마전 본문비평학의 렌즈로 본 기독교 용어라는 글에서, 다소 풍자적인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정리해 본 바 있습니다.

Leveraging

이 글에 @paperrosess님이 흥미로운 댓글을 트윗해주셨습니다. 선지자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지요.

이에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지만, 바쁜 날들인지라 간단히 정리하고 후일을 기약했더랬습니다. 


No-tit-for-tat
과연 종교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돼지를 먹지 말라거나, 피를 뺀 양을 먹는다거나, 소를 건드리지 말라는 등 지역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율법을 제외하면, 오래가는 종교의 가르침은 대동소이하고 글로벌 감각을 보유합니다. 이슬람이야 유대교의 분파이니 같다 쳐도, 공자나 묵자, 불교 등에서 사랑과 용서를 역설합니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설명가능합니다. 눈에는 눈(tit-for-tat)이라는 전술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사회의 갈등 수준을 높여 종의 절멸을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전략은 딱 하나입니다. 

1. 네가 먼저 참으라는 메시지를
2. 대부분의 구성원에게
3. 동시에 주입하고 숙지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게 진화론적 의미의 종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사제계급이 무지한 대중을 착취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관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대칭이 존속가능 했던 이유는 종교의 존재의미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회의 안정과, 갈등의 억제, 더 나아가 종의 보존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Biggest & oldest story
잘 보면, 모든 융성한 고대 문명은 어떤 식으로든 3단계 구조를 소화해 냅니다.
1. 인내에 의한 갈등수준의 급등방지 목표
2. 이를 위한 도덕적 가이드라인 제공,
3. 가이드라인을 학습하기 쉽게 만드는 스토리
그리고 대부분은 종교가 이 역할을 담당하지요. 제가 이 포스트에서 역설하는 사회안정작용이라는 심층 구조는 숨어서 안보이고,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만 전승되어 외골격을 형성해 왔습니다. 예수가 죄없는 자만 돌로 치라고 말했다고 꾸며대든가, 부처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끊기 위해 왕궁을 떠났다든지, 지식인의 세력화를 꾀한 공자 일당의 담론, 인디언의 우화에서 영화 아바타의 현대적 변용까지 일맥상통하는 것은 친근한 스토리로 인류 공존의 지혜를 전달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스토리 구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책,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의 주된 테마였듯 구뇌의 작용이 밑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적 본성을 이기고 사람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이성의 판단만으로는 부족하고, 감성이 작용하여 마음으로 외워야(learn by heart)하기 때문이지요.

Prophets
결국, 이러한 역할을 담당한 고대의 스토리텔러들이 선지자라고 봅니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정의 그대로 선지자는 신의 계시를 직접 받았든, 신성의 영감을 받아 창작열이 불탔든, 인류애를 구현하기 위한 의도적 이성의 작용이었든 어떤 이유로든 그들은 중요한 사회적 리더십을 담당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리더십들이 이합집산하며 다시 진화론적인 거대 담론이 된 것이 종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선지자들이 종교의 개발자(developer)일 수 있는 것이지요.

Religion is a great invention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신앙이 잘못될 수는 있어도 종교는 옳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잘못될 수는 있어도 기독교는 인류의 복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화적 상상력으로 이룬 체계로 인해, 크고 작은 다툼 없이 '신적 중재'를 우리 인간 스스로 이뤄낼 수 있었으리라 볼 수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paperrosess 님의 질문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시대의 선지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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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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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아래 내용은 기독교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본문비평학을 보면서 기독교의 성립에 대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의 제 추론을 정의(definition)라는 형태로 정리해본 바입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는 환영이지만, 종교적 예수에 대한 옹호와 비난은 모두 사양합니다. 따라서, 내용은 가려놓으니, 글 정책에 동의하시는 분만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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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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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저이지만 '종교'의 관점을 떠난다면 사실 저렇게 해석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부활'을 제외한 Jesus Christ 는 '랍비' 나 '선생' 으로 이해되지요.. 그리고 실제로 성경 안에서도 '세상은 나를 뭐라고 부르냐?' 라는 질문에 '랍비 혹은 선생 혹은 선지자로 불립니다' 라는 제자와의 대화 내용도 있구요.

    대한민국에서의 교회의 이미지는 '비과세 대상의 절대성공비즈니스' 인게 맞는듯 합니다. ㅎㅎ 많이벌던 적게벌던 소득의 1/10을 바치도록 하니... 사실 십일조는 성경에서도 교회의 운영에 쓰이는게 아닌, 가난한 자를 위한 봉사에 쓰도록 해놓았는데요.. 십일조 모아서 교회 증축한 비용의 이자를 대는 교회들의 소식을 들을때마다 속이 쓰립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 교회에서 강조하는 '사랑'의 모습을 지니지 못한 교회 스스로 개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기독교가 아닌 천주교는 이미지메이킹으로 대성공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금욕과 봉사의 생활 모습은 종교를 떠나서 '높은 이상'의 모습에 부합하니.... 종교적인 관점으로 '개인의 노력으로 얻는 구원'과 '선물로 거저받는 구원'의 입장차이가 기독교와 천주교의 가장 큰 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아니라면 천주교 다니시는 분들의 답변을 ;; )

    기독교 스스로의 논리적 입증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성경에 씌여진 대로 믿고 해석되어 만들어진 기독교의 교리는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면 무너지게 되고, 특히 Jesus Christ 의 Rebirth 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저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기독교의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종교의 옳고 그름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삶의 기준으로 성경을 택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서 '종교'의 의미로 기독교를 택하는것이 나쁘지 않은듯 합니다. ㅎㅎㅎ 물론 일부 교회들의 모습은 영 아니올시다 인게 맞지만서도 ㅠㅠ;; 기독교인으로서 참 슬픕니다.
    • 네. 사악하지 않은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적 구조라는게 제 믿음입니다. 다만, 곁에서 악용하면 점점 그 구분선이 모호해지는듯 해서요.

      기독교인 입장에서 껄끄러울 수 있는 내용을 담담히 이야기 나눠주셔서 저도 많이 배웁니다. ^^
  2. 비밀댓글입니다
  3. '교회'는 초대 교회 쪽보다는 현대 교회 (많이 봐 줘도 로마 공인 이후에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한 시점의 교회)를 기준으로 정의내리신 것 같네요.^^;

    신은 인간의 발명품이냐 태초에 신이 있었냐는 문제는
    bottom-up 혹은 top-down의 문제이긴한데
    신앙의 출발점은 (논증이 아닌) 고백이고 그 고백은 top-down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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