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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 중 아내의 생일이 있습니다. 아내도 이번에는 생일이 있는걸 알고는 있지만 나름 그랜드 투어니까 생일이라고 별 다른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이들은 저번 자카르타에 이어 또다른 비밀 작전을 준비했지요.

작전개요
여행 3주전 쯤, 아이들과 몰래 대화중 엄마 생일을 어떻게 멋진 추억으로 만들지 의논을 했습니다. 금번 깜짝 파티의 컨셉은 '여행지에서 따뜻한 밥상 차려주기'입니다. 

프로젝트 코드
우선 작전명이 필요하지요. '밥'이란 점과 당시 성남일화의 알 샤밥 경기가 화두인 때이므로 자연스럽게 이중성에 의한 보안이 지켜지는 '알샤밥'을 코드명으로 했습니다.

노래 연습
매번 듣는 평범한 생일 축하 노래는 좀 그렇다고 생각하던 중, 딸이 아이디어를 냅니다.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는 'You are my sunshine'을 부르면 어떠냐는 겁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1절은 아들이, 2절은 딸이, 마지막은 저까지 모두가 합창입니다. 영어 노래 가사를 외우고 음정 연습하느라, 틈틈이 준비하는 내내 키득키득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통신 확보
기밀 유지에 가장 중요한 건 비밀 통신 라인을 유지하는게 기본. 이제 아이들도 그 쯤은 다 압니다. 우선 비밀 회의와 노래연습은 아내가 운동하러 간 사이에 합니다. 나머지 평상시 연락은 각자의 아이폰, 아이팟에 있는 gmail로 합니다. 그 외에 엄마 없이 아빠만 스킨십을 갖는 시간인, 잠자리 굿나잇 인사 시간에 살짝 귀엣말로 진척을 점검합니다.

물품 확보
행사의 메인 아이템인, 햇반과 끓는 물 부어 만드는 냉동건조 미역국은 아이들이 조달합니다. 아들의 시험날을 잡아, 둘이 산책한다고 나가서 사왔습니다. 물품 확보후 컨펌 전화도 잘 하더군요. 


물품 은닉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물건을 숨기는게 어렵습니다. 집안에 엄마의 손길과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 많겠습니까. 하지만, 집안의 숨은 구석은 아이들의 공간인 것. 이번에도 아이들이 좋은 의견을 많이 냈습니다. 물품을 아예 집으로 들이지 않고, 차에 있는 아이들만의 공간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여행 떠나는 날, 딸 아이가 고의 로 출발을 지연시킵니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아들은 먼저 짐을 갖고 집을 나서고, 딸아이가 확보한 3분 동안 남자방 여행가방에 물품을 옮겼습니다. 여행은 남자방, 여자방 두방을 쓰므로 남자짐에 있는건 비행 후 내내 비밀스럽게 숨기기가 가능하지요.

위기
마지막에 서두르다보니 작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가서 생각하니 숟가락을 안 챙겨 나왔습니다. 급히 후방의 딸에게 연락하여 몰래 숨겨 오는데 성공. 그러나, 젓가락은 못 가져왔습니다. 다행히, 비행기 기내식에 젓가락이 나옵니다. 덤으로 진공포장 김치까지 아이템 획득입니다. 아이들과 비행중 좌석에서 의미가 가득한 눈웃음을 주고 받았습니다.

마드리드의 시련 1
호텔에 와보고 깜짝 놀란게, 웬만한 호텔이라면 다 있을 전기 포트가 없습니다. 물을 끓일 수가 없는겁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과 함께 어찌나 놀랍고 실망스럽던지. 이 문제는 뜨거운 물 중탕으로 해결키로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시련 2
처음 설계 당시 깊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인데, 미역국을 담을 그릇이 없습니다. 도착해서 이튿날에야 발견했지요. 그래서 그릇을 구하러 밤에 몰래 마트에 나갔습니다. 마드리드의 상점들은 왜 그리 빨리도 문을 닫는지. 일정 마치고 티안나게 일찍 들어와 이틀을 시도했지만 그릇 구하기에 실패했습니다. 급기야 Plan B를 발동합니다. 당일 아침에 호텔에서 그릇을 빌리리고 했습니다.

마드리드의 시련 3
가기 전부터 가장 걱정했던 사항은 현지에서 케익 구하기가 쉽냐는 거였습니다. 케익 파는데야 당연히 있겠지만, 밤에 몰래 나가 살 만큼 가까운 거리에, 늦게 문 연집이 있어야 하니 쉽지 않은 제약조건이지요. 다행히, 호텔 건물에 빵집이 있어 안도를 했습니다. 전날 아들과 몰래 나가서 작은 케익과 초까지 성공적으로 구했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 룰루랄라 휘파람 불며 호텔에 들어오다가 생각해보니, 초를 켤 방법이 없습니다. 라이터가 없으니 말입니다. 빵집부터 해서 성냥을 이리저리 물어보며 구해봤지만 요즘 그런거 구하기가 쉽나요. 아깝지만, 호텔 기념품 가게에서 1유로짜리 라이터를 샀습니다. 그나마 늦은 시간에 물건 팔아주는게 고맙습니다.

D-day
평소처럼 여덟시에 아침먹으러 내려가기로 약속된 상황입니다. 저는 다섯시, 아들은 여섯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합니다.
한시간 전부터 뜨거운 물을 계속 갈아가며 미역국물을 준비하는 아들 모습이 사골국이라도 우려낼 정성입니다.

식당문이 여는 7시반. 아들과 식당에 내려갑니다. 말도 안통하는 주방 아저씨에게 집사람 생일이고, 잠깐 쓰고 가져갔다가, 다시 갖다 놓겠다고, 손짓 발짓 했지요. 사람 좋은 스페인 아저씨 답게 활짝 웃으면서 가져가라고 흔쾌히 손짓합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아니면 plan C인  양치컵에 미역국을 담을 뻔 했습니다. -_-

전날 밤 준비한 케익과 촛불에 1유로짜리 라이터로 불도 켰습니다.

이제 준비 끝. 아차.. 
여덟시 약속이라고 해서 식구사이에 분단위로까지 약속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여자방에 전화해서 딸에게 상황 물어보니 정각에 오긴 글렀습니다. 아들은 여덟 시에 딱 맞춰서 미역을 뜨거운 물에 이미 풀어 놓은 상황입니다. 결국, 준비 안 되었어도 당장 우리방에 오라고 급히 이야기했습니다.

불이 꺼지고 어두컴컴한 방.
촛불 두개. 
희미하게 보이는 케익. 
이제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밥 
그리고 뜨끈한 미역국. 

아내가 점점 놀람이 커지는 순간 아들의 선창.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ey.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ove you.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아내는 왈칵 울어 버렸습니다.

알샤밥은 실패했나 봅니다. 
엄마를 햇살처럼 환히 
웃게 해주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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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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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는 사람까지 눈시울이 왈칵할 정도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
  2. 오라버니 너무 감동적이에요~ 와우!저두 결혼하면 많은 어드바이스 부탁드릴께요 ^^
  3. 앙앙앙~~~~
    감동으로 전해 옵니다. 온 가족이 행복했을 그 순간이....^^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ㅎㅎ
    촛불의 숫자가 눈에 팍 꽂히는 걸요..ㅎㅎ
  4. 아 정말 감동입니다 ^ ㅡ^
  5. 아-최고입니다. 일,육아,생활,이벤트 기획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6. 비밀댓글입니다
  7. 언니 생일 축하 드려요~~ 너무 감동적인데요.. 정말 비싼 선물보다도 값진 생일 파티와 선물이네요.. 연주는 surprise가 곧 있을 예정인데, 오라버니 사이트에 와서 신고했네요.. ^^
    수아, 시언이도 보고 싶어요.. 조만간 식사 기회 부탁드려요..
secret
토요일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마음과 반대로, 감동 없이 외식 한번으로 때우게 되는 예년 생일이었습니다. 올해는 다르리라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깜짝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음력인 자기 생일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엄마를 속이는 사기대작전을 벌이기로 합니다.

범행 장소 물색
집에서 좀 벗어나야 좋겠지요. 마침 아이들 시험이라고 2주간 주말에 멀리 간적이 없습니다. 바람 쐴겸 강화도 여행이나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뭐 대단한일 했다고 그리 멀리 가냐고 타박은 했지만, 그리 큰 반대는 안합니다.

통신확보
이 부분이 제일 어렵습니다. 네 식구가 항상 붙어 지내고 이야기 많이 하는 관계로, 아이들과 저만 몰래 이야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세명이 모여 속닥거리면 나머지 한명은 꼭 따라 들어오니까요.
"뭐야 뭐야? 좋은 일있어?"
결국, 엄마가 잠든 틈에 새벽에 일어난다든지, 잠깐 가게 간 틈을 타서 비밀회동을 통해 모의를 진행했습니다.

역할분담
조달책: 아이들 (풍선, 편지 등 깜짝 파티 소품 준비) 아빠 (케익)
운반책: 물품을 각자 사물에 숨겨 범행장소 집결. 큰 물건은 차에 은닉
유인책: 당일, 아빠가 엄마 유인
범행장소설계: 아이들이 빈집에 장식 완료
자금책: 아빠 (실비 정산)

범행시뮬레이션
엄마 몰래 어떻게 소품을 준비하지?
우리가 시험 끝났으니까 바람 좀 쐬겠다고 엄마에게 부탁드릴게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 놓을게요.
어떻게 숨겨 들어오지?
주머니에 이렇게 이렇게 구겨서 들어오면 되요.
OK
케익은 어떻게 숨겨? 트렁크는 엄마가 짐 넣고 뺄 때 보이는데?
운전석 아래에 틈이 있어요. 거기에 모포로 감싸서 숨기면 되지요.
그렇구나.
당일은 말이지... 이런 대사를 하자꾸나.

얘들아 우리 모두 산책가자.
그냥 저희들 집에서 놀면 안되요? 닌텐도 하고 싶어요.
그래? 여보 애들 냅두고 우리끼리 데이트할까?
와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빠, 30분이면 우리 솜씨로 시간이 부족할듯 해요. 오시기 전에 다 못마치면 어떻게 하죠?
그렇구나. 그럼 아빠가 엄마 전화를 두고 갈게. 그리고 30분쯤 전화할게. '심심하니?' 물어볼거야. 준비가 다 되었으면, '심심해요.' 대답을 하고, 시간이 필요하면 '안 심심해요.' 대답을 해. 그럼 아빠가 알아서 시간을 끌게.
그러면 되겠구나.. ^_^

위기일발
아이들은 모의의 즐거움에 짜릿함을 느낍니다. 범행일까지 시간 기다리기가 너무 힘듭니다. 특히, 막내는 입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엄마 생일이 언제야?"
(딸과 아빠는 경악)
엄마 안 보이게 눈짓, 손짓으로 어버버 입을 막느라 부산해집니다.

30초후
몰래 방으로 들어와서 조직의 쓴 맛을 보여줍니다. 아빠는 강하게 타이르고, 고문까지 합니다. 제일 괴로워하는 턱수염 부비부비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이 후로도 더 이상 배신은 없을겁니다.

결과
대성공이었습니다.
사소한 어긋남이 있었지만, 철저한 사전 연습이 있었기에 차질없이 완벽히 맡은 역할들을 수행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보니, 벽면 가득한 풍선과 풍선마다 달아놓은 사랑의 편지들.. 긴 풍선으로 강아지도 만들고 오뚜기도 만들고..
그야말로 완전범죄였습니다. 엄마는 며칠전 쯤 생일이 여행과 겹치는건 알았지만, 생일 파티를 하는 여행인지는 몰랐습니다. 케익도 하나 없나 내심 섭섭했다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준비되어 있었지요.

이 정도, 사랑의 범죄는 용서받을만 하겠지요? ^^
자카르타: 완전범죄를 뜻하는 범죄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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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24개가 달렸습니다.
  1. 재미있는 범죄 시나리오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는 입장과는 달리 직접 범죄를 모의하는 과정에서는 박진감이 넘쳤겠어요. 재미와 보람도 있었겠구요^^ 사모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2. 예쁜 가족들이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비밀작전은 완전 대성공이었겠네요~

    초 부럽습니다. 전 제 생일을 잘 지켜서 스스로에게 케익과 ㅡ.ㅡ;;
    선물을 한다는.. 와핫핫핫~
  3. 이런 포스팅은... 뭇 유부남들을 적으로 돌리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4. 뭇 유부남들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시는 건 아니신지...ㅎㅎ

    마냥 부럽습니다. 와이프에게는 점수따고 아이들에게는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고...
    오늘 저녁은 굶으셔도 배부르실듯..(-0-
  5. ㅋㅋ 범행시뮬레이션을 읽는 제가 다 짜릿짜릿해지는군요. 너무 좋아하셨겠어요. ㅎㅎ 역시 멋지세요~
  6. 와우 정말 유쾌한 가족입니다... :)
    윗분들 말대로 시뮬레이션에 짜릿함이 전해져오네요 ㅎㅎ
  7. 우아~~ 행복한 생일 이벤트!! 나도 돌아 오는 울 딸래미 생일에 써프라이 함 해야겠어요.. 이제 알만한거 아는 나이라 넘 좋아 할 듯.. 늦었지만 언니 생일 축하하구요..
    • 아이 생일 서프라이즈도 좋지만, 서방님 한번 땡겨주면 더 효과가 좋을듯. ^^
      고마워.
  8. 와..재밌었겠는데요.
    몰래 준비하는 이벤트는 스릴 만점이죠. +_+
    아 배가 고픕니다.
    • 음.. 엘윙님 배고프단 소리에 강화도 사진은 특별히 no food 버전으로 갑니다.

      바베큐 사진, 밴댕이회 사진, 쑥튀김 사진 등등은 다 빼고 올렸습니다. ^^;
  9. 와아...! 읽는 제 기분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 애들과 준비과정이 정말 재미있었고, 아이들에게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만큼 컸구나 느낀점도 많았고.
      준비하는 제가 더 많이 받았던 그런 파티입니다. ^^
  10. 오늘 아내 생일을 적는 란을 공란으로...
    뜨끔합니다.
  11. 마눌님이 제가 자주 들르고 배움을 얻는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이곳을 방문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원히 못들어오게 막아야겠습니다. -_-;;
  12. 와,,^^
    대단하세요~!
    부러워요~
    저도 나중에 저런 대접을 받고 싶네요...ㅋㅋㅋ ^^;;
    • 제 아내, 십몇년만에 받은 선물인데요.. ^^;;
      빙s님은 신혼때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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