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에 해당하는 글 4건

통섭

Sci_Tech/Review 2011.07.03 22:00
몇년 전, 내 대학동기에게 어이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MIT에서 박사학위 마치고 유명 벤처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다시 공부가 하고 싶었나 봅니다. 특히 마케팅에 흥미를 느껴 대학 문을 두드렸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귀하는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으니 더 이상 세부적인 공부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는 어색한 핑계만 대곤 했지요. 정량적인 기질의 공학도를 문하에 두기 불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참 편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dward Wilson

(Title)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과학을 하나로 통합해서 보자는 윌슨 씨의 주장은 다소 허황되거나 과장스럽고 또는 무모한 이상론으로 보였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뇌과학의 성과를 마케팅에 이용하는 뉴로마케팅을 비롯하여, 폭 넓은 통합적 탐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년전 제가 석사 공부할 때도 벌써 학제간 통합이 솔깃한 이슈였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요.
제가 쓴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도 같은 맥락입니다. 뇌과학의 최근 발견에 기반한 뇌의 작동원리를 응용한 필승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정리해보았으니 미시 수준과 거시수준이 자유롭게 교류합니다.

또한 '진화론으로 본 종교, 그리고 선지자'에서도 언급했듯 사회적 번영을 위한 기제로서의 종교나 윤리의 생성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윌슨 씨는 십년전에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음을 몰랐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어 새로운 관점 얻겠다고 겨냥한 제 목적은 실패했습니다. 거대한 사상적 조류에 주춧돌을 놓은 그 의미는 크지만, 목놓아 주장하며 설득하려는 많은 부분이 이미 세상에서는 받아 들여지고 있고, 저는 이미 상당한 이해 하고 동의하니 매우 지루했습니다. 그저 뿌리가 되는 고전이 주는 매력만을 느꼈지요. 어렵고 논란 많은 주장을 단단히 결심하고 제안하는 결연한 의지가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 학자적 설레임 말입니다.

오히려, 저는 아이들 공부하는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미 그렇게 아이들 가르치고 있지만, 더욱 세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공부, 나를 심화시키는 지침으로서의 학문이라면 어느 특정 학문의 세목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학문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이해의 바탕위해 새로운 탐구를 할 수 있는 능력, 바로 르네상스적 인간의 완성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경영을 잘하려면 오히려 과학의 소양이 필요하고, 연구를 잘하려면 사회과학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설픈 전문인으로 키워지지 않았나요? 우리의 아이들까지 이렇게 키우기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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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마지막의 의미심장한 문제 제기에 공감합니다. 최근 인터넷의 토폴로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인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아는 것(예를 들어 컴퓨터 전공자가 네트워크 과학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은 자신이 전공하고 있는 분야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듯합니다. 사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정보 필터링 분야도 통계학과 컴퓨터공학이 서로 다른 관점과 강점을 지니고 접근하고 있거든요. 최근 학사 논문 쓰면서 예전에 호기심에 공부해 둔 확률과 통계 관련 지식이 매우 강력하게 활용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밤에 틈틈이 통계 관련 지식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지금 통섭 관련해서 글을 두 편 정도 쓰고 있는데, 하나는 역시 인터넷 관련이고 하나는 군사사 관련입니다. 나중에 완성되면 트랙백 걸께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 동감입니다.
      어따 쓸까 싶은 공부도 나중엔 다 모여서 더 풍성한 해석과 깊이를 갖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요.

      고어핀드님의 글은 늘 기대가 큽니다. 특히 군사사에 대한 글은 독보적이라서 말입니다. ^^
  2. 두루두루 읽다보니 재밌는 글들이 많습니다. 저는 뇌나 심장이 하는 역할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에 대해 좀 더 세분하여 이해하고 활용하려는 많은 움직임들이 반갑기도 합니다. 여러 정의들을 접해보면 맥락은 크게 한가지로 좁혀지는데, 그걸 어떻게 실생활에 활용할 것인지가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적용하시는 좋은 사례와 결과물들이 기대가 됩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론들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보고 접목시켜보고, 혼자 즐거워하는 편입니다. 최근에 읽은 '크리티컬 매스'에서 정의한 통섭에 대한 개념이 제가 생각한 부분과 꽤 닮아 있는것 같습니다. 소신있는 교육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 고맙습니다.
      특히 뇌과학은 아직 초창기이긴 하지만, 그간 여러 설이 난무했던 인문학, 심리학, 교육학의 많은 부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계속 배우면서 응용하고 그러면 더 나은 점이 있겠지요. ^^
secret
출장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수도권으로 접어들때 즈음 항상 마음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고속도로 양 옆을 가득 메운 개성없이 시들한 아파트, 일률적인 색감, 문자 가리면 일본인지 중국인지 애매한 특성이 버무려져 무개성의 개성을 드러냅니다. 
건물 하나하나를 조각처럼 깎아내린 유럽의 건물에 굳이 비교하진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건축은 용도만 있고 예술은 없는걸까요. 고대 한국의 미감은 근대화의 효율성 앞에 영원히 단절되는게 마땅할까요.

이런, 제 의문에 대해 답을 준 이는 가우디입니다. '아니다. 도시 미감은 구성원의 노력이지, 운명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한명의 창의가 도시 경관을 바꾸고, 사는 이의 정서와 방문자의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가우디라는 특출난 천재 하나의 사례가 아님을 다다오에게서 봤습니다.
산나님 블로그의 '빛의 교회'를 보면 용도의 건축과 미학의 조각은 입체라는 교점에서 화해가능한 가치란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건축물 읽기의 걸출한 가이드북, 서현의 책을 만났습니다.

서현

From geometry to space
책은 매우 쉽게 이해가도록 서술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카데미즘의 살가운 친절도 놓지 않습니다. 내러티브의 뼈를 추려보면, 기하 -> 부피 -> 공간 -> 재료 -> 구조 -> 빛 -> 건물 -> 도시의 순으로 기초부터 총체까지 점층하며 이해를 깊이 합니다.
점과 선, 면의 건축학적 의미에서 시작해서, 공간이 주는 감정 그리고 재료의 특성과 장단점에서 버클링과 전단력-축력을 다루는 구조공학까지 망라합니다. 

Stubborn symmetry and unspoken regulation
기하편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은 대칭성에 대한 해석입니다. 대칭은 고집과 보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대칭의 패턴은 아직 안 본 부분마저 대칭의 규율에 순응하는 패턴을 기대하는 인간의 심리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건물간의 배치와 규모에서도 대립과 긴장, 그리고 위계가 설정됩니다. 사실 도시 미학의 근간은 건물이 모인 집합적 의미에 대한 천착이기도 합니다.

City manual
정말 영감넘치게 배울 점이 많은 서현 씨의 책은 도시 읽는 매뉴얼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마지막 챕터의 건축물 읽기 사례 연구는 특히 재미있습니다. 건축물의 의미를 다양하게 짚어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제 특이한 건물은 쉬이 지나쳐지지 않습니다. 그 전에도 눈여겨는 봤으나, 무지렁한 눈으로 열심히 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방위와 빛의 유입, 건물내외인의 동선을 고려해서 건축가의 마음을 슬몃 들이보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도시나 건축에 한톨만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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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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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펼쳐 볼까 말까 하다 그냥 지나친 기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돈드는 일도 아닌데 잠깐이나마 훑어볼걸 그랬네요.
    문외한인 저도 가우디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은지라
    접할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더군요.
    한톨 정도 관심이 있는데 메모해 놔야겠습니다.
  2. 가우디의 건축물이 굉장히 기억에 강하게 남으신거 같습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Alan Parsons Project라는 프로젝트그룹이 <Gaudi>라는 컨셉트 앨범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La Sagrada Familia>라는 음악이 담겨있습니다. 혹시 안들어보셨으면 감상한번 하시길...

    유튜브를 뒤져보니

    http://www.youtube.com/watch?v=5gxZWYkBMFc

    에 있습니다.
    • 오.. 소개 고맙습니다.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는 제가 소시적에 유명한 밴드인데 말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노래했군요. ^^
  3. 설명을 들으니 건축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친절해보이는군요. 저에게도 물조리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
  4. Inuit님 글을 보고 어제 신청했는데 바로 오늘 도착했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블로거 분들이 리뷰한 책만 사게 되네요. : )
  5.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요새 정말 정신 없답니다.
    inuit님도 바쁘게 지내시는거 같은데 요샌 어떤 일로 바쁘신지 궁금합니다.
  6. 이누이트!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이름의 블로그, 두해전쯤 베링해에서 만나고 온 그 사람들이 생각나 들어왔더니 그 안에 또 반가운 이름이 있네요. 서현. 아주 오래전에 한 잡지사와 인터뷰하던 중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내 서가에 딱 5권의 책만 남기라면 그중의 한권은 이 책일거라고! 반가워서 한 줄 남겼습니다^^
    • 오, 베링해 쪽에 가셨었나요.
      이누이트를 직접 봐서 알고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전 캐나다 있을 때 봤습니다.

      블로그 하면 주소 알려주시고, 종종 뵙겠습니다. ^^
secret
뇌는 우리 몸 속 하나의 기관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기관 중 하나'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요. '거의'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몸을 컨트롤할 뿐 아니라, 의식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개체의 정체성이기도 하지요.

Stephen Juan

(원제) Odd brain

정말 깔끔한 양장의 책입니다. 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실물 보면, 안사고 못 배길 정도지요. 실제 사보니 딱 스낵입니다. 어느 주말에 뒹굴뒹굴 심심풀이로 읽었습니다.

읽고 보니, 애초에 제가 기대했던 뇌의 기막힌 발견은 없습니다. 뇌의 해부학적 깊이까지 들어가지 않고, 정신의학과 심리학까지만 훑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읽기에는 재미있지만, 제가 바라던 전문성은 없었습니다.

책은 크게 세부분입니다. 

1) 뇌의 손상이 야기하는 기묘한 현상들: 아스퍼거, 신체이형장애, 서번트 증후군, 코타드 증후군 등
2)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병증들: 강박, 도벽, 사회공포증 등
3) 정도가 심한 정서 반응들: 공포, 갈망, 스릴, 최면 등.

일요일 스낵과 딱 같은게, 읽기에는 좋으나 영양가는 미지수입니다. 공부의 재미보다 잡학적 상식을 늘리는 재미가 더합니다. 전체적으로 느껴지는건 두 가지입니다.

1) 어린 시기는 정말 중요하다. 가정 교육,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어찌 보내냐가 사람의 뇌를 좌우한다.
2) 신경전달물질 중에서는 세로토닌이 중요하다. 세로토닌 부족으로 야기되는 신경증이 매우 많다.

마지막.
작가 후안씨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뇌의 이상은 인간의 존엄의 상실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뇌 관련한 글은 신중한 경우가 많습니다. 에세이에 가까운 색스 씨는 시종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모펫 양[추후 링크]은 뇌의 신비에 대한 경의가 느껴집니다. 후안 씨에게도 그런 인간미를 바라는건 과할까요. 해부학적 냉철함도 아니고 신문 스트레이트 기사의 건조함만 느껴집니다. 모든 학설이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식입니다. 유보적 아카데미즘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사례를 나열해놓고 자신은 책만 안잡히고 싶어하는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책을 맛나게 다 읽고 나서, 스낵 껍질 버리듯 다시 안보게 되는게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읽다보면 어디가서 신기한거 많이 안다는 소리 들을 만한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짧막 상식이 많습니다. 애초, 백과사전류의 기대가 응분의 사전 준비물(prerequisit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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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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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 이런.. 보통 속상한게 아니죠.
    내 새끼 같은 건데, 헐하게..
    일단, 반나절이라도 작정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좀 쉬세요.
    많이 좋아진답니다. ^^

    근데, 직거래 홈피는 뭐죠?
  3. 보통 '기막힌'이 들어가면 낚는 경우가;;;
  4. 뇌에 관해 조금 더 깊게 알 수 있는 책 한 권 추천 부탁드립니다. ^^
    • 어떤 쪽에 관심있는지 말해주시면 쉽겠네요.
      의식이 궁금하달지, 해부적 상세가 궁금하달지, 뇌의 호르몬 작용이랄지..
      제가 뇌 책 수십권을 읽어도 계속 새롭고 방대하더군요. ^^
    • 별로 아는게 없어서 어떤 책을 접하는게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해부학적인 내용부터 알아가는게 좋을까요?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나오긴 하던데 체계적(?)으로 소개한 책은 본적이 없습니다.
    • 그러면, '뇌, 생각의 출현' (http://inuit.co.kr/1678) 추천 드릴게요. 내용이 좀 방대하고 산만한 편이라 다 읽지 마시고, 2, 3장 뇌 관련 부분만 읽어도 전혀 지장 없습니다.

      해부학적 도해와 함께 차근차근 공부하듯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좀 지루한 교과서스러움은 염두에 두세요. ^^
  5. 응? odd? 원제가 눈에 화~ㄱ 들어오는데요. 이거 직업(?)병 맞죠. ㅎㅎ
  6. 저 이 책 읽어 봤어요. ㅎㅎ
    처음엔 제목 보고 어려울것 같은 책 같았는데 의외로 참 재밌게 읽었네요..
  7. 저도 이 포스트를 읽고 뇌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천도서를 여쭙고 싶었는데 위에 어느분이 하셨네요. 어떤책부터 읽는게 좋을까요? 제가 읽은 뇌에 관한 책이라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 '뇌'가 유일합니다. 그냥 '뇌의 기막힌 발견'이 책부터 읽어도 괜찮을까요?
    • 오자히르님은 제가 어떤 성향인지 잘 몰라서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위의 댓글도 참고하시고, 가볍게 시작하려면 '뇌과학으로 풀어보는 감정의 비밀' (http://inuit.co.kr/1582)이 흥미를 돋구고 중요한 이해를 도울듯 합니다.
secret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사회를 이루고, 사회에는 정치가 있고, 정치의 결과는 권력입니다.
그 권력의 48가지 법칙을 다룬 책이라.. 슬슬 눈길이 가게 되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Robert Greene

(원제) The 48 laws of Power


'전쟁의 기술'의 저자이자, 'The Game' 에서 PUA의 바이블인 '유혹의 기술'을 저술한 로버트 그린인지라 사실 이름만 보고 냉큼 읽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쟁의 기술'과 사례가 아주 많이 겹칩니다. 이로써 그린씨의 내공은 파악이 되었군요. 대작을 두 개 연달아 쓸 역량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전쟁의 기술'이 후작이며 음험한 권력 이슈에서 전쟁으로 확장, re-packaging한 책입니다. '권력의 법칙'은 예전에 '권력을 경영하는 48 법칙'으로 나온 책을 다시 펴냈으니까요.

단지 작가로서의 능력만 아니라, 이 책을 읽다보면 다른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린씨도 스스로 밝히듯, 권력에 대해 아픔이 있고, 환상을 갖고 있는 저자입니다. 결과로, 이 책은 진지하게 해부하면 권력을 가져보지 못한 자가 열심히 모아 놓은 심각한 오해와 꼼수입니다.
일단 권력을 테크닉으로 쟁취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물론 역사상 유명한 권력자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른 기법을 권력에의 첩경처럼 확대해석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독자는 목표로서의 권력을 생각하며 책을 읽지만, 저자가 이야기 해주는 것은 결과로서의 권력이지요.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속 가능한 권력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합니다. 사례는 역사에서 동적인 장면만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례 중심이 주는 큰 오류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유사한 구조하에서 공격측이 이긴 사례와 진 사례가 공존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예를 들어, 적을 오게 하고 기다리는 사례와 기습으로 적의 혼을 빼는 사례가 상충하는 식이지요. 또, 승리할 때는 완전히 굴복시키는 사례와 적절한 시점에서 그치지 못해 실패하는 사례가 병존합니다. 다른 예로 카이사르는 연극적 기질로 권력을 쟁취했고, 그를 승한 아우구스투스는 소박하고 사나이다운 위엄으로 권력을 공고히 하잖습니까.
결국, 재미난 읽을 거리임에는 분명하지만, 실제 응용은 다른 이야기라고 보면 맞습니다. 마치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과도 비슷합니다. 뭔가 꼭 있는듯 보이나, 막상 열어 보면 평범하고 그럴듯한 이야기일 뿐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군주론을 자꾸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마씨의 엄밀한 형식 논증에 비하면 그린씨는 입담 좋은 소설 수준입니다.

물론, 권력은 필요악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겪어야할 과정이며, 알아채든 모르든 이미 당신 주위에서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권력을 백안시 할 필요는 당연히 없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따로 공부하는 것도 우습습니다. 권력에 다가가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이 선결이니까요. 당신의 인망, 실력, 인맥, 지지, 평판, 타이밍 말입니다.

사실 이름이 거창해서 무언가 배울까 하는 생각했다면 아깝겠지만, 역사소설 읽듯 보기엔 재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상업적인 목적에 맞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린씨, 그 정도의 재능은 분명있습니다. 수 백가지 사례를 48개로 범주화하고 이리저리 궤변을 꿰어 맞추는 능력은 범상을 분명 넘지요.
책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재미난 표현이 많습니다.

*기만이 창이라면 인내는 방패다.
*권력은 게임이다. 의도가 아닌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권력은 결국 주도권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나의 필요와 상대의 필요를 혼돈하지 마라.
*예측가능성은 아랫사람의 미덕이다.
*상대가 이기게 하지 말고, 차라리 항복해라. 다양한 정체성을 보유하여 보호막처럼 사용하라.
*소심은 스스로 장애를 설치하고, 대범은 장애를 치운다. 대담하다는 것은 성격이 아니라 학습된 반응이다.
*권력자가 부리는 심술은 무력감의 표시이다.
*누가 내게 부당히/과하게 화를 낸다면, 나 때문이 아니다. 다른 종횡의 이유가 축적된 것이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오만이다.
*명분이 유혹을 하면, 이해관계가 일을 이룬다.
*시대 정신을 읽어라. 혼란기라면 복고적 가치를, 정체기라면 개혁적 가치를 표방하라.
*힘은 반발을 사고, 꾀는 패턴을 노출한다. 고로 힘과 꾀를 리듬감있게 교대하라.

정말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책 소제목만 읽어 보시면 대략 분위기가 파악됩니다. 사례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으시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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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랑 닭은 동물이니 같이 묶었는데.
    그러고 보니 소랑 풀이랑 어울리는것 같기도 한데요... ^^
    • exotic하게 묶으셨군요. ^^;

      그나저나 자연스럽게 무플을 방지해주신 센스에 감사~ ^^;
  2. 흐흣.. -_-;;
    여기 묶여 버렸군요.

    저는 그린씨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것 같아요.. 반드시 알아야할것 같은 기술서적을 쓰셔서..
    전쟁의 기술도 재미있게 읽었고. 한참 연애할때는 유혹기술에 정말로 큰 감명을 받았었더랬죠. 경상도 바다사나이에게는 복음서와 같았습니다.
    뭐 실습점수는 좋지 못했습니다만..
    • 유혹의 기술까지 쓰셨단 말입니까. ^^

      경상도 바다사나이라고 하시면 어딜까 궁금합니다.
      통영에 한표~
  3. inuit님 리뷰에 공감합니다. 권력의 법칙을 읽고, 유혹의 기술을 읽고 전쟁의 기술을 읽었을 때, 더 이상의 이야기가 나오기 쉽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공의 한계라고 봐야 할 것 같구요. 결과로서의 권력이란 지적도 로버트 그린에겐 뼈아픈 지적일 겁니다.

    단, 전략과 권력을 다룬 다른 텍스트와 다양한 접속을 가능하게 해주는 촉매적인 역할을 잘 수행해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그래서 다음 포스트를 아예 'buckshot과 로버트 그린'으로 예약해 놓았습니다. 그의 저서 자체는 분명 2% 부족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런 부족함이 다른 고전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가능케 해준 점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습니다. ^^
    • 네. 뭐니뭐니해도 그린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책중 하나가 '전쟁의 기술'이에요.
      질리지도 않고 보고 또 봅니다. ^^
  4. 2007년도에 이미 소개가 되었던 책이군요. '개정완역판' 뭐 이런 부분은 못 보고 그냥 2009년 3월에 출간된 걸로 나와 있어서 처음 소개되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

    '사례중심이 주는 오류'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책의 내용을 떠나서 적절한 지적이 아닌가싶습니다. 특히 "그린씨도 스스로 밝히듯, 권력에 대해 아픔이 있고, 환상을 갖고 있는 저자입니다. 결과로, 이 책은 진지하게 해부하면 권력을 가져보지 못한 자가 열심히 모아 놓은 심각한 오해와 꼼수입니다." 하는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사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자기개발서 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입니다. 예컨대, 일전에 어느 분께서 제게 새기라며 주고 간 세익스피어의 경구 하나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 분은 세익스피어가 말했다는 "유혹을 하려면 누군가를 사랑하면 안된다"는 문구를 전하면서 "사기를 치거나 현혹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다음은 이에 대해 제가 남긴 댓글입니다. ^^

    "세익스피어의 말은 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또한 자주 하는 말이지만, 내가 비유나 시나 뭐 이런 거에는 아주 쥐약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전제를 깔고 굳이 한마디 한다면, 세익스피어가 저 말을 어디서 어떤 맥락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저 말에는 그의 소망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싶습니다. 다시말해, 자기는 그렇게 못 해본 터라 저런 경구를 책 속에 남기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익스피어는 유혹을 하다 결국 사랑에 빠져서 실패를 했더라는 뭐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경구로 남겼을 거라는 얘기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천하의 세익스피어도 못 해 본 거를 경구랍시고 우리더러 함 해보라 하면 건 안 될 일이겠습니다. 뭐를 해서는 안 된다 혹은 뭐를 하라 따위를 말하려면 적어도 지가 성공한 거를 갖고 해야 하는 것이겠기에 말이지요. ^^ 고맙습니다.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제가 원래 댓글을 이래 좀 못 되게 답니다. ^^
    님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저 댓글이 생각나서 옮겨봤습니다. 다른 얘기를 더 해본대도 역시 저 비슷한 얘기일 것같아서요. 그래서 좀 적으로 산다는 의미에서. ^^

    유익한 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 네. 2007년에도 새로 나온듯 요란하게 광고했던 기억이 납니다. ^^

      셰익스피어 이야기는 재미있군요.
      서로 마음 연채 주고 받으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는 논의도, 꽁한 말로 오가면 독하기만 한듯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철학은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열망이 결합된 부분일 수 있다는 점도 동의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
  5. buckshot님 포스팅에 트랙백 걸린 걸 보고서 왔습니다.

    제 수준에서는 반면교사 삼아 읽어 보기에
    충분했고,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책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 보지를 못했습니다.

    Inuit님 포스팅을 읽어 보고서
    이 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
    • 아마 순서를 바꿔 읽었으면 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전쟁의 기술' 에 비하면 '권력의 법칙'은 좀 깊이가 부족하단 생각을 합니다.
      아니, 책 자체의 수준보다 독자의 기대가 과하지 않는게 더 잘 즐기는 비법이란 생각이기도 하지요.
  6.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대기중인 전쟁의 기술을 읽고 나면
    좀더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품어보구요 ^^

    역시 책을 읽은 후 스스로의 감회를 풀어 놓고,
    다른 분의 감회를 공유한 뒤에서야
    읽었다 말할 수 있을 거 같네요.. ^^
    • 저도 책 읽고난 느낌을 교환하는걸 참 좋아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7.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 책을 다시 갈무리해보니까
    Inuit님께서 지적해 주신 부분이 잘 보였습니다.

    덕분에 한 포스트에 트랙백을 두 번이나 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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