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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3대 미술관으로 불리우는 프라도 국립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토차(Atocha)역에 들러 내일 여행할 톨레도 기차표를 미리 사놓고 프라도로 이동했습니다. 미술관은 역에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인데, 그만 지도를 잘못 봐서 엉뚱한 투르로 한참 돌았습니다. 이날의 실수로 인해, 그 뒤로는 아이폰 오프라인 지도와 GPS를 활용하게 되어, 빠르고 효율적으로 길을 찾아다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 걱정스럽게 만들던 비가 그치니, 해가 반짝이는 유럽의 거리는 걷기에 그저 딱 좋습니다. 장중하고 음울한 중부 유럽의 도시와 달리 마드리드는 강한 햇살과 파란 하늘, 날렵한 건물들이 상쾌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아무튼, 지도보기에 실패한 여파는 큽니다.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늦게 미술관에 도착했고, 팍팍한 다리도 쉬고 마른 목도 축여야 하니 가자마자 카페에서 쉬어야 했습니다. 이래저래 한시간 반 이상을 예정과 달리 날려버리니, 오후에 예정했던 왕궁 투어는 시간상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프라도 미술관에서 충분히 즐기기로 마음을 바꿨지요. 이 또한 넉넉한 일정이 주는 기분좋은 유연성입니다.
프라도에는 대단히 많은 작품이 있지만, 거칠게 말하면 고야(Goya), 벨라스케스(Velasquez), 그리고 엘 그레코(El Greco)의 3인이 메인입니다. 특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은 나중에 보는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작품의 근간이 되는지라 매우 흥미로운 감상이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사람 키를 넘는 대작을 실제로 보는 감상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입니다. 어떤 그림은 살아있는듯한 생동감으로, 어떤 그림은 몰아치는 격정으로 색다른 감흥을 줍니다. 힘찬 붓질 자국을 보면 작가가 바로 근처에 있을듯한 착각마저 느껴집니다. 결코 화보집에서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지요.

아이들도 정말 즐겁게 둘러 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오는 기획전 작품의 양과 질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도 새삼 깨달았겠지요. 온 김에, 실컷 눈에 담고 마음에 채우라고 이야기해 줬습니다.

전반적으로, 프라도는 작품은 많은데 다소 단조로운 느낌도 있습니다. 한 이유는 프라도의 프라이드인, 약탈품 없는 순수 수집이란 점입니다. 다른 이유는 아무래도 미술사적으로 현대 미술 이전에는 유럽미술의 변방인지라 유명화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입니다. 그 두가지 이유로 소수 작가의 다량 작품이 있습니다. 한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자체로 즐겁지만, 다품종의 "교과서에서 본 그림" 찾는 분에겐 덜 흡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쭉하니 늘어진 엘 그레코의 화풍이나, 유명했던 여러 왕과 여왕, 공주의 초상화를 보며 스페인 역사를 더듬어 보는 시간은 매분매초가 충만하게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망치로 맞은 듯한 감동을 받은 고야의 '1808 5월 3일 프린시페 피오 언덕의 학살'은 평생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화집에 나온 사진과 달리 실제 작품은 더 많은 오브제와 레이어, 감동이 있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욕심같아선, 미술관에서 빨리 서둘러 나오면 오후에 굵직한 명소 한 곳은 들르겠지만, 다리 아파 힘들때까지 충분히 관람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늦은 점심을 먹었지요.
엄청난 크기의 레티로(Retiro) 공원을 가로질러 정문 근처에 봐둔 식당이 있었습니다. 미식으로 유명한 북부 스페인 식으로 그릴 요리를 한다는 집입니다.
보틴은 너무 상업적이어서 좀 조용한 곳으로 잡았는데, 여긴 너무 현지스럽더군요. 들어갔더니 떼로 방문한 이방인에 손님이나 종업원이 너무 놀란 모습. 저는 고기 많이 안 좋아합니다만, 체력 보충 겸 육식으로 하루의 체력소모를 좀 보했습니다.

해 저물어 가는 상황에서 적당한 방문장소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면 다들 자 버릴게 뻔하지요. 그래서 어제에 이어 다시 솔 광장(Puerta del Sol)에 갑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유럽의 밤거리인데 그냥 걷기만 해도 좋잖습니까.

게다가, 정부청사가 있어 스페인 도로의 시발점인 포인트 제로가 있습니다. 여기를 밟으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는 소환스킬이 붙어있는 토템으로 알려졌지요. 우리 가족도 막연한 소망을 담아 콕 밟아주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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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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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글의 주인을 상상하는 증거룸을 주시넹욤ㅎㅎ
    제게 만약 한쿡을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면 동네마다 다니며 커피를 맛 보고 그 맛을 기억하려고 짧은 기억력을 늘려볼려고 애쓸 것 같습니다요 하하하
    • 커피 순례.. 이것도 정말 재미난 테마겠네요.
      그런데 유럽 커피는 다소 강하고 진합니다.
      제 아내도 커피 좋아하고 진하게 마시는 타입인데, 에스프레소는 독해서 못먹겠다 하더군요. 일반 커피로도 우리나라 에스프레소 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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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입니다.
딸이 성남시 주관의 학교대항 육상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모란종합운동장엘 가야했지요.

저 어렸을 때야 어린이의 생활반경이 넓었습니다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지요. 예를 들면, 저는 30분 넘는 거리도 걸어서 통학하고, '국민학교' 때도 시내 명동에 차 타고 다녀오고, 중학교는 집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다닐 정도였지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고등학교 아닌 이상 걸어서 10분 넘지 않는 곳에 학교가 있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아파트 단지에 초등학교가 있는 경우도 흔한 편이지요.

그러다보니, 중학생 딸아이 모란구장 보내는 일도 여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입구에서 버스타고 몇정거장 가서 모란역 내린 후 5분만 걸어가면 되는 길인데, 설명하면 할수록 아이는 미궁에 빠집니다. 

하긴, 평생 학교는 10분 안쪽 거리를 걸어다니고, 그 이상 거리는 엄마, 아빠랑 차타고 다녔으니 어딘가를 제발로 찾아가는게 흔한 경험이 아니지요. 암만 지도를 놓고 설명해도 의문만 생기는지라, 결국 지도의 거리뷰 서비스로 길을 시뮬레이션 해줬더니 쉽게 이해합니다.
물론, 지도만으로 설명했어도 잘 찾아갔을테고, 심지어 말로만 설명했더라도 어떻게든 찾아갔겠지만, 그 중간의 불안함은 딸이나 부모나 적지 않았을것도 분명합니다.

어찌보면, 세상 좋아져서 갈 길 미리 눈으로 확인하고 출발할 수 있지만, 이처럼 풀 비주얼(full visual)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이, 나중에 지도를 해독할 수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한자조차 안 써서 잘 못 읽는 아이들이 많은데, GPS와 즉물적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지도라는 복잡한 상징의 해독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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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렇구보니, 요즘 사람들은 넓은 지역을 가 보긴 하지만, 직접 지도를 들고 걸어서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네요. 걸으면 눈으로 들어오는 것들의 즐거움을 모르고 삽니다.

    말씀처럼 즉물적 영상에 익숙하다보니, 몇 번 운전해서 가 본 지역도 항상 내비에 의존하기도 하죠.

    이러다가 생각이 없는 생물로 전략하겠습니다.
  2. 저는 길치지만 미아의 공포를 경험한 뒤로는 지도만 보고도 꽤 찾아가요. 요즘은 이것저것 기계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지도밖에 없었잖아요. 필요하면 다 하게 돼더라구요;;
  3. 오랜만에 들어왔습니다. 수아는 잘 뛰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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