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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린디합을

Inuit 2021. 1. 16. 07:50

굳이 따지지면 잘못입니다.

몇 달 전 스윙 댄스를 시작하면서 스윙과 관련된 여럿 샀습니다. 이 책은 스윙댄스 소재의 소설인가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사 두었습니다. 그러다 차례가 되었고,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은 이거 하나였습니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당연히도, 예술이 반드시 상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올드 미디어에서, 특히 일방적 전달 성향이 강한 예술 작품쯤 되면, 의도된 불친절은 감상하는 사람의 적극적 개입을 유인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과로 사고의 전복이나 깨달음, 발견과 통찰 상호작용의 고리를 완성하는 기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추상화나 현대무용이 그렇듯이요. 언어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영화나 소설도 불친절함을 이용해 독자와 소통을 시도하곤 합니다.

 

손보미의 소설은 상냥함을 가장한 불친절입니다. 매우 섬세한 묘사는 그림을 그리듯 장면에 몰입할 있습니다. 마치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영화로 따지면 예전의 프랑스 영화랄까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중단하고 끝을 냅니다. 열린 결말 정도가 아니라, 없는 결말이랄까요.

 

생각의 여지도 별로 없고, 드라마 1화 후 종영 당한 느낌입니다. 이래도 예술일까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에 너무 친절한 작품들이 많아 오롯이 다른 길을 가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이토록 대중성을 배제한 독선이라면 누굴 위한걸까 생각합니다.

 

답은 대충 알겠습니다. 답답하고 부조리한 글이 줄기차게 청년문학 상등을 수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을 짐작해봅니다. 글쓰기를 사람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거나, 아직도 이런 글을 상주고 히죽 웃는 심사위원들이 많은가보다 싶습니다. 예술의 외양에 부합하니까요. 불친절함을 설명할 때 가치가 올라가는 문단의 한 구석이 있으니까 말이죠.

 

그러고 보면, 평단에서 좋아할만한 장치는 많습니다. <담요>에서 죽은 장의 아들은 <애드벌룬>의 같은 세계관과 이벤트에서는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장이 담요를 건네준 젊은 부부가 <산책>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에 나오는 영화 <달콤한 잠>은 <달콤한 잠-팽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단편으로 쓰였습니다. 같은 장치와 소재, 심지어 인물이 각 단편마다 살짝씩 뒤틀린 평행우주입니다.

 

어쩌면 손보미는 모자이크같은 심상을 의도했을 있습니다. 각각도 의미있지만 전체를 모아봤을 때 매직아이처럼 뭔가 떠오르는 심상말입니다. 하지만 스타일면의 신선함이나 평행우주적 연관, 옴니버스적 연쇄성은, 영화에서 이미 많이 보아 그리 참신하지도 않습니다. 소설에서까지 기대할만큼 우리나라 소설 시장의 저변이 넓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몰입되지 않는 단편들 보다, 책 말미 신수정의 평론을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달까요.

 

Inuit Points 

본질적으로 평론이 수발을 들어야만 온전해지는 예술이 아직도 수요가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다소 단정적이거나 편향적인 리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하고 읽은시간이 조금은 낭비처럼 느껴져, 스스로와 대화하며 이 책의 의미를 홀로 되새겨 봤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깨달은 단편소설의 단점은 적어두어야겠습니다. 단편마다 인물과 세계관이 휙휙 변하기 때문에, 장편소설보다 읽기가 불편하고 몰입이 안되더군요. 전환비용이 컸습니다. 별 둘 같은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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