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맥주, 단번에 정리
벨기에 여행이 가장 행복했던 이유 중 하나는 맥주입니다.
와인벨트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면 맥주 벨트는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체코지요. 위도에 따라 질 좋은 보리냐 포도냐가 다르니까요. 전 지금까지 맥주벨트 5개국 중 벨기에만 못 가봤습니다. 따라서 이번 여행에서는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벨기에 맥주를 다양하게 맛볼 작정을 하고 갔습니다.
German Beer
잠깐, 독일을 제쳐놓고 바로 벨기에가 최고라고?
독일맥주는 순수령이라는 양날의 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중세에 맥주가 대중화되자 재료에 싼걸 섞는다든지 음식갖고 장난치는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었겠지요. 신성로마제국의 바바로사 황제는 맥아, 홉, 정제한 물 이외에 다른 불순물을 넣으면 위법이라 선언했습니다. 당시 술을 만든 맥주 장인이 가죽바지를 입고 자기가 만든 맥주를 부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날 때 의자가 붙냐 안붙냐에 따라 그자리에서 목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강력히 시행했지요. 추후 바이스비어(Weissbier)로 유명해진 바바리아 지방의 밀맥주는 사실 맥주 순수령을 위반한겁니다. 하지만 독일의 장인들은 순수령의 강한 전통위에 맥주기술을 발달시켰습니다. 빵으로치면 밀가루, 물, 소금만 갖고 최고의 빵을 만들어야하는 이치입니다. 따라서 독일맥주는 재료 자체를 다루는 기술은 최고이며 근원적 맛을 내는데 탁월하지만 레시피는 매우 경직되어 있습니다.
뮌헨 맥주의 제왕, Augustiner
Belgian Beer
반면 벨기에 맥주는 자유분방합니다. 레시피로 과일향을 내는게 아니라 실제 과일을 조금 넣기도 하지요. 한때 우리나라에서 유명했다가 맛이 가버린 Hoegaarden을 비롯해 Leffe, Duvel을 맛봤을때 그 신비감이란.. 제법에 있어서 장인적 엄격함은 지키되, 요리를 하듯 다양한 실험으로 찬란한 조합들을 만들어 냅니다.
벨기에 맥주의 백미, 수도원 맥주
속칭 수도원 맥주는 벨기에 맥주중에서도 꽃이지요. 중세를 거치면서 수도원은 수도사를 포용하고 종교적 역할만 한게 아니라, 맥주나 치즈 같은 생산을 담당했습니다. 1차적으로는 수도사의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본적 경제활동이었지만, 대형 수도원은 영리사업으로 접근했고, 시간이 여유로운 수도사들의 좋은 취미와 탐구생활이기도 했습니다. 연원이 그렇다보니 수도원 맥주는 제법의 진솔함과 뛰어난 연구력이 바탕이 되어 최고급 벨기에 맥주를 탄생시켰습니다.
Trappist beer
한편 수도원 맥주가 유명세를 타니 너도 나도 수도원 레시피를 가지고 만들어 품질관리 이슈가 대두됩니다. 그래서 순수한 수도원의 원칙을 지키고 수도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맥주를 "트라피스트 맥주"라 합니다. 현재 트라피스트 맥주는 10곳입니다. 실은, 이번 여행 전까지도 제가 굳게 믿고 있던 숫자는 8개였습니다. 벨기에 6개(Achel, Orval, Chimay, Rochefort, Westmalle, Westvleteren), 네덜란드 1개 (La Trappe), 그리고 오스트리아 (Stift Engelszell). 근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최근에 2개의 수도원 양조장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Orval, Chimay, Rochefort, Westmalle, La Trappe를 맛봤네요.
네덜란드 유일의 트라피스트 맥주 la Trappe
Duvel, Chimay 가격이 후덜덜
성배를 닮은 Orval 특유의 잔
맥주 종류에 비해 날짜가 부족해, 한병사서 맛만 본 아이들
Abbey beer
반면, 직접 수도원에서 만들지 않고, 수도원의 레시피를 인수하거나 라이센스를 받아 대형공장에서 만드는 수도원식 맥주를 "애비 맥주"라 합니다. 레페가 대표적이지요. 솔직히 제가 아주 이뻐하던 레페지만, 벨기에 본토에 있는 동안만큼은 짝퉁쯤으로 여겼습니다.
여기서 반전. 상업성의 집요함은 대중적 입맛에 더 소구하는 방법을 잘 아는듯 합니다. 가장 인기좋은 레페 블론드는 물론이고, 좀더 진하고 강한 맛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레페 로얄 등 다양한 라인업이 있는데, 이게 다 맛있습니다. 특히, 병발효를 해야하는 트라피스트 맥주의 특성 상, 애비 맥주를 드래프트로 먹으면 그 맛은 단연 최고였습니다.
그냥 레페도 맛있는데 로열은 그냥.. ㅠㅜ
Draft
벨기에 맥주 종류가 브랜드만 500개고 각 양조장이 내는 계절별, 제조 방식별 가짓수를 곱하면 수천종입니다. 따라서 매일 한가지 다른걸 마셔도 1년에 모든 맥주를 맛보기 힘든 곳이지요. 하지만 이번에도 새삼 느낀건, '맥주는 역시 양조장 근처가 최고'란 것입니다. 안트베르펜, 헨트, 브뤼헤, 리에주, 알스트 등 브뤼셀 이외의 여러 도시를 갔는데 로컬 비어 중 드래프트를 달라고 하면 그게 필스너 계열이건, 에일 계열이건 상관없이 맛이 좋았습니다.
심지어 암스테르담에서 하이네켄을 생맥주로 맛봤는데 그 맛은 제가 알던 하이네켄이 아니었습니다. 하이네켄 공장에서 먹는 맛은 또 그 윗길이었구요.
하이네켄도 공장에서 마시면 최고급 맥주 안부러운
브뤼헤 특산인데 이름이 좀... Zot
Lambic
마지막으로 브뤼셀 인근에서만 마실 수 있는 람빅을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람빅은 제법이 영국의 에일, 또는 우리나라 막걸리와 같습니다. 자연에 떠다니는 효모를 이용해 상면발효합니다. 람빅이 에일과 구분가는 건 묵은 효모를 이용해 세번의 여름을 거치는 장기 발효를 한다는 점입니다. 처음 마시면 시큼한 느낌에 과일향이 진해 이게 맥주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람빅에 과일맛을 더한 Kriek은 체리주스와 똑 같습니다. 먹다가 사고나는 유형이지요. 벨기에의 유명 요리인 홍합찜과 아주 잘 어울리는 맛입니다. 브뤼셀에 도착한 날 처음 마시고 그 뒤로 못찾다가 결국 첫날 갔던 곳에 다시 가서 한번 더 맛보고야 브뤼셀을 떠났습니다.
술 약한 분들, 특히 조심
홍합의 새로운 경지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단번에 맥주를 사랑하게 만드는 벨기에 맥주. 그 다양한 매력에 흠뻑 빠졌고 풍성했던 여행이었습니다. 벨기에 맥주는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