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
1️⃣ 한줄 평
영화 국제시장의 마이너리그 버전
♓ Inuit Points ★★★☆☆
왜 은희경 은희경 하는지는 딱 두페이지면 알겠더군요. 스토리라인이나 주제의식 따윈 치워 두고 매 문장 눈으로 씹는 맛이 기막힙니다. 시대를 외면하지도 않고 부둥켜 안지도 않는 딱 한팔거리에서, 뭐 하나 쉽게 넘기지 않는 까탈과 위악의 시각이 독특합니다. 냉유머 자체가 재미나서 매우 잘 읽힙니다. 물론 다 읽고 며칠을 끈덕지게 쫓아다니는 유령같은 주제의식도 있습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숨돌리고 보니 내가 5060이네? 하는 독자
- 냉소적 희화화와 블랙유머 연마하고 싶은 사람
🎢 Stories Related
- 은희경 작가는 59년생 고창 출신입니다.
- 뭔가 제 머리에 잘못 입력되어, 주제의식에 경도된 재미없는 문장이라고 착각하고 안 읽던 차
- 꽤 많은 소설가들이 은희경을 모델로 한다고 해서 관심 갖게 되었습니다.
- 그의 냉소와 위악이 초기엔 폄하도 많이 당했나봅니다. '냉소는 문학이 아니다'라는 궤변으로 말이죠.
- 당시 엄숙주의에는, 이 정도 가벼운 문체도 인터넷소설 같은 경멸의 대상이었나봅니다.
은희경, 2001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소설 리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문학적 소양이 없는 게 첫째고, 배울점과 온전함이란 두 축에 기댄 비판적 독서로 진화된 제 리뷰 스타일이 소설과는 맞지가 않는 게 다른 이유입니다. 게다가, 실재하지 않음을 전제한 허구를 줄거리 요약하는것 만큼 무용한일이 또 있을까요. 읽을 사람과 읽지 않을 사람 모두를 위해서도 말이죠.
몇가지 느낀점을 적어봅니다.
문장이 그냥 재미납니다. 깔깔보단 키득키득, 아니면 훗.. 정도의 웃김입니다. 꼼수와 사물, 타인 심리와 세상 이치를 묘사함에 있어 발빠른 아웃복서의 스텝입니다. 파고들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시종 잽을 난사하는 템포와 에너지가 빛납니다.
또한 여성 작가라는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사춘기 소년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합니다. 그 호르몬 덩어리의 근거없는 으스댐, 내일 죽더라도 자존심에 목숨 내놓지만, 막상 몽둥이 그림자만 봐도 움찔하고 꼬리내리는 현실적 비겁함까지.
이야기는 네명의 고등학생이 중년 아재가 되는 세월 동안 얽히고 섥혀가며 사는 이야기입니다. 크게는 소년 시절 한 여학생을 모두 마음에 품고 살던 이야기, 더 큰 이야기는 어른이 되어 브라질로 진출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따지면 브라질 이야기가 메인 요리지만, 앞의 디테일한 심리와 성격 묘사, 개인간 감정의 이력을 모른다면 그렇게까지 재미나진 않을테니 훌륭한 빌드업입니다.
소설속 이십년 간, 유신은 쓰러지고 쿠데타도 일어나고 문민정부가 서도록, 이들은 세상 바람에 쓸리는 낙엽입니다. 물길을 돌리는 돌도, 바람을 막는 나무도 아닙니다.
결국 재미나지는 지점은 여기 같아요. 작가는 네명 아웃사이더의 시각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며 위악적으로 냉소합니다. 독자는 작가의 입을 빌어 현현되는 인물들에 옅은 미소 띄며 동정합니다. 하지만 시대에 버티다 팔랑 쓸려가고, 제딴엔 피하곘다고 요령 피워도 한결같이, 제대로, 자빠지는 저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을 확대한 것에 다름 없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게 책을 덮고 며칠을 따라다니다 퍼뜩 짚이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결국 정의와 공정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연대하는 친구와 가족의 존재를 생각하게 됩니다. 평생 서로를 잡아 끌어 내리는 대야 속 게 같은 관계일 수 있지만, 그렇게 위안하고 기대며 고된 세월을 견디고 지나왔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