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물론
1️⃣ 한줄 평
다는 못 알아 듣겠지만 경이롭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자체로.
♓ Inuit Points ★★★☆☆
ANT(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Actor Network Theory)의 보론에 가깝습니다. 인간 중심의 해석에서 벗어난 ANT 주장이, 행위를 강조하다 생기는 단점을 보완하는 이론입니다. 객체(object)란 개념을 도입해서 ANT의 상호영향은 계승하되, 주체 중심의 얽힘을 객체지향존재론(OOO; Object Oriented Ontology)로 정리합니다. 그리고 객체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동인도회사(VOC)가 객체임을 논증합니다. 별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발상을 전환하는 재미를 좋아하는 분 (인내심 필수)
- 역사는 영웅이 만드는가, 시대가 만드는가에 고민해본 분
- 객체지향 프로그래밍(OOP)에 관심있는 개발자는 관심 끄세요. 꽤나 무관합니다.
🎢 Stories Related
- 저자 그레이엄 하먼은 ANT 챔피언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와 친합니다.
- 그래서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ANT 깔 때는 손에 정을 두지 않고 매섭게 갈겨댑니다.
Immaterialism: Objects & Social theory
Graham Harmon, 2016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저도 맛만 봤지 잘 알지 못하는 복잡한 전투를 어찌 중계할까요. 재미 있었지만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했습니다.
왜 이 책을 잡았는지부터 설명하는게 좋겠습니다. 전에, 어떤 글 읽다 ANT(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Actor Network Theory)에 환호했습니다. 비인간 행위자의 행위성을 인정하는건 인간중심의 도그마에 빠지지 않는 우주적 진리라서 매우 좋아했지요. 퀑텡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는 이런 사변적 실재론에 토핑을 듬뿍 뿌렸고요. ANT를 좀 더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알고 싶진 않았습니다. (;;)
하먼은 ANT의 약점을 파고듭니다.
행위 또는 동사로 규정되는 ANT의 행위자(actor)는 행위의 총합이란 관점에서 취약하다 말합니다. 즉 행위가 바뀌면 끊임없이 존재가 바뀌는 치명적 약점을 지적하지요. 따라서 하먼은 결과론적이며 우발적인 행위자를 좀 더 부각시키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주체 또는 명사의 존재론을 말합니다. 다만 기존의 르네상스적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주동자라서, 객체(object)라 칭합니다. 요약하면, 인간 냄새를 편집증적으로 탈색한 ANT가 신유물론이라면, 이에 대항하는 객체중심존재론은 비유물론이지요. 제목처럼요.
여기에 중요한 개념 하나가 더해지는데 공생(symbiosis)입니다.
단속평형론 관점의 성장을 설명하고 싶은 하먼은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SET(Sreial Endosymbiosis Theory)를 채용합니다. 따라서 객체는 정적인 주체를 넘어 행위자끼리 공생하는 확장개념입니다.
책의 반은 이러한 ANT를 극복하기 위한 객체지향 존재론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이 기발합니다.
뜬금없이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VOC; Vereenigde Oostindische Companie)가 왜 객체인지를 여러 챕터에 나누어 논증합니다. 논증 자체보다 VOC 논증의 이유가 재미납니다.
(전 처음 듣지만 유명하다는) GW 라이프니츠(Leibniz) 논리를 저격하는 목적입니다. 그가 앙투안 아르노와 주고 받은 서한에서, 객체의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네 말대로라면, 동인도 회사의 관리들이 돌더미 이상의 실체적 존재냐 ㅋㅋㅋ'라고 비꼬았나봅니다. 이에 하먼은 왜 VOC가 객체가 되는지를 동인도 회사의 탄생과 성장, 퇴락과 죽음 과정을 살펴보며 객체성을 논증합니다.
전 자카르타 갔을때 군데군데 붙어 있는 동인도회사 로고만 봤지, 인도에 설치한 영국 동인도 회사말고는 잘 몰랐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수마트라에 도착해, 자바섬을 장악하고 향신료 제도를 삼켰는지, 그 과정에서 현지인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같은 역사 외에도, 형이상학적 필터로 같이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동인도 회사 객체의 결정적 공생은 세가지 형태였습니다. 바타비아를 건설한 점, 암본 학살로 향신료 제도를 장악한 것, 인도정세 논고라는 보고서를 발간 한 점입니다.
역사의 주요 변곡점을 어떤 인물의 특성에 종속하지 않되, 인물의 의지와 자율성이 주변환경 뿐 아니라 새로운 단계와 공생을 이루는 점을 짚어둔 점이 독특합니다. 이게 공생 또는 객체의 장점 같습니다. 행위와 영향에 가중치를 두되, 주어의 자율성을 남겨두면 우발적 사건이나 우연을 수용하기 좋습니다.
이외에 비호혜성, 비대칭성, 객체의 생로병사 등 주장의 온전성을 위한 여러 보론들이 있지만, 연구자도 아닌 제게 크게 와닿진 않았습니다
제가 하먼에게 크게 배운건 이렇습니다.
- 관계 자체가 복합 객체다.
- 실재는 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 비 유물적인것은 유물론을 승계하고 극하는 것이지, 반유물론도 유심론도 아니다.
- 점진주의와 단속적 성장이 공존하는게 역사이고 세상원리다.
- 따라서 역사는 하나의 영웅이 이루지도 않지만, 영웅이 행위하며 공생적 객체가 형성한다.
결국 행위냐 존재냐(To do or to be)의 문제이고 이 둘을 화해시키기에, 이 주장이 보다 온전하다 정도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존재자는 끊임없는 '하기'와 '되기'라는 생각을 했고요. 읽다보면 불교의 연기론과도 꽤나 부합합니다. 그리고 전 이게 무심한 우주의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공부가 부족한 제겐 다소 어려운 내용입니다만, 보이는 만큼은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