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Inuit 2024. 9. 7. 07:46

1️⃣ 한줄 

꼼꼼히 음미하면, 까미노 3일치 걸은 정도 깨달음을 얻을듯

 

Inuit Points ★★★☆☆

인터넷 이후 우리가 잃어버린 위주로 더듬어 보기란 기획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책읽다 문득 생각나는 여러 감성과 추억이 많습니다. 예컨대 싸이월드 감성처럼요. 그러나 책의 미덕은 이상입니다. 라떼 이야기 이면에 눈길을 줍니다. 요즘엔 증발한 지루함, 고독, 인내심 같은 개념말이죠. 인터넷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없지만, 우리가 얻고 잃었는지,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볼 필요는 있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자체가 재미났습니다. 줍니다.

 

❤️  To whom it matters

  • 지금 삶이 쳇바퀴처럼 돈다고 느끼는
  • 생산성에 한계를 느끼는
  • 관계가 공허한

🎢 Stories Related 

  • 까미노 여행 마치고 읽은 책입니다. 신기하게 순례길에서 느낀 것들과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 번역은 품질이 나쁩니다. 과한 의역도 눈에 걸리적거리지만, 거꾸로 해석한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

100 things we've lost to the Internet

Pamela Paul, 2021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여행자 수표(traveler's check) 기억나시나요? 읽다 가장 먼저 기억난 사라진 물건입니다.

예전에 여행할 때는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하고, 고액은 부담스러우니 여행자 수표를 끊어가기도 했습니다. 인터넷과는 상관없지만,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려면 나라마다 환전을 해야하기도 했지요. 파운드, 프랑, 마르크, 페소와 리라.

 

책은 플래시백처럼, 각자가 잊고 있던 기억을 휙휙 소환해 냅니다. 작가의 디테일하고 감각적인 문장이 추억여행의 길잡이가 되지요.

 

글은 100가지를 적었지만 크게 부류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첫째, 확실히 편해졌지만 아련한 것들

TV가이드나 수표책, 롤로덱스와 파일로팩스 같은 미국적이지만 익숙해 묘한 향수가 있습니다. 회고적 감상에 당시 느꼈던 이국적 감각까지 더해서 그런가봅니다. 그리고 잘못 찍은 사진, 티켓 잃어버리기, 못받은 전화 같은건 디지털 시대에 좋아진건 분명하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한번 살피는 강박적 습관과 결국 망쳐버렸을 때도, 나름대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태도가 있었던것 같아요.

 

둘째 부류는 잊혀질 권리입니다.

애인(EX) 비롯해 우리의 흑역사는 당시엔 강렬한 감정으로 스파크가 튀어도, 서서히 망각하며 퇴색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젠 다릅니다. 모든 순간이 사진, 동영상, 음성 녹음의 형태로 시간 속에 박제됩니다. 치기어린 모습, 우스꽝스러운 모습 빛바랜 기억 속이라면 미소로 넘어갈 일이, 디지털로 고스란히 복원되면 상황이 다릅니다. 뉘앙스와 숨결까지 그대로 느껴지면서 아름다움과 못남을 온전히 복원해 냅니다. 이게 과연 행복한 상황일까요.

 

마지막이 제게 가장 와닿은 부류입니다. 진짜 사라져버린 가치입니다.

지루함, 고독, 인내심 3대장부터 볼까요. 인류는 내내 지루함과 대적하며 지냈을진대, 이젠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무언가 보고 들을게 있으니까요. 그러니, 고독을 느낄 겨를도 없죠. 주의를 스마트폰에 잡아 매어뒀으니까요.

결과 우린 고독하고, 지루해졌습니다. 없이는 혼자 노는 법도, 기다리는 법도 모릅니다. 제가 까미노에서 매순간 겪었고 절실히 깨달은 지점입니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외로운데, 신기하게도 재미를 찾고, 결과적으로 즐겁습니다. 사람이 귀해 느슨한 연대도 강력해서 안온합니다.

 

핵심은 '현재에 존재하기(being in the moment)'입니다.

 

우린 몸만 여기 머물지 마음은 떠돕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여기와 고장을 빛의 속도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곁에 사람을 두고도 멀리 있는 사람과 문자나 좋아요를 교환하고 있지는 않나요. 진짜 지금-여기에서 사는 방법을 깨달으면 삶이 풍부해지고, 감정의 밀도가 높아져 행복한 삶이 됩니다. 까미노에서의 깨달음을 다른 언어로 확신 시켜준 책입니다.

 

제목의 '유실물' 책의 방향을 호도하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책의 교훈을 깊이 새기는 사람에겐 분실물 센터의 유실물 같은 느낌이 들겁니다. 잃어버린 중요한 물건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어 감사한 감격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