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공 그리고 무상과 무아
1️⃣ 한줄 평
불교가 이렇게 멋진 고대의 철학이었다니!
♓ Inuit Points ★★★☆☆
불교의 핵심 교리인 공(空)을 설명합니다. 전 이태껏 공이 텅 빈 건줄 알았습니다. 만물이 연기(緣起)하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없습니다. 자성 없어 공하니 모두 변하는게 무상(無常)입니다. 불교 교리를 현대 철학의 도구로 꼼꼼히 논증합니다. 이제서야 불교의 교리가 어떤건지 느껴졌고, 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웃긴 영화제목이라 생각하는 분
- (저처럼) 불교는 살생금지하는 채식 종교 정도로 생각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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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홍창성 교수는 서양철학 기반으로 미네소타 대학에 재직중이며 동서양 철학을 가르칩니다
- 아내 유선경 교수도 미네소타 대학 철학과에서 가르치며, 동물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바꿨다 합니다
- 저자는 불자의 마음에 철학하는 학자의 도구를 사용해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냅니다.
- 그래서, 한국의 승려 대상으로 철학적 관점의 불교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홍창성, 2020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제 할머니가 독실한 불자셨던지라 어려서부터 절집과 스님은 익숙합니다. 그래서 섣불리, 불교를 안다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중생을 살핀 보살님, 부처님의 이야기들, 고기와 자극적인걸 안먹는 절밥, 산속 고즈넉한 산사 뭐 이런 심상에 얽혀 있었지요.
그러다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불교의 철학은 모든게 변한다는 것이다'라고 한마디로 선언한 영문 서적을 본거죠. 당시 아들이 군대에 가, 불안하고 보고 싶어, 마음에 지옥이 들어 앉은 상태여서 제겐 확 와닿았어요.
모든게 변하는데 이게 그리 슬플 일인가, 몰랐던것도 아닌데.
놀랬던건 제 삶의 열쇠가 되는 답을, 제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불교에서, 한마디 문장으로, 게다가 서구 저자의 글에서 읽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후로 이쪽이 궁금해 기웃거리다가 추천을 받아 읽었고 대단히 만족합니다.
책은 뼈대가 간소해 강력합니다.
1. 모든 것은 연기한다 = 자성이 없다
만물은 서로 인과나 관계로 얽혀 있다. 스스로 존재하고, 고립되어 정의되는 자성은 없다.
2. 자성없는 걸 공이라 한다
공이란 비어있음이 아니다. 있는것도 없는 것도 아닌 묘하게 나타난다. (非有非無妙有)
그때 드러난 현상을 환(幻)이라 한다.
3. 무상: 만물은 변한다
자성 있는 건 없고 모두 얽혀 있어 공하니, 어느 조건 하나라도 변하면 따라서 변한다. 그래서 무상하다.
책은 이 뼈대를 대상으로 서양 철학의 도구를 사용해 논증합니다. 귀류법을 쓰기도 하고 연역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논리를 깨려면, 서로 의존하며 얽혀있는 연기를 깨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마음가짐의 영역입니다. 사악하고 열등한 결론이 아니라면 연기한다는 논증을 공들여 깨어 무슨 소용일까 싶습니다. 왜냐면, 연기한다는걸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너가 돌에 걸려 넘어진 원인은 돌부리가 아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건이 원인이다.
이 묘한 말이 연기의 단편입니다. 돌 자체에 넘어짐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성이 있는게 아니죠. 돌은 돌이고 나는 나인데, 우연히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만나, 부주의와 작용 해 넘어진겁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죠.
즉 인연과 인과를 포괄하는 연기(dependent origination)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세상 대하는 눈이 온순해질 것 같습니다. 살생을 저어해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도 짐작이 가고요.
공이 텅빈게 아니란 걸 안 것도 충격적 배움입니다. 무가 아닌 공, 어떤 환도 담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태지요.그래서 공은 빈듯 꽉찬 느낌입니다.
마지막 무아는 결이 달랐습니다. 자성이란 개념이 없다는 점을 한번 더 못박으려합니다. 나, 영혼, 자아가 없음을 설파합니다. 붓다가 브라만 교를 극하려 지은 설법에서 시작해, 자아나 영혼(atman)이 없음을 논증합니다. 이는 자성 없음이고요.
이게 재미난건 최근 몇년간 나온 뇌과학의 발견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이죠. '내가 된다는 것'에서 자아의 뇌내 위치에 대해 내린 결론은 감각의 부산물로 느끼는 자아감각이란 거죠. 불교가 최신 과학 이전에 느꼈든지 아니면 과학적 연구에 기대어 설명력을 강화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난이 고작 6천년전에 창조되었다는 견강부회보다는 더 유용하니까요. 자연과 삶이 같은 토대에 설 수 있는 유연하고 심원한 구조란 점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논증을 일일이 따지지 않으면 무리없이 잘 읽히고 깨달음이 많은 책입니다. 하지만 더 큰 과제는 이 지혜를 어찌 삶에 녹일지 같습니다. 특히 5온(五蘊, 色受想行識)은 제가 천착하는 주제인 인성(personality)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비, 열반 그리고 천태와 화엄을 말했던데, 저자의 다른 글도 관심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