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집(Casa Dali)은 까다께스 해변에서 되짚어 나와 언덕하나만 넘으면 됩니다. 1km가 채 안 되니 15분이면 충분히 걸어갈 정도입니다.

하지만, 길찾기가 그리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관광객도 없어 이 길이 맞는지 혼자 의구심도 품고, 정 안되면 지도도 보고, 헛갈리면 길가 아저씨에게 맞는지 물어도 보며 쉬엄쉬엄 갔습니다.

중간에 아담한 교회가 있는데, 어찌나 영성이 충만한지 길가는 객이 잠시 들렀을 뿐인데도 마음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 달리의 마을 까다께스라면 영성이라기 보다는 감성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닻에 철사로 얼기설기 엮은 예수가 세세히 조각한 예수상보다 더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런 마을이니까요. 

달리의 집은 멀리서 봐도 단연 눈에 띕니다. 계란을 얹어 놓은 그 모양도 독특하지만 집 외관이 어디 한구석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달리의 집은 가이디드 투어를 하기 때문에 예약 시간 전에 도착해도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까사 달리 근처의 바닷가를 돌아봤습니다. 항구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바닷물이 너무도 맑습니다. 시냇물 같습니다.

달리의 집은 두어명의 안내원이 그룹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해줍니다.
재능이 넘치는게,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까딸루냐어, 까스띠야어 등을 구사하면서 각지에서 온 사람과 수다를 질펀하게 늘어 놓습니다.

까사 달리 투어는 생각보다 길어서 한시간 가량 진행됩니다. 제 의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까사 달리가 궁금하긴 했지만 고작 세시간 머무는 까다께스입니다. 까사 달리 투어에 한시간, 이동과 대기에 한시간을 쓰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습니다. 투어가 끝날 무렵 저는 무리에서 서둘러 빠져나와 다시 항구로 향합니다. 바닷가를 좀 더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한대 남은 피게레스향 버스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항구는, 금빛 채색으로 또 다른 정서를 자아냅니다.

오늘 일정을 돌아보면, 운이 좋아 까다께스에 간신히 왔다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까사 달리에 들른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까사 달리가 볼만은 하지만, 세시간의 여유 중 두시간이나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달리 매니아라면 열일 제치고 가볼 만 합니다. 달리의 작업공간과 삶을 고스란히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날 아침은 기차시간 때문에 굶고 점심을 넉넉히 먹었지만, 그 이후로 계속 예정된 시간에 쫓겨 종일 제대로 먹은게 없습니다. 까사 달리에 안 갔다면 바닷가 음식점에서 바다를 보며 해산물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니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비현실적인 마을 까다께스입니다. 먹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프고, 다친 다리로 걸어도 그리 아픈 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시간 넘게 피게레스가서 다시 두시간 넘게 바르셀로나로 갈 일정이라, 버스 터미널 근처 슈퍼마켓에서 칩과 맥주 한캔을 사서 배를 채웠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충만합니다.

계획하지 않은 일정, 까다께스는 그 의외성만큼이나 재미난 여정이었습니다. 



WRITTEN BY
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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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곳을 못 가보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그래도 이렇게 생생히 전달해 주시니 좋네요 ^^
    • 좋긴 좋은데 가는길이 참 험난하네.
      명소가 아닌 곳을 여행하는게 쉽지 않다는걸 새삼 깨달은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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