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it Blogged
캣콜링 본문
1️⃣ 한줄 평
난해하다. 그럼에도 부여잡고 끝까지 읽게 되는 묘한 매력.
♓ Inuit Points ★★★☆☆
난해한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취향임을 전제로, 혼자만의 시상에 취해 개념을 숨기고 유희하는 시들을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소호의 시는 세심히 의도한 난해라 괜찮았습니다. 장난하듯 숨기듯 뒤틀어 어려운게 아니고, 다 쓰지 못하는 자기 억압 때문에 난해해지기 때문입니다. 다 적을 수 없어 서사가 뭉텅뭉텅 잘려나가거나, 가해자-피해자가 가족관계에서 난수화되다보니, 대상을 동일시하거나 자아를 분리하기 때문에 삼자가 읽기에 어렵습니다. 반면, 안타깝게 써간 마음이 느껴지니, 난해해도 이해하려는 양방향 작용이 생깁니다. 다 읽어도 다 이해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이런 전복적 발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별 셋 주었습니다.
❤️ To whom it matters
- 가족이 지옥이다 싶은 분
🎢 Stories Related
- 이소호 시인의 본명은 경진입니다. 동생은 시진입니다.
- 시집 전편에 경진과 시진의 이름 위에 쓰인 시가 많습니다.
- 시집은, 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이소호 2018
🗨️ 좀 더 자세한 이야기
이 시집을 게으르게 읽자면 페미니즘 시입니다. 제목부터 느낌이 팍 옵니다. 제 생각엔 시들을 페미니즘에 가두어 읽는건 부분적인 것 같습니다. 묵직한 억압의 구조와, 눌린 자들끼리의 보대낌과 생채기입니다. 억압의 주체는 가부장 뿐 아니라, 비가난, 비도덕, 반가정, 탐닉주의 등 무수합니다.
여자로서, 자녀로서, 언니로서, 애인으로서, 후배로서 저자가 직접 경험한 고통과 상처를 직설적으로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발화가 꼬여 있습니다. 다 말 못하고 듬성거리거나, 관찰자가 가해자로 둔갑해 연대와 죄의식이 표현됩니다. 부러 꼬아둔게 아니라, 말하기 힘들어 꼬여 버린 느낌이지요.
그래서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현대시의 자의식 가득한 추상화랑도 살짝 거리가 있습니다. 일견 추상이되, 결핍된 구상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김승희 시인은 1970~1980년대가 '시인의 꿈과 독자의 꿈이 일치하는 희귀한 시대'였다는 말이 해설에 있습니다. 이후로는 시인이 다원화된 개인적 내밀성을 갖고 함께 꿈꾸지 못하게 되었고요. 이소호의 개인적 내밀성은 함께 꿈꾸진 못해도, 꿈을 통해 교감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과 달리 형식적으로도 재미난 시들이 있습니다.
- 우리는 낯선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 글자가 겹쳐지게 인쇄되어 있음. 시인이 동생에게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맞고 글자가 둘로 보였던 경험을 재현
- 전의를 위한 변주: 단어들을 스티키 노트에 적어 붙인듯 구성된 시
-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자간을 극도로 줄여 인쇄. 심정이 느껴짐
- 반사경: 눈동자 모양 안에 적은 시
- 좁고 보다 비좁고 다소 간략하게: 집 모양으로 글자를 쌓은 시
- 지극한 효심의 노래: 반복되어 다시 드러나는 '네'
- 합의합시다: 희곡의 형식
- 사과문: 사과문의 형식
끝으로, 제가 좋아서 줄쳐뒀던 구절들을 모아봅니다.
해변, 모래알들이 알알이 모여 영원히 하나가 되지 못하는 곳
나는 네 침대에 놓인 긴 머리카락 보다 말이 없다
당신은 잘린 손톱처럼 외롭다
나는 우산에서 쫒쳐난 어깨처럼 젖어 있었다
당신은 나홀로 종이위를 걷게 하고..
나는 따옴표를 열고, 너의 문장으로만 울었다
이 빼기 일은 영
아빠는 모두를 사랑한단다. 죄라면 그게 죄란다.
(중략)
엄마는 가족을 사랑한단다. 죄라면 그게 죄란다.
언제부터 흉터가 우리의 놀이가 되었을까
똥은 휴지 다섯 칸, 오줌은 다 같이 싼 뒤에 한꺼번에 내렸다. 이놈의 집구석은.
언니는 언니를, 나를, 나란 애인을, 동생을 팔아 시를 쓰고 고작 삼만원을 벌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