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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지효

日常 2011.10.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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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잘 마치고 어제 퇴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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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살 찢고 뼈를 깎고 무른 뼈를 다듬는 수술이 어찌 가볍겠습니까만, 그래도 의사선생님의 '가벼운 수술'이란 말에 과대한 희망을 걸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깬 후, 좀 괜찮겠다 싶어 화장실 가려 다리에 힘을 준 순간, 순수한 고통의 세계를 맛 봤습니다.

인어공주가 처음 다리 생기고 걸을 때 유리 위를 맨발로 걷는 고통에 비했던 동화가 순식간에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게 제법 현실성 있는 마법이구나..

그리고 한 다리에 힘을 줘 딛지 못하는 한,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몸으로 배웠습니다.

***
원래 예정했던 연골성형술은 작게 살을 찢어 내시경을 넣어 시술할 예정이었습니다.

열고 보니 상태가 더 나빠 연골에 구멍을 뚫어 재생을 돕는 미세천공술을 추가로 시전했다고 의사는 말합니다. 그래서 아프기도 꽤 아프지만, 수술 후 발에 힘주어 걸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
지척에 있음에도, 유럽의 도시보다 먼 어디 쯤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내 연골은 그간의 경시와 설움을 한번에 복구하려는듯 보입니다. 하루 24시간 쉴새 없이 '나 여기 있었어요'를 각인 시켜줍니다. 심지어 잘 때도 잊기를 한시간 이상 허락하지 않습니다.

연골의 작은 부분이 시원치 않으니 한 다리가 성치 못하고, 서고 걷지 못하니 온 몸의 기능이 원초적으로 변합니다. 

하루에 제법 여러가지 일을 하던 저는, 이제 하루의 목표가 단순해 집니다.
일어나 앉기,
(금식 풀려) 물 마실 수 있기,
(죽 떼고) 밥 먹을 수 있기,
소변 볼 수 있기,
배변하기...

걷기의 위대함과 연골의 가까운 위치를 망각한 죄값으로, 다시 한살 시절의 진리와 법칙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 나갑니다.

*****

가장 기뻤던 순간은, 목발이 지급된 날입니다.

목발 덕에 설 수 있게 되고, 풀척풀척 움직일 수 있게 되니 어찌나 기쁘던지.
생활 반경이 침대위에서 화장실로, 복도로 급격히 늘어난 순간이기도 합니다.

******

아프면 환자만 아픈게 아니라, 온 식구가 고생입니다.

아내는 하루종일 붙어서 온갖 수발 들어주고, 간간히 짜증까지 받아 줍니다.
딸은, 학원 가기전에, 학원 다녀와서, 정해진 일상처럼 아빠 상태를 살피고 갑니다.
아무리 안 와도 된다 말려도, 누구 닮았는지 고집이 셉니다.

*******
가장 느꺼운 순간은 아들이 이틀 밤을 간병해준 것.

밤에 물도 소변도 혼자 힘으로 볼 수 없던 시기, 낮에 하루종일 와 있던 엄마와 교대하여 밤새 아빠 곁에서 잔 시중을 들어 주었습니다. 

작년 맹장 터졌을 때 아빠가 이틀을 꼬박 지켜준 적 있는데, 그새 컸다고 아빠 시중을 듭니다. 그 마음이 갸륵하고 그 성장이 대견합니다. 반포(反哺)로 효를 행한 까마귀가 자꾸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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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26개가 달렸습니다.
  1. 앗 퇴원 축하합니다~~
    얼른 나으세요^^
    • 고맙습니다, 띠용님.
      오늘 기사 보다 보니 혼다 선수가 저랑 같은 부위의 상처로 시즌 아웃 되었더군요. 반월상 연골판... -_-
  2. 저도 가족들 병수발 들면서 짜증 내는 걸 다 받아주지 않은 걸 반성해봅니다... 환자 본인은 정작 얼마나 아프고 만사가 짜증스러웠을지 생각하지 못했네요.
    • 그게 지나고나면 딱 쉬운 일인데, 당시에는 서로 예민하기 십상인 일이지요.
      그래도 혼자였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보면 가족이 힘들때 얼마나 소중한지 더욱 잘 알게 됩니다.
  3. 큰 일이 있으셨네요. 수술이 잘되었다니 기쁜 소식이네요.
  4. 경과가 어떠신지요? 다른것보다 정상생활 + 라이딩생활이 가능하도록
    회복이 되어야 할텐데요 ^__^;;; 올 겨울은 자전거 잠깐 멀리 하시고 재활에
    힘쓰셔야 할듯 합니다 완쾌를 기원합니다 ^^;;

    (겨울에 쉬시면 포스팅이 늘어나려나요 ( --) ;;; )
  5. 저도 엊그제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부러져, 반깁스를 하고 집안에서도 목발을 집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니, 그저 동변상련. 전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얼른 두발로 걷고 싶네요. 쾌차하시길.
    • 아.. 많이 불편하시겠네요.
      특히 반깁스가 보기보다 매우 제약이 많지요..
      저도 집안에서 목발 없이 화장실도 못 갑니다. -_-
  6. 얼른 쾌차하세요. ㅜ.ㅜ
  7. 불편이 크시겠네요.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8. 얼른 쾌차하시길 바랄께요.
    많이 힘드시겠네요. (댓글을 보니 이제는 그나마 좀 나아지신 듯 하지만...)
  9. 빠른 쾌유를 빌게요.
    " 다리에 힘을 줘 딛지 못하는 한,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부분이 크게 맘에 와닿네요.
  10. 으 이럴수가..회사분과 얘기를 나누다 inuit님이 문득 생각나서 와봤는데 이렇게 수술을 하셨군요. 대수술이었나봅니다. 얼른 나으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11. 허걱!!!
    이 무슨~~~@.@
    얼른 나으셔서 막 뛰어다니세요~~^^
    따님도 아드님도 참 이뻐요!!^^
  12. 저런, 안와본 사이에 큰 일을 치루셨네요. 아직 쾌차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얼른 회복하시길 빕니다. 전 이누잇님만큼은 아니지만 어제 집밖을 나서다 발목을 접지르는 바람에 반깁스 상태로 절룩거리고 다니고 있습니다. ㅜㅜ
    • 아.. 반깁스면 꽤 다치셨네요.
      안정을 취하고 무리하지 마세요.
      발목이 잘 안 낫습니다..
  13. 뒤늦게 알게 되었네요. 빛의 속도로 빠른 회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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