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해당하는 글 4건

주경철

이런 외국 소개 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편협되거나 편향적이지 않아야 한다
-일반 관광서에 나오는 내용보다 국소적이라도 깊이를 원한다
-가능하면 문화를 알고 싶다
-특히 현지인의 정서를 알고자 하는게 가장 크다
-바라건대 역사가 뒷받침되면 이해가 쉽다
-더 바라자면, 잘 읽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기준에 적절히 부합한다. 균형이 잡혔다. 고매하게 딱딱하거나, 어설프게 감상에 빠지기 쉬운 현직 교수의 책 치고는 웰메이드다. 책은 크게 두 파트다. 전반부는 네덜란드의 문화를 다룬다. 후반부는 역사다.

실은 이게 쉽지 않다.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네덜란드는 이래.. 라고 말하긴 쉬워도,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서적에서 어느 나라의 문화를 똑똑 부러뜨려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소심하면 두루뭉술해지고 내지르면 편향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 특유의 감각으로 다양한 소스에서 확인 가능한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네덜란드 문화를 세심히 추렸다. 네덜란드 전역을 여행한건 아니지만, 몇 차례 스키폴에 내려본 나로서도 다 수긍이 간다. 많은건 새로 배웠다.

Verzuiling. 이게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지주화(columnization)라고 번역되는 네덜란드 특유의 정서다. 종교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각자는 마음의 기둥(zuil)을 지니고 있고 이를 통해 사회의 틀과 역동성을 유지하는 네덜란드 특유의 정서다. 페르죄일링을 알고 네덜란드 역사와 문화를 보면 훨씬 잘 읽힌다. 

또한 우리 스스로를 아는데도 도움이 된다. 

쇠젖메주 무슨 뜻일까? 

치즈를 일컫는 우리 옛말이다. 또는 졋떡(ㅼㅓㄱ)이라 불렀단다. 어감이 이상하지만, 꽤 수긍가는 번역이다. 

화란. 말 나온김에 네덜란드의 한자 표기인 화란도 언급하자. 화란은 알다시피 홀란드의 음차다. 중요한 점은 홀란드가 네덜란드의 영어식 명칭이지만, 실제 홀란드는 네덜란드의 중심 주일 뿐이다. 누가 한국을 경기라고 부르면 황당하겠다.

그 외에도 자잘한 재미가 많다.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리남이 지금의 뉴욕과 바꾼 결과의 땅이랄지,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면 네덜란드인은 네덜란드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여자친구 만나기 전에 일(work) 부터 하라든가 아낀 1센트가 번 1길더보다 낫다는 경제관념, 무엇보다 오랜 지방연합의 특성상 끝없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국민성 같은 부분은 알아둘만 하다.

최고의 미덕은, 책 전반에 배여있는 시선이다. 자본주의의 요람인 네덜란드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지나치게 숭상하지도 않고 폄하하지도 않는 시선이 참 따습다. 시대 상황은 이해를 하고, 공은 공대로 인정하면서, 자본주의의 성립에 피흘리며 고생한 네덜란드와 식민지의 기층민에 대한 꼼꼼한 배려는 책을 덮고도 한참 생각나는 그윽한 향기다.

Inuit Points 
2003년작이라 근 10년의 공백이 아쉽다. 최근 판이었다면 주저않고 별 다섯을 주었을게다. 실상, 나라 전체가 변할만한 시간이 아니라 책의 대부분은 그대로 유효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21세기 초입의 정서들이 읽는 동안 자꾸 눈에 밟히는건 어쩌기 어렵더라. 전에 "교수님 책"에 당한적이 있는지라, 깔끔하고 경쾌하게 잘 써주신점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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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돼..

이기중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는 순간, 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다음에 쓰고 싶었던 책이 바로 맥주에 관한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지만, 단연 맥주 애호가를 자처하는 저입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맥주는 솔직히 곁가지 중에서도 방계 쯤 됩니다. 라거 계열이지만, 거품이 가볍고, 홉의 맛을 잦혀서 맥주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맥주는 와인보다 열위의 카테고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천 달러 넘는 와인은 많아도 맥주는 그렇지 않지요. 게다가 와인은 빈티지니 떼루와니 갖은 스토리로 스스로를 신비화하지만 맥주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냥 거품있는 술 정도만 압니다. 사실 그 맛의 넓은 스펙트럼과 다양한 깊이는 와인과 비교가 안되는데 말입니다. 원료로만 따져도 보리와 밀이라는 큰 두 축이 있어, 맥주는 그 맛의 다양성이 풍성합니다.

책은 매우 폭 넓은 맥주의 범주를 차근히 좇아가면서 정리를 했습니다. 가장 재미난 컨셉은 50일간 맥주 여행을 따라 내용을 적은 것이지요. 맥주 벨트라 불리우는 북부 유럽 6개국 (아일랜드,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체코)의 유명 도시에서 맛 볼 맥주를 적어놓고 하나하나 퀘스트를 수행하듯 시음하고 그 정취를 적었습니다.

무작정 마셔대는게 아니라 인류학 전공자답게 미리 맥주의 지도를 가설로 머리에 넣고 직접 체험을 통해 실제 지도를 완성합니다.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지만, 맥주의 한국적 등가는 막걸리입니다. 와인은 과실주고 맥주나 막걸리는 곡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막걸리를 'Korean rice wine'이라고 부르는건 어폐가 있지요. 그 곡물도 밀을 넣느냐, 보리를 넣느냐에 따라 맛의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싹튼 보리 (malt, 맥아)와 홉(hop)의 혼합으로 달콤한 부드러움과 상쾌한 쌉쌀함이 밸런스를 갖추게 됩니다.

지역적으로는 에일이 강한 영국+아일랜드, 필즈너 계열의 라거가 강한 독일과 체코, 그리고 밀맥주를 포함한 모든 맥주가 맛있는 맥주의 아티스트 벨기에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라하는 악마의 맥주 두블(Duvel)을 포함해 레페(Leffe), 후가르든(Hoegaarden) 등이 다 벨기에 출신이지요. 물론 마시는 빵 기네스나, 눈물나게 맛좋은 뮌헨 밀맥주 아우구스티너까지 책에 망라되어 있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책은 내내 먹음직스럽지는 않고 오히려 백과사전처럼 퍽퍽합니다. 나중엔 뒷심이 달리는지 김빠진 맥주마냥 지루하게 나열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맥주의 세계를 제대로 다룬, 정교하고 상세한 지도를 얻었다는 것으로도 무척 기쁩니다. 저는 굳이 책을 안 써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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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등. 그런데 저 책도 일단 마셔봐야 실감이 날 듯 해요;;;^^
  2. 흠.. 유럽 쇼핑 견문록이라던가.. ㅡ.ㅡ;;;
  3. 맥주가 입으로 마셔봐야 아는 음식이라서 책으로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실감은 덜하겠네요 히히;;
    • 띠용님도 맥주 맛을 좀 아시는군요. ^^
      모르는 맛을 실감나게 해주기보다는 맛들 사이의 위치를 자리잡아주는 책입니다. ^^
  4. 음주는 목 하면서 음주자리는 쪼아라하는 토댁입니당.
    넘들은 제가 아주 잘 마시는 줄 안다능..ㅋ
    근데 맥주는 한 모금에 얼굴 빨갛고 소주는 두 잔에 뻘겋게 되지요..우쨰 정신은 말짱한데 얼굴색이 바뀌는쥐~~~

    울 inuit님~~~
    오늘도 즐거운 날 되셔야되욤!!'
    요즘 이 토댁이 게을러 온라인주문을 팍팍 넣어드리지 않았더니 down되셨군요..^^
    오늘부터 또 팍팍 넣어드릴테니 UP UP 하세욤~~~아자!!
  5. 와~ 좋은 책이군요. 저도 맥주를 꽤 좋아하거든요.
    부어라 마셔라 하는 한국의 호프집 맥주 말고,
    뭐...이름은 잘 모르지만 맛난 다양한 맥주가 좋아요.
    일본 맥주 소개하는 책은 없나요? 지금 일본에 있어서..ㅎ
    • 네. 저도 들이 마시는것 보다 맛난 맥주 음미하는게 좋습니다.
      일본은 딱 아사히 기린 삿뽀로 아닌가요. ^^;;
      책은 잘 모르겠습니다.
  6. 저도 맥주에 대한 블로그를 하고 싶었는데,, 이 책도 선물로 받았고, 살찐돼지의 사진관 님의 블로그를 보고 접었습니다. ^^ 링크 붙입니다(세계 맥주 시음 / 소개에 대한 블로그) http://fatpig.tistory.com/185
  7. 어쩌다 한번 얻어먹은 벨기에 맥주는 정말 맛있다는 이미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 책도 구입을 해야겠군요. 감사합니다.
    • 네. 제게 위 여섯 나라 맥주중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전 주저없이 벨기에 맥주 고릅니다. ^^
  8. 그렇죠. 맛의 풍성함으로 따지면 맥주가 와인보다 월등하죠. 미국에도 벨기에 후예들이 만든 괜찮은 동네맥주 꽤 있습니다.
    • 저도 미국에서 수제 맥주에 가까운 브루어리 맥주를 마셔봤는데 참 좋았습니다.
      특히 미국은 와인보다 맥주랑 친한경향도 있고.. ^^
  9. 저도 '유럽 맥주 견문록' 읽으면서 유럽여행 지름신과 접신했습니다. ^^;
    맥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10. 암만 마셔도 술맛은 모르겠어요..
    -_ㅜ 와인이나 맥주나..맛있다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11. 맨처음에 쓰신 책은 무엇인가요 ㅎㅎ
  12. 하늘아래 새로운 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게 이미 만들어져있고 내가 만들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상황을 종종 겪고 있네요.

    전 곡주보단 과실주를 좋아해서 에일보단 사이다(Cider)쪽이 더 좋던데요. :)
  13. inuit님 팬입니다..ㅎㅎ
    맥주에 대한 inuit님의 고견 또한 궁금한 데 책을 안쓰신다면 다음 주제가 궁금하네요..^^
    • 고맙습니다. ^^
      다음 책은 이리저리 생각만 굴리고 있어요.
      어느날 계시처럼 토픽이 떠오를거라 믿으면서요. -_-;;

      종종 찾아와 이야기 나누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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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Culture/Review 2010.01.02 22:00
제목에서 한 몫 챙기고 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제목에서 밑천 털고 가는 책이 있지요. 이 책이 그러합니다. 작년부터 갖고 있던 책이지만, 그 밋밋한 제목 탓에 시덥지 않은 행복론이라 생각했습니다. 거들떠도 안 봤지요. 먼저 읽은 아내의 평이 좋아서 읽어 보리라 다짐만 한게 또 반년입니다. 작년 말 출장길에, 주간지 집듯 가벼운 마음으로 가져간 책인데, 왜 이제야 읽었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Eric Weiner

(Title) The geography of bliss

Theory of happiness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상업의 목적에 충실히 굴복한 학문은 이미 행복학을 하나의 아카데미즘으로 수용했지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시리즈나 긍정심리학의 핵 길버트 씨의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도 그러합니다.

물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실제로 존재하고, 누군가가 행복해지는건 도덕적으로 긍정할만한 개선이므로 인류 후생 차원에서 행복학의 의미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리뷰(몰입의 즐거움,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에서 지적했던 거북함들처럼, 행복 연구 자체를 위해 행복을 미시적 수준으로 끌어내려 도출한 결과를 다시 거시적 인과의 총합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그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든 학문적 포장지에 싸서 주관적 복지(subjective well-being)라 부르든 말입니다.


Happiness Reporter
그런 면에서 에릭 씨의 시도는 차라리 박수칠만 합니다. 특파원으로서 오랜 기간 나쁜 소식 전해서 연명했던 자신의 부채의식을 상환하자는건 명분이라 쳐도, 지구상 행복한 나라, 안 행복한 나라를 직접 방문하고 저자거리로 뛰어 들어 사람속에서 부대끼면서 행복의 본질을 캐보는 책의 컨셉은 장하고 의미 있습니다.


Geography of happiness
아래의 리스트는 책에 나오는 저자가 방문한 나라들입니다. 한줄 요약은 저자의 글을 제 나름으로 간추린 내용이고, 괄호 안은 제 느낌입니다.
네덜란드: 자유와 관용이 행복요소. (하지만 불구속이 행복의 등가일까?)

스위스: 엄격한 규칙하에 정돈된 삶. 그 기반위에 정립된 신뢰가 행복요소. (더할 나위 없는 행복보다는 광범위한 만족. 국민 평균이 좋을 나라)

부탄: 효율과 경제성장을 외면한 은둔속의 고요. 국왕은 국민행복지수(GNH)를 통치잣대로 삼음. 자연과의 교감과 공동체적 관계, 신뢰가 행복요소. (통치술의 책략도 보이지만, 행복의 기본요소에 가까운듯)

카타르: 벼락같이 생긴 졸부의 돈이 유일한 행복요소. (역사 없는 돈은 공허하고, 관계가 불안정한 돈은 각자를 고립화시키는듯)

아이슬란드: 단일민족의 가족적 상호의존성, 바이킹의 순수성을 전승한 언어에 대한 자부심, 공동체적 공유의식과 실패에 대한 전폭적 관용 (추위가 오히려 행복의 기폭제가 된 경우)

몰도바: 역사적 정체성 모호, 러시아와 관계에 기인한 국가적 자부심 몰락, 주위 국가에 대한 질투, 족벌주의와 부패, 가난, 징크스로 만연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무력감, 무례, 배려심 부족, 이기주의, 신뢰와 우정을 폄하, 비열과 속임수를 보상하는 문화, 친절이 들어설 공간이 없는 각박함이 불행요소. (많아 보이지만 서로 엮인 현상이고 악순환을 끊어야 모두가 개선되는 종류의 문제)

태국: 욕구와 충동을 인정하는 개방성, 공동체를 위한 미소, 번잡한 생각에 빠지지 않는 문화, 재미(사눅)가 우선시 되는 문화, 공동체를 의식한 냉정한 가슴(자이옌)과 고맥락(high context)적 배려가 행복요소. (하지만 그 표면적 행복속에 억눌린 감정은 불씨 같다. 폭력과 살인률, 가끔가다의 쿠데타를 보면. 그래도 마이펜라이[신경 끄자]는 배우고 싶은 주문)

영국: 투덜거림으로 스트레스를 해소. (행복한 삶보다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나라)

인도: 모순을 인정하는 태도, 좋은 것만 취하는 선별적 포용성, 이에 따라 즐기게 되는 예측 불가능성이 행복요소 (option 적 접근방법이 있다면 risk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세상)
이 중, 붉은색으로 표시한 나라는 좀 다른 경우입니다. 카타르는 돈이 행복의 요소라 가정한다면 (문화나 인프라없이) 순수하게 돈만 많은 나라가 행복할지 알아보려 가본 경우입니다. 몰도바는 객관적 지표에 비해 스스로 평가하는 행복이 최악이라 그 이유를 보러 간 것입니다. 영국은 행복의 시계열적 변화를 보러 갔습니다.


What is happiness?
책은 행복의 다양한 요소 뿐 아니라 행복하지 않은 이유도 꼼꼼히 따집니다.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니 입체적입니다. 동양과 서양, 빈부 등 특정 요소의 가능한 대척점들을 이래저래 살핍니다. 그래서 어줍잖은 행복학자들보다 더 설득적입니다.

물론 에릭 씨는 행복의 요소가 이거다라고 단칼로 잘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책 한권을 읽으며 세상을 함께 주유하다보면 어떤게 행복인지 뭉실하게 잡힙니다. 예컨대 세계에서 가장 춥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축에 드는 아이슬랜드를 보면 종교도 필수요소가 아닙니다. 착한 무신론자들이 확장적 가족개념으로 살아도 행복이 매우 높습니다. 또, 스위스의 공리적 만족은 평균은 높고 표준편차는 작은 행복분포도를 보이면서, 넘치는 기쁨과 행복은 매우 어렵단 사실도 알게 됩니다.

확실한건, 돈이 행복에 꽤 중요한 요소지만 카타르처럼 돈만 많다고 행복하지 않고, 부탄마냥 돈이 없다고 꼭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국, 주변인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돈으로 세운 신기루의 나라보다, 세상과 정보를 차단하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행복을 지켜나가려는 부탄의 시스템이 합리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사회네트워크와 공동체적 관계신뢰의 문화가 행복에 중요한 요소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달랑 관계와 신뢰라는, 두 개 키워드 들고 나타났다면 진부한 결론이고 식상하다고 핀잔 받을만 하겠지만, 여러 나라의 이면을 보고 나면, 충분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이란 점을 인정하게 됩니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Fascinating writing style
에릭 씨 글투도 마음에 듭니다. 무척 감성적인 에세이나 여행기로 살집을 잡았지만, 군데군데 학문적 결과를 뼈대처럼 박아 넣었습니다. 그래서 부드럽지만 단단합니다. 매우 예리한 기자의 감각과 여행가의 위트가 살아 있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유머에 필적한다고 평가를 받았는데, 제 보기에 브라이슨 씨의 질낮은 떠벌임에 비유하긴 아깝다고 봅니다.

실험실의 표본에서 추출한 박제된 행복이 아니라, 세상 돌면서 주워 모은 행복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절로 행복한 기분이 들겁니다. 의외로 우리나라에 행복의 요소가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되니까요.

이 책 새해 첫 리뷰로 소개하려 꼭꼭 참았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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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2 , 댓글  13개가 달렸습니다.
  1. 이책 좋아요!!
    주위에도 몇 번 추천해보았지만, 가볍지 않은 두깨와 빡빡한 글씨.. 때문에 부담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여행책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고 ㅜㅜ
    • 해피씨커님은 닉네임 답게 이미 읽고 잘 음미하셨군요. ^^
      이 저자도 결국 happy seeker였던거죠..
  2. 어멋..새해에 좋은 책으로 즐거움을 주시네요..
    저 블러그 하면서 많은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참 좋아요!
    무슨 책을 읽어야할 지 모를때 짜짠~~하고 추천하시는 책이 불빛이 됩니당.

    복 받으실겨~~~~^^
  3. 보통의 책 '불안'이 오버랩되네요.
    행복과 불안. 왠지 두책이 시리즈 같이 느껴집니다. ^^
    '불안'도 참 좋았는데, 행복도 기대됩니다. 조만간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좋은책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4. 헉...역시 형이상학을 추구하시는 신사분이세요.
    전 새해 벽두부터 below-the-belt 이야기 올렸는데.. ;)

    행복과 행운이 넘쳐나는 한 해를 만드시길..
    • 이궁..
      아거님처럼 글을 잘 쓰지 못하는지라, 주제의식이라도 선명하게 가져가려던 참이었습니다. ㅠ.ㅜ

      아거님, 항상 별처럼 영롱한 글 감탄합니다.
      글도 글이지만, 올해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기 바랍니다. ^^
  5. 앜 저도 이책 읽어봐야겠습니다.
    작가가 우리나라에 와봤으면 뭐라고 썼을까요.
  6. 더러운 세상 2014.04.17 17:59 신고
    구미선진국들은 낙관적이라는 답변율이 굉장히 낮고 비관적이라는 답변율이 높은나라인건 그만큼 불평불만하며 사는것은 당연하게 여기기때문에 가능한일일겁니다! 저는 사실 의미있는삶도 좋지만 구미선진국에서는 이미 없어진 가족유대감과 마을공동체간의 유대감이 강한나라에서 몇달간 체류해보고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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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굴기

Biz/Review 2008.03.30 23:45
역사가 순수한 과거의 총합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아실겝니다.
역사는 지난 일을 보는 사고의 틀이며, 그래서 현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점치는 길잡이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가 관통하는 현재와 미래는 다르지 않고 한 궤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왕지아펑 외

大國崛起. 대국의 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상의 강대국들이 우뚝 선 과정을 뜻합니다.

스스로 대국이기를 표방하지만, 역사에 남을 진정한 세계의 대국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열망이 집약된 책입니다. 원본은 영상물인데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중국 CCTV에서 방영 후 열띤 반응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우리나라에서도 EBS, 한경 CEO 강좌 등에서 다룬 바 있지요.

선정된 강국들은 실제로 쟁쟁합니다.
그리고 저자들이, 아니 중국이 주목하는 대목은 철저히 실용적입니다. 강성했던 역사의 스냅샷에 집중하고 해부합니다. 따라서 대국의 리스트가 중요한게 아니라, 확대경을 들이대는 시기도 눈여겨 봐야합니다.
대항해 시대의 포르투갈/에스파냐, 17세기 네덜란드, 산업혁명과 식민제국의 영국, 대혁명 이후 프랑스, 3제국의 독일, 메이지 유신시대의 일본, 혁명 이후의 러시아, 그리고 지금의 미국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철저히 정치적입니다. 중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합니다. 그러나, 가소로운 자기만족이나 견강부회, 아전인수는 없습니다. 꼼꼼히 사료를 놓고 고민한 결과를 적었습니다. 각 나라의 흥성에서 철저히 배우고자 합니다. 기존의 시각이나 서구적 잣대는 무시하고, 중화적 관점으로 마주합니다. 뻐기지 않으나 오연하고, 인정하나 비판합니다.

제가 행간에서 읽는 중국의 관점입니다.

포르투갈에스파냐가 그 작은 몸집으로 세계를 제패한 시기에 중국의 정화도 아프리카까지 도달했습니다. 기술이나 규모에서 중국이 앞섰지만 유럽이 이주였으면 중국은 소풍이었습니다. 중국의 진한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소국 네덜란드는 엄청난 벤처정신으로 잠깐이지만 경제 대국을 이뤘었습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으나, 주식회사, 증권거래, 은행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장점을 곰곰히 뜯어봅니다. 창의성의 발현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영국은 산업의 발전 단계에 큰 관심을 보입니다.
정치안정 -> 면직물 산업 진흥 ->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적기 -> 실에 비해 느린 방직과정이라는 병목 해결을 위한 방직기 -> 기계산업을 위한 제철 산업 -> 제철을 위한 에너지 산업 -> 전 산업의 공장화 -> 잉여재화를 위한 자유무역 추진 -> 회사, 은행, 국제 금융의 발달 -> 운송을 위한 철도 -> 식민지 경영
이런 발전과정은 뒤에 나오는 나라들에서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봅니다.

프랑스에 보내는 시선은 묘합니다. 귀족정권에서 민중혁명으로 대 반전을 겪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알제리의 분리에 반대해 질곡을 겪기도 했지요. 중국의 상황과 닮아 있습니다. 최소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대편이라는 동지의식도 강합니다. 그러다보니 비판조의 러시아나 일본에 비해 나을 것도 없는데 꽤나 따뜻합니다. 최소한 존중합니다.

독일 편은 참 재미있습니다. 수백개로 갈라진 나라가 열강사이의 틈바구니에서 통합하는 과정을 반복재현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Bismark의 소독일 통합론과 Hitler의 대독일 통합론이 그것입니다. 차이는 오스트리아입니다. 독일어권으로 묶느냐 민족으로 묶느냐입니다.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역사를 어떤 책보다 흥미진진하게 다룹니다. 소수민족 정책을 비롯해 중국의 현안이 녹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매우 냉랭하게 다룹니다. 뭐 이쁜 짓한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 전까지 하나라도 쥐어짜서 배우려는 유럽에 비해 논조가 사뭇 다릅니다. 물론 잘한점은 철저히 발라냅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라며 가르치려 듭니다. 사무라이 문화가 낳은 군국주의와 가소롭게 세계 제패니 대동아 공영을 논한 확장주의가 문제라는 투입니다. 제법 수긍가는 논리라서 읽는 저는 웃음이 슬몃 나왔지요. 무수히 많은 나라의 침략사를 이야기하지만, 중국의 침탈은 아주 아프고 참담하게 묘사하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덩달아 한국도 기막힌 피해자로 매겨주긴 하지만요.

러시아도 재미있습니다. 일본을 얄미운 우등생 보듯 했다면, 러시아는 로또 맞은 졸부 취급합니다. 아예 이렇게 못박습니다.
"갈수록 더 눈부신 발전, 갈수록 더 참담해지는 실패" 또는 "대국 콤플렉스"
매우 신랄하지요. 꼭 공산주의의 맹주를 가리자는 의도가 크진 않은듯 합니다. 미국 이외에 패권을 다툴 유일한 국가이자, 국경을 맞댄 껄끄러운 이웃이라고 보는게 정확할겁니다. 단순화하여 말하면 러시아는 아직도 '농노형 경제'라고 깔보고 있지요. 어쩌다 보니 잘된 '덜컥 대국'이라 치부합니다.

마지막 미국입니다.
굴기의 시기가 가장 현대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유일하게 의식하는 경쟁자라서 마지막입니다.
다른나라는 과거에서 배우고자 하는 의도라면, 미국은 벤치마킹의 의미가 큽니다. 현재진행형이기도 하고, 미국과의 경쟁전략은 따로 다뤄질 부분이기에 또렷한 교훈은 두루뭉수레한 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정적 국가체제나 건강한 내정, 이민자 포용정책과 실용주의 등 현재의 성공요인을 객관적으로 꼽고 있습니다.

각 챕터의 저술은 나라별 중국인 전문가들의 안목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연합체가 아니라 정치적 조율이 이뤄진 작품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다 아는 역사인데 관점하나만 바꿔도 새롭게 읽힌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우리는 우리의 사관으로 세계를, 과거를 보는 노력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물론 중국은 동북공정처럼 중앙 집중형 사학이 융성할 토양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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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inuit_k / CxO / Author ("가장 듣고 싶은 한마디 YES!") / Making better world, every minute.

트랙백  2 , 댓글  16개가 달렸습니다.
  1. 멋진 서평 잘 읽고 갑니다. 다른 책보다도 먼저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
  2. '대국(일명선진국)이 일어선다'라는 뜻인가요?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3. 개인적으로는 서점에서 한 권 쭉 읽어봤는데요, 저 역시 이 책이 대중역사서 치고 약간 수준이 있는 편입니다만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조율이 이루어졌다는 평에 동감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 지배층이 방송·출판 등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일종의 미션을 부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엿보인달까요.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대국이 되어야 하니 국민들은 다른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따르라." 이런 류의 주장 말입니다.

    한 때 경제발전을 빙자해서 민주주의를 억눌렀던 역사를 지닌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 점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류의 책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 어떤 비극이 닥칠지 걱정됩니다. 이번 티베트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요.
    • 맞습니다.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이 저변에 깔려있는데, 학술적으로 패키징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저처럼 고약하게 뜯어보지 않으면, 그냥 신선하다 넘기게 적어 놓았지요.

      하지만, 내심은 티벳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
  4. 정치적 시각이 깃든 역사책이자 벤치마킹 저서이군요. 상당히 재밌을 것 같습니다. 리뷰의 내용만 보더라도 중국이란 나라가 굉장히 무서워집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잘 실천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말 백전백승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역사소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찜해두고 읽고 싶은 책이네요. 언제나 많은걸 배워갑니다. 좋은 책 소개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리 선입견을 드릴까 걱정스럽긴 합니다.
      제가 나름대로 읽은 대국굴기라서요.
      Hexa님은 제 포스팅 스타일을 잘 아시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만. ^^
  5. 저는 독일편만 읽었는데요. 다른 편을 읽어 보아야 겠습니다.
    이런 중국책 읽으면 왠지 기분이 묘해집니다. 같은반 친구가 정리해 놓은 요약 노트에 눈을 뗄수 없는 그것처럼요. 경쟁자인가 봅니다. 중국은...특히 제목이 대국굴기라니...
    좋은포스팅 읽고 트랙백남기고 갑니다. ^^
  6. 저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봤는데 -_-... 좋은 시각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2000년대 초반 중국이 외교 정책을 '평화굴기'로 정했다가 전투적이라고 욕 먹고 (굴기가 rising으로 번역되더라고요) 평화발전으로 바꾼 적 있는데 이 시리즈 제목부터 무지 노골적이군요...;
  7.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역사라는게 보면 볼수록 재미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도,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도 힘들고, 그렇기에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요. '과거에서 배운다'는 단편적인 교훈 이상의 느낌을 역사는 주는 것 같습니다.
    •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들과 역사 토론을 많이 합니다.
      fact 자체도 비판적으로 봐야하지만, 그 해석을 도와주는 부분은 매우 중요하니까요.
      주입하지 않되, 중심을 잡도록 돕는 역할을 해주려 합니다.
  8. 그 예전, 중국사람들은 역사를 아는 사람을 관리로 뽑았습니다. (자기들 역사였지만서도..)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총합이 아니라 거대한 수레바퀴속에서 현세와 미래까지 이어지는 연속형이라 봅니다.

    재밌어 보이는 책이군요. 그런데 중국고대사만 잘 정리해도 배울게 많을텐데 말이죠 ㅎㅎ
    • 과감하게 말하면, 중국 역사 연구로는 아시아 지역을 넘어설 수 없다고 보는게 아닐까 싶어요.
      세계를 제패했던, 또는 이름을 떨쳤던 이유들을 찾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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