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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 째 답사지는 부석사다.

가보진 못했을 망정, 모르는 사람은 없는 국민 기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예전에 교과서에서 봤을 때 배흘림이 뭔지, 주심포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외웠던 그런 곳.

다른 건축과 달리, 부석사는 지방에 있어 멀다.
쉽게 접근하지 못하니까 가기전에 공부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점.
우리나라에 부석사가 둘 있다. 
서산 부석사와 영주 부석사.
이중 영주 부석사가 흔히 유명한 그 부석사다.
서산 가서 배흘림 기둥 찾는 사람 꼭 있다.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화엄종 본찰이다.
고려 이전의 목조건축이 우리나라에 다섯개 있는데 그중 하나다.
봉정사 나오기 전에는 최고 오랜 목조건축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면, 그깟 목조건축 오래된게 무슨 큰 일일까.
오래가는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화재건 벼락이건 바람이건 지진이 되었든, 
세월되면 삭아내려 외부 충격에 무너질 여지가 있는게 건축이다.
석조도 그 운명을 벗기 힘들지만, 목조는 현저한 위험이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버텼다는 점에서 고목조건축은 중요하다. 
공학적인 탁월성에 대한 세월적 검증이기 때문이다.
서현의 해석에 의하면 건축의 최적화와 진화의 증거다.

날렵한 처마의 곡선, 화려한 기둥 위 공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세월을 견디기 위한 목수의 고안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건물 보는 재미가 다르다.

배흘림 역시 마찬가지다. 
아래가 갈수록 넓어지는 나무의 특성 상 민흘림을 쓰는게 싸고 편하다.
굳이 나무를 깎는다면, 아래 석대를 깎는 것보다 쌀 때 타당하다.
즉 미학보다 경제학이다.

마찬가지로, 기둥 위에만 공포가 올라간 주심포 이야기도 있지만, 
이건 이쯤 마치고, 아무튼 영주로 향했다.

서울서 자가용으로 가면 세시간 거리의 부석사다.
하지만, 답사여행은 대중교통이 제맛이다.
집에서 목적지를 차로 그으면 점대점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점과 점을 잇는 선까지 경험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대중교통은 이산 값(discrete value)에 해당한다.
지정된 시간에 차를 못타면 한시간 또는 두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시간의 사용이 매끄럽지 못한 불연속이지만, 반대로 쉼표가 숨을 불어 넣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터미널이 있는지 살짝 놀랄 건물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뱅뱅 돌아도, 카페는 없고 '다방'만 즐비하다.
그래도, 수백명의 사연이 교차하는 그곳은 사람냄새 진하고 보기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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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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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차 끌고 가셨으면 한번에 가셨을텐데...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건 마치 패키지 투어와 배낭여행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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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게 속았다.


요즘 제목에 속은 책이 몇 권 있었다. 이 책도 제목에 낚인 셈이다. 왜냐면 딸과 부석사 가기 며칠전 급히 구매했기 때문이다. 저술가 서현의 브랜드 파워를 일단 믿었고, 뭐가 됐든간에 부석사에 대한 전문적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책은 부석사 매뉴얼이 아니다. 그보다 범위가 넓고, 깊다. 우리 전통건축 생김새의 필연적 비밀을 파헤치는 과학적 프레임웍을 제시한다.

서현

바꿔 말하면 내가 홀딱 반하는 류의 책이다. 내 사고의 기둥을 세우는 책.


그런면에서, 기분좋게 속았다. 딸 사주고 나서 책을 몇장 들쳐보다가, 바로 내방으로 가져왔고, 휴일 일정을 바꿔 읽고, 새벽까지 끝을 보고서야 잘 수 있었다. 오랫만이다. 책을 더 보고 싶어 잠을 물린 기억은..

자연의 모습은 아름답다. 멋을 부리려한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변화했다. 부드러워지거나 길어지고 기발한 장치를 갖고. 동물, 식물을 넘어 산과 강이 다 그렇다.

건물은 어떨까.
분명 인공의 미를 추구하지만, 환경의 도전과 자원의 제약하에서 기능과 안전을 담당하는 건축 또한 적자가 생존하는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그래서 이 책은 전통건축을 진화론적으로 해석한다. 배흘림 기둥, 멋지게 들린 앙곡의 단아한 선, 낭만적인 처마, 낙수 떨어지는 댓돌까지 왜 그 자리에 그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원인을 궁구한다. 이 부분이 최적화(optimization)이다. 

건물은 문화다. 종종, 진화적 선택압이 사라진 이후에도 선대의 진화적 진보를 무의미하게 답습하거나 미 자체를 추구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양식화(stylization)다. 이 둘의 구분이 중요하다. 그리고 배흘림 기둥은 그 교점에서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다, 물론 책에서 배흘림기둥은 단 한 페이지정도의 분량이고, 고대건축의 셀러브레티로서 얼굴마담일 뿐이지만.

서현의 설명은 유려하고 논리적이다. 
우산에서 시작하여 기둥의 구조, 모임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에 이르는 지붕론을 바로 관통한다. 그리고, 포작. 우리 목조건축의 위대한 발명이자 꽃이 피어나는 화려함을 지닌 그 구조의 필연적 생겨남을 담담히 서술한다.

어떤 관점에서, 서현의 논리전개는 유려하되 검증 불가능하다. 어떤 문서나 학문적 정리 없이 다만 양식에서 추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학도의 reason과 경영자의 rational을 지닌 내가 판단하기에, 믿을 가치가 있다. 이 구조를 쓰지 않은 모든 목조건물은 천년의 세월을 못 버텼다. 오직 5개의 고려건물만이 오롯이 남아 상상력의 실마리만 겨우 던져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 이 책 꼭 한번 읽어라. 절집 하나를 봐도 구석구석이 다 달리 보일 것이다.

결국 안 속았다. 
부석사 가기 전날 다 읽고 부석사에 갔고, 난 단숨에 부석사의 비밀과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지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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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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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을 이렇게 멋있게 쓰시다니...새삼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이런게 진정 바이럴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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