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에 해당하는 글 2건

정유정 작가의 신작에 해당하는 '7년의 밤'을 먼저 읽고 나니, 그의 다른 책은 읽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글솜씨는 인정하겠지만, 불편할 정도의 몰입감과, 있음직하게 뒤틀린 세계관이 휴식을 위한 독서와 잘 안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권 다 읽은 아내가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는 보다 가볍고 유쾌하다고 줄곧 말한지라, 작가의 다른 세상을 만나보려 휴가 때 읽었습니다.

정유정

확실히 낫더군요. 인생에 갑자기 변화구가 던져진 '7년의 밤'처럼, '내 심장'도  갑자기 정신병원에 갇힌 사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돌이킬 수 있다는 점, 실낱 같은 탈출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한껏 희망적입니다.

무엇보다 스테레오 타입의 악역은 있을지언정, 뼛속까지 철저한 악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폭력과 증오의 농도도 훨씬 묽습니다. 게다가 수용자들끼리는 큰 틀에서 용서와 화합을 하니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지요.

결국, 열악하지만 물리적 생존에는 큰 지장 없는 곳이지만, 정신적 생존과 자유를 위해 바깥 세상으로의 위험한 동경을 드러내는 자체적 위기구조의 책입니다. 그렇다고 흔한 탈출 스토리와 궤를 같이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치밀한 정신병원 묘사로 인해 다른 무대가 펼쳐 졌다는 점과 무엇보다 정신병원 탈출은 일탈일지언정 위법은 아니니까요.

신작을 먼저 읽고 전작을 읽은 탓에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신작이 테크닉 면에서는 보다 화려해졌지만, 순박한 주제정신과 몸을 던진 노고의 장대함에서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가 저는 더 좋네요. 가볍게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의 짐을 스르르 내려놓게 되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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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Culture/Review 2011.08.03 22:00

정유정

정유정 작가의 글맛이 좋다는 단 한가지 정보만으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집어 들었다가 꽤 고생한 책입니다. 고요히 머리를 식히며 릴랙싱하려고 일요일 아침에 집어 들었다가 무려 열시간은 들여서 책장을 덮고 잤기 때문입니다.

책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그런걸까요. 아닙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보는 책은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빨리 좀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강해서 더 읽게 됩니다.

'내 인생에 던져진 변화구'로 인해 평범한 일상은 급류에 휘말리고 납니다. 각자 사연이 있고, 구조적 갈등의 인화물은 빽빽히 들어선 상황이지만, 그 발화점은 사실 운명의 장난같이 다가오고 말지요. 수십년 일생 중 단 몇 분의 찰나로 인해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인생은 매우 씁쓸하고 가슴 답답한 상황입니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듯, 느리고도 꾸준히 전체 윤곽을 잡아가는 이야기 구조로 인해 마음속 응어리를 뭉근히 녹여내느라 당일에 끝을 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냥은 꿈자리 사나워서라도 못 잘 노릇이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무슨 괴기소설 같지만, 책은 작가의 정성과 2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겨질만치 꼼꼼하고 세밀합니다. 500페이지 전체 내용이 일관되면서도 반전도 없이 클라이막스도 없이 점층되어가는 구조는 작가의 필력이 보통 아님을 새삼 느낍니다. 

책의 앞머리에는 시점과 관점이 정신없이 이동하여 혼란스럽고, 다소 기교에 치중한 면이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탄탄하고 수백번 벼려낸 진국이라 글의 힘이 좋습니다. 전작인 '내 심장을 쏴라'에 비하면 적지만 위트와 재기가 넘치는 문장 또한 인상 깊습니다.

요즘 김애란 작가를 비롯해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들이 있지만, 정유정 작가의 연륜은 새로운 글맛을 보여줍니다. 아무튼 책을 읽기만 하는데도 정신적 압박감을 느낄 정도의 사려깊은 플롯과 치밀한 묘사로 이 책을 잊기 힘들겠습니다. 물론, 한번 더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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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글링하다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책소개를 정말 맛깔나게 하시네요. 저도 이책 읽다가 하루만에 못읽어서, 며칠동안 고생좀 했습니다. 밤에 화장실 가는게 꺼려지던걸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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